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51)
신의 메스-151화(151/249)
151화 간호부장의 아들 (5)
“메디탑 회사에 대해서는 잘 아시죠?”
“흠, 의료기기 업체를 말하는 거라면 잘 알지. 그런데 왜?”
“메디탑에서 최근에 개발한 마이트라 클립은 어느 정도, 개발에 진척을 보이고 있나요?”
“마이크라 클립이라면…… 미트랄 스테노이시스(승모판 협착증) 치료 목적의 기구 아닌가?”
“맞습니다.”
“그거야, 뭐. 임상에선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상용화에는 기간이 좀 필요할 듯한데……. 그런데 그건 왜?”
“마이트라 클립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갑작스럽지만 부탁을 드립니다.”
“자네가 그걸 써 보겠다고?”
“네. 제가 치료하는 환자가…….”
박상우는 승모판 협착증을 앓는 신상태에 관한 사정을 엔드류 박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흠, 파일럿이라……. 자네 말대로 개흉 수술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이트라 클립이라면 사타구니 정맥에 삽입하는 데다가 최소 절개 방식이니 최적이긴 한데……. 아직 안정성을 인증받지 못한 상태라, 다소 무리가 있을 거야.”
“메디탑의 기술력이라면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직접 시술해 본 경험이 있기에, 박상우로선 당연한 말이었다.
“그래. 나도 그건 인정해. 하지만 상용화되지 않는 의료 기술을 도입한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게다가, 단지 마이트라 클립만 있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나? 박 교수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박 교수가 실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충분히 사정은 이해하지만, 여러 변수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는 엔드류 박이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는 마이트라 클립 도입의 선구자였기에, 자신감을 내보일 자격이 충분했다. 물론, 회귀 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좋아. 일단 임상 시험의 일환으로 진행한다면 못 할 것도 없긴 한데…… 내가 한번 알아봐 주지.”
“네. 반드시 마이트라 클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힘을 좀 써 주십시오. 아주 유능한 청년이에요. 이대로 꿈을 접게 할 순 없습니다.”
“알았네. 내가 메디탑 연구소장을 잘 알고 있으니, 한번 만나 봄세.”
“감사합니다, 교수님.”
“허허허, 감사까지야! 성공적인 레퍼런스를 가진다면 그쪽에서도 향후 사업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겠지. 아무튼, 나중에 연락을 주겠네.”
“네, 교수님.”
‘10년 앞당긴다고 해서 못 할 건 또 없지. 시뮬레이션만 수십 차례, 수년간 수십 건의 시술을 했었으니까.’
박상우는 양 주먹에 힘을 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 *
다음 날, 박상우는 수술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천기수와 김민준, 백설아를 자신의 연구실로 호출했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저는 이번 신상태 환자를 대상으로…….”
박상우는 신상태의 심장 상태와 더불어, 마이트라 클립 시술법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다른 이들도 신상태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반대 의견은 없었다.
“그러니까, 가슴을 열지 않고 수술한다는 거지?”
천기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없던 수련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명성에서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천기수였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마이트라 클립이 찢어진 삼첨판을 대신할 거야.”
“근데 문제는, 그게 미국에서도 아직 FDA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임상 시험의 형태로 보호자 동의하에 시행하면 돼.”
“원장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만약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병원이 떠안아야 하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지. 너에게 불가능이란 없으니까, 내가 믿고 그냥 가야 하는 거지.”
“그래.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
“고맙기까지야, 뭘. 그나저나, 우리를 부른 이유는 뭐야? 설명을 들어 보니 마이트라인지 뭔지, 그 정도면 박 교수 혼자서도 충분할 텐데 말이야.”
천기수는 괜히 코끝을 찡그리며 물었다.
“당연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만에 하나라도 시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너희가 만반의 준비를 해 줘야겠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천기수와 김민준, 백설아 간호사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번 수술은 마이트라 클립만 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 최첨단 장비가 같이 따라와 줘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무리야. 그래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가슴 열고 삼첨판 치환술을 해야 하거든. 그 준비를 부탁하려고 불렀어.”
“그 정도로 위험한 시술이면 애초에 개흉 수술을 하는 게 낫지 않아?”
박상우는 완고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파일럿이라는 꿈은 신상태 환자 자신의 생명보다도 소중해. 이미 벌써 한 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지금도 치료를 받을 생각이 없는 거 잘 알잖아. 개흉 수술은 불가능해.”
“후, 맞아요. 저도 불안합니다. 지금 신상태 환자,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를 만큼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요.”
백설아 간호사는 우려를 표시하며 박상우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데……. 알겠어, 그 정도야 가능하지. 그때 맞춰서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둘게.”
천기수도 박상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김민준 선생!”
“네.”
“김민준 선생의 역할이 중요해요. 사실 초정밀 혈관 내시경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선 무리야.”
“그렇다면 심장 초음파를 이용할 수밖에 없겠군요.”
역시 이해력이 빠른 그였다.
“맞아. 김민준 선생은 눈이 좋잖아. 내가 시술하는 동안 미세 혈관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정확히 캐치해서 내게 알려 줘야 하니까.”
“네. 평소에 초음파 보는 연습을 열심히 해 두겠습니다.”
