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49)
신의 메스-149화(149/249)
149화 간호부장의 아들 (3)
“신상태 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김영순 부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자, 박상우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되물었다.
“우리 사, 상태가 학교로 복귀하지 않았답니다. 이,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요?”
공황 상태에 빠진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제길, 상태 군이 검사 결과를 알아 버렸나 보군!’
“아닐 겁니다. 일단 아드님께 전화부터 한번 해 보시죠.”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에,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의 핸드폰을 가리키며 전화해 볼 것을 요청했다.
“네, 네……. 그럴게요.”
핸드폰을 잡고 번호를 누르는 그녀의 손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나 어떻게든 버튼을 꾹꾹 누르고, 힘겹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수차례 전화를 걸어 봤지만 들려오는 건 기계음뿐이었다. 신상태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교수님, 아, 아무래도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4년 동안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김영순 부장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박상우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사고는 아닐 겁니다. 집히는 데가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집히는 데라뇨?”
“잠시면 됩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박상우는 황급히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간호사, 혹시 신상태 환자한테 전화 온 적 있습니까?”
-네. 어제 전화가 와서 검사 결과를 묻길래…….
“그래서, 결과를 말씀해 주셨습니까?”
-아, 아뇨. 저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장준식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것 같아요.
“뭐라고요? 누가 제 담당 환자를, 제 허락도 없이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고지합니까?”
박상우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게…… 신상태 환자가 계속 꼬치꼬치 캐물어서……. 저는 나중에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다고 했는데, 장준식 선생님이…….
“미치겠군. 그래서 어디까지 말한 겁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도 승모판 협착증이 의심된다고…… 수술이 필요할 것 같으니, 보호자와 함께 병원에 나오라고 했었습니다.
“제기랄! 일단 알았습니다.”
박상우는 통화를 끊고 수화기를 거칠게 집어 던졌다.
“교, 교수님!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예요? 수술이요? 누가 무슨 수술을 받는다는 겁니까?”
신상태에 관한 얘기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박상우의 팔을 잡고 흔드는 그녀의 손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진정하세요, 부장님.”
“제, 제가 진정하게 생겼나요? 교수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하나도 빠짐없이요! 얼핏 들어 보니 승모판 협착증이라고 한 것 같은데, 설마 우리 애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건 아니죠? 그렇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김영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앉으세요. 진정 좀 되시면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 좀 마시고요.”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의 양팔을 잡아 소파에 앉힌 후 컵에 물을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아, 알겠습니다. 진정, 진정해야죠.”
김영순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단숨에 컵을 비웠다. 그리고 이내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며, 침을 삼켜 넘겼다.
“이제 됐어요. 말씀하셔도 됩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상태 군을 만났을 때, 표정이 영 좋지 않아서…….”
박상우는 신상태와 함께 몇 가지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천천히 설명했다.
“아무래도 승모판 협착증이 의심됩니다, 부장님.”
더는 숨길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박상우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
김영순 부장의 몸이 좌우로 크게 휘청거렸다.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깜짝 놀란 박상우가 그녀를 부축했다.
“괘, 괜찮아요. 물 한 잔만 다시 주시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김영순 부장은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고, 박상우가 가져다준 물 한 잔을 정신없이 비워 버렸다.
“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습니다. 교수님. 그런데, 하나만 물어볼 게 있습니다.”
김영순 부장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수술하면, 살 수는 있는 겁니까?”
흉부외과 베테랑 간호사 출신인 그녀이기에, 승모판 협착증이 어떤 병인지 모를 리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아들의 생사였다.
“제가 반드시 살려 놓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됐습니다, 교수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 것 같아요. 개흉 수술을 피할 수 없겠죠. 그걸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지금으로선, 상태 군을 살릴 방법은 개흉 수술뿐입니다.”
박상우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깟 미국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파일럿 그까짓 것, 안 하면 그만입니다. 교수님,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 상태를 살려 주실 수는 있는 겁니까?”
김영순 부장은 박상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여성이었다. 누구보다 아들의 꿈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개흉 수술을 하는 순간 파일럿이 되겠다던 아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겠지만, 지금은 아들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야 했기에, 그녀는 빠르게 냉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장담해 드리겠습니다. 상태 군은 제가 집도해서, 꼭 살리겠습니다.”
“그러면 됐어요. 우리 상태는, 제가 병원으로 꼭 데리고 오겠습니다.”
김영순 부장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병원으로 데리고 오다뇨? 상태 군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 녀석이 갈 만한 곳을 알 것 같군요. 제가 잘 설득해서…….”
