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68)
신의 메스-168화(168/249)
168화 어머니 안 돼요! (7)
어차피 김정자를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지 않는 한, 김상진의 수술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동철 원장을 손아귀에 쥔 김상진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수술을 하려고 들 것이 자명한 일. 박상우가 판단하기에, 지금으로선 김상진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몇 차례 실수가 있는 것은 사실이어도 김상진의 수술 실력은 정상급이야. 그의 진단이 정확했다면 충분히 수술은 성공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김상진의 진단이 잘못되었다는 거야!’
박상우는 양손을 코 주변에 모은 후 심각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 * *
며칠 전, 김상진은 컨퍼런스 룸에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브리핑을 했다.
“지금부터 김정자 환자 수술에 대해서 간략하게 브리핑하겠습니다. 우측 폐 좌측으로 림프 전이가 어느 정도 일어났습니다. 척추부터 어깨, 머리까지 어느 정도 전이가 진행된 논 스몰 셀 카시노마(Non-small cell carcinoma: 비소세포암) 선암이지만, 폐 전체에 암세포가 진행된 상태는 아닙니다. 우측 폐 하엽에 암세포가 집중되어 있어, 흉강경을 통한 우 폐 하엽 절제술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폐는 크게 상엽, 중엽, 하엽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김정자는 하엽에 종양이 집중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흉강경으로 그 부분을 절제해 제거하겠다는 것이 김상진의 의도였다.
‘물론, 당신의 진단이 정확하다면 그 수술법 역시 훌륭한 수술이라 할 수 있지.’
박상우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흉강경 폐암 수술.
현재 국내 수술 환경은 개흉 수술이 보편적이었다. 그럼에도 선진 흉강경 수술을 시행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김상진의 의도였다.
물론, 옆구리를 20센티 이상 절개하고 갈비뼈 일부까지 덜어내야 하는 개흉 수술과 비교하면, 흉강경 수술은 4센티 정도의 절개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후유증 측면에서 훨씬 안정적인 수술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암세포가 퍼진 범위가 국소적일 때 가능한 수술법이었다. 미래에는 로봇 수술, 다빈치 수술법이 개발되어 폐암 말기 환자도 흉강경 수술이 가능해졌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판단한 어머니의 상태론, 개흉 수술 말고는 답이 없었어. 어머니는 어린 시절을 탄광촌인 장선에서 자라셨어. 상당 기간 석탄가루에 노출되셨을 거고, 분명 진폐증으로 인해 폐 세포 섬유화도 상당히 진행되셨을 거야. 그로 인해 폐가 딱딱하게 굳어져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거지. 폐 한쪽을 완전히 들어내는 전폐 제거술 말고는 현재로선 답이 없어. 김상진, 당신의 진단은 잘못됐어.’
하지만, 박상우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김상진의 브리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 만약에 암 조직의 범위가 예상외로 넓으면 어떡할 건가? 그렇다면 흉강경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텐데 말이야.”
김상진의 브리핑이 끝나자, 윤상부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박상우가 우려했던 부분을 때마침 건드려주는 질문이었다.
“일단 하엽에 집중된 형태로 볼 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 사례를 보면, 종양의 범위가 조금 더 넓다고 해도 흉강경으로 충분히 수술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장님도 알다시피, 개흉 수술은 후유증이 심합니다. 환자의 상태로 봤을 때, 우측 폐를 완전히 날려 버리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죠. 현재 김정자 환자의 몸 상태로 보면, 개흉 수술은 자살행위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김상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윤상부 교수 역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김 교수의 수술을 막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아무리 조언한다 한들 들어먹을 사람이 아닐 테니까. 어떻게든 내가 퍼스트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시, 내가 언제든지 메스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해. 반드시!’
박상우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결국, 김상진의 어시스트를 자원하는 방법뿐이었다. 물론, 단순 어시스틀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 *
“마이클, 나야.”
“오 마이 갓! 내 친구 라이언 아닌가? 롱 타임 노 씨?”
“그래.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인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야? 난 아직도 자네랑 곱창 먹는 꿈을 꾸곤 해.”
“그래? 다음에 한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배 터지도록 먹게 해 줄게. 다른 게 아니라, 자네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혹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하던 김상진이란 의사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박상우는 존스 홉킨스의 동료, 마이클을 통해 김상진의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마음의 결정을 내린 김상진은 박상우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들였다.
“좋습니다. 박 교수 제안대로, 수술이 잘못될 경우 집도의로서 모든 권한을 넘겨드리죠.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김상진은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에 능했다. 상황 판단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음을 간파한 그는, 어쩔 수 없이 박상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김상진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이번 수술은 흉강경이 아닌 개흉 수술로 진행해야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미 컨퍼런스에서부터 흉강경으로 가기로 한 건데?”
