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44)
신의 메스-144화(144/249)
144화 살려야 할 환자가 둘이다. (10)
“왜요?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습니까? 민 대표님은 제가 이 자리에 오지 않길 바라는 눈치네요.”
송영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눈빛만은 칼끝처럼 날카로웠다.
외투를 벗어 팔에 걸친 후, 송영은은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좀 좋지 않아서요. 상황이 정리되면, 사모님께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민정철 대표의 얼굴이 매우 붉어졌다.
“그렇게 호들갑 떨 것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네? 알고 계셨다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떤 걸 알고 계셨다는 건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세요. 대표님도 차차 알게 되실 테니.”
송영은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민정철에게 말했다.
“아…… 네.”
눈을 껌벅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에 앉은 민정철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대표님, 내려가서 정리할까요?”
경호원이 슬금슬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민정철에게 다가와 귀엣말을 전했다.
“아니야. 일단 대기해.”
“알겠습니다.”
민정철이 손을 내젓자, 경호원들은 다시 참관석 뒤쪽으로 물러났다.
“마틴 교수님, 어떤 문제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송영은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옆에 있던 마틴 교수에게 말했다.
‘뭐, 뭐야? 마틴 교수? 존스 홉킨스의 그 에릭 마틴 교수를 말하는 거야?’
지동철 원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경을 벗고는 자신의 옷소매로 문질러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쓰며 마틴 교수라 불린 사람을 응시했다.
“그렇게 하지요. 마이클 교수, 이분들에게 보고서를 좀 배부해 주세요.”
마틴 교수의 등장만으로도 놀라운데, 보고서를 배부하는 사람은 박상우의 존스 홉킨스 시절 베스트 프렌드였던 흉부외과 전문의, 마이클 베인스 교수였다.
“오랜만이야, 친구!”
“마이클, 반가워!”
마이클은 보고서를 배부하기에 앞서, 수술실을 내려다보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박상우도 그에게 손을 들어 화답했다.
“저분이 존스 홉킨스 유전자 연구소장, 에릭 마틴 교수가 맞습니까?”
지동철 교수가 보고서를 나눠 주는 마이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이럴 수가, 에릭 마틴 교수라니.”
에릭 마틴 교수는 유전자 치료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이름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지동철 원장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 저분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에릭 교수님이 저기 있는 써전과 절친한 사이이지 않습니까? 한국 속담엔 친구 따라 어딘가로 간다는 말이 있다면서요? 저나 교수님이나, 친구 보러 왔습니다.”
마이클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바, 박 교수와 에릭 교수가 아는 사이라고요?”
“그건 아니죠! 저 친구와 우리는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베스트 프렌드!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면서요? 베프?”
마이클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미치겠군. 박 교수와 에릭이 친구라니…….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지동철 원장은 현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연신 얼굴을 문질렀다.
마이클은 이죽거리며 지동철 원장을 향해 손가락을 내저었다.
“에이. 친구가 아니라 베프요, 베프!”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두 분이 박 교수를 만나고 싶었다면 따로 만나면 됐을 텐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겁니까? 이건 또 뭐고요.”
정신을 추스르며 손바닥을 펼쳐 보인 지동철 원장은 마이클이 건네준 보고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에릭 마틴 교수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월권행위 아닙니까? 저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셔서 이러는 건…….”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지, 지동철 원장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아, 그건 이미 명성병원 이사장님의 재가를 받아 둔 상황입니다. 워낙 사안이 급해서 원장님께는 사전에 말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틴 교수가 지동철 원장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네? 이, 이사장님께 이미 보고가 된 사항이라고요?”
‘어떻게 이사장님이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마틴 교수의 말에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지동철 원장은 다시 입을 다물고 어금니를 빠드득빠드득 갈았다.
“그렇습니다. 추후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자 그러면,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나눠 드린 보고서 브리핑을 이 자리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참관석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마틴 교수의 입에 집중되었다.
“3페이지를 봐주십시오.”
마틴 교수의 말에, 사람들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3페이지로 넘겼다.
“최근 의뢰된 장진섭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장진섭 환자는 IDN2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모든 장기 이식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일종의 면역 체계 이상 현상으로…….”
마틴 교수는 약 20여 분간 브리핑을 진행했다. 장진섭 대표가 IDN2를 앓고 있다는 것이 앞선 검사를 통해 수차례 입증되었으며, 심장 이식 수술은 결국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내용이었다.
에릭 마틴 교수의 브리핑은 의료진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사례가 존재할 뿐, 치료법도 예방법도 없는 질병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일 터였다.
명성대학교 병원 의료진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진섭 환자가 저 IDN2 환자라고?”
“놀랍군. 지금 설명해 준 대로라면, 자가 면역 과잉 반응이란 거 아니야? 장기는 물론, 수혈에도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보고되어 있으니까……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면 바로 죽을 뻔했던 거네.”
