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76)
신의 메스-176화(176/249)
176화 바이러스 (5)
“지금 백설아 선생 어디 있어?”
“아직 집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어떡하죠?”
“뭘 어떡해?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큰일이군. 스콜피오가 이 정도로 전염성이 높았던가? 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인데.’
박상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 * *
“상우야, 이거 정말 큰일이다. 최창호 환자, 변형 스콜피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확실해.”
한상만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붙였다.
“그런 것 같군요.”
“분명 최근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했지?”
“네.”
“아무래도 그쪽에서 뭔가 터진 게 틀림없어. 최근에 돌고 있는 흉흉한 소문이 사실인 거야. 이쯤 되면 우리 병원도 빨리 조치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흉부외과 병동만이라도 코호트 격리에 들어가고, 방역 당국에도 신고해야 합니다.”
“야, 그게 말이 돼? 원장님이 허락하시겠어?”
한상만 교수는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최창호 환자를 잠시 맡았던 백설아 간호사까지 의심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요. 자칫 손 놓고 있다간 대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국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조만간 환자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겁니다.”
“그렇긴 한데…… 아직 우리나라엔 환자가 없지 않아? 아니, 최창호 환자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환자도 없는데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형님처럼 안일한 생각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겁니다.’
“형님, 이미 중국 자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환자가 생겨났을 겁니다. 최창호 환자를 보세요. 청난 시장을 갔어도 고작 한두 시간 정도 머물렀을 텐데 스콜피오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몇십 분 동안 대면 접촉한 백설아 선생이 같은 증세를 보입니다.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고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겠지. 하지만…… 원장님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
한상만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곧,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박상우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다니? 원장님이 흉부외과 병동 코호트 격리를 허락한다고?”
“네.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한상만은 박상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죠?”
박상우의 말에 한상만 교수가 캘린더를 가리켰다.
“1월 5일이잖아. 그건 왜?”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일 변형 스콜피오 바이러스 국내 1번 환자가 나올 겁니다.’
“공식 환자가 나올 겁니다.”
박상우는 뭉친 눈 근육을 풀며 말했다.
“공식 환자? 그럼 최창호 환자는?”
“물론 실질적으론 최창호 씨가 1번 환자겠지만, 공식적인 환자는 그가 아니죠. 조만간 질본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할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금 같은 전염성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형님, 우리 병원에 음압병실이 얼마나 되죠?”
“지난번 사스 사태 터지고, 15개 정도 구비해 뒀지.”
“알겠습니다. 적어도 내일부터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펼쳐질 겁니다. 형님도 각오 단단히 하시는 게 좋아요. 오늘 내로 음압병실 점검 부탁드립니다.”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겠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야 정말.”
한상만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 * *
레벨 D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박상우는 백설아의 병실을 찾았다.
“백 선생, 좀 어때요?”
“콜록콜록, 아직은 견딜 만해요, 교수님.”
백설아가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하지만, 증세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증세가 언제부터 있었던 겁니까?”
“정확히는 어제부터 증세가 있었어요.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올라가고, 숨이 가빠지더라고요. 폐렴인 건가요?”
“그랬군요. 조금 전 CT를 확인하고 왔는데, 왼쪽 렁이 뿌옇습니다. 급성 폐렴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 최창호 환자에게서 감염된 건가요?”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백설아가 연신 기침을 토해내며 탄식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약도 처방했으니 금방 좋아질 겁니다.”
“물론이죠. 교수님께서 절 이대로 놔두지는 않을 테니까요. 전 언제나 교수님을 믿습니다.”
“이번엔 더더욱 믿어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 그동안 잠깐이라도 만났던 사람이 있었나요?”
“아뇨. 교수님 지시대로 방콕하고 있었어요. 하다못해 편의점도 안 갔는걸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조금만 견디면 됩니다. 내가 백 선생 낫게 해 줄게요.”
“말씀드렸잖아요. 전 언제나 교수님을 믿는다고요.”
열로 인해 얼굴이 벌게진 백설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 * *
띠리리링!
박상우가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교수님, SO 케미컬 박윤기입니다.
“네, 연구원님.”
-말씀해 주신 대로, H5NS2 양산 체제는 바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면 여쭤봐도 될까요? 대표님의 지시라서 진행하긴 했지만, 아직 검증도 안 된 신약인 데다가 신장염 치료제라서 대규모 양산은 리스크가 큰데…… 괜찮을까요? 국내 병원에서 소화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국내에서만 사용한다면 그렇게 되겠지만, 13억 시장에선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13억이요? 지금 중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마도 이 약이 SO 케미컬을 글로벌 제약 회사로 발돋움시키는 효자가 될 겁니다.”
-후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저야 대표이사님이 박 교수님의 조언대로 진행하라 해서 따르긴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진 않네요.
