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6)
신의 메스-16화(16/249)
16화 이이제이(以夷制夷) (3)
명성대학교 병원 대회의실.
“지금부터 제45차 징계위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7명의 징계위원이 속속 입실해 자리에 앉자 중앙에 앉은 이준술 징계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픈 징계위원회!
명성대학교 병원의 오래된 관례로, 징계위에 회부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내 모든 의료진이 참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징계 대상자는 참석한 모든 의료진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소명하며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다. 소명 및 질의응답이 끝난 후엔 7명 징계위원의 표결로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이번 제45차 징계위의 대상자는 흉부외과 소속 인턴 박상우로 1998년 8월 17일. 원내에서 벌어진 박철진 환자 임의 치료에 대한 건입니다. 박상우 선생! 단상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이준술 위원장이 박상우를 호명했다.
“네. 위원장님!”
박상우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단상 앞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한현수가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었다.
“박상우 선생! 지금부터 당시 상황을 설명해 보십시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1998년 8월 17일, 오전 10시경 박철진 환자가 내원했을 당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온몸에 크고 작은 스탭과 라서레이션이 분포해 있었으며, 의식은 희미했습니다. 게다가, 비피(Blood Pressure: 혈압)의 급격한 저하 및 블러드 서큘레이션(Blood circulation: 혈액순환) 저하로 인하여 피부가 창백해졌으며 펄스(Pulse: 맥박)가 빨라지고 디스피니아(Dyspnea: 호흡곤란)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 외상에 의한 카디악 탐포네이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상우가 차분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저 친구 인턴 맞아?”
“그러게 말이야. 저 단상에 올라가면 긴장해서 말부터 더듬기 마련인데, 무서울 만큼 침착하잖아? 진단도 나무랄 데 없고 말이야.”
“그러게, 보통내기가 아니야.”
방청석에 앉아 있던 타과 교수들이 박상우의 침착함에 혀를 내둘렀다.
“음, 각자 앞에 놓인 진료 차트 복사본을 살펴보십시오. 박상우 선생의 말대로 일단 진단 자체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왼쪽 맨 끝에 앉아 있던 징계위원 조상도가 진료 차트를 넘겨보며 말을 거들었다.
“좋습니다. 일단 모두 발언은 이쯤 해 두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묻겠습니다. 전상호 위원! 질문하세요.”
이준술 위원장이 발언권을 전상호 위원에게 넘겼다.
“네. 신경외과 과장 전상호 교수입니다. 박상우 선생에게 묻겠습니다! 일단 환자가 카디악 탐포네이드가 의심된다고 할지라도 인턴 신분으로 페리카디오를 실시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전상호 교수가 진료 기록을 뒤적거렸다.
“진료 기록을 보니 에코도 없이 천자를 삽입했던데, 이 일은 제가 알기론 상당히 숙련된 전문의도 쉽게 못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접된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소명해 보십시오.”
“네. 교수님!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철진 환자가 카디악 탐포네이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그때 모든 의료진은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기하고 계셨던 교수님들은 전부 응급수술에 들어가신 상황이었죠. 당시, 박철진 환자에 대한 응급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사는 저와 동료인 천기수 말고는…….”
그 순간, 한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박상우의 말허리를 자르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니요. 충분히 펠로우나 교수님들께 노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설사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타 병원에 트랜스퍼 요청을 했었어야죠. 자칫, 대형 의료사고로 번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아, 한현수 교수! 흥분하지 마시고 자리에 앉으세요! 지금 박상우 선생이 소명하고 있잖습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추후 발언 기회를 드릴 테니 앉으세요!”
흘러내린 안경테를 밀어 올리는 이준술.
탁탁탁, 그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흐음, 네. 알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한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몸을 내던졌다.
“계속하세요. 박상우 선생!”
이준술이 박상우를 향해 손바닥을 내보였다.
“네. 한현수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분명 타 병원으로의 트랜스퍼를 고려했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30분 이내에 어레스트가 발생할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근 병원에 트랜스퍼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박철진 환자의 부하들이 수술 중이신 교수님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협박을 해, 자칫 수술 환자와 교수님들께 위해가 될까 걱정되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제가 직접 페리카디오를시행하는 것 말고는 대안은 없었습니다.”
“흠,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야. 안 그래, 윤 선생?”
“그러게요. 인턴이라고 의사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뭐, 그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조치도 훌륭했고요.”
회의실 분위기가 박상우에게 우호적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완벽한 박상우의 소명에, 징계위에 참석한 의료진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박상우에게 쏟아졌던 냉랭한 시선을 거둬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뭐, 뭐야? 이,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단 한 사람!
한현수만이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박상우를 주시했다.
이번엔 징계위 맨 오른쪽 끝에 앉아 있던 신상겸 교수가 앞에 놓인 마이크를 들었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박상우 선생은 인턴 신분으로 페리카디오를 에코도 없이 시행했습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이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페리카디오를 잘못 시행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경험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무모한 결정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습을 통해 수십 번, 수백 번 충분히 연습해 뒀고 각종 의료지나 비디오 영상 그리고 교수님들이 직접 시술하시는 것을 평소에 눈여겨보았기에 그대로 시행했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환자를 죽게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박상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 뒤 입을 굳게 다물었다.
