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3)
신의 메스-173화(173/249)
173화 바이러스 (2)
‘이 정도 증세에 잔존 수명이 일주일이라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차트를 살펴보는 박상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50대 남자, 최창호의 증세는 가벼운 폐렴이었다.
“잠시 손가락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선생님.”
박상우의 말에 최창호는 양손을 펼쳐 보였다.
박상우가 최창호의 손가락을 살피는 이유는 간단했다. 10일 정도의 잔존 수명이 남았다면 가벼운 폐렴은 아닐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손가락 끝이 곤봉처럼 뭉툭해지는 곤봉지 현상이 있다면 폐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딱딱하게 굳는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을 의심할 수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은 멀쩡했다.
“호흡곤란이 있고, 마른기침을 자주 하신다고요?”
“네. 숨쉬기도 불편하고, 기침에 계속 나네요.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걸까요?”
최창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증세는 언제부터 있으셨습니까?”
“요 며칠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온 후부터 이렇네요.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을 가 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 뭐냐,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일 수도 있다고…….”
동네 병원에서도 특발성 폐섬유증이 의심되어 큰 병원으로 가 볼 것을 권유한 모양이다.
“전에도 이런 증세가 있었나요?”
“아뇨. 저는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체질이에요. 한 번도 이런 증세가 없었는데…….”
‘그렇다면…… 특발성 폐섬유증은 분명 아니다. 풀모너리 피브로시스(폐섬유증)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증세가 발전하는 병이야. 이렇게 급격한 증세라면 결국 단순 폐렴이라는 건데……. 그런데 왜 잔존 수명이 이렇게 나온 거지?’
박상우는 굳는 눈으로 최창호의 이마를 응시했다.
“검사를 조금 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입원하신 뒤에 생각해 보시죠.”
“입원이요? 그, 그렇게 심각한 겁니까? 그냥 기침 좀 하고, 가슴 통증만 살짝 있는 건데…….”
박상우의 말에 최창호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잔존 수명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쩌면 폐동맥 고혈압에 의한 폐색전증일 수도 있어. 정밀 검사를 해 봐야 해!’
“네. 지금으로선 가벼운 폐렴이라 판단되지만, 혹시 모르니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드시 입원하셔야 합니다.”
“후우…… 그냥 감기인 줄 알았는데…….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입원 수속부터 밟아 주세요.”
“그게, 집사람이랑 상의도 해 봐야 해서요. 내일 다시 오면 안 되겠습니까?”
“아뇨. 당장 입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잔뜩 겁에 질린 최창호가 눈을 깜박거렸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조금 더 검사를 해 봐야 한다고요. 김 간호사, 최창호 환자 당장 입원 수속 진행하세요.”
“네, 교수님.”
박상우는 최창호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인터폰을 눌러 입원 수속을 지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상우는 최창호가 머지않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을 전염병(Pandemic)의 숙주임을 알 도리가 없었다.
* * *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박상우는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가 접속한 곳은 ‘굿 닥터 닷컴’이었다. 지난번, 케임브리지 대학 윌리엄 캔트 석좌 교수 사건으로 유명인사가 된 그였다.
‘무슨 메일이 이렇게 많아?’
한동안 못 들어온 사이에, 박상우의 조언을 요청한 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건 뭐지?’
회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마친 박상우는 게시판을 확인하다가, 몇 가지 이상한 제목의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대도시, 자한에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발견] [자한의 현직 의사의 전언 ‘곧 제2의 흑사병이 돌지도…….’] [인류는 사상 초유, 최악의 바이러스 습격에 대비해야 할지도…….]‘바이러스라……. 바이러스 괴담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수산시장에서 판매되는 박쥐가 숙주라면…… 뭐, 그럴싸한 내용이긴 한데 말이야, 이건 완전 공포소설 괴담 급인데…… 자, 잠깐만!’
게시판에는 수산시장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는 썰, 자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바이러스가 노출되었다는 썰 등이 난무했다.
가십 정도로 생각해 대수롭지 글을 읽어 내려가던 박상우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캘린더를 집어 들었다.
‘마, 맞아. 2011년 1월! 중국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만 150만,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명이 감염된, 치사율 7%가 넘는 스콜피오 바이러스가 창궐했어!’
박상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린 그가 손가락으로 캘린더의 날짜를 건드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조만간 중국에서 신종 바이러스 출현을 발표할 거야! 그렇다면…….’
박상우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온 후부터 이렇네요.’
퍼뜩, 낮에 최창호 환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단순한 폐렴 증상을 보이는데, 잔존 수명이 10일 정도라면? 혹시…….’
박상우의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일단 확인해 봐야겠다.’
박상우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 * *
“최창호 씨,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했죠?”
박상우는 황급히 최창호의 병실을 찾아 그를 향해 물었다.
“네. 며칠 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요?”
“어디로 다녀오셨죠? 혹시, 중국입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중국 자한에 지인이 살고 있어서 며칠 신세를 졌습니다. 왜 그러시나요?”
‘마, 맞았구나.’
