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56)
신의 메스-156화(156/249)
156화 착각은 자유 (2)
똑똑똑.
“원장님, 박상우입니다.”
“들어와요.”
박상우가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흉부외과 과장으로 있는 윤상부 교수가 먼저 보였다.
“지시할 게 하나 있어서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윤상부 과장과 박상우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다름이 아니라, 연수병원 강효석 원장 말입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 지동철 원장이 입을 열었다.
지동철 원장이 똥 씹은 표정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국내 병원 랭킹 1, 2위를 다투는 연수병원인 데다, 강효석 원장 또한 지동철의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물론 강효석 원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몇 년간 ‘만년 2위’ 탈을 지켰던 연수병원이 최근 국내 1위 자리에 오르는 약진을 했는데, 그로 인해 흉부외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명성병원은 연수병원에 밀리고 말았다.
명성병원은 정부 정책 자금 경쟁에서도 번번이 밀렸고, 최근 300병상 규모의 심장센터 건립 및 강효석 원장의 심장학회 회장 추대 등 겹경사가 이어지니, 지동철 원장의 심사도 매우 꼬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심장센터 개관 축하연이 있다고 하니까, 흉부외과에서도 참석 좀 해 주세요. 저는 급한 일정이 잡혀서 못 갈 것 같습니다.”
물론, 지동철 원장 또한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가기 싫은 마음에 없는 약속도 잡을 사람이란 걸 방증하듯, 뜯어 보지도 않은 초청장이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참석하겠습니다.”
“아뇨. 윤 과장이 참석할 필요도 없어요. 뭐 대단한 거라고 흉부외과 과장이 거길 갑니까? 그냥, 박 교수가 가세요. 가서 밥이나 한 끼 드시고 오세요.”
어찌 보면 가장 지동철 원장다운 대답이었다. 이런 치졸한 짓을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딱 그만한 그릇밖에 되지 못하는 지동철 원장이었다.
“그래도 국내·외 인사들이 다 참석하는 자리인데 원장님께서…….”
“시끄러워요! 국내외 인사는 무슨? 그게 무슨 대단한 자리라고 우리까지 가서 들러리를 섭니까?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지동철 원장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박 교수가 수고 좀 해 줘요.”
“네, 과장님.”
“이번엔 어쩔 수 없지만, 내년에 정부에서 발주할 어린이 심장센터는 반드시 우리가 따내야 합니다. 그러니 두 사람 다 바짝 긴장하세요! 이번엔 반드시 구겨진 우리 명성의 자존심을 되찾아와야 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연수병원에 밀렸지만 단 하나, 흉부외과 평가 부문만은 1위를 달성한 명성병원.
사실 심장센터를 연수병원에 뺏긴 건 안일하게 대처한 경영진들의 실수였지만, 지동철 원장은 모든 책임을 의료진들에게 전가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윤상부 교수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면 이만 나가들 보세요.”
지동철 원장은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축객령을 내렸다.
원장실을 나오자마자, 박상우와 윤상부 교수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머리야. 정말, 자기 자존심 지키려는 것 하나만큼은 프로답네요.”
“저 인간, 그릇이 저것밖에는 안 돼. 심장센터 평가 떨어진 게 우리 잘못인가? 전부 병신 같은 보드진들 때문이지.”
윤상부 교수도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
“위에서 그렇게 하라니까, 박 교수가 수고 좀 해 줘.”
“네, 과장님.”
“하여간, 저 인간부터 도려내야 우리 병원이 병원다워질 텐데 말이야. 나 먼저 가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윤상부 교수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박상우는 고개를 숙여 윤상부 교수에게 인사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곧 그날이 올 겁니다, 교수님.’
* * *
연수대학교 부속병원의 원장실은 겹경사로 축제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강효석 원장에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원장님! 이번 축하연에 케임브리지 의대 석좌교수이신 윌리엄 캔트 교수가 참석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그, 그게 정말이야?”
강효석 원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유수의 명문 의대를 제치고 전 세계 의대 순위 1위를 자랑하는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 그와 더불어 노벨 의학상 수상자이자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의대의 석좌교수인 윌리엄 캔트.
감히 초청장을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강효석이었기에, 윌리엄 캔트 교수의 참석 소식은 기쁨보다 놀라움에 가까웠다.
“네. 조금 전에 참석하시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원장님! 원장님의 명성이 이 정도로 어마어마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연수병원 흉부외과 과장인 최창필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명성은 무슨. 나보다는 우리 병원의 영광이지 않은가? 이렇게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하니, 준비도 철저하게 해서 소홀함이 없도록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아닌 척했지만, 강효석 원장의 입꼬리는 귀까지 올라가 있었다.
“허허허, 윌리엄 캔트 교수라니.”
최창필 과장이 나가자마자, 강효석 원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말아쥔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뜻밖의 대단한 손님은 그로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 * *
박상우는 김민준을 비롯한 수련의들과 함께 회진을 돌며 6인실 병동을 찾았다.
“전인수 환자, 좀 어떠세요?”
“지금은 좀 견딜 만합니다.”
전인수는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40대 후반의 남자로, 처음 왔을 때보다도 훨씬 수척한 모습이었다.
“환자분, 밤에 소변은 자주 보세요?”
“네.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깨서 죽을 지경입니다. 잠을 못 자겠어요.”
