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0)
신의 메스-170화(170/249)
170화 어머니 안 돼요! (9)
15분 후, 클래식이 울리던 수술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림프절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병리과입니다.”
김민준이 재빨리 전화를 받아 물었다.
“김정자 환자분, 노드에 메타스타시스 카르시노마(Merastasis Carcinoma: 림프절로 전이된 암)가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병리과 검사 결과로 봐도, 김정자는 림프절 전이가 확실해 보였다.
“교수님, 메타스타시스 카르시노마라고 합니다.”
전화를 끊은 김민준은 곧장 달려와 박상우에게 보고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김민준의 보고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목울대를 꿀렁였다.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김 교수님, 림프절 전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마 종격동까지 퍼져 있을 거예요.”
단순히 림프절에만 암세포가 있는 게 아닌, 양 폐의 중간에 있는 종격동 림프절까지 퍼져 있다면 수술은 더욱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럴 것 같군요.”
박상우는 숨을 크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쉽지 않은 수술인 걸 알기에 더욱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교수님 말대로 전폐 절제를 해야겠죠?”
“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박상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좀 까다롭긴 하지만, 좌측 폐까지 전이된 것 같지는 않으니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겠군요.”
김상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게임이라뇨? 말이 좀 지나치시군요.”
박상우는 김상진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뭘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인생은 다 게임 아닙니까? 이기거나 지는 일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다를 것 없어요. 모두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김상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 수술은 절대 쉽지 않은 수술이다. 어쩌면 폐정맥 근처까지 림프절 전이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 폐정맥 근처에 붙어 있는 림프절 박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김상진 이 인간, 너무 불안하다.’
박상우는 김상진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자신의 입술을 잘근거렸다.
“교수님. 외람된 말이지만, 지금부터 제가 메스를 잡으면 안 되겠습니까?”
박상우는 수많은 수술 경험이 있었기에, 직감적으로 문제가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요?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지금 이 수술실의 집도의는 접니다. 이거, 굉장히 기분이 나빠지려 하는데요? 경험 면에서도 제가 박 교수님보다는 훨씬 많을 텐데요?”
김상진은 불쾌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박상우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김상진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교수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잠자코 계시죠. 지금 박 교수님은 제 어시스트 자격으로 여기 서 있다는 것을 잊으셨나 보군요! 이 수술의 모든 결정은 제가 합니다. 더 이상의 월권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
김상진의 성격상, 박상우의 조언이 먹힐 리는 없었다. 지금으로선 박상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재로선 모든 것을 김상진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 결과, 김정자 환자는 림프절은 물론, 종격동 림프까지 암이 전이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부터 오른쪽 폐는 완전히 제거함과 동시에, 전이된 림프절도 완전히 제거하는 전폐 절제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메스.”
김상진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간호사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
박상우는 말없이, 그 모습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 *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아주 암세포가 켜켜이 쌓여 있네요. 림프절이 커져서 주위에 들러붙었어요.”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도 김정자의 폐 상태는 최악이었다. 단순히 림프절에만 암세포가 전이되어 있다면 제거하면 그만이었으나, 림프절이 부풀어 올라 혈관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폐동맥, 폐정맥에 협착된 림프절은 그 간격이 좁아, 자칫 무리할 경우 혈관을 건드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거,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김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가락으로 림프절 주위를 매만지곤 탄식을 터뜨렸다.
그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이 부분은 박리가 쉽지 않겠는데……. 림프절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메첸이 들어가지도 않지 않습니까?”
김상진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림프절을 메첸(일명 수술용 가위)으로 두드려 보았다. 포셉으로 림프절 주변 조직을 들어 올리며 상태를 점검하던 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순간이었다.
“교수님, 신중하셔야 합니다. 워낙 폐 손상이 깊어서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잘못 건드렸다가는 심장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환자는 고혈압과 앙기나(협심증)도 가지고 있는 환자입니다.”
박상우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하던 수술을 멈춘 다음 덮을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운전은 가능합니다. 제 감을 믿어 보시죠.”
“수술은 감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이대로 놔두면 어차피 죽을 환자예요. 무리해서라도 저걸 다 긁어내야 합니다!”
김상진은 혈관 주변에 들러붙어 딱딱하게 굳어진 림프절을 가리키며, 포셉과 메첸을 들어 올렸다.
박상우를 향한 김상진의 표정은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잠깐만요! 교수님, 정말 자신 있습니까?”
박상우는 수술하려는 김상진을 다급히 멈춰 세웠다.