“그럼 박 교수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렇지! 마틴 교수를 불러들일 정도면 엄청난 인맥인데? 저 친구는 도대체…….”
에릭 마틴 교수의 브리핑이 끝나자, 송영은은 고개를 돌려 민정철 대표를 응시했다.
“민정철 대표님, 이제 이해가 좀 되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민정철 대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많이 놀라셨나 보군요. 아, 그런데…… 대표님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아닌가요?”
송영은은 미소를 지우며, 민정철 대표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제가 뭘 알고 있었다는 건지 저는…….”
목 밑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민정철 대표가 당황함을 그대로 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요? 그럼, 그건 차차 확인하도록 하고. 남편의 병을 확실하게 진단했으니, 이제 저 선생님께 운명을 맡겨 봅시다.”
온화한 듯 날카로운 미소를 입가에 띤 송영은은 손가락으로 박상우를 가리켰다.
“사, 사모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 사람은 대표님의 심장을 빼돌린 사람입니다. 어떻게 저런 자를 믿을 수…….”
“그 심장은 좋은 주인을 찾아갔을 겁니다. 그건 저기 누워 있는 남편 또한 원하던 바였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에게 맡긴다면 남편의 수술은 성공적일 겁니다. 그렇죠, 교수님?”
송영은은 간절한 심정으로 마틴 교수를 응시했다.
“…….”
마틴 교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한테는 아무런 말도 없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제 남편의 일을 당신과 상의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그, 그건 아니지만, 사적으로는 그렇지만 대표님은 우리 당의 대표로서…….”
“그깟 대표 자리! 당신이 하면 되겠네요. 어차피 그게 당신의 목적 아니었습니까?”
송영은은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를 쏟아냈다. 민정철 대표의 위선적인 모습을 더는 간과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는 당신과 말씨름하기 싫군요. 마틴 교수님, 계속 진행해 주세요.”
송영은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곤, 시선을 마틴 교수 쪽으로 옮겼다.
“여러분, 주목해 주십시오.”
마틴 교수는 잠시 소란스러워진 주위를 환기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모든 사람이 마틴 교수에 입에 집중했다.
“IDN2는 분명 불치병이 맞습니다.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이 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죠. 하지만 우리 존스 홉킨스에서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하여 신약을 개발했습니다. 최근에 동물을 대상으로 한 1, 2차 임상시험 또한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젠 최종 임상시험만 남겨 둔 상황입니다.”
“IDN2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그러게 말이야. 정말이라면 이건 노벨 의학상 감이야.”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 저기 있는 라이언 교수의 도움이 컸죠.”
마틴 교수는 수술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박상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치겠군. 박 교수가 IDN2 신약 연구까지 했다고? 이쯤 되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수준 아니야?”
“저 인간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보고 싶네.”
명성대학교 병원의 의료진들은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신약으로 인정받기까진 최종 단계가 남아 있지만, 여기 계신 장진섭 대표님의 부인, 송영은 여사의 허락을 받아서, 오늘 IDN2 치료제를 적용하려고 합니다.”
“…….”
마틴 교수의 말에, 송영은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오늘은 IDN2 치료제를 실전에 처음 적용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겁니다. 마이클, 이제 내려가서 라이언을 도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이클을 찾았지만, 참관석 어디에도 마이클이 보이지 않았다.
“하이!”
그때, 어느새 수술실로 내려간 마이클이 참관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잘해 보자고, 친구!”
퍼스트 자리로 옮긴 마이클은 박상우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래. 제 시각에 와 줘서 고마워.”
“이런 걸 두고 드라마틱하다고 하는 거야, 친구!”
마이클과 잠시 담소를 나눈 박상우는, 이내 헛기침을 몇 번 하곤 의료진들을 돌아봤다.
“지금부터 수술에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환자는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습니다. 방실 판막 폐쇄 부전을 보이기 때문에, 판막 치환술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심실 보조 장치인 바드(Ventricular Assist Device)를 삽입하는 수술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존스 홉킨스에서 지원해 주신 최신 바드 H35DOS는 기존 제품과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망가진 심장의 일부 기능을 보조하는 차원을 넘어, 심장 이식을 할 수 없는 최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능도 가능한 최첨단 의료 기기입니다. 이렇게 진행한다면 심장 이식 수술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자, 존스 홉킨스와 대한민국 명성병원의 협진 수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꾹꾹 눌러 말하는 박상우의 표정에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이 정도면 의학 전문 기자들을 불러모아야 하는 거 아냐? 이대로만 해도 빅 뉴스인데?”
“그러게 말이야. 아마도 유일무이, 세계 최초로 하는 기념비적인 수술일걸?”
지동철 원장을 제외한 참관석의 모든 의료진은 박상우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수술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수술 과정은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블라인드 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교수님!”
박상우의 오더에 수련의 한 명이 수술실의 블라인드를 쳤다.
“마이클, 오랜만에 호흡 한번 맞춰 볼까?”
마이클도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오케이! 레츠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