충혈되어 퀭한 눈만 보더라도 수면 장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환자는 아직도 에누레시스(Enuresis: 야뇨증)인가요?”
“그렇습니다.”
“백 선생. 저녁이 되면 환자분 코에 데스모프레신(Desmopressin: 항이뇨제)을 1회 뿌려 주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이미프라민(Imipramine: 경구용 항이뇨제)도 처방해 주세요.”
“네, 교수님.”
옆에 서 있던 백설아 간호사가 박상우의 오더를 꼼꼼히 받아 적었다.
“디곡신(Digoxin: 강심제)은 투여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투여 전에 반드시 카디오아올틱 인터벌(Cardioaortic Interval: 심첨 맥박)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고.”
“네. 분당 60회를 기준으로 삼고, 100이 넘어가면 투여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래. 환자 수술 일정은 잡았어?”
“그, 그게…….”
김민준은 박상우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대답을 못 해? 수술 일정 잡았는지만 말해 주면 되는데.”
박상우는 미간을 좁히며 살짝 언성을 높였다.
“그게, 사정이 조금…….”
김민준은 우물쭈물하며 박상우의 눈치를 보았다.
“환자가 수술을 받는 데 사정이라는 걸 걸고 넘어갈 수 있습니까?”
박상우도 더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 수술을 안 받을 수는 없는 건가요?”
김민준이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전인수 환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전인수가 받아야 할 수술은 엘바드(LVAD), 즉 이식형 좌심실 보조 장치를 삽입하는 수술이었다.
작년에 입원했던 장진섭 대표가 받았던 바로 그 수술로, 만성 심부전 환자에게 심장 이식 전에 진행하는 수술이기도 했다. 약물치료에 반응이 없을 때 실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2018년 10월 이후 보험 급여화가 되기 전까진 상당히 고가의 수술이었다. 전인수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쉽게 받을 수 있는 수술은 아니었다.
자세한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박상우는 전인수의 표정을 통해 어렴풋이, 수술받을 수 없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환자분은 반드시 수술을 받으셔야 살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그게, 수술비가 너무…….”
“수술비 같은 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러니까 환자분은 수술 날까지 치료만 잘 받고 있으시면 됩니다.”
수술비를 걱정하는 환자의 말에, 박상우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래도, 그건 말이 안 돼요. 제가 어떻게 교수님께 신세를 지겠습니까? 이런 썩은 몸뚱이에 더는 미련도…….”
“환자분. 환자분의 생명을 함부로 결론짓지 마세요. 병원에 오셨다면, 치료를 받으시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완치하셔서 편안한 걸음으로 나가셔야죠. 환자분이 다 나을 때까지 도와드리는 게 제 의무입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비용을 감당하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한 자선 단체도 있고, 정부에서도 보조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동안 치료만 잘 받아 주세요.”
박상우는 단호한 어조로 전인수를 나무라며, 안심시켰다.
“네. 아, 알겠습니다.”
전인수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전인수 환자 수술 스케줄, 그대로 진행해.”
잠시 후, 회진을 마치고 병실 밖으로 나온 박상우는 김민준에게 곧장 오더를 내렸다.
김민준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게, 조금 어렵습니다. 저도 한번 알아보니, 지금까지의 병원비도 상당히 밀려 있다며 원무과에서 난색을 보였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대로 진행해.”
“교수님께서 수술비를 책임지실 필요는…….”
“김민준 선생. 언제부터 환자보다 돈을 우선했지?”
박상우는 김민준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죄, 죄송합니다.”
“정부 보조금 쪽으로 한번 알아봐. 극빈층에 관한 의료 지원 제도가 있을 거야. 정 안 되면 내가 보증을 서겠다고도 해. 급여라도 보증으로 두면 되는 거 아냐?”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김민준은 멋쩍은 표정 연신 고개를 숙였다.
* * *
전인수 환자 건이 지난 다음 날, 토요일.
박상우는 지동철 원장의 지시인 연수병원 심장센터 개관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가 열리는 다이아몬드 홀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갖가지 화환이 입구를 현란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귀빈석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국내 명성 높은 병원의 원장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고, 장관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효석 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발견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서 허리를 굽혔다.
“아닙니다. 이런 경사에 제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강 원장님!”
“이 모든 게 장관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하하하, 신경 써 드리다니요? 괜히 그런 말씀 하시면 사람들이 오해하십니다. 이 모든 건 연수병원이 열심히 노력한 보상인걸요.”
“하하하. 그렇군요!”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순간, 금발의 노년 외국인 한 명이 다이아몬드 홀에 모습을 보였다. 외모로 풍기는 나이가 무색해질 만큼,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의 영국 신사였다.
옆에 통역자로 보이는 사람까지 대동한 탓에 더욱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찰칵!
찰칵찰칵!
기자들이 순식간에 달려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와, 저분 윌리엄 캔트 교수 아니야?”
“맞아. 저분이 이곳까지 어떻게 온 거지?”
“그러게 말이야. 워낙 외부 노출을 꺼린다고 해서 기자들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고 하던데. 정말 강효석 원장이 대단하긴 하네. 어떻게 캔트 교수가 여길 오지?”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남자.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 윌리엄 캔트 교수였다.
모두가 집중하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응시하던 강효석 원장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득달같이 달려가 윌리엄 캔트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효석 원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윌리엄 캔트입니다.”
윌리엄 캔트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