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81)
신의 메스-181화(181/249)
181화 환자는 환자일 뿐 (4)
“어떻게 된 거야? 가슴에 철골이 박힌 환자라고? 상태는?”
곧장 응급실로 내려온 박상우는 당직의, 조현민에게 물었다.
“네. 조금 전에 구급차로 실려 왔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박상우의 말에, 조현민은 차트를 살펴보며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TA(교통사고) 환자인데, SICU(외과 중환자실)가 풀 배드라 잠시 MICU(내과 중환자실)에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CT 결과상, 스플린 인저리(Spleen Injure: 비장 손상), 아이리드 스웰링(Eyelid Swelling: 눈꺼풀 부기), 페이셜 본 프락처(Facial Bone Fractures: 안면 골절)까지.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무엇보다 심장 부근에 철근이 박혀서, 그게 가장 시급합니다.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혈압은?”
“지금 BP(혈압) 60에 40입니다. 일단, 미다졸람(신경안정제)과 PCA(진정제)를 투여한 상황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조현민은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로 곧장 박상우를 안내했다.
환자는 목 보호대를 하고 누워서, 피 칠갑을 한 채 간신히 가는 숨을 내뱉고 있었다.
가슴엔 자동차 철골 구조물이 박혀 있었고, 의식은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환자 신원은 확인했어?”
“아뇨.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장 수술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보호자 동의는 받아야 할 것 아냐!”
“그게…… 핸드폰도 없고, 신원을 확인할 만한 것이 없었어요. 여기 학생증을 보니까 유학생인 거 같은데…….”
조현민은 UC 버클리 학생증을 내보이며 말끝을 흐렸다.
“소피아? 이게 다야?”
“네. 지금 신원을 확인할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어떡하죠, 교수님?”
“일단 원무과에 연락해서 빨리 보호자 확인하라고 하고, 수술부터 들어갈 수 있도록 세팅해.”
“알겠습니다.”
[잔존 수명: 3시간 23분 32초, 31초, 30초…….]그 순간, 그녀의 이마에 잔존 수명의 붉은색 숫자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남은 수명이 4시간도 채 되지 않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버클리면 미국인데…… 환자 이름이 소피아라고 했죠? 한국 이름은 안 적혀 있습니까?”
“네, 한국 이름은 없었습니다.”
조현민은 학생증을 다시 한번 내보이며 말했다.
순간, 박상우는 원장실에서 얼핏 들었던 지동철 원장 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설마 아니겠지?’
“수술실로 옮겨야 할 것 같으니까, 수술실 좀 알아봐 줘.”
“오시기 전에 알아봤는데, 수술실은 지금 풀이라서 방이 없다고 합니다.”
조현민은 난감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거렸다.
“뭐? 당장 저거부터 빼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이 환자 죽어! 환자 상태 안 보여?”
박상우는 환자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든 철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촉즉발,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여! 빨리!”
박상우는 조현민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다그쳤다.
“교수님, 다른 방은 전부 수술 중이라 불가능하고, 그나마 여유 있는 방이 두 개였습니다. 그런데 11번 방은 마취에 들어가서 안 될 것 같고, 17번 방은 이제 막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잠시 후, 순식간에 수술방 상황을 체크하고 온 조현민이 박상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큰일이네. 마취 들어갔다면 그건 불가능하겠고, 17번 방은 무슨 수술이야?”
“아리쓰미어(부정맥) 환자로 고주파 도자 절제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응급 수술은 아니군. 집도의는 누구지?”
“흉부외과 홍성주 과장님이십니다.”
“그래? 일단, 거기라도 가서 부탁해 봐야겠군. 환자 빨리 옮겨!”
“네, 교수님.”
드르르륵!
조현민은 주변 수련의들과 함께 스트레쳐 카에 환자를 싣고 신속히 운반했다.
* * *
박상우는 17번 수술실 복도에서, 홍성주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했다.
“과장님, 죄송하지만 수술실을 먼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홍성주 과장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생명이 위급한 응급 환자입니다. 수술실이 풀이라서 다른 곳에 갈 수가 없는데, 아리쓰미어(부정맥)라면 급한 환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확인해 보니, 곧 있으면 9번 방이 비워질 것 같다고 합니다. 외람되지만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하아,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게다가 예약 환자인데…….”
홍성주 과장은 난색을 보였다.
과장에 부임한 후 하는 첫 수술이기에, 그로서도 선뜻 박상우의 청을 들어주긴 힘들었다.
“과장님, 제발요! 이 환자 그대로 두면 죽습니다! 지금 바이탈도 잡히지 않은 환자예요. 이대로 둘 순 없습니다!”
박상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아, 알겠어요. 그래요. 일단은 그렇게 합시다.”
자신이 봐도 매우 급한 응급 환자였기에, 환자 상태를 확인한 홍성주 과장도 마냥 버틸 수만은 없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할 수 없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홍성주 과장과 의료진들은 준비해 두었던 기구를 정리한 후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급한 상황이라서 수술실을 비워 주긴 하는데, 앞으로 이런 식의 요청은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떤 환자든 중요하지 않은 환자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박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 바닥에도 상도라는 게 있는 겁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따로 지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에 제 환자한테 문제가 생길 시에도, 그 모든 책임은 박 교수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홍성주는 박상우에게 삿대질을 하며 단호한 표정으로 다짐을 받아 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저 왔습니다!”
