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1)
신의 메스-171화(171/249)
171화 어머니 안 돼요! (10)
[잔존 수명: 00분 3초]그 순간, 김정자의 이마에 적힌 잔존 수명의 붉은 숫자가 기적처럼 멈췄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멈췄어! 어머니의 잔존 수명이 멈췄어!’
김정자의 이마를 재확인한 박상우의 눈동자가 부풀어 올랐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긴장이 풀린 박상우가 몸을 비틀거리자, 김민준이 다가와 부축했다.
“괘, 괜찮아.”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줄어들던 어머니의 잔존 수명이 멈췄다. 그렇다면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의미야. 다시 정신 차려야 해. 아직 내게는 시간이 있다! 하늘이 허락한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어머니를 살려야 해.’
박상우는 윗입술을 깨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윤상도 선생, 지금 당장 김상진 교수 모시고 나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내 실수가 아니야……. 나, 난 분명히 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어! 뭔가 잘못된 거라고! 내, 내 실수가 아니야!”
김상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교수님!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윤상도는 정신이 반쯤 나간 김상진을 끌고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해 주십시오. 찢어진 혈관 봉합 후에 암세포가 전이된 모든 림프절을 긁어낼 겁니다.”
다시금 수술대 앞에 선 박상우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뭐라고? 박 교수, 지금 제정신이야? 그건 불가능해. 찢어진 혈관 봉합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하다고! 그러다 잘못되면 환자가 중간에 깨어날 수도 있단 말이야!”
박상우의 말에 마취과 조현철이 발끈하며 다가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추가 마취는 불가능합니까?”
“물론이야. 설사 마취하더라도,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추가로 마취를 했다간 수술이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깨어나기 힘들어!”
조현철은 고개를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가하다고 말했다.
“마취가 풀릴 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2시간 안에는 수술을 끝내야 할 거야. 그런데 혈관 봉합에 전폐 제거까지……. 2시간 안에 하기엔 솔직히 불가능한 상황 아니야?”
“2시간이요?”
“그래. 아무리 해도 힘들어. 일단은 터진 혈관부터 봉합하고 가슴을 닫는 게 좋겠어. 나중에…….”
“아뇨.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30분 내로 혈관 봉합하고, 1시간 내로 전이된 림프절을 절제하면 됩니다.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박상우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뭐라고? 그건 도저히 불가능해. 이러다 테이블 데스 온다고!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야. 감정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돼!”
“이대로 닫으면 환자가 죽는 건 똑같습니다.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후, 난감하군.”
“교수님,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일단 알겠어.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테니까 한번 해 보자고. 기적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박상우의 말대로, 지금 이대로 가슴을 닫는다면 김정자가 살 가능성은 전무했다.
자신감 넘치는 박상우의 눈빛에는, 그를 믿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조현철도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해낼 수 있습니다.”
“좋아. 가 보자.”
집도의 자리로 돌아간 박상우는 김민준을 향해 말했다.
“김민준 선생, 수술용 접착제 가지고 와.”
“네. 교수님.”
김민준에게서 수술용 접착제를 받아든 박상우는 찢어진 혈관에 수술용 접착제를 조심스럽게 도포했다.
“찢어진 혈관을 자르고 인조 혈관으로 교체합니다. 인조 혈관 주세요.”
어느 정도 피가 멈추고, 박상우는 김민준에게 오더를 내렸다.
“네,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서걱서걱!
박상우의 손가락 관절은 각기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찢어진 혈관 부위를 절개하고 인조 혈관으로 교체하는 일련의 과정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했다.
“다음 혈관 봉합하겠습니다. 김 선생, 니들 홀더!”
“네, 교수님.”
“클램프!”
“네, 교수님.”
현란한 손놀림. 박상우의 손끝에 매달린 봉합사가 마치 허공에서 재주를 부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인조 혈관 교체 완료했습니다.”
모니터도 보지 않은 채 오로지 오감에 의지한 봉합 수술은 박상우의 말대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적 같은 결과였다.
“미치겠네. 저 인간이 이 어려운 걸 또 해내는 건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현철이 혀를 내둘렀다.
“교수님, 환자 혈압이 조금씩 상승합니다.”
“교수님, 맥박과 호흡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터진 혈관을 봉합하자, 김정자의 바이탈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다행히도 희망이 생겼다.
“교수님, 우선 가슴을 닫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추후 재수술을 하는 것이…….”
김민준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역시 조현철과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 재수술은 없어. 오늘 여기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해. 오늘이 아니면 이 환자는 힘들어지니까. 김민준 선생, 자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자네는 좋은 눈을 가졌으니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란 것은 김민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연스레 카리스마에 압도되기도 하였다.
서걱서걱!
0.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수술이었다.
“김민준 선생, 혈관 조심해서 집어! 아직 환부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다고! 조금 더 집중해.”
