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8)
신의 메스-18화(18/249)
18화 욕쟁이 할아버지 (2)
“아이고, 할배요! 그만 좀 하이소! 이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제, 이렇게 생떼를 부리면 어쩌는교?”
“할아버지! 진짜 너무하시네요. 이 병실에 할아버지만 계신 것도 아니잖아요? 진짜 병실을 바꾸든지 해야지. 허구한 날 이게 뭡니까?”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의 원성 또한 자자했다.
“할아버지, 자꾸 이러시면 병실 출입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다른 환자분들 생각도 해 주셔야죠! 경비실에 연락할까요?”
박상우가 답답한 듯 목소리 톤을 높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뭐야? 왜들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겨? 나, 나가면 될 거 아녀! 아무튼, 내가 죄다 체크하고 있으니께, 괜히 쓸데없는 주사 놔 주면 경을 칠 겨. 알아들어?”
흠흠흠,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는지 할아버지가 헛기침하며 밖으로 나갔다.
‘어휴, 인턴 생활 마지막에 제대로 꼬였네!’
박상우가 고개를 숙이고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반말도 모자라 욕지거리를 일삼는 김 할아버지의 무례함에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의사 양반, 미안해요. 저 양반이 원래 성격이 불같아서 그렇지 맴은 참 깊은 사람이어요. 겉은 저래도 속은 따뜻한 양반이어라.”
무례한 할아버지와는 달리 김순임 할머니의 성품은 무척 온화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할머님, 우선 혈압을 좀 재 보겠습니다.”
“그려.”
익숙한 듯, 할머니는 환자복 소매를 둘둘 말아 올렸다.
‘맥박이 희미하다!’
지금 할머니의 상태를 볼 때, 이 정도 상황이라면 길어야 3개월! 오늘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박상우가 김순임 할머니의 앙상한 팔목에 손을 얹어 보았다.
푸슉, 푸슉.
박상우가 펌프를 누르며 혈압을 체크했다.
[90/70mmHg]‘혈압도 너무 낮아!’
박상우가 차트에 김순임 할머니의 혈압을 기록하며 중얼거렸다.
“할머니, 소변은 잘 보시나요?”
“아니, 통 오줌을 못 싸.”
할머니가 입이 마르는지 연신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그녀가 옆에 있던 소변 통을 가리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소변량이 200cc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소변량이 하루 400cc 미만으로 감소하는 핍뇨 증세가 뚜렷했다.
박상우가 김순임 환자의 소변 통을 들어올려 보았다.
‘어큐트 레날 페일러(Acute renal failure: 급성 신부전증)!’
할머니의 신장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다만 항암 치료 및 항생제 과다 투여로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저하했다. 이로 인해 신장으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위는 물론 식도, 폐, 심지어 신장까지 제 기능을 하는 장기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수술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썩은 육체. 현대 의학으로는 건드리기 어려운 심각한 환자였다.
“할머니, 여기가 많이 아프세요?”
박상우가 김순임 할머니의 복부를 가리켰다.
“그려, 그려. 여기가 부엌칼로 후벼 파는 것 같아.”
할머니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네. 할머니 안 아프시게, 제가 약 하나 달아 드릴게요.”
지금 상황에서 박상우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진통제를 투여해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고마워. 잘생긴 의사 선상!”
김순임 할머니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됐어요. 할머니!”
박상우가 알코올을 솜에 묻혀 발등을 문지르더니 능숙하게 바늘을 찔러 넣었다.
“워메! 벌써 된 거여? 아이고, 나는 바늘을 찔렀는지도 몰랐다니께. 지난번의 시커먼 안경 낀 선상은 수도 없이 찔러 싸더니, 참말로 신통하네.”
할머니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안경? 기수를 말하나 보군.’
“그랬어요?”
찌이익, 박상우가 반창고를 떼어 내고는 링거 바늘을 고정했다.
“음, 그나저나 잘생긴 의사 양반,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는감?”
“물론이에요. 말씀해 보세요.”
잘생겼다는 말이 싫지만은 않은 듯, 박상우가 피식거렸다.
“흐음, 나 얼마나 살 수 있는 겨?”
김순임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치료 잘 받으시면…….”
“아녀, 아녀. 나가 바본감? 내 몸뚱이는 내가 잘 아는 겨. 잘생긴 의사 선상! 한 서너 달은 살 수 있을까?”
김순임 할머니가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할머님, 모든 건 의사에게 맡겨 두시고 마음 굳게 먹으세요. 사실,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병이 간단하게 치료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말기 암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할머니를 내려다보는 박상우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지는 듯했다.
“후후후, 기적?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네. 참말로 고맙구먼.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말도 참말로 이쁘게 하는구먼.”
“기적도 사람이 만드는 겁니다. 힘내세요.”
“그려요. 힘낼게요. 나가 기분이 좋아서 보답을 해야겠구만? 이거 묵어 봐. 입에서 살살 녹아!”
드르륵, 할머니가 서랍에서 커다란 사탕 봉지를 꺼내 박상우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할머니 손에 자랐던 박상우.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는지 손바닥 위에 놓인 사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로써 김순임 할머니와 박상우의 첫 만남이 끝났다. 박상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 * *
그리고 다음 날.
“이 할망구가 또 밥을 안 처먹었네? 뒈지고 싶은 겨? 죽으려면 집에서 가서 뒈지든가, 왜 아까운 돈을 축내면서 병원에 자빠져 있는 겨? 썩을!”
