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40)
신의 메스-140화(140/249)
140화 살려야 할 환자가 둘이다. (6)
다음 날, 흉부외과 병동은 평소와 같았다.
“할머님, 할머님은 협심증 환자세요. 이런 거 몰래 드시면 퇴원 못 하십니다.”
박상우는 순대를 사와 몰래 먹은 환자를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리며 환자를 나무랐다.
“어머니께서 순대를 너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보호자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협심증 환자분께 이런 자극적인 음식을 드시게 하면 어떡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지금까지 치료받으신 게 전부 무의미해져요.”
박상우는 여느 때처럼 회진을 돌며, 여느 때처럼 환자들과 치료를 위한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님, 이건 제가 맡아 둘 테니까 나중에 퇴원하시면 찾아가세요.”
옆에 있던 김민준이 할머니에게서 순대 봉지를 빼앗아 들었다.
“뭣이여? 나가 언제 퇴원할지도 모르는디? 그때까정 가믄 다 썩어 문드러지것네.”
“그렇게 되면, 제가 다시 사 드리면 되죠.”
“참말인가? 간하고 허파도 실컷 먹게 해 주는 겨?”
“물론이죠. 다 낫기만 하시면, 제가 실컷 드실 수 있도록 사 드릴게요.”
“알았어. 그라믄, 난 젊은 의사 선상만 믿네.”
환자를 어르고 달랠 줄 아는 김민준이었다. 그는 할머니 환자에게서 받아든 음식물 봉지 입구를 잘 묶어 한 손에 들었다.
띠리리링!
회진을 마치고 병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박상우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조민한 과장의 전화였다.
물끄러미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박상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박상우입니다.”
“박 교수,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와.”
노기가 잔뜩 묻어 있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과장님.”
반면에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박상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조민한 과장실로 향했다.
박상우가 들어오자 조민한 교수는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으로 소파를 향해 턱짓했다.
“앉아.”
“네, 과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박상우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몰라서 물어? 너, 민정철 대표 만났다면서? 맞아?”
“네, 맞습니다.”
“그럼 수술 연기하자고 했던 것도 맞겠네?”
조민한 과장은 금방이라도 송곳니를 드러낼 것처럼 입술을 움찔거렸다.
“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의 몸 상태가 최악이라서…….”
“개소리 집어치워! 너, 민정철 대표한테 IDN2 운운했다면서? 그게 말이야?”
조민한 과장은 박상우의 말허리를 자르며 발끈했다.
“정황상 IDN2가 의심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아주 미쳤구나? 미국물 좀 먹고 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보고해야 하는 것 아냐?”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말씀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 아주 위아래 싹 다 무시하고 너 혼자 다 해 쳐드시겠다는 거야? 게다가 IDN2 그거, 아직 실체가 없는 병 아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네가 이러고도 멀쩡할 것 같아?”
“과장님, 왜 이렇게 흥분하시는 겁니까?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IDN2가 아닌지 맞는지는 존스 측에 의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
조민한 과장은 평소보다 유난스럽게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대 2주면 족합니다. 지금 당장 어르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어르신의 몸 상태도 최악입니다. 이대론 무리라고요! 그건 과장님께서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너, 미쳤어? 지금 도너 상태도 최악이야! 까딱 잘못했다가는 수술하기도 전에 심장이 다 썩어 버린다고!”
“그렇다고 수술 강행하면, 어르신 돌아가신다고요. 혈액 검사 샘플만 보내면…….”
“네가 아주 돌았구나? 하아, 내가 널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역시 출신은 못 속이는 건데…….”
조민한 과장은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오는 겁니까?”
박상우는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조민한을 노려보았다.
“아아,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이번 수술 퍼스트는 한준수 선생으로 체인지할 거니까, 넌 이번 적출팀에 합류해.”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수술은 하면 안 되는 수술입니다. 아까운 심장 하나 날리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를 죽이는 수술입니다.”
“그 입 안 닥쳐! 너 아주 의사가운 벗고 싶어?”
조민한 과장은 입에 게거품까지 물며 발악했다.
“과장님, 이게 과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 과장님께서 얼마나 큰 실수를 하고 계시는 건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 무슨 개소리를 자꾸 지껄이는 거야! 아니다, 넌 적출팀에서도 빠져. 이 인간, 아주 위험한 인간일세. 우리 병원을 아주 말아먹을 생각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좋아. 네 말대로 장진섭이 IDN2라 치자. 그래서, 뭐? 지금 상태라면 수술을 하든 안 하든 가망이 없는 것 아냐? 그렇다면 수술대 위에서 죽는 것이 병원을 위해서도 나은 일이야. 지금 싱싱한 도너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수술하지 말자고? 그걸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집도의로서 조민한 과장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혹시 과장님도 어르신이 IDN2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내가 알든 모르든 그게 중요해? 어차피 나는 집도의로서 수술을 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그게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야.”
