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
신의 메스-17화(17/249)
17화 욕쟁이 할아버지 (1)
“오늘의 두 번째 안건은 방금 나눠 드린 핸드아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준술 위원장이 옆에 놓여 있던 물로 목을 축이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웅성웅성.
“이, 이게 뭐야?”
“세상에, 이게 말이 돼? 얼마를 해 처먹은 거야?”
“와, 혼자 고고한 척하더니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었어!”
“인간말종이네, 말종!”
핸드아웃을 펼쳐 든 의료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현수에게 쏠렸다.
“위, 위원장님! 이, 이게 뭡니까?”
한현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음, 그 자료를 살펴보시면 잘 아실 텐데요. 당신이 싸질러 놓은 똥이니까!”
이준술 교수가 턱짓으로 한현수가 들고 있는 자료집을 가리켰다.
스텐트 납품 비리!
좁아진 관상동맥을 넓히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스텐트(stent). 심근경색, 대동맥 박리, 협심증 등 다양한 질병에 사용되는 의료 기기다. 명성대학교 부속병원은 최근 몇 년 전부터 큐브메디사가 제조한 스텐트를 사용해 왔다.
스텐트뿐만 아니라, 스텐트가 혈관 안에서 고르게 펴질 수 있도록 하는 시차형 전달 장치인 ‘딜레이 디플로이 시스템’ 등, 스텐트 크라프트 삽입술에 사용되는 모든 의료 기기도 큐브메디사가 독점적으로 명성대 병원에 납품했다.
하지만 큐브메디사는 해당 의료 기기들에 대해 식약청 허가를 받지 않았다. 허가를 위한 임상 절차는 매우 까다로워서 검사 기간이 최소 2년에서 5년까지 소요되는 데다 비용까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이에 큐브메디사는 임의로 다양한 종류의 스텐트를 불법 제조해 유통해 왔다.
한현수는 스텐트 납품에 관한 담당자였으며, 큐브메디사 측은 그에게 향응과 접대는 물론 판매 대금에 대한 리베이트까지 제공했었다.
그렇게 해서 한현수가 챙긴 금액은 무려 2억여 원. 이 사실이 외부에 밝혀지면 한현수는 의사 가운을 벗는 것은 물론,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정황증거가 조금 전에 의료진들에게 배부된 핸드아웃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현수는 멍하니 서서 망연자실하게 자료를 넘겨보았다.
뚝, 그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길게 늘어지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 아니야. 나, 나는 아니라고! 이건 모함이야! 이건,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누군가의 모함이라고!”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 툭 튀어나온 눈. 한현수의 턱과 입이 덜덜 떨렸다.
‘후후후, 너무 그렇게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5년 정도 앞당겨졌을 뿐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가 한쪽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 이봐, 박 선생! 만약 엉뚱한 소설 쓰는 거면 대가는 각오해야 할 거야.
– 물론입니다. 조사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박상우는 회귀 전, 이미 과거의 사건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근거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으나, 한현수가 큐브메디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진술을 상당히 세밀한 논리에 따라 할 수 있었다.
한현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이준술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 한현수와 큐브메디사의 관계를 비밀리에 조사했고, 박상우의 말은 모두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 * *
“자, 한현수 선생, 해명할 내용이 있으면 단상으로 나와서 발언해 주십시오.”
이준술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한현수 선생!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준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버럭댔다.
“네…… 네?”
“이 사람이! 정신 차리세요.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변명할 거리가 있냐, 이 말입니다.”
이준술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현수를 향해 삿대질했다.
“아, 아니에요. 전,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건, 분명 모함이라고요!”
한현수는 끝까지 잡아떼며 발악했다. 그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햐, 진짜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저런 인간이 공정성, 위계질서를 운운하며 박상우를 고발해?”
“그러게 말이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이 비수가 되어 한현수의 급소를 후벼팠다.
“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본데, 이보세요. 한 선생! 지금 당신은 징계위가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당신을 업무 방해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생각이라고! 그러니까 시시껄렁한 변명이라도 있으면 해 보세요! 이게 같은 동료로서 최소한의 예의니까!”
쾅, 이준술 위원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저, 정말, 모른다고요. 난,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믿어 주세요. 전 결백합니다!”
그러나 한현수는 끝까지 발뺌했다.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 병원에서 한솥밥을 먹은 정을 생각해 딱 3일간의 여유를 줄 테니, 억울하면 소명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십시오. 물론, 딱히 의미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어쩐지 스텐트 불량 건이 왜 이렇게 많나 했어!”
이준술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징계위원들이 썰물 빠지듯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아, 안 돼!!”
한현수가 엎드려 절규했다. 이것으로 그의 의사 생활은 끝맺는 듯했다.
“햐, 진짜 극적이네. 천하의 한현수가 이렇게 한 방에 훅 가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기수가 혀를 내둘렀다.
“…….”
그런 천기수의 모습에, 박상우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그나저나, 상우야! 저 자료는 누가 캐낸 걸까? 큐브메디 측에서 자폭했을 리는 없고 말이야. 누굴까?”
“글쎄, 누굴까? 나도 모르겠네.”
흐음, 박상우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손톱으로 턱 주변을 긁어내렸다.
“하긴, 우리 같은 인턴 나부랭이가 그런 걸 어찌 알겠냐? 가자! 오늘 네가 한 건 했으니까…… 음, 네가 밥 사!”
천기수가 능글거리며 팔로 박상우의 목을 감았다.
