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61)
신의 메스-161화(161/249)
161화 가난한 예술가 (5)
“기수야, 지금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어. 전인수 환자 상태는 어때?”
박상우는 명성대학교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자마자 천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근 수축력이 떨어져서 도부타민(Dobutamine: 교감 신경 흥분제)을 투여한 상태야. 심박출량이 조금 개선됐지만, 아무래도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호흡 곤란 증세는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니트레이트(Nitrates: 질산염)를 투여했어.”
“수고했어. 일단 기수 네가 응급 수술 준비 좀 해 줘. 부탁할게.”
“이미 스탠바이 시켜 놨어. 너만 오면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도록 했으니까 빨리 들어와.”
“알겠어. 최대한 빨리 갈게.”
전화를 끊자, 백설아가 곧장 물었다.
“교수님, 전인수 환자는 어떻습니까?”
“가서 확인해야 알겠지만, 일단 천 교수가 응급조치를 잘해 둬서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다행이군요.”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수술 말고는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힘든 환자니까요.”
박상우는 뛴 탓에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고르며 답했다.
“교수님, 고마워요.”
“네? 뭐가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으니까요.”
백설아는 박상우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교수님과 함께 있으면 왠지, 어떤 환자라도 살릴 것 같은 느낌…… 아니, 그런 믿음이 생겨요.”
“무슨 그런……. 저는 신이 아니에요. 그저,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치료할 뿐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가 교수님을 평생 모시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좋아서요.”
백설아는 환하게 웃으며 박상우를 응시했다.
백설아에게 박상우는 어느새 신앙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 * *
박상우와 백설아는 금세 전인수의 병실에 도착했다. 천기수와 김민준은 이미 수술 준비를 마치고, 박상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인마.”
대기하고 있던 천기수가 반갑게 박상우를 맞았다.
“수고했어, 기수야! 바로 수술실로 옮겨 주세요.”
박상우의 오더에 수련의들은 전인수 환자를 스트레처 카에 실었다.
“잠깐만. 가기 전에 나 좀 보자, 상우야.”
천기수는 박상우를 향해 눈짓하곤, 옆구리를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왜? 무슨 일이야?”
“너도 알다시피 전인수 환자 가족이라곤 어린 아들 하나뿐이잖아.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가 진행하기로 했잖아.”
“하아, 수술비가 한두 푼도 아닌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 게다가 LVAD는 의료보험도 안 되는 수술인데…….”
“걱정하지 마. 적어도 너나 나보단 전인수 환자분 쪽의 돈이 훨씬 많을 거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입원비도 없어서 허덕거리는 사람인데. 전인수 환자가 로또라도 맞았냐?”
“아니, 그런 거와는 비교도 안 되지. 로또는 그저 운이지만, 전인수 환자는 신이 내린 손을 가졌거든.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수술에나 집중하자.”
박상우는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여간, 넌 정말. 언제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인간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도 믿을 수밖에 없거든. 알겠다! 이 귀신같은 놈아. 자자! 아그들아! 전인수 환자 빨리 10번 수술실로 옮기자.”
“네, 교수님!”
천기수는 고개를 내저으며 수련의들과 함께 수술실로 이동했다.
* * *
좌심실 보조 장치(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 LVAD) 이식 수술.
심장 이식이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로, 말기 심부전 환자의 좌심실 기능을 기계로 대신하는 수술이었다. 2020년을 기준으로는 3세대 LVAD 이식술이 활용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아직 2세대 LVAD만 존재했다.
수술 비용 또한 억대를 넘겼기에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인 2012년까지 고작 25명만이 LVAD 수술을 진행했을 정도로, 쉬이 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마취 완료했습니다, 박 교수님!”
“수고하셨어요. 지금부터 LVAD 생체 이식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집중해 주세요.”
모든 수술 준비가 끝나자, 박상우는 비장한 표정으로 의료진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흉골 절개하겠습니다. 스터널 쏘우(Sternal Saw: 흉골 절개용 톱)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김민준은 스터널 쏘우을 박상우 손에 쥐여주었다.
지이이이잉!
박상우가 스터널 쏘우를 가져다 대자, 하얀 연기와 함께 소량의 피가 새어 나왔다.
“보비!”
“알겠어. 흠, 뭐. 워낙 톱질을 잘해서 새는 피도 없구만. 하여간, 수술 기계라니까.”
흘러나온 피를 거즈로 닦아 내며 보비로 지혈하던 천기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인수의 가슴 중앙 방위를 메스로 약 20센터 정도 절개한 박상우는 전기톱을 들고, 흉골의 세로 15센티가량을 절단했다.
미래에는 가슴뼈 절개 없이 왼쪽 가슴과 심장의 위아래 피부만 절개하고 LVAD를 이식하는 기술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천하의 박상우라 할지라도, 2세대 LVAD 기계로는 불가능한 수술법이었다.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슴 절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바드 삽입합니다. 모두 집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바드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블러드 펌프패드 투 아올타(Blood Pumpped to Aorta), 삽입합니다.”
대동맥에 심장을 대신할 인조 펌프를 삽입했다. 자칫 대동맥이 파열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삽입술이었다.
박상우도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짓고 집중했다. 그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백설아가 다가와, 거즈로 박상우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고마워요, 백 선생. 펌프패드 연결합니다. 포셋!”
“여기 있습니다.”
“김민준 선생, 클램프 걸어!”
“네, 교수님.”