“…….”
“지금 이 순간, 이 수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라고. 그러니까, 너도 살고 싶으면 내 말대로 이번 수술에서 빠져. 그게 선배로서 너한테 보이는 마지막 호의니까.”
박상우를 향해 검지를 추켜세운 조민한 과장은 이빨을 악다물며 경고했다.
“결국, 명분을 위해서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겠다는 겁니까?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에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이 한심한 친구야,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이번 수술은 그냥 해야 하는 거야. 다른 이유가 없어. 수술에 성공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괜히 깝죽대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왜 자꾸 명을 재촉하는 거야!”
조민한 과장은 눈을 부라리며 박상우를 협박했다.
“…….”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정치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돼. 장진섭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고, 우린 그냥 하면 돼. 그 안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 그걸 알려고 하는 순간, 죽는 거야. 마치 파리지옥처럼 말이야! 넌 똑똑한 놈이니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적선을 베풀기라도 하는 듯, 조민한 과장은 박상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파리지옥은 파리한테나 지옥이죠.”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파리지옥은 파리한테나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박상우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조민한 과장의 협박에 주눅 들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2003년, 김환식 환자 장기 거래 알선. 2005년 정영자 환자 의료 소송 무마 사건, 2007년 의료 기기 업체 바이오 제닉스 리베이트 건! 어떻게, 익숙하신 내용 아닙니까?”
조민한 과장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 박상우는 조민한 과장 최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회귀 전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박상우였다.
물론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지만, 증거 따위는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처리한 완전범죄라고 믿고 있는 사건을 누군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소심한 성격의 조민한 과장에겐 충분한 공포심이었다.
“지,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흔들리는 동공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박상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물어보실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셔야죠. 제가 좀 더 자세히 말씀드려 볼까요? 2003년 김환식 환자의 경우, 심장 이식 순서를 바꿔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한 장수 의원의 장남…….”
박상우는 가지고 있던 노란 봉투에서 문서를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자, 잠깐만! 그래서, 그래서 지금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조민한 과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며, 귀밑까지 벌게져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미 박상우의 완승이었다.
“진즉에 그렇게 나오셔야죠. 그래야 우리 대화가 순조롭지 않겠습니까?”
“그, 그래. 말해 보라고.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말이야.”
마른침을 삼켜 넘긴 조민한 과장이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일단, 이번 수술에선 적출팀 팀장으로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하하, 그, 그게 다인가?”
박상우가 들고 있는 노란 봉투에 시선이 고정된 조민한 과장은 박상우의 눈치를 보며 마른 입술에 침을 둘렀다. 조금 전과는 180도 다른 비굴한 모습이었다.
“네. 그 정도면 됩니다.”
“그러면…… 저, 저건?”
조민한 과장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조민한 과장의 모든 감각은 박상우가 들고 있는 봉투에 쏠려 있는 듯했다.
“아, 이거요? 이건 제가 좀 더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이 봉투가 과장님이 말씀하신 파리지옥쯤 되겠군요!”
박상우는 다시 한번 봉투를 열어, 안을 빼꼼 들여다봤다.
“박 교수! 우리 이러지 말고 밖에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대화를 좀 하는 게 어떨까?”
자신을 파리에 비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민한 과장은 비굴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박상우가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일어나 웃옷을 챙겨입었다.
“과장님, 죄송하지만 전 선약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그런가? 그럼 내일 저녁은 어떤가? 내가 가끔 가는 음식점이 있는데, 거기 음식이…….”
애가 타는지, 조민한 과장이 연신 입술을 잘근거렸다.
“과장님, 모레가 수술입니다. 이런 큰 수술을 앞두고 술이라뇨?”
박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민한을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
“그, 그게…….”
조민한 과장은 반찬을 집어 먹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아, 그리고 제가 하나를 빠뜨렸네요. 최대한 빨리 신변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는 과장님께는 너무 넘치는 자리 같아서 영 어색하군요.”
명패를 손톱으로 툭툭 건드린 박상우가 조민한 과장을 향해 냉소적인 미소를 날렸다.
박상우는 냉정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으아아아악!”
박상우가 나온 뒤, 무언가 쓸려나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민한 과장의 비명이 문틈 사이로 함께 새어 나왔다.
* * *
박상우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김민준 선생, 아무래도 우리 계획대로 진행해야 할 것 같아! 차질 없이 준비해 두자고.”
박상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레지던트 김민준이었다.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김민준의 목소리에선 그 역시 조금은 긴장한 게 느껴졌다.
“이런 걸 두고,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잡았다고 하는 건가?”
전화를 끊고 복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박상우는 쓰레기통에 노란 봉투를 쑤셔 넣었다.
그저 실없는 낙서뿐인 문서가 조민한 과장을 잡은 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봉투였지만, 조민한 과장에겐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