“저도 왔어요!”
그 순간, 김민준과 백설아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후는 잘 마무리한 거야?”
“네. 마무리하고 중환자실로 옮겨 뒀습니다.”
백설아 간호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그래요. 빨리 환자부터 옮깁시다. 빨리요!”
“네, 교수님!”
* * *
“체외 기사 호출해.”
“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박상우를 중심으로 한 의료진들은 급하게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김민준이 산소 호흡기를 환자의 입에 연결했고, 간호사들은 각자의 자리로 이동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백 선생. 급하니까 옷부터 잘라 주세요.”
라텍스 장갑을 낀 박상우는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를 향해 소리쳤다.
“네, 교수님.”
백설아 간호사는 곧장 여자의 옷을 잘라냈다.
“현재 혈압은 어떻게 됩니까?”
“여전히 낮습니다. 60에 45입니다. 변동 사항이 없어요.”
혈압이 상당히 낮았다. 조금만 더 떨어진다면 어레스트가 올 상황이었다.
“피는 얼마나 있어요?”
“네. 지금 6팩 정도 있는데요?”
조영은 간호사는 혈액이 담긴 케비닛을 확인했다.
“그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혈액실에 연결해서 가능한 한 최대로 확보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영은 간호사는 급히 혈액실에 급히 연락을 취했다.
“민준아, 일단 C 라인부터 잡자.”
“네, 교수님.”
“베타딘(살균 소독제) 가져왔습니다.”
간호사 한 명이 수술용 볼(그릇)에 갈색의 베타딘으로 적신 거즈를 들고 왔다.
“김민준 선생, 베타딘 도포하고 드레싱 해.”
C 라인을 잡기 위해 주사기를 찌를 환부를 확인하는 박상우는 김민준을 향해 오더를 내렸다.
김민준은 환자의 환부를 보고, 침착하게 베타딘을 도포했다.
“다 됐습니다.”
“그래. 백 선생, 바늘 줘.”
“여기 있습니다.”
박상우가 C 라인을 잡을 위치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뚜뚜뚜뚜!
그 순간, 경고음이 울렸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며, 자칫 잘못하면 어레스트가 올 상황이었다.
모든 의료진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교수님, 환자 혈압 떨어집니다!”
모니터를 확인하던 마취과 정 선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나 떨어지는데?”
“55에 40! 이러다 어레스트 나겠는데요? 어떡하죠, 교수님?”
모니터를 응시하던 마취과 선생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괜찮아. 그렇게 호들갑 떨 것 없어. 에피네프린 1 앰풀 투여하고, 그래도 안 잡히면 한 개 더 투여해.”
“알겠습니다.”
‘서둘러야겠어! 시간이 없다.’
박상우는 환자의 이마에 쓰인 숫자를 응시했다. 잔존 수명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부터 신원 미상의 여자 환자 익스플로레이션(Exploration: 환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시험적 개복술)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네, 교수님!”
박상우는 수술 개시를 선언했고, 백설아 간호사도 바로 답했다.
“타임아웃 하겠습니다. 백 선생, 메스!”
“여기 있습니다.”
박상우는 백설아 간호사가 전달해 준 메스를 받아들고 개복을 시작했다.
“매첸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이제 페모랄(대퇴부)로 펌프 돌리겠습…….”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박 교수!”
체외 순환기를 장착하려는 순간, 카랑카랑한 지동철 원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박상우의 응급 수술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참관석에 도착한 지동철이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지금 응급 환자 수술 중에 있습니다.”
박상우는 참관석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누가 수술 중인 거 모른다고 했어요? 지금 누구 허락받고 이러는 겁니까?”
지동철 원장은 심기가 불편한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미친 겁니까? 수술 동의서도 안 받고, 게다가 무례하게 홍 과장의 수술실까지 강탈했다면서요?”
지동철 원장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워, 원장님! 강탈이라뇨? 그런 말씀이 어딨습니까!”
지동철의 거친 말투에 참다 못한 김민준이 나섰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나는 지금 박 교수한테 물어보고 있어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근본도 모르는 환자를 데리고 와서 이 비싼 수술실에 뉘어놓는 게 잘하는 짓이에요? 지금 우리가 자선 단체입니까? 홍 과장이 맡은 환자가 누군지 알아요? 이 지역 구청장님 아버님 되시는 분입니다. 만약 문제라도 생긴다면…….”
잔뜩 화가 난 지동철 원장이 쇳소리를 내며 버럭거렸다.
“그러면, 죽어 가는 환자를 그냥 두고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고주파 절제술이면 응급실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술 아닙니까?”
“김민준 선생, 가만히 있어.”
김민준이 발끈하며 나서자, 박상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제지했다.
“지금 누구한테 소리치는 거야? 펠로우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나서는 거야! 당신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
그 순간, 한 남자가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동철 원장의 비서였다. 그가 사색이 된 얼굴로 지동철 원장에게 다가갔다.
“워, 원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김 비서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 난리야?”
지동철 원장이 못마땅한 듯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 그게…….”
하지만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만 긁적거릴 뿐,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빨리 말하지 않고 뭐 해!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그, 그게 말입니다. 저, 저기, 저, 저 환자…….”
망설이던 김 비서가 손가락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