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50)
신의 메스-150화(150/249)
150화 간호부장의 아들 (4)
“부장님, 박스 안에 에피네프린이 있을 거예요! 앰풀 하나를 식염수에 희석해서 투여해 주세요!”
신상태의 팔과 다리를 문지르며 체온을 유지하던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이 비상용 키트를 들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헉헉. 네, 자, 잠시만요.”
김영순 부장은 떨리는 손끝을 애써 무시하며, 에피네프린을 희석하여 정맥에 주사했다.
제 아들이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영순 부장은 베테랑 간호사의 면모를 십분 살리며 차분하게 대처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신상태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손끝은 퍼렇게 물들고 있었다.
‘호흡 곤란으로 인한 청색증이야.’
“텐션 뉴모소락스(Tension Pneumothorax: 긴장성 기흉)가 온 것 같습니다, 부장님.”
“기흉이요? 어, 어쩌죠? 119에 신고해도 제시간 안에 오기는 힘들 것 같은데……. 어쩌죠, 어떡하죠?”
그러나 간호사의 면모도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기흉이란 말에 이성을 잃은 그녀는, 베테랑 간호사가 아닌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일단 폐에 찬 공기를 빼야겠습니다. 키트 안에 소독약하고 니들 있습니까?”
텐션 뉴모소락스, 즉 긴장성 기흉은 흉강 내압의 급속한 상승으로 호흡 곤란과 청색증을 동반하고, 계속 방치하면 생명이 위험해지기에 응급조치를 필요로 하는 질병이었다.
폐 안은 원래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정상이지만, 흉막강 내에는 결코 공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원인에 의해 공기가 흉막강 내로 유입되면서 압력이 증가하는 것이 기흉이었다. 응급조치는 흉막강에 구멍을 뚫어 공기를 빼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박상우는 흉막강에 바늘을 삽입해, 안에 차 있던 공기를 빼내려 했다.
“자, 잠시만요. ……바, 바늘이 없어요, 교수님!”
박스를 뒤적거리던 김영순 부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더 찾아 주세요.”
“없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교수님. 우리, 우리 상태 좀 살려 주세요.”
김영순 부장은 패닉에 빠진 것처럼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았다.
‘큰일이네. 일단 소독약하고…….’
그 순간, 묘지 옆에 놓인 소주병을 발견한 박상우는 황급히 병을 들고 왔다.
“할 수 없습니다. 이거라도 대신 써야겠어요.”
“지금 뭘 하시려는……?”
“니들 쏘라코스토미(Needle Thoracostomy: 바늘 감압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상우는 신상태의 셔츠를 미련 없이 찢어 버리곤, 그 위에 소주를 부어 소독했다.
“니들이라뇨? 지금 바늘도 없지 않습니까?”
당황한 김영순 부장은 어디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
“아뇨, 있습니다. 머리에 그것 좀 빼서 주세요.”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이 머리에 꽂은 실핀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실핀이요. 얼른 빼서 주세요.”
“이걸, 바늘로 쓰신다는 거예요?”
박상우의 뜻밖의 행동에 김영순 부장의 눈이 커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김영순 부장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실핀을 건네주었다.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의 앞에 있는 박상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 우리 상태, 정말 괜찮을까요?”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에게서 넘겨받은 실핀을 펴서 가느다랗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장, 남은 소주로 실핀을 소독했고, 김영순 부장은 박상우의 행동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성 기흉이라면, 공기만 빼내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박상우의 천천히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흉막강에 구멍을 내서, 가득 찬 공기를 빼내는 바늘 감압술을 시행할 생각이었다.
손바닥을 신상태의 쇄골에 올려놓은 박상우는 손가락 끝의 감각을 이용해서, 쇄골을 따라 천천히 손가락을 내렸다.
‘여기쯤이 2~3번 늑골이 되겠군.’
공기는 위쪽을 향하기에, 흉골 윗부분에 모여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윗부분을 찌르면 폐의 돌출 면을 건드리기 때문에 위험했다.
그런 이유로, 공기를 빼내기 위해선 흉골 상층부인 2~3번 늑골을 정확히 찔러야 했다. 경험이 없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응급조치법이 아니었다.
‘찾았다!’
박상우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박상우는 검지의 감각을 살려 몇 번 더 움직여 보았다.
‘신중해야 한다. 자칫 늑골 밑을 찌르면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어.’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한 박상우는 메스를 들고 피부 표면을 살짝 절개했다.
그리고 양손을 몇 번 털어 낸 뒤, 뾰족한 실핀을 벌어진 틈 사이로 망설임 없이 집어넣었다.
김영순 부장은 차마 그 장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갑작스러운 통증에 신상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박상우는 실핀을 더욱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그 순간, 흉강막에서 슈욱-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머물러 있던 공기가 신상태의 입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호흡이 터졌다는 건 곧, 박상우의 응급조치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공이야.’
박상우 역시 그제야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어, 어머니!”