말을 이어 나가던 김영순 부장의 몸이 또다시 크게 흔들렸다. 억지로 견뎌 내고 있었지만, 말 못 할 상처가 상당한 탓이었다.
“부장님, 괜찮으세요?”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부장님을 모시고 같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안정이 필요한 그녀였지만, 박상우는 그녀를 말릴 자신이 없었다. 최소한 그녀의 부축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에요. 교수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금일 진료는 이미 끝나서 괜찮습니다. 게다가 부장님도 그렇고 상태 군도 그렇고, 당장 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러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라니요. 지금은 상태 군을 찾는 것이 급선무니, 어서 밖으로 나가시죠. 제 차로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을 부축하며,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어디로 가야 할까요?”
박상우는 운전석에 올라타서 조심스럽게 행선지를 물었다.
“경기도 용주로 갑시다.”
김영순 부장의 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상태 군이 용주에 있다는 건가요?”
“네. 우리 애는 분명 그곳에 있을 거예요.”
김영순 부장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곳에 상태 군이 있다는 확신하시는 이유가…….”
“애 아빠 묘가 거기 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김영순의 말에, 박상우도 더는 질문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박상우는 서둘러 시동을 걸고 경기도로 출발했다.
* * *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울을 벗어나 용주로 향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의 표정만 살필 뿐,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 아빠는 공군 부사관 출신이었어요. 제가 간호 장교로 있던 시절에 애 아빠를 만났죠.”
간호 장교 출신의 김영순 부장은 부대에서 신상태의 부친인 신종호를 만나 결혼했다.
“아…… 네.”
“우린 서로 사랑했고 결혼했어요. 애 아빠는 상태가 다 자라면 장교로 임관해 파일럿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게 꿈이었죠. 자신이 못했던 꿈을 아들이 이뤄 주길 바랐던 거예요.”
“…….”
박상우는 조용히, 김영순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선물로 주는 장난감은 매번 비행기였어요. 물론, 우리 상태도 무척이나 비행기를 좋아했었죠.”
“그렇군요.”
“부자지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애 아빠가 사고로 죽었어요. 전 그 이후로 군대에서 나왔고,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거고요.”
남편의 얘기를 이어나가던 김영순 부장이 눈이 벌게져 있었다.
“결국, 아드님이 고인이신 남편분의 꿈을 이룬 거군요.”
“맞아요. 우리 상태가 돌아가신 아빠의 꿈을 대신 이뤄 준 거죠. 상태가 군인이 되려 하길래, 처음엔 말렸어요. 상태가 아빠의 뒤를 잇는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으니까요. 하지만 상태는 끝끝내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갔어요. 워낙 완고해서 제가 고집을 꺾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내 예감이 맞았어요. 내가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김영순 부장은 와락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
“진정하세요, 부장님.”
“교수님, 전, 상태가 파일럿이 되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우리 상태가 살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제발요!”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버린 김영순 부장은 박상우를 바라보며 오열했다.
“부장님, 상태 군 수술은 제가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
김영순 부장은 박상우의 말을 위안으로 삼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넘겼다.
* * *
잠시 후, 두 사람은 용주의 한 야산에 다다랐다.
신상태의 부친인 신종호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가파른 언덕이 앞에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저기가 애 아빠의 묘예요.”
“그렇군요.”
박상우는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반면에 김영순 부장은 거친 숨소리도 삼켜 넘긴 듯, 힘든 기색이 없었다.
한달음에 산 중턱으로 올라가, 신종호의 묘지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이었다.
“사, 상태야!!!”
김영순 부장의 날카로운 비명이 고막을 찢을 것처럼 울려 퍼졌다. 뒤따르던 박상우도 황급히 묘지 쪽으로 달려왔다.
묘지 주변엔 소주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술을 모두 마셨는지, 신상태는 무덤 앞에 쓰러져 있었다.
“어떡해요! 우리 상태는 술을 못 마셔요!”
김영순 부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신상태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잠시만요. 제가 먼저 보겠습니다.”
박상우는 황급히 옆으로 가서 신상태의 동공을 살핀 후, 팔목에 손을 얹고 맥박을 확인했다.
‘뭐야,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 어레스트야!’
아직 쌀쌀한 초봄 날씨였고, 산 중턱이라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았다. 다량의 술을 마신 채 의식을 잃었다면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었기에, 박상우는 급히 겉옷을 벗어 신상태의 몸을 감싸 안았다.
“부장님, 차 안에 비상용 키트가 있을 겁니다. 빨리 좀 가져다주세요. 빨리요!”
“아, 알겠어요!”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김영순 부장은 차를 세워 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