김민준은 박상우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것처럼, 박상우가 바라는 답을 했다.
“두말할 필요가 없네. 좋아요. 여러분들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박상우와 그의 팀, ‘닥터스 리그’는 마이트라 클립 삽입술을 10년 앞당길 엄청난 일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 * *
흉부외과 너스 스테이션에선 김영순 부장의 주도하에,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한 간호사, 305호실 조진섭 환자 유린 체크 잘하고 있죠?”
“네. 1시간 단위로 체크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김 간호사, 705호실 이정심 할머니는 오늘 3시에 심장 대동맥 CT 있어요. 시간 체크 잘하시고요.”
“네, 부장님.”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에 집중하는 김영순 간호부장이었지만, 며칠 사이에 얼굴이 한층 야위어 있었다.
“저기, 부장님.”
“네? 뭐 할 말 있어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신상태가 명성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은 초미의 관심사였기에, 간호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간호사 한 명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김영순 부장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을 멈췄다.
“우리 애 때문에 그래요?”
김영순 부장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었지만,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네, 좀 걱정이 되어서요.”
“걱정 마세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어요. 4년 동안 사관학교에서 구르다가 병실에 편안하게 누워 있으니까 아주 살맛이 나나 봐요. 저도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식음을 전폐하며 끝없는 좌절 속에 헤매는 신상태였지만, 김영순 부장은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 그래요. 다행이네요.”
“맞아요. 저도 잠깐 뵈었는데 피부가 광택이 나는 게, 아주 제 피부하고 바꿨으면 좋겠더라구요. 어쩜 남자 피부가 그래?”
“맞아요. 언니도 그거 느꼈구나? 진짜 꿀 피부도 그런 꿀 피부가 없더라고요.”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잘나긴 잘났어요. 아무튼, 저는 신경들 쓰지 마시고 모두 환자 치료에 집중해 주세요.”
힘든 와중에도, 김영순 부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른 간호사도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간호사들이었기에, 서로를 감싸 주는 모습이었다.
* * *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을 하늘정원 휴게실 불러 커피 한 잔을 뽑아 건넸다.
“상태 씨는 좀 어때요? 김민준 선생 말로는, 식사를 제때 안 한다고 하던데…….”
김영순 부장이 오기 전에도 한참을 서 있었던 터라, 박상우는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식사를 제때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먹고 있어요. 어쩌려고 그러는지……. 저러다가 수술도 전에 큰일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에요.”
김영순 부장은 다시 나약한 어머니로 변하여,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박상우에게까지 강한 모습을 보일 힘은 없었다.
“상태 씨, 승모판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어요. 이 정도였으면 통증도 상당했을 텐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셨나요?”
“후…… 네, 멍청하게도 전혀 몰랐어요. 상태가 워낙 속이 깊은 아이라, 제 앞에선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도 병원에 실려 가기 전까지 아프다는 말 한 번 안 한 애예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치를 채야 했는데……. 제 직업이 간호사인데도 몰랐다니.”
김영순 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자책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환자가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려고 마음먹으면, 옆에서 아무리 관심 있게 지켜봐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미국 유학까지 결정되었으니, 상태 씨로선 더더욱 숨기고 싶었겠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평생의 꿈이었으니까요. 교수님, 수술 계획은 잡혔나요?”
“수술이야 성태 씨만 마음을 먹으면 언제라도 할 수 있죠. 지금 이곳에 오시도록 한 건, 수술 관련으로 부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예요.”
박상우는 말하기로 다짐했다는 듯이, 진중한 눈으로 김영순 부장을 바라봤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담당 주치의의 심각한 표정은 보호자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다.
“아뇨, 그게 아니고. 어쩌면, 개흉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에게 메디탑사의 ‘마이트라 클립 시술’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저, 정말이에요? 그런 수술이 있었어요? 그, 그러니까, 가슴을 열 필요도 없이 사타구니 정맥에 삽관해서 시술한다는 거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그녀로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네. 최소 절개로 인조 승모판을 삽입하는 시술이에요. 100%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그러니 아드님을 잘 다독여 주십시오. 비록 미국은 못 가게 됐지만, 수술만 성공하면 꿈을 접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그렇게 된다면야 제가 뭘 더 바라겠어요. 교수님, 꼭, 꼭 그 방법으로 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부장님도 힘내시고, 성태 씨에게도 기운 내라고 자주 말씀해 주세요. 지금처럼 자포자기로 생활하면 마이트라 클립이 아니라 그 이상의 첨단 기술도 소용없게 됩니다.”
“물론이죠.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희망을 찾은 김영순 부장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박상우의 양손을 움켜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신상태를 맡고 있던 담당 간호사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박상우입니다.”
“신은영입니다. 어디세요, 교수님!”
“신 선생. 무슨 일이에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로 뭔가 사건이 터졌음을 감지한 박상우는 우선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다.
“빠, 빨리, 607호로 내려와 주세요. 신상태 환자가…….”
“신상태 환자가 뭐요! 왜요!”
신상태라는 이름이 들리자, 김영순 부장은 핸드폰을 향해 소리쳤다.
“우, 우리 애가 왜요?”
손끝처럼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의 눈동자도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