“지금 당장 이해하시기엔 힘드실 겁니다. 그래도, 곧 아시게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뭐, 저야 신약이 잘 팔리면 좋은 거죠.
“혹시 H5NS2 상품명은 지으셨습니까?”
-글쎄요.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인지라 아직 미정입니다. 무슨 좋은 상품명이라도 있으십니까?
“소테리아라는 이름이 좋을 것 같아서요.”
-소테리아? 그건 어느 나라 말인가요?
“라틴어로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라……. 거, 이름 한번 거창하군요. 과연 이 약이 이름처럼 활약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름값은 톡톡히 하리라 생각합니다.”
삼원그룹의 방윤석 회장을 설득한 박상우는 SO 케미컬을 통해, 변형 스콜피오 바이러스를 퇴치할 신약의 양산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 * *
이튿날 오전, 박상우는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기사를 보고 있었다.
박상우의 기억은 정확했다.
변형 스콜피오 바이러스 첫 번째 공식 감염자가 국내에 발생하고 만 것이다.
[우려가 현실로…… 최근 중국 자한을 방문했던 80세 여성,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 [떠돌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중국 자한 폐렴, 인체 감염 사실로 드러나…….] [국내 1호 환자 발생! 방역 당국 초비상!]국내 모든 언론은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항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충격적인 사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정부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질병관리본부를 가동했다.
띠리리링!
이른 아침부터 지동철 원장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 대기 시작했다.
“네, 원장님.”
-바, 박 교수, 지금 당장 오세요!
지동철 원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긴, 당신은 뉴스도 안 봅니까? 물어볼 게 있으니까 당장 내 방으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곧장 원장실로 가 보자, 이미 감염내과 과장인 한상만이 자리해 있었다.
“박 교수,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정확하게 답변하세요!”
박상우가 자리에 앉자마자 지동철 원장이 다그쳤다.
“네, 말씀하세요.”
“다, 당신이 방역 당국으로 이 사람과 같은 증세의 환자가 우리 병원에 있다고 보, 보고한 거야?”
흥분한 지동철 원장의 입가엔 게거품이 올라와 있었다.
“네. 제가 보고…….”
“이, 이런 정신 빠진 인간이 있나? 당신 제정신이야? 지금, 우리 병원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누, 누가 내 허락도 없이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지르래! 당신 잘리고 싶어서 환장했어?”
경망스럽게 박상우의 말허리를 잘라 버린 지동철 원장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묻어 두기엔 사안이 너무 위중합니다. 최대한 빨리 방역 당국에 알려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닙니까?”
“이,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얻다 대고 큰 소리야? 그러면, 지금 공식적으로 1번 환자가 나온 마당에 우리 병원에 바이러스 감염자가 있었다고 하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 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당신, 당신은 왜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거야? 당신이라도 말렸어야 할 것 아냐!”
박상우에게 소리를 지르고도 화가 풀리지 않자, 지동철 원장은 한상만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토마토처럼 붉게 물든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부터 정부 방역 당국에 알리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박상우는 전혀 밀리지 않은 채, 맞받아쳤다.
“지, 지금 나한테 따지자는 거야? 그 말을 누가 믿어?”
“이제는 믿고 싶지 않아도 믿어야 할 겁니다.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어휴, 미치겠네.”
지동철 원장은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하, 한 과장. 그, 그 환자가 그 스콜피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 확실해?”
“지금으로선 확실합니다. 박 교수 말대로 이제는 대책을 강구해야…….”
“시끄러워! 대책은 무슨! 잘못했다간 우리 병원이 온통 뒤집어쓰게 생겼는데, 무슨 대책을 논의해? 우리가 그동안 환자 은폐했었다고 자수라도 할까?”
지동철 원장은 자기 분을 못 이겨 책상을 쾅 내리쳤다.
“두, 두 사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아, 그전에…… 한 과장, 그 환자 이름이 뭐라고 했지?”
“최창호 환자입니다.”
“그래. 그 사람에 관한 건 우린 전혀 몰랐던 거야! 그 환자가 중국 여행을 했는지, 수산 시장에서 박쥐를 처먹었는지, 그런 건 모르는 거라고. 알겠어? 단순히 폐렴으로 우리 병원에 입원했던 거로 처리하자고.”
지동철 원장은 두 사람 가까이 다가가 말을 더듬으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아뇨.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은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혀야 합니다.”
“뭐, 뭐?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우리 병원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방역 당국에서 우리 병원 조사하러 온다고 연락이 왔단 말이야! 잘못하면 당신들이나 나나 다 죽어. 알아?”
지동철 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이미 반쯤은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직접 방역 당국으로 찾아가려 했는데, 잘됐군요.”
박상우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뭐야? 이런 미친놈이!!”
화를 참지 못한 지동철 원장은 커피잔이 있던 탁자를 쓸어 요란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