“아뇨. 김정자 환자의 암 부위는 단순히 사진만으론 판단하기 힘듭니다. 현재로는 하엽에 집중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폐정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암이 자리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무조건 개흉 수술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비상식적인 소견이요? 그렇다면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죠. 암 덩어리가 혈관을 타고 다른 장기에도 전이된 상태는 아닙니다. 단지 국소적으로 늑골에 퍼져 있는 상태라, 분명 전폐 수술로 완치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상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박상우의 의견을 묵살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어린 시절 탄광촌에서 자라셔서 코니오시스(Coniosis: 진폐증)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폐 전체에 풀모너리 피브리오시스(Pulmonary Fibrosis: 폐 섬유화)가 진행되어서, 굳이 암이 아니라도 폐 기능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전폐 제거술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어요!”
박상우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아뇨. 제 눈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김정자 환자는…….”
“눈이 틀린 적이 없어서 그렇게 의료 사고를 내고 은폐하셨던 겁니까?”
박상우는 김상진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그, 그건 사고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전 흉강경 수술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당신한테 김정자 환자는 그저 자신의 명성을 쌓게 해 줄 고깃덩어리쯤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소중한 어머니입니다. 제 생각대로 진행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 역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요.”
“……후우.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 모든 것은 박 교수의 책임입니다.”
박상우가 손에 쥔 카드가 부담스러웠던 김상진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제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저 역시 제가 메스를 잡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김상진 교수님 역시 베테랑 써전이시니 잘하실 거라 믿고, 전 최선을 다해 어시스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런 건 박 교수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일로 괜한 구설에 오르는 일만 없도록…….”
“걱정 마십시오. 전 김 교수님의 체면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환자, 내 어머니만 살려내면 되는 거니까요. 괜한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좋습니다. 누가 말이 맞는지는 수술방에서 확인토록 하죠.”
김상진은 어떤 반박도 못 하고, 박상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상우는 아무런 잡음도 없이 자신이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 * *
“야, 김민준! 너도 오늘 수술실에 들어가냐?”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던 김민준을 보고, 뒤늦게 들어온 윤상도가 빈정거리며 물었다.
“보면 모르냐?”
“새끼, 뻣뻣하기는! 우리 교수님이 국내에 들어오셔서 하는 첫 수술이니까 신경 바짝 써라.”
“언제부터 김상진 교수가 우리 교수였냐?”
“남이사. 하여간, 이번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돼야 하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다.”
“웃기는군. 나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는 거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건 아냐. 게다가 김정자 환자는 천 교수님 어머님이시다. 넌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하냐?”
김민준은 윤상도가 한심하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쏘아붙였다.
“몰라 몰라! 교수나 그 밑에 있는 놈이나 어쩌면 저렇게 똑같냐? 아주 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지?”
윤상도는 캐비닛에서 수술복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말조심해라. 그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지만, 박 교수님 험담은 참을 수 없으니까.”
“아이고, 무서워라. 아주 잡아먹겠다, 잡아먹겠어! 너희들은 가만 보면 무슨 조폭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 같더라. 어떨 때 보면 무서워 죽겠어.”
윤상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삐죽거렸다.
“미친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솔직히, 안 그래? 너네는 박 교수님이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인간들 아냐. 아, 그리고 이번 수술 흉강경에서 개흉으로 바뀐 건 알지? 우리 교수님이 아무래도 개흉으로 가야 할 거라 하시더라.”
“그래? 그걸 김 교수가 결정한 거라고?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해?”
김민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연하지. 수술 방법을 주치의가 결정하지, 그러면 어시스트가 결정하겠냐?”
윤상도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거야 뭐, 잠시 후면 밝혀지겠지.”
“지랄하네. 밝혀질 게 뭐 있다고. 아무튼, 넌 박 교수님이랑 같이 우리 김 교수님 시중이나 잘 들어드려라. 실수해서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실수하지 마. 지난번처럼 환자 배 안에 가위 집어넣지 말고.”
수술복으로 전부 갈아입은 김민준이 탈의실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야! 그거 내가 한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윤상도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김민준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박상우는 수술실로 들어와 발끝으로 아바가드 레버를 건드렸고, 곧 아바가드가 흘러나왔다.
쓱쓱.
박상우는 스크럽 솔을 들고 손목 주의를 꼼꼼히 문질렀다.
“박 교수님, 오늘 잘해 봅시다.”
그 순간, 김상진이 모습을 드러내며 환한 표정으로 박상우를 응시했다.
‘흠, 비위가 좋은 사람이군.’
“네. 저야말로 부탁드립니다. 이번 수술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박 교수님이 어시스트를 서 주시는데, 잘못될 일이 있겠습니까? 수술 잘 마치고 우리 찐하게 한잔하러 갑시다. 제가 쏘겠습니다.”
양손을 모두 소독한 김상진이 레버를 건드리자, 수돗물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