“흠, 신 교수님! 박상우 선생이 시술한 내용이 담긴 차트를 보십시오. 솔직히 저도 이 정도로 정교하고 정확하게 주사기 못 꽂습니다. 완벽한 시술이었어요.”
옆에 앉아 있던 심기만 교수가 박상우를 두둔하고 나섰다.
‘으윽, 저 늙은이! 지금 누굴 두둔하고 나서는 거야?’
목까지 벌게진 한현수 교수가 안절부절못하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네. 사실 저도 이 차트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박상우 선생의 응급조치가 없었으면 제아무리 베테랑인 조현오 교수라고 해도 살리긴 힘들었을 거예요. 정말 훌륭한 제자를 두셨습니다! 저 역시, 무척 탐나는 인재예요.”
신상겸 교수가 심기만 교수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저 친구, 아직 우리 과로 결정된 건 아닙니다그려. 물론, 모든 면에서 우리 과로 들어오는 게 순리긴 합니다만.”
허허허, 심기만 교수가 손을 내저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 이제 더 질문 없으십니까?”
이준술이 징계위원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네. 없습니다.”
이에 징계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좋습니다! 박상우 선생! 마지막으로 하실 말 있으시면 말씀하시고 단상에서 내려가십시오.”
이준술이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응시했다.
“네. 외람되지만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록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나, 병원 내 위계질서를 어지럽힌 점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기에 어떠한 결과가 나온다고 할지라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박상우가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징계를 내릴 게 아니라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냐?”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 우리 쪽으로 이송된 환자들 완벽하게 처리해서 우리 병원도 매스컴 탔잖아! 다들 박상우 선생이 대단하다고 난리인데 왜 우리 병원에서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야?”
동시에 사람들이 한현수를 응시했다.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한현수가 고개를 숙였다. 육수 같은 땀이 그의 목덜미를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박상우가 고개를 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저기 계신 조현오 교수님으로부터, ‘손이 아닌 가슴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라’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교수님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박철진 환자를 보는 순간, 저는 손이 아닌 가슴이 먼저 움직였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 박철진 환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비록 조폭일지라도 말입니다!”
박상우가 앞쪽에 앉아 있던 조현오를 가리키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흠흠, 아니, 아니. 내가 뭘…….”
조현오 교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어 보았지만, 한껏 승천한 광대가 그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자, 지금부터 징계위원의 표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 선생, 자리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네. 위원장님!”
잠시 후 박상우가 이준술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야, 너 국회의원 해도 3선은 내리 당선되겠다? 너, 나 몰래 무슨 웅변 학원이라도 다녔냐?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맛깔나게 잘했냐?”
자리로 돌아가 앉자 옆에 있던 천기수가 박상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후후후, 그래? 이참에 한번 나가 봐?”
“미친놈! 지랄하고 있네. 아무튼, 분위기를 보아하니 네가 윈이다.”
천기수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끝까지 결과를 지켜봐야지.”
여유로운 표정의 박상우. 그가 180도 바뀐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러면 지금부터 위원회의 표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결과 발표지를 건네받은 이준술이 혀를 내둘렀다.
“……흐음, 놀라운 결과군요! 그러면, 발표하겠습니다. 박상우 선생이 한 일련의 조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지닌 행위로 시의적절했으며,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임의 치료를 한 부분은 문제가 되니 향후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위원단 만장일치로 박상우 선생의 징계안을 반려합니다!”
최상의 결과!
박상우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
짝, 짝짝, 짝짝짝!
마치 억울한 피고인이 무죄 선고를 받은 법정인 양,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그렇지!”
“와, 박상우 저 친구! 오늘 크게 한 건 하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의료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흠, 교활한 놈! 오늘은 어쩔 수 없다만,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그래, 그래. 우리 과에 들어오기만 해라. 아주 잘근잘근 밟아 주마!’
한현수가 거칠게 의자를 밀어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회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아! 거기, 한현수 교수님! 아직 징계위가 끝나지 않았으니 자리에 앉아 계세요. 그리고 여러 선후배 동료 여러분들도 이석하지 말아 주십시오!”
모두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준술 교수가 황급히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황한 표정의 한현수가 몸을 돌려세웠다.
“흠, 징계위 안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물론, 그 안건은 한현수 선생과 연관된 것이고요.”
안경 너머로 비치는 이준술 교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네? 저, 저와 연관된 일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김 선생! 관련 자료를 방청객에게 배포해 주세요.”
이준술 교수가 자신을 보좌하던 내과 치프, 김진호를 향해 손짓했다.
“네. 교수님!”
김진호가 곧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렸다.
맨 위 페이지에 쓰인, <의료 기구 업체 ‘큐브메디’의 심장 스텐트 불법 납품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