김민준은 클램프를 들고 조심스럽게 혈관을 잡았다. 그 역시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바이탈 괜찮습니까?”
뚜뚜뚜뚜!
“아직까진 무난합니다. 산소포화도도 정상이고, 혈압도 괜찮아요. 그대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니터를 확인한 마취과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펌프패드 연결했습니다. 이제 본체 연결하겠습니다. 한 선생, 가슴 좀 더 벌려 줘.”
“네, 교수님.”
한 선생과 조 선생은 리트렉터(Retractor: 환부 절개 부위를 벌리는 기구) 레버를 돌려 가슴 부위 환부를 벌렸다.
“이제 마무리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오케이!”
친구스는 검지와 엄지를 맞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약 4시간가량이 흐르고 난 후.
“LVAD 삽입 완료!”
초집중 상태로 이어진 수술은 4시간 만에 끝이 났다. 한마디로, 완벽한 수술이었다.
“수고했어. 아주 잘 붙은 것 같은데?”
천기수가 모니터를 살펴보며 말했다. 혈압, 호흡, 산소포화도 등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게. 다행이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박 교수!”
수술 방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밝은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로만 듣던 박 교수 수술을 직접 보니까 할 말이 없네. 그냥, 대단하다 대단해! 멋지다 박 교수!”
폐혈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약물로 폐동맥고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참여한 폐 질환 전문의 장영출 교수는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내가 뭐 한 게 있나? 하나부터 열까지 자네가 다 한 거지.”
“아닙니다. 교수님이 계셔서 마음 편히 수술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겸손할 필요는 없어. 이 정도면 박 교수가 국내 최고 아냐? 캐비지에 오피캡, 게다가 심장 이식과 LVAD까지. 이 정도면 당연히 탑 먹어야지.”
장영출 교수는 박상우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수술은 완벽한 성공으로 끝이 났고, 박상우는 또 하나의 신화를 쌓으며 의학계 역사를 다시 쓰고 있었다.
* * *
지이이잉!
“아저씨! 우리 아빠는요?”
수술실 문이 열리고 박상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민우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민우와 함께 있던 김영순 간호부장이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잘 끝났어, 민우야. 아버지는 괜찮아지실 거야.”
“정말요? 저, 맨날 성당 가서 기도했어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아이의 눈에 매달려 있었다.
“정말이지. 우리 민우가 열심히 기도해서 하느님이 도와주신 것 같아.”
박상우는 자세를 낮춘 채,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박 교수님.”
“부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나야 뭐, 워낙 민우가 붙임성이 있어서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힘들었을 텐데 우리 민우가 정말 잘 견뎠어요.”
김영순 간호부장은 민우의 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수술을 마친 후 전인수를 중환자실로 옮겨 경과를 지켜봤지만, 생각보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일주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박상우는 전인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련의들과 함께 그의 병실을 찾았다.
“환자분, 불편하진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교수님! 이 정도 불편한 건 아무것도 아니죠.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회복한 모습이었다. 전인수가 환한 표정으로 박상우를 맞았다.
LVAD를 몸에 삽입하고 생활하는 건, 생각보다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LVAD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배터리를 몸에 부착해야 했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컨트롤 유닛까지 장착해야 했기에, 불편함이 없을 수 없었다.
“다행이군요. 불편하시겠지만, 평생의 친구라고 생각하시고 익숙해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전인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박상우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김민준 선생, 수련의들과 잠시 밖으로 나가서 기다려 줄래요?”
눈치를 챈 박상우가 수련의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전인수는 서랍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 박상우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걸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 그림은 제가 교수님께 드린 거니까요.”
전인수의 ‘사랑하는 아들’ 그림은 12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에 팔렸고, 자신의 수술비를 제외한 8억여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이었다.
“아니에요. 이 돈은 그림 값이기도 하지만, 민우를 위해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도 치료비가 적잖이 들어갈 겁니다. 당분간 이 돈으로 치료하시고, 빨리 회복하셔서 좋은 작품 많이 그려 주세요.”
“그래도 어떻게 제가 이 돈을…….”
전인수의 부탁에도, 박상우는 거절하며 전인수의 손에 통장을 쥐여주었다.
“알아보니, 정말 대단한 그림이라더라고요. 환자분처럼 대단한 화가가 건강 때문에 작품 활동을 못 하는 건 우리나라 미술계의 큰 손해예요. 그러니 이런 건 신경 쓰지 마시고, 빨리 회복해 주세요.”
박상우는 씨익 웃으며, 전인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선생님.”
통장을 받아든 전인수의 양 볼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열심히 치료받고 완치하시면 됩니다.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박상우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전인수의 손을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러면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선생님!”
전인수는 침대 밑에서 황금색 보자기로 곱게 싸인 액자를 하나 꺼냈다.
“이게 뭡니까?”
“제가 틈틈이 그린 그림이에요. 그냥, 뭐.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린 건데, 맘에 드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별 볼 일 없는 그림이지만, 제 감사한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보자기를 풀어 박상우에게 내보인 건,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그린 박상우의 초상화였다.
“와! 정말 멋진데요?”
박상우도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드세요?”
“그럼요! 정말 저한테 주시는 겁니까?”
박상우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물었다.
“이 그림 말고도 언제든지, 가지고 싶은 그림이 있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100장이고 1,000장이고 그려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금세 그림 재벌이 되겠는데요? 와, 정말 멋지네요. 이게 정말 저예요?”
“네, 교수님 맞습니다.”
박상우는 그림 이곳저곳을 살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