“박 교수님! 다시 말씀드려요? 전 집도의고, 박 교수님은 어시스트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더는 간섭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김상진은 박상우를 날카롭게 응시하며, 더는 참지 않겠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저와 약속하셨습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메스를 넘기시겠다고요!”
박상우는 지난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까? 아니면, 문제가 생기길 바란다는 겁니까?”
김상진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그런 말씀이 어딨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잠자코 계십시오. 집중력 흐트러지니까……. 윤 선생, 메스!”
김상진은 박상우의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곧 윤상도를 향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여기 있습니다.”
“이거 말고! 롱 핸들에 15호 끼워서 주라고! 절개 부위 깊은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교수님.”
윤상도는 재빨리 메스를 바꿔 김상진의 손에 쥐여 주었다.
“구경만 하실 겁니까?”
김상진은 박상우를 힐끗거리며 눈짓으로 베인 리트렉터(Vein Retractor: 혈관 부위를 벌리는 도구)를 가리켰다.
“…….”
그의 오더에, 박상우는 리트렉터를 들고 협착된 혈관 부위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 * *
“후우, 콘크리트를 처발라 놓은 것 같군. 이건 뭐, 돌덩이도 이런 돌덩이가 없어.”
눈에 보이는 림프절은 어느 정도 제거하였고, 이젠 폐동맥에 근접해 있는 림프절만 제거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목을 돌려보는 김상진에게선 조금 전까지 자신감에 차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두건 사이로 흘러나온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즈를 들고 온 간호사가 김상진의 이마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고마워요, 정 선생.”
김상진이 목을 뚜두둑 돌리며 말했다.
“이제 나머지도 제거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의료진들도 덩달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찰떡처럼 폐동맥에 들러붙은 림프절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자칫 폐동맥을 건드리면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실 안은 일부 의료진들의 침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극도의 적막함만 남아 있었다.
“후우!”
긴장감을 풀기 위해, 김상진은 양손을 허공에 털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긴장감 역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전자 포셉 주세요.”
일반 포셉과는 달리 미세한 수술에 맞도록, 끝이 뾰족하고 좁은 포셉이었다.
“네, 교수님.”
‘위험하다. 김상진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져. 지금이라도 멈춰 세워야 해.’
“어, 어어!”
“으아아아악!”
하지만 박상우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 파팟, 파파팟!
김상진의 포셉이 림프절에 협착된 폐동맥을 건드렸고, 찢어진 폐동맥 사이로 시뻘건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모든 게 손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난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이, 이게 왜 이래?”
시뻘건 핏물을 뒤집어쓴 김상진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삐, 삐삐, 삐삐삐!
김정자의 바이탈이 급격히 떨어지며 모든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막아! 김 선생, 박 선생! 당장 거즈 들고 막아!”
김상진의 말을 듣자마자 몸으로 밀쳐 낸 박상우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혈관을 양손으로 잡고 움켜쥐었다.
“네, 교수님!”
김민준과 윤상도도 거즈 뭉치를 들고 달려와 수술 부위를 압박했다. 뿜어져 나오는 피가 두 사람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교수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어쩌죠? 이러다가 어레스트가…….”
핏기가 가셔 창백한 얼굴이 된 백설아의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다.
“박 교수, 산소 포화도가 바닥이야. 80, 75…… 아니 70! 이대로 두면 환자 죽어!”
혈압과 산소 포화도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모든 바이탈 사인이 급격히 바닥을 치는 순간, 김정자의 몸에 연결된 모든 모니터의 그래프가 급격히 하강하는 곡선을 그렸다.
“빨리, 수혈! 혈액 팩 연결해! 빨리!”
박상우는 의료진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한 간호사! 빨리! 빨리!”
간호사가 황급히 혈액 팩을 연결했다.
“소, 소용없습니다. CPR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김정자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제세동기 들고 와! 빨리!”
“네, 교수님!”
[잔존 수명: 01분 43초, 42초, 41초…….]그 순간, 김정자의 잔존 수명은 쏜살같은 속도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제발, 제발……! 어머니 제발!”
박상우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터져 나오는 혈액을 양손을 사용해 필사적으로 막아 보았다.
하지만, 이미 터져 버린 강둑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그 어떤 명의라 할지라도 역부족이었다.
[잔존 수명: 00분 9초, 8초, 7초…….]이제 10초도 채 남지 않은 상황.
“박 교수, 큰일이야. 심, 심장이 멈췄어! 어떡하지? 이러다가 테이블 데쓰 오겠어!”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박상우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제발, 제발! 멈……춰!”
칼끝처럼 날카로운 그의 비명이 수술실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