“뭐? 뭐라고? 하하하!”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는 박상우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 * *
조폭들의 난입, 한현수가 저지른 비리 폭로 등으로 일대 광풍이 휘몰아쳤던 명성대학교 부속병원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박상우 역시 일상으로 돌아와 고달픈 인턴 생활을 꾸역꾸역 견뎌 내고 있었다.
1999년 2월.
때려죽여도 의국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던가?
1년간의 지옥 같던 인턴 생활도 어느덧 마지막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박상우는 마지막 코스인 위장관 외과를 돌고 있었다.
7층, 암 환자 병동.
“야, 상우야!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지긋지긋한 이 생활도 쫑이다!”
병동 복도를 걷던 천기수가 팔로 박상우의 목을 감았다.
“그러게,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네.”
“그나저나 넌 전공 뭐 할 거야? 아 참, 넌 죽으나 사나 TS(흉부외과)지?”
“알면서 뭘 물어?”
“하기야, 넌 조현오 교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당연히 TS에 짱박아야지.”
천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어느 과에 지원할 건데?”
“흐흐흐, 난 성형외과에 지원할 거다.”
천기수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느물거렸다.
‘후후후, 기수야! 너 성형외과 떨어져. 결국, TS로 올 거다!’
“그래. 잘해 봐라.”
천기수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박상우는 쓴웃음을 애써 감추며 격려해 줬다.
“당연하지. 나중에 돈 졸라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 줄게. 친구야! 넌, 지옥 같은 TS에서 뺑이쳐라.”
“후후후, 알았다.”
“그나저나 너 어디 가냐?”
천기수가 들고 있던 서류철로 박상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 708호 김순임 할머니한테.”
“아, 그 게스트릭 캔서(Gastric cancer: 위암) 환자 말하는구나. 흠, 그 환자 암세포가 식도랑 폐까지 퍼져서, 얼마 못 사시지 아마?”
천기수가 눈매를 좁히며 안타까워했다.
“근데 네가 그 할머니를 어떻게 알아?”
“왜 모르냐? 이 병동에서 얼마나 유명하신 분인데. 그리고 내가 지난달에 그 할머니 맡았었잖아!”
박상우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유명했다면 자신의 기억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랬구나. 그나저나 그 할머니가 왜 유명한데?”
“말도 마라. 할머니는 진짜 나이에 비해 고우시고 착하신데, 그 할아버지가 진짜 진상이야.”
천기수가 고개를 흔들며 진저리를 쳤다.
“어떻게 진상이라는 거야?”
“그건, 말로 표현하긴 힘들고 아무튼, 네가 겪어 보면 알 거다. 아무튼 진짜 조심해라. 잘못하면 시도 때도 없이 대가리 처맞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차차 알게 될 거다. 아무튼, 수고하고. 형님은 의국에 들러서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야겠어.”
하암, 천기수가 입이 찢어지도록 크게 하품했다.
“흠, 그래라.”
“그럼, 건투를 빈다!”
천기수가 박상우의 어깨를 툭 치고는 발길을 돌렸다.
‘진상?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 거야?’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박상우는 1분도 지나지 않아 천기수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썩어 문드러질 할망구야! 뒈지고 싶어? 왜 안 처먹고 지랄이여? 병원비가 한두 푼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자빠져 있을겨! 썩을!”
708호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박상우의 귓전을 때렸다.
“보호자분! 병실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어떡합니까? 다른 분들 생각도 하셔야죠!”
나는 황급히 김순임 환자가 있는 베드로 달려갔다.
“뭐야? 누구여?”
“네. 김순임 환자분 담당의입니다.”
“얼레? 또 바뀐 거야? 지난달은 그 족제비같이 생긴 녀석이 설치더니만, 이참엔 허여멀건 기생오라비인 겨?”
김 할아버지가 박상우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더니 독설을 내뱉었다. 족제비란 지난달 김순임 환자를 담당했던 천기수를 말하는 듯했다.
‘기생오라비? 이 할아버지 뭐야?’
박상우가 못마땅한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이번 달부터 제가 환자분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탁인데, 어르신! 말씀을 좀 삼가십시오.”
흠흠흠, 박상우가 말아 쥔 주먹 사이로 헛기침을 했다.
“썩을! 손자뻘도 안 되는데 무슨 말을 삼가란 말이여?”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김 할아버지.
“영감, 의사 선생님한테 왜 그려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김순임 할머니가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푹 꺼진 눈,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누가 봐도 중환자가 틀림없었다. 얼마나 링거를 꽂았는지 양팔과 손등은 혈관이 잡히지 않을 만큼 반들반들했다. 나무거죽같이 말라비틀어진 발등 위에 위태롭게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염병,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하루하루 병원비로 깨지는 돈이 얼만데! 다, 그 돈으로 저 양반들 봉급 주고 하는 거야. 뭣도 모르면 잠자코 있어!”
에헴,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조심하라던 천기수의 말이 떠올랐다.
‘후우, 이거 완전히 잘못 걸렸네.’
“할아버님, 잠시 자리를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환자분 혈압을 좀 체크해야 해서…….”
“육시랄! 오늘내일하는 할망구, 혈압은 뭐하러 재 본대, 쓸데없이?”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간섭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천기수가 경고한 대로 진상 중 진상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두커니 서서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
“보호자분! 자꾸 이러시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부탁인데, 잠시만 밖에 나가 계세요!”
박상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왜? 아, 아! 나 없는 사이에 쓸데없이 비싼 주사 놔 주고 약 주려는 거 아니여? 종합병원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고 하더만. 나중에 병원비 허벌나게 나오게 하려는 심산이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염병!”
김 할아버지가 막무가내로 버티며 고집을 부렸다. 말끝마다 욕지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