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57)
신의 메스-157화(157/249)
157화 가난한 예술가 (1)
존스 홉킨스의 스텐튼 이사장과 함께 세계 흉부외과의 산증인이자 거목인 윌리엄 캔트! 죽은 심장도 살려낼 만큼 마술 같은 의술을 지닌 써전이지만, 워낙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기피해 ‘은둔의 마법사’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이런 곳엔 왜 온 걸까? 강효석 원장과 친분이 있는 건가?’
박상우 역시 굿닥터 사이트에서 친분을 쌓은 케임브리지 대학 유학생들을 통해 그에 관한 괴이한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뜬금없는 등장이 너무도 의아했다. 윌리엄 캔트가 황급히 서울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를 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사는 각종 형식적인 축사부터 시작했다.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PPT 프레젠테이션 등이 끝나고 드디어 행사의 하이라이트만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멀리 영국에서 오신, 케임브리지 대학교 부속 병원의 석좌교수이신 윌리엄 캔트 교수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내빈 여러분들은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캔트 교수를 소개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짝짝짝짝!
윌리엄 캔트가 모습을 드러내며 단상으로 올라가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윌리엄 캔트입니다. 우선, 매머드급 첨단 심장센터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윌리엄 캔트가 단상에 올라가 축사를 시작하자,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강효석 원장의 입도 귀까지 올라갔다.
“세상에, 원장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윌리엄 캔트가 축사를 다 합니까?”
“허허허, 뭘요. 별거 아닙니다.”
가야병원 원장이 부러워하자, 강효석 원장의 어깨가 잔뜩 위로 올라갔다.
“사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윌리엄 캔트의 말이 옆에 있던 통역을 통해 전달되었다.
“뭐야……? 연수병원이나 강효석 원장 얘기는 한 글자도 없잖아?”
“무슨 축사가 이렇게 짧아? 게다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 또 뭐야?”
인사말이 1분여 만에 형식적으로 끝나자 연수병원 의료진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행사장이 조금씩 웅성거렸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윌리엄 캔트의 통역을 맡고 있는 통역사의 입으로 모였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의사 한 명을 찾고 있습니다.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중에, 그 사람이 한국 사람임을 알고 이렇게 이곳에 온 것입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오히려 당황한 건 연수병원 관계자들이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심장센터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그들은 일제히 강효석 원장의 눈치를 살폈다.
“…….”
강효석 원장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마구 흔들리는 다리가,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여 줬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굿닥터란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의사분 있으십니까?”
행사장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지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굿닥터? 그게 뭐지?”
“글쎄. 무슨 학회 사이트인가?”
“아, 맞아! 영국 의대, 유학생 연합회에서 만든 의학 지식 공유 사이트 아냐?”
개중에는 드물지만, 굿닥터란 사이트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없습니까?”
아무도 반응이 없자, 윌리엄 캔트는 누가 봐도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통역을 통해 재차 확인했다.
“아이디가 ‘날개 잃은 천사’였는데……. 여기 계신 분 중에 이 아이디를 사용하시는 분 안 계십니까?”
통역사가 자신의 말을 통역하는 사이, 윌리엄 캔트가 애절한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이,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떡하죠? 이만 내려보낼까요?”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 버리자, 당황한 사회자가 연수병원 부원장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지금 미쳤어? 윌리엄 캔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행사장은 주객이 전도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연수병원 측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여쭙겠습니다. 아이디는 ‘날개 잃은 천사’고 주로 심장 관련 카테고리에 기고하는…….”
“그거, 접니다.”
박상우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행사장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박상우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다, 당신이 ‘날개 잃은 천사’라고요?”
마치 잃어버렸던 자식을 찾은 듯, 윌리엄 캔트 교수는 황급히 단상에서 내려와 박상우에게 달려갔다.
찰칵!
찰칵찰칵!
행사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기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윌리엄 캔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당신이 정말,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조언해 준 ‘날개 잃은 천사’가 맞습니까?”
“네, 그렇긴 한데…….”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그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데, 당신이 올린 글들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특히, 내시경으로 부정맥을 치료한다거나 가슴 절개 없이 진행하는 인공심장 삽입술에 관한 견해는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꼭 한 번 당신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박상우는 가끔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서 난치병을 수술하는 프로세스 및 원리를 기고했다. 윌리엄 캔트 교수가 그 글들을 읽은 것 같았다.
윌리엄 캔트의 표정은 마치 유명 연예인을 맞이하는 팬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박상우의 손을 마주 잡으며 반가워했다.
“아…… 그건 아직 상용화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거라서요.”
“그러니까 더 대단하다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자리를 옮겨서, 저와 조금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잘됐군요. 제가 묵고 있는 호텔이 근처에 있는데, 그쪽으로 자리를 옮깁시다.”