할아버지의 독설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마찬가지였다.
박상우는 그런 김 씨 할아버지와 허구한 날 입씨름해야 했다. 박상우에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아! 진짜, 인턴 마지막에 제대로 꼬였구나! 기수가 한 말이 더더욱 이해가 된다!’
박상우는 매일매일 할아버지와 전쟁 같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0일 후. 김순임 할머니의 병세가 점점 악화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 * *
“눈구멍을 얻다 두고 다니는 겨?”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박상우가 모퉁이를 돌다 할아버지와 부딪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한 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는 큼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거 뭡니까?”
박상우가 손가락으로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자네가 알아서 뭐 혀? 독약은 아니니께, 신경 쓰지 말더라고. 할망구가 하도 처묵고 싶다고 해서 사 온 거여.”
“아뇨! 병실에 이런 음식물을 반입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환자분은 지금 이런 음식을 드실 수 없어요!”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비닐봉지를 빼앗아 들었다.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족발. 삶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런 썩을! 이리 안 내놔!”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할아버지.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할머니는 이런 음식 못 드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더 참을 수 없었는지, 박상우가 버럭댔다.
“에이 씨벌, 그려! 내가 묵으려고 사 온 거야. 누가 할망구 먹인대? 안 먹이면 되잖여!”
휙, 할아버지가 박상우의 팔을 뿌리치며 봉투를 뺏어 들었다. 그가 휴게실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그럼 그렇지. 정말, 요즘에 보기 힘든 노인네야!’
박상우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툭.
그 순간, 할아버지의 낡은 점퍼 주머니에서 한 장의 사진이 떨어졌다.
“할아버지! 이거 할아버지 거 아닌가요? 이분, 김순임 할머님 젊으셨을 때 같은데…….”
박상우가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 들었다.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대로인, 단아한 차림의 김순임 할머니와 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뭐야 그건? 이리 내놔.”
할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진을 낚아챘다.
“이딴 게 왜 내 주머니에 있는 거야? 세상 쓸데없는 종이 쪼가리!”
벅 벅 벅, 할아버지는 사진을 갈기갈기 찢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씩씩거리며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 진짜 어쩌면 저럴 수 있지? 정말, 할머니가 불쌍하군.’
그 모습을 지켜본 박상우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둘렀다. 박상우로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 * *
새벽 1시, 당직을 서다 허기를 느낀 박상우가 컵라면과 꼬마 김치를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누, 누구야?”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물체.
틱, 박상우가 황급히 휴게실 전원을 켰다.
“하, 할아버지?”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김 할아버지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할아버지. 그 옆에 낮에 보았던 족발 봉지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 늦은 밤에 웬일이세요?”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뭐야? 간 떨어질 뻔했네.”
할아버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재빨리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 냈다.
“호, 혹시 우셨어요?”
“썩을! 나가 울긴 왜 우남. 아, 아무것도 아녀. 신경 쓰지 말어!”
“아…… 네. 그나저나 그 족발, 낮에 드신다고 하더니 그대로네요?”
박상우가 옆에 놓은 족발 봉지를 가리켰다.
“왜? 먹고 싶어서 그랴? 좀 먹어 볼 겨?”
“아, 아뇨. 아까 드신다고 하시길래.”
박상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난 이놈의 족발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가 나. 콧속에 돼지 새끼가 기어 다니는 것 같구먼. 후우…….”
할아버지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가에 생긴 주름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할아버지! 저, 거기 앉아도 돼요?”
측은한 마음이 생겼는지 박상우가 할아버지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려. 맘대로 혀. 나가 전세 낸 것도 아닌데.”
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혀 봐. 돈 들어가는 것만 아니믄 괜찮아.”
‘그놈의 돈!’
박상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김순임 할머님에게 너무 그렇게 다그치지 마세요. 자꾸 그러시면 할머니 병세가 더 악화됩니다.”
한층 누그러뜨린 목소리. 박상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가 누굴 못살게 군다고 지랄이여, 지랄이? 내 할망구 내 맘대로 하지도 못 하남?”
할아버지가 버럭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휴, 말을 말아야지.”
박상우가 말을 꺼내려다 다시 삼켜 넘겼다.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후에 박상우를 곁눈질하던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봐. 젊은 의사 선상,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좀 심해 보이는감?”
에헴, 할아버지가 헛기침했다.
“네. 정말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돌아……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그러시면 안 되죠.”
박상우가 아차 싶어, 말하려다 거둬들였다.
“후후후, 나도 알아. 할망구 명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흐려지는 눈. 할아버지의 눈빛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러면 더 잘해 주셔야지, 이렇게 못되게 구시면 어떡합니까?”
“나가 말이여, 그 할망구하고 정을 떼려고 그랴.”
노기가 완전히 빠진 부드러운 목소리. 낮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역정을 냈던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네? 그, 그게…….”
박상우가 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할아버지의 그간 행동들이 약간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박상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흐음, 6·25 사건이 터지고, 어린 나이에 나 혼자 살겠다고 가족들 다 버리고 월남했어. 그러다가 피난처에서 지금의 할망구를 만났제. 그 할망구도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였거든. 할망구랑 전라도에 터 잡고 이제껏 둘만 믿고 살았어.”
“…….”
박상우가 말없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후후후, 젊었을 적엔 참말로 고왔제.”
지난날을 회상하던 할아버지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