박상우가 어금니를 깨물며 김민준을 독려했다.
“네, 교수님.”
김민준도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우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손끝에 집중하며, 온 힘을 다해 암세포 덩어리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의 시선이 박상우의 손끝을 향해 있었다.
한 가닥, 한 가닥.
박상우는 조심스럽게 혈관에 들러붙어 있는 암 덩어리들을 긁어냈다.
“됐어! 잡았어!”
박상우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김정자의 이마를 힐끗거렸다.
[잔존 수명: 00분 3초.]여전히 김정자의 잔존 수명은 멈춰 있었다.
“와아!”
박상우가 마지막 남은 림프절을 완전히 분리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수술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시간은 30분 남짓. 마법과도 같은 수술이었다.
“이제 폐 절제하겠습니다.”
남은 건 암세포가 퍼져 있는 우측 폐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우측 렁을 제거하겠습니다.”
“교수님,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기적과도 같은 장면을 계속 목격한 김민준은 박상우에게 경의를 표했다.
서걱서걱!
극도로 까다로웠던 림프절의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한 박상우에게, 시커멓게 썩어 버린 폐를 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박상우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술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김민준 선생,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로부터 30분 후.
“우측 폐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접시 주세요.”
“네, 교수님!”
박상우는 표면이 시커멓고 딱딱하게 굳어 버린 폐를 떼어내 수술용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모든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 박상우가 예상한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아!”
모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그제야 박상우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백설아 간호사가 다가와 박상우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고마워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바늘하고 실 주세요.”
“네, 교수님.”
수술복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박상우의 머리에서 아지랑이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수술 도구를 받아든 박상우의 손이 마구 흔들렸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박상우가 수술 도구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김민준이 득달같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괘, 괜찮아.”
“아닙니다. 이러다 큰일 나시겠어요. 여기 마무리는 제가 할 테니까 먼저 나가서 좀 쉬십시오.”
“아니야. 마무리까지 해야…….”
하지만, 계속되는 현기증에 박상우는 결국 무릎을 굽혔다.
“교수님, 저를 믿으십시오. 교수님의 어머님이시면 제게도 어머니입니다. 제가 마무리하게 해 주세요.”
“후우, 믿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괜히 독종이란 소리를 듣겠습니까? 전부 교수님한테 배워서 그렇습니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해 놓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김 선생만 믿겠네. 수고해 줘.”
박상우는 무릎에 손을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교수님께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놓는 거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민준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보였다.
“교수님, 최고십니다! 정말, 이런 멋진 수술은 처음 봐요!”
“정말 멋지십니다!”
짝짝짝!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의 퇴장을 경애하듯, 일렬로 늘어선 의료진이 박상우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술실에서 나온 박상우는 탈의실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린 박상우는 핼쑥해진 상태로, 손바닥으로 마른 얼굴을 문질렀다.
‘후우, 이제 어머니에게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
그 순간, 박상우의 뇌리에 회귀 전 기억이 떠올랐다.
* * *
회귀 전, 2008년 박상우 연구실.
“어머니, 미국 여행 보내 드린다면서?”
“그래.”
짧게 대답하는 천기수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어두워 보이냐? 혹시 여행 비용 때문에 그래?”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상우야, 내가 너한테 할 말이…….”
띠리리링!
그 순간, 박상우의 전화가 울렸다. 박상우를 찾는 원장의 호출이었다.
“기수야, 미안한데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지금 원장님이 찾으셔서.”
박상우는 전화를 끊곤 미안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아, 새끼! 여행 경비 부족하냐? 알겠다! 어머니가 생전 처음 가는 해외여행인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섭섭하지. 나도 좀 보태 줄게. 계좌번호 불러 봐.”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 순간, 천기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이 새끼! 오늘따라 왜 그러는 거야? 원장님이 급하게 찾으시니까, 나중에 얘기해 그럼. 나 간다!”
“사실 엄마가…… 어, 엄마!! 이렇게 돌아가시면 난 어떡하라고!”
박상우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천기수의 통곡이 들려왔다. 어머니, 김정자가 죽어 슬퍼하는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건강하셨잖아?”
“노환으로…… 돌아가셨어.”
천기수는 그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할 뿐, 그 이후에도 김정자의 죽음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 *
‘그때 어머님은 여행을 가시려 한 게 아니라, 수술을 받으려 하셨던 거야! 내가 왜 몰랐을까!’
당시엔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렸기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었다.
박상우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친 새끼! 어떻게, 어떻게 어머니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의사라는 놈이 모를 수가 있어? 어떻게!’
박상우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탈의실 벽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렇게 한참을 자책하던 박상우는, 잠시 후 양팔을 내려뜨린 채 탈의실 밖으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
“상우야! 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박상우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천기수는 곧장 달려와 그를 부둥켜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