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5)
신의 메스-175화(175/249)
175화 바이러스 (4)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박상우는 SO 케미컬 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박윤기 씨라고 있으십니까?”
-아, 네. 어디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저는 명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박상우라고 합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박윤기가 전화를 받았다.
-네, 박윤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명성병원 흉부외과 박상우입니다. 혹시 오늘 미팅이 가능하실까요?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
-어…… 혹시 우리 회사 마케팅 부서 담당자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아뇨. 마케팅 담당자 없이, 선임 연구원님만 뵙고 싶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혹시 뭔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뇨. 말씀드릴 게 있는 거라서,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 * *
“이렇게 우리 회사까지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가도 되는데…….”
병원 의사가 직접 제약 회사를 찾는 경우는 거의 드문 상황이었기에, 박윤기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서요. 직접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병원은 영원한 우리의 갑 아니겠습니까. 혹시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여쭈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명성병원은 우리 회사에 거래가 없다고 알고 있어서요.”
SO 케미컬은 명성병원의 판로를 뚫으려 무척이나 애를 써 왔었다. 최근엔 흉부외과 관련 치료제를 두고 국내 최고의 제약 회사인 HPS와 경쟁하고 있던 터라, 박상우와의 미팅은 SO 케미컬의 입장에선 나쁠 게 전혀 없었다.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지금 SO 케미컬에선 신장염 치료제를 개발하고 계시죠?”
“맞습니…… 자, 잠깐만, 그걸 어떻게 아시죠? 아직 시판된 약도 아닌데요? 게다가 신장이라면…… 교수님과 연관성도 없는데 말입니다.”
박윤기는 의외의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알기론 3상까지 마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거기까지 알고 계셨던 겁니까?”
박상우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자, 박윤기는 난색을 보였다.
“그 신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그건 좀 곤란합니다. 아직 개발하고 있는 거라 외부 노출은 좀…….”
“최근 우리 병원 쪽에 관심이 많으신 거로 아는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한데…… 신약에 관해선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박윤기는 박상우의 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SO 케미컬 대표이사의 전화였다.
“받으셔도 됩니다.”
박윤기가 머뭇거리자, 박상우가 받으라는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
박윤기는 박상우의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약 10여 분 후, 박윤기가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교수님, 저희 회장님과는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몇 년 전 방 회장님 수술 당시의 주치의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박윤기는 이마를 문지르며 허탈하게 웃었다.
“왜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아, 아뇨. 방금 대표이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박 교수님이 부탁하는 게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도와주라고 말씀하셔서요. 방 회장님의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라 저도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혹시라도 실례되는 행동을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부탁은 들어주실 수 있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야 뭐,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박윤기를 만나기 하루 전, 박상우는 방윤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저 박상우입니다.”
-그래, 상우 군. 아니지, 이젠 교수님이 되셨는데 이렇게 부르면 실례가 되겠군.
“아닙니다. 편하신 쪽으로 해 주십시오.”
-고맙네. 그나저나, 우리 생명의 은인께서는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으시는 겐가? 그렇게 밥 한 끼 하자고 해도 퇴짜를 놓던 양반이 말이야.
“죄송합니다. 조만간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해 준다면 나야 좋지! 밥 같이 먹자고 전화한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인가?
“회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탁이라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세. 부탁이라는 것이 뭔가? 자네가 내놓으라면 내 목숨이라도 내놔야 도리 아니겠는가?
절대적인 권력자인 방윤석 회장과의 인연.
박상우로서도 지금 같은 상황에 이 인연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SO 케미컬에서 박윤기를 만나기 전, 모든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 * *
“이게 저희가 지금 개발 중인 H5NS2로, 식물성 유산균을 추출해 사용해서 신장에 생긴 염증을 잡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생유산균인 락토오실러스가 다량 함유된 생약 성분이라 부작용이 적고…….”
잠시 후, 박윤기는 서류철을 들고 돌아와 신약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락토오실러스만 활용할 수 있으면, 스콜피오 바이러스가 성장하고 변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인 퓨린을 변형시켜 전혀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스콜피오 바이러스는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는 퓨린을 결국 사용하게 되고, 배설하고 또 사용하다가 아사하게 만들 수 있어. 충치균이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자일리톨을 섭취하고 배설, 다시 섭취하는 과정에서 괴멸되는 것과 같은 케이스가 될 거야.’
박윤기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박상우의 생각도 깊어졌다.