박상우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혹시 혼자 가셨던 겁니까, 아니면 아내나 혹시 부모님을 모시고 가셨던 겁니까?”
“전 독신이에요. 게다가, 부모님들은 몇 년 전에 전부 돌아가셨고요. 저 혼자 다녀왔습니다.”
최창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약에 이분이 스콜피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맞다면, 우리나라 1번 감염자가 되어야 하는데……. 내 기억 속의 1번 감염자는 분명 80대 여자였어! 어떻게 된 거지?’
“그렇다면 일행이 없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 남자는 스콜피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모른 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회귀 전 당시만 해도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 가십처럼 떠돌아다녔던 괴담이었기에, 그럴 개연성은 충분했다.
“혹시, 청난시장이란 곳에도 가셨습니까?”
“물론이죠. 자한에 갔을 때 청난시장을 안 가면 볼 게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쯤 되면 거의 확실해지는군.’
박상우는 머리가 쭈뼛 솟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
“환자분, 지금 당장 병실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어디로요?”
갑작스러운 병실 변경에 최창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음압병실로 옮기셔야 합니다.”
“음압병실이요? 거긴 뭔가요?”
“그게, 그냥 1인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긴 설명을 할 여유가 없던 박상우는 대충 둘러대었다.
“1인실이면 비싸지 않을까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 그리고 이거!”
박상우가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최창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갔던 곳, 만났던 사람, 단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주십시오. 모든 기억을 동원해서요.”
“네? 왜, 왜죠? 그건 제 사생활인데요.”
“제가 차차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제 말에 따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뭐,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면 해야죠.”
최창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담당 주치의의 말이었기에 별 이견 없이 따랐다.
잠시 후, 박상우는 최창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김민준을 자신의 연구실로 호출했다.
“김 선생, 검사 결과 나왔나?”
“네, 교수님. CRB-65(폐렴 중증도를 나타내는 지수)를 보면, 굳이 입원까지는 안 해도 될 환자인데요?”
차트를 살펴본 김민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일단, 알겠어. 지금 당장 최창호 환자 음압병실로 이동시키고, 감염내과로 트랜스퍼시켜.”
“네? 음압병실이요? 단순 뉴모니어(폐렴)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단순 폐렴 환자를 음압병실로 옮기는 건 거의 없는 케이스였기에, 김민준의 반응은 당연했다.
“단순 폐렴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까 당장 조치를 해 두도록 해. 그리고, 음압병실로 이동시킨 후엔 최창호 환자 혈액 채취해서 감염센터에 보내 주고.”
“폐렴 수치를 확인하시려는 거면, 굳이 그렇게 안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내 말 못 들었나? 단순 폐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잖아. 언제부터 내 말에 이렇게 토를 달았지?”
박상우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창호 환자 방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레벨 D 의료용 방호복 착용하도록 해.”
“레벨 D로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뭔가 걸리시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제게도 설명을 좀 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그에 맞춰 움직일 것 아닙니까?”
상황이 심각해진 것 같자, 김민준이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래, 내가 너무 혼자 흥분했나 보군. 설명해 주겠네. 자네, 최근 중국에 괴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소식 혹시 들어본 적 있나?”
김민준에게까지 비밀에 부칠 수는 없을 터였기에, 그에게만큼은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네. 하지만 그건 단순 찌라시 수준 아닙니까? 바이러스 자체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동물에 국한된 거고, 사람 간 감염은 아니라고 하던데…….”
김민준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최근 의학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괴소문이 알음알음 전해졌기에, 김민준도 소문을 접한 상황이었다.
“아니, 틀렸어. 중국 쪽에서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 간 감염이 진행되는 컨티져스 디지이즈(Contagious Disease: 접촉 전염병)가 확실해!”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니까 서, 설마, 최창호 환자가 중국 자한에서 발병한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로 예상하시는 겁니까?”
“아직은 추정이지만, 며칠 전 최창호 환자가 자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충분히 일리가 있어. 몇 가지 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소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 시키지 말고 김민준 선생이 직접 채혈을 해 와야 할 거야. 그리고,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도 잊지 말고.”
“후우…… 네, 알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 소문이 사실이라니.”
김민준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자네와 나 말고는 아무도 병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그리고, 최창호 환자와 접촉한 간호사들도 함께 파악해 둬. 내 지시가 있기 전까진 오프 더 레코드야.”
“네, 알겠습니다.”
“김 선생, 빨리 서두르자고. 자칫 머뭇거렸다가는 감당 못 할 일이 벌어질 수 있어.”
박상우가 상기된 표정으로 지시했다.
“네, 교수님. 바로 채혈해서 감염내과로 내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준 역시 긴장되는 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자칫 머뭇거렸다가는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
박상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 * *
다음날, 연구실에 있던 박상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띠리리링!
-상우야, 나다.
감염내과 과장, 한상만이었다.
“네, 형님. 검사 결과 나왔습니까?”
-그래. 근데…… 이거 너희 과 환자 혈액이야?
“맞습니다.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 혈액이에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후우, 이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왜요? 어떻게 된 건데요?”
-일단 내려와라. 설명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염내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