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52)
신의 메스-152화(152/249)
152화 간호부장의 아들 (6)
“의, 의식이 없습니다. 혈압도 떨어지고요. 아무래도 어레스트가 온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제세동기 준비시켜 주시고, 백설아 간호사와 김민준 선생은 곧장 병실로 오라고 하세요.”
“제세동기요? 우, 우리 상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통화 내용을 엿듣던 김영순 부장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상태 씨에게 문제가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내려가 볼 테니, 부장님은 잠깐만 여기 있어 주세요.”
“저도 같이 내려가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알겠습니다.”
그녀의 눈빛을 본 박상우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신상태의 병실로 향했다.
* * *
박상우와 김영순 부장이 도착했을 때, 신상태는 이미 온몸이 축 늘어져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의 오른손엔 모형 제트기가 쥐어져 있었다.
‘의식이 없다!’
황급히 펜 라이트를 꺼내 동공을 확인했지만, 눈동자는 이미 풀려 있었다.
“아…… 아악!”
너무 놀라면, 비명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신상태의 모습을 확인한 김영순 부장의 입에서 한 템포 늦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신은영 선생, 당장 부장님 모시고 나가! 빨리!”
“네, 교수님!”
“아악! 아아악!”
김영순 부장은 간호사의 손을 뿌리치려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무언가에 찔렸는지, 반쯤 벗겨진 양말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놔! 놓으란 말이야!”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는 김영순 부장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장님, 교수님을 믿으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아드님 치료에 도움이 안 돼요! 제발!”
신은영 간호사 혼자만으론 막을 수 없었지만, 때마침 김민준과 백설아가 도착하여 김영순 부장을 간신히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선생님! 혈압이, 혈압이 계속 떨어집니다. 호흡도 불안정하고요,”
다시 들어온 백설아 간호사가 EKG 모니터를 확인하곤 다급히 말했다. 이미 인공호흡기는 부착해 둔 상황이었다.
“얼마나 되는데?”
“지금 수축기 혈압이 70mm/Hg. 아니, 65. 지금은 60까지 떨어졌습니다. 도파민(혈압 상승제) 투여할까요?”
“바로 투여해.”
“네, 교수님.”
당황할 법도 하지만, 백설아 간호사는 도파민을 희석하여 정맥에 침착하게 주사했다.
“혈압은 좀 잡히나?”
박상우는 신상태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 보며 물었다.
“아뇨. 에피네프린과 아트로핀을 동시에 투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민준도 다시 돌아와 모니터를 확인하곤 말했다.
“좋아. 각각 하나씩 투여하고, 백 선생은 당장 제세동기 가져와. 당장.”
“네, 알겠습니다.”
박상우의 지시에 맞춰, 백설아 간호사는 준비해 두었던 제세동기를 밀고 들어왔다.
“교수님! 혈압이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계를 넘겨 버린 상황이었다. 혈압이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모니터를 살펴보던 김민준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제세동 들어간다. 모두 물러서!”
가운을 집어 던지며 넥타이를 풀어헤친 박상우는 양손을 몇 번 흔든 후, 제세동기에 푸른색 젤을 골고루 발랐다.
“150줄 차지!”
덜컹!
“반응 없습니다.”
김민준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젠장! 200줄 차지!”
덜컹!
“바이탈 돌아왔어?”
“아, 아직이요.”
“다음! 250줄 차지!”
“교수님! 위험하지 않을까요?”
김민준은 높은 전압에 우려를 내비쳤다.
“괜찮아. 250줄로 올려. 지금은 그 방법뿐이야.”
박상우의 셔츠는 어느새 흠뻑 젖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250줄 차지!”
덜컹!
“바이탈은?”
박상우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아 내며 김민준에게 물었다.
“아, 아뇨. 아직 안 잡힙니다!”
“김민준 선생, 침대 잡아 봐!”
“네, 선생님!”
박상우가 목소리 톤을 높이자, 김민준과 함께 또 다른 인턴 하나가 침대를 부여잡았다.
“하나! 둘! 셋! 넷!”
박상우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침대가 흔들리며 삐걱삐걱 소리를 냈고, 벌게진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하나! 둘!”
깍지를 낀 채, 박상우는 신상태의 가슴을 계속 압박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흐르고.
띠띠띠띠!
수평을 그리던 바이탈 사인이 조금씩 튀어 오르더니 이내 가파른 곡선을 이루기 시작했다. 신상태의 심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박상우의 심폐소생술이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 바이탈 돌아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환호와도 같은 소리가 김민준의 목에서 튀어나왔다.
“하아아악!”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박상우도 그동안 참아왔던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장대비가 떨어지듯, 땀방울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박상우의 벌겋게 달궈진 머리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민준 선생, 지금 당장 중환자실로 옮겨. 곧 내려갈 테니까.”
“네, 교수님.”
박상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김민준에게 오더를 내렸다.
“사, 상태야!”
김민준과 다른 인턴 하나가 침대를 밀고 나가자, 김영순 부장은 한걸음에 달려와 신상태를 껴안았다.