정신을 차린 신상태가 고개를 돌려 김영순 부장을 바라보았다. 막힌 흉강막이 뚫리자 조금씩 혈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상태야!”
울먹이는 김영순 부장의 손이 마구 떨렸다.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싶지만, 바늘이 쇄골에 꽂혀 있었기에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응급조치는 성공했지만, 바로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감염의 위험도 있습니다, 부장님!”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저,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은 감사할 시간 없어요. 상태 씨, 움직일 수 있겠어요?”
박상우가 신상태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네. 괘,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신상태의 양쪽에서 그를 부축하고 산에서 천천히 내려와 차로 향했다.
* * *
“기수야, 지금 텐션 뉴모소락스 환자가 생겨서 머리핀으로 응급조치하고 데려가는 중이야. 미트랄 스테노이시스(승모판 협착증) 환자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도 대비해 줘.”
“뭐? 그게 누군데?”
“김영순 부장님 아들이야.”
박상우는 룸미러를 힐끗거리며 김영순 부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이 다시 의식을 잃지 않게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길게 설명할 시간 없어. 지금 바로 들어갈게.”
“알겠어.”
그 말과 함께, 박상우는 밟고 있던 액셀에 더욱 힘을 주었다.
* * *
박상우의 차는 명성대학교 병원 응급실에 다다라서야 멈춰섰다.
“어서 응급실로 옮겨!”
“알겠습니다, 교수님.”
약 한 시간여 동안 질주해서 도착한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인턴들이 신상태를 부축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박상우와 김영순 부장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가 할까?”
응급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기수를 보자마자 박상우가 물었다.
“됐다! 무슨 그런 몸으로 응급실에 들어오려고 해?”
천기수는 흙이 잔뜩 묻은 박상우의 옷을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네…….”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태를 살핀 박상우는 흙투성이가 된 옷가지를 확인하곤,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저 친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부장님 모시고 가서 좀 쉬어.”
천기수는 턱짓으로, 넋을 잃고 서 있는 김영순 부장을 가리켰다.
“알겠어. 그러면 부탁한다. 부장님, 천 선생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겁니다. 저쪽으로 가셔서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시죠.”
“네. 아,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김영순의 양어깨를 감싸며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 * *
천기수는 신상태를 베드에 눕히고 곧장 치료에 들어갔지만, 딱히 치료할 거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미치겠네. 이거 가지고 흉막강을 찌른 거야? 미친놈, 아주 가제트가 따로 없구먼.”
천기수는 신상태의 흉막강에 꽂혀 있던 실핀을 보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음파 가져와.”
“네, 교수님.”
천기수의 오더에 인턴 하나가 초음파 기기를 밀고 들어왔다.
“아주 0.1센티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찔렀네? 바람이 다 빠졌어. 흉관 삽입할 필요도 없겠네.”
스틱에 젤을 발라 가슴 부위를 문질러 본 천기수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야, 인턴!”
천기수는 인턴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린 뒤, 흉관 삽입을 위해 가져온 도구들을 가리켰다.
“이거 치워라.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다.”
“네, 교수님.”
“이 새낀 정말, 기계야 사람이야?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더 모르겠는 놈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천기수는 실핀이 꽂혀 있던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소독했다.
“소독 끝냈으니까, 수처하고 드레싱해 줘라. 하여간, 이해하기 힘든 놈이라니까. 무슨 치료를 하라는 거야? 자기가 다 해 놓고.”
“알겠습니다.”
천기수는 장갑을 선반 위에 벗어 던지며 작게 투덜거렸다.
* * *
신상태는 결국 승모판 협착증 치료를 위해 명성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수술 확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수술을 받는 순간 자신의 꿈이 무너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신상태였기에, 계속 수술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파일럿이 되고 싶은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신상태는 자신의 꿈을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야. 상태야. 고집 피우지 말고 수술받자.”
자식이 꿈을 내려놓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어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들의 건강이 우선인 그녀였기에, 수술을 위해선 아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절대 포기 못 합니다. 파일럿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퇴원하겠습니다! 미국에 가야 합니다.”
짝!
“그게 지금 할 소리니!”
막무가내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신상태의 모습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김영순 부장이 아들의 뺨을 후려쳤다.
“이미 학교에 얘기도 해 뒀어. 상태야, 더 고집 피우지 말고 수술받자.”
“어,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게 어떻게 해서 온 기회인데. 왜, 왜 그러셨어요! 왜!”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니니.”
김영순 부장은 아들의 양팔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신상태 저 친구는 절대로 수술을 받지 않겠지. 저 친구의 성격이나 이번 상황으로 봐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시간을 좀 앞당기는 방법밖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띠띠띠띠!
그리고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저 박상우입니다.”
“오, 라이언! 한밤중에 무슨 일이야? 아, 서울은 지금 낮인가?”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지, 존스 홉킨스의 심장센터장인 엔드류 박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 보게.”
“실은 말입니다…….”
박상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