‘이 신약은 수백만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종 스콜피오 바이러스 치료제, 소테리아(하느님의 구원)가 될 거다!’
“제 설명이 좀 복잡했습니까?”
박상우가 멍하니 딴생각에 잠겨 있자, 박윤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탓에 박윤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박상우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아, 제가 너무 어렵게 설명해 드려서 이해가 안 되셨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뇨. 그러니까, 락토오실러스는 결국 신장에 기생하는 대장균들을 아사시킨다는 거죠?”
“아, 네! 맞습니다.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정확히 이해하셨네요. 네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박윤기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부작용은요?”
“현재까지의 임상 시험 결과상, 부작용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게다가 생약 성분이라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가 될 거라고 자부합니다.”
박윤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일단은 3상까지 마친 상태고 국내 식약청 허가도 났기 때문에, 판매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현재 미국 FDA에 승인 요청까지 해 둔 상황이고요. 마케팅 부서에서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죠.”
“그렇다면, 우리 병원에서 이 약을 써도 문제는 없다는 말씀이시죠?”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명성병원 같은 큰 병원이라면 프로토타입으로 최상의 조건이죠.”
“이 약을 제가 먼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신장내과 쪽으로 토스하시려고요?”
“아뇨. 우리 흉부외과에서 사용해야 할 것 같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약은 흉부외과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박윤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저희 과에 입원한 환자 중에 신장이 안 좋은 분이 계셔서, 그분한테 이 약을 한번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 한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박상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뭐, 불가능할 건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분 한 명 때문에 저를 직접 찾아오신 겁니까? 게다가 방 회장님한테까지 연락하시고요? 이건 좀 멋진 것 같은데…….”
“그 환자 한 명 때문에 온 나라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신장염이 전염병도 아니고…….”
“농담입니다. 아무튼, 전 연구원님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되도록 빠른 조치 부탁드려요.”
“아, 네. 알겠습니다.”
박윤기는 여전히 어찌 된 영문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묵직한 방윤석 회장의 명령을 거부하기에 그의 위치는 너무나 가벼웠다.
* * *
며칠 후, 박상우는 SO 케미컬에서 제공해 준 H5NS2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창호에게 투여했고, 예상대로 그 효과는 탁월했다.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박상우가 최창호의 병실을 찾았다. 이제는 인공호흡기도 제거했지만, 최창호는 며칠 사이 몰라보게 회복되어 있었다.
“환자 상태는 어때?”
“염증 수치도 현저히 개선됐고, 이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수면 유도제를 투여받고 잠들었습니다.”
“다행이군. 김 선생이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뭐, 다른 건 상관없는데, 이 방호복이 생각보다 덥네요. 얼굴에 상처도 많이 생기고.”
김민준의 콧잔등과 이마에는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줘. 다 환자를 위한 거니까.”
박상우는 김민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했다.
“물론이죠.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래. 계속 경과 지켜보고, 이상이 생기면 바로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지시해 주신 대로 약을 투여하긴 했는데 이렇게 호전되다니……. 처음 보는 약인데 무슨 약입니까? 약 이름이 뭔가요?”
“소테리아……라고 하는 게 좋겠군.”
“소테리아요? 그게 무슨 뜻이죠?”
“라틴어라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뜻이더군.”
박상우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하느님의 구원이라……. 정말 지금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김민준은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선생, 최창호 환자의 지금까지 치료 과정은 정확하기 기록하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매시간 체크하고 있어요.”
“그래. 잘 정리해야 할 거야. 이 환자가 표준이 될 수 있으니까.”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띠리리링!
박상우가 최창호 진료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감염내과 한상만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 교수, 정밀 분석 결과가 나왔어!
“네, 형님.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박상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박 교수 말대로 스콜피오 바이러스의 변형이야. 지금까지 나온 스콜피오 바이러스 중에 1~4번은 흔한 감기, 그리고 5번째 변형이 사스였다면, 6번째 변형이 이번 케이스지! 이거,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 가늠도 안 돼. 어떻게든 막아야 해. 일단 내 방으로 당장 내려와.
한상만은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후우. 이건 정말 재앙이야, 재앙!
한상만의 탄식이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백신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놈과 싸울 무기는 손에 쥘 수 있을 테니까요.’
전화를 끊은 박상우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쾅!
그 순간, 김민준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지……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백설아 간호사가 최창호 환자와 같은 증세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