“부장님,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승모판 협착증 때문에 일시적인 아리쓰미어(부정맥) 쇼크가 온 것 같아요. 지금은 호흡과 맥박 모두 돌아왔으니까 안심하세요. 하지만 중환자실로 옮겨서 치료를 계속해야 합니다. 김민준 선생, 어서!”
박상우는 김영순 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김민준을 재촉했다.
“우리 상태는 저, 정말 괜찮은 거죠?”
겁에 질린 김영순 부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네. 걱정 마세요.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손에 계속 쥐고 있던 건데, 혹시…….”
박상우는 신상태가 손에 쥐고 있던 모형 제트기를 김영순 부장에게 건네주었다.
“…….”
김영순 부장은 아무런 말 없이, 박상우가 건넨 모형 제트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에 쥐었다. 제트기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 * *
무사히 다음 날이 되어, 신상태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부작용으로 발생한 증상을 완화를 위해 이뇨제, 항부정맥제, 항응고제 등을 투여하고 있었지만,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치료는 될 수 없었다.
“환자는 좀 어때?”
박상우는 중환자실로 들어와 각종 지표를 살피며 김민준에게 물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박상우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신상태의 안색을 살폈다.
“교수님. 아무래도 빨리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민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개흉 수술을 할지, 검증되지 않은 마이트라 클립 시술을 할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래. 뭐든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제 생각엔…….”
“개흉 수술은 할 수 없어. 어제 신상태 환자 손에 들려진 것 봤나?”
“……네. 그 모형 비행기 말입니까?”
“그래.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만은 손에 꼭 쥐고 있었어.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김 선생은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지시했던 거나 잘 준비해 둬. 아무래도 시술 시기를 앞당겨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박상우의 지시를 거역할 김민준이 아니었다. 박상우의 표정을 확인한 김민준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환자 상태는 계속 지켜보고, 문제 생기면 바로 콜 해.”
“네, 교수님!”
“중환자니까, 김 선생이 각별히 신경 써 줘.”
박상우는 김민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 * *
박상우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급하게 됐군. 연락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순 없어.’
신상태의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었기에, 박상우로서도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박상우는 핸드폰을 꺼내 엔드류 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마이트라 클립, 언제쯤 가능할까요?”
“그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네. 단순히 클립 키트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게나.”
엔드류 교수의 말에 박상우는 난색을 표했다.
“엔드류 교수님,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더는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이트라 클립 키트 한 세트만 보내 주십시오.”
“자, 잠깐만! 그건 말이 안 돼. 자네도 알다시피, 그게 키트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초정밀 혈관 내시경도 필요하고, 시술을 하려면 제반 장비가 필요한데, 어쩌려고 그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 상황이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어요.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키트 한 세트만 보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후우, 그냥 그러지 말고 개흉 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나? 그게 더 안전할 텐데.”
박상우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할 엔드류 박 교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뇨. 개흉 수술을 하면 몸을 살릴 수 있을진 모르지만, 환자의 정신은 죽을 겁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거예요. 교수님, 절 믿어 주십시오. 제가 해결할 테니, 키트만 보내 주세요.”
“……알겠네. 그거야 크게 어렵진 않겠지만…….”
“그러면 됐습니다. 메디탑 측에서도 최고의 레퍼런스를 가지게 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제가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요.”
“하여간, 자네와 대화를 하다 보면 왠지 불가능한 것도 될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군. 알았네. 내가 바로 보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 * *
박상우는 응급 마이트라 클립 시술을 진행하기 위해 동의를 받고자 김영순 부장을 찾았다.
“부장님, 아무래도 시술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키트를 보내 주기로 하긴 했지만, 시술 전에 원장님께 허락을 받아야겠지요.”
“괜찮으시겠어요? 무허가 시술이 되는 거라서, 원장님 입장에선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을 텐데요?”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야죠. 상태 씨를 이대로 둘 순 없습니다.”
“우리 상태…… 그냥, 개흉 수술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해진 상황에, 그녀도 어느 정도 포기한 말투였다.
“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상태 씨에게 비행기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게, 저에겐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네, 맞아요. 상태에게 파일럿은 자신의 전부이자,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거예요. 저도 잘 알지만 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박 교수님이…….”
김영순 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저에게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상태 씨는 환자고, 전 그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니까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박상우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은 김영순 부장의 손등을 두드려 주었다.
“원장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굳이 수고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결론은 정해졌으니까요.”
“네? 결론이 정해졌다뇨?”
“설득이 되지 않으면 강행할 겁니다. 저, 생각보다 단순무식한 놈이에요.”
김영순 부장을 바라보는 박상우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박 교수님.”
김영순 부장은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고개를 숙였다.
‘지동철 원장은 허락해 주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허락하도록, 제가 만들 테니까요. 그러니 박 교수가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 없어요.’
김영순 부장은 돌아서는 박상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자식을 앞에 둔 어머니에겐,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으니까요.’
그 순간, 박상우가 뒤를 돌아 김영순 부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세요.”
억지로 미소를 띠면서도, 김영순 부장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