윌리엄 캔트 교수는 마치 떠나려는 연인의 팔을 움켜쥐듯 박상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찰칵!
찰칵찰칵!
“윌리엄 캔트 교수님! 그렇다면 이렇게 급하게 내한한 이유는, 오늘 행사를 축하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이분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기자들은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모두들 윌리엄 캔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아우성을 쳤다.
“네. 저는 오늘, 꿈에 그리던 한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군요!”
윌리엄 캔트 교수는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으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유유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반면, 연수병원 행사장은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넋이 나간 표정의 강효석 원장이 멍하니 썰렁해진 행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다 치워 버려!”
잠시 후,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고함이 강효석 원장에게서 터져 나왔다.
* * *
윌리엄 캔트 교수와 박상우는 리츠 프라자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이분과 둘이서만 있고 싶군요. 제가 별도로 연락하지 않는 한,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네, 교수님.”
윌리엄 캔트 교수는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뒤따라온 경호원들을 내보냈다.
“판타스틱! 원더풀!”
두 사람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계속되었다. 대부분은 박상우가 사이트에 게재한 글과 그에 관한 윌리엄 캔트의 의견을 받는 식의 대화였다.
“오 마이 갓! 그러니까, 당신이 그 명성병원의 박상우 교수란 말입니까?”
대화 도중 박상우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윌리엄 캔트 교수는 깜짝 놀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네, 교수님. 제가 명성병원 박상우입니다.”
“언빌리버블! 그러니까, 당신이 이번에 최초로 마이트라 클립을 시술에 성공한 그 한국의 흉부외과 써전이란 말이죠?”
“그렇습니다.”
“정말 놀랍군요. 존스 홉킨스의 스탠튼 이사장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놀라운 써전이 있다고요! 정말 너무도 뵙고 싶었는데, ‘날개 잃은 천사’가 당신이었다니요!”
윌리엄 캔트 교수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저도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뇨. 제가 영광입니다. 이런 데서 박 교수를 만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윌리엄 캔트 교수는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도 교수님을 뵙고…….”
이후 이어진 두 사람 사이에 피어오른 대화의 꽃은 시들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더 이어진 후, 낮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밤 7시가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 되시면 저녁이라도 함께합시다, 박 교수.”
윌리엄 캔트는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인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렇게 하시죠. 그 전에, 외람되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 얼른 말해 보세요.”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저를 이렇게 찾아 주신 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지만, 행사장에서 하신 교수님의 행동은 좀 무례했다고 생각합니다. 연수병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많은 의료인이 모인 자리입니다. 같은 한국의 의사로서, 오늘 행사장에서 교수님께서 보이신 행동은 저희를 무시하는 것 같아 조금 불쾌했습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생각이 짧았습니다. 박 교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너무 경솔했어요. 용서하시오, 박 교수.”
윌리엄 캔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박상우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다만 저에게 사과하실 필요는 없고, 연수병원 측에 유감을 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요. 내일이라도 당장 연수병원에 찾아가서, 저의 결례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박 교수를 만난 기쁨에 너무 큰 결례를 범했어요.”
윌리엄 캔트 교수는 자신의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며, 난감한 듯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러면 우리, 저녁 식사나 하면서 조금 더 대화를 나눕시다.”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윌리엄 캔트 교수는 박상우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가깝게 행동했다.
* * *
명성대학교 병원의 지동철은 원장실이 떠나갈 듯이 경망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지난 주말에 벌어진 해프닝을 들은 탓이었다.
“꼴좋다! 그렇게 윌리엄이 온다고 설레발을 다 치더니!”
10년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간 듯, 지동철 원장은 허리가 휘도록 박장대소했다.
* * *
“나중에 꼭 한번 우리 대학에 방문해 주세요, 박 교수!”
“시간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아직 박 교수와 할 얘기가 많으니 꼭 와 주세요.”
한바탕 시끄러웠던 지난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박상우는 주말 내내 윌리엄 캔트 교수와 같이 지내며, 서로의 의학적 식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일. 정신없는 주말을 보낸 박상우 역시,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했다.
“전인수 환자 아닙니까? 여기서 뭐 하고 계시나요?”
박상우의 담당 환자인 전인수가 한 아이와 함께 정류장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전인수가 민망한 듯 머뭇거렸다.
“‘그게’가 아니라, 지금 병실에 누워 계실 분이 왜 나와 계시냔 말입니다.”
“교수님, 전 이만 퇴원하려고 합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잔존 수명: 23일 19시간 24분 19초, 18초, 17초…….]전인수가 들고 있던 가방을 빼앗아 들려는 순간, 박상우의 눈에 붉은 숫자가 보였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전인수의 잔존 수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