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87)
신의 메스-187화(187/249)
187화 세기의 수술 (4)
“솔직히 우리에겐 불리할 것도 없는 게임 아닙니까? 판정으로 이기든, 기권승이 되든, 반칙해서 이기든. 어떻게든 이기면 되는 게임입니다. 사람들은 과정보단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이니까요.”
중요한 수술을 ‘게임’이라고 표현할 만큼, 두 사람에게 정호 형제의 수술 성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이라니? 뜸 들이지 말고 쉽게 말하지 그래.”
“한 명이 살든 둘 다 살든, 수술만 성공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물론 박상우의 말처럼 둘 다 살릴 수 있으면 좋겠죠. 어느 쪽이 되더라도, 우리는 그를 적절히 이용하면 되는 겁니다.”
최창필 과장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둘 다 살려내는 게 나쁠 건 없지. 하지만, 수술에 실패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원장님, 무슨 걱정입니까? 우리가 실패한 겁니까? 윌리엄 캔트 그 양반과 박상우가 실패한 거죠. 어떻게 되더라도 우리는 얻을 걸 다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이벤트로, 우리 병원의 브랜드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확보한 중계권료도 쏠쏠하고요. 전국 각지에서 모금한 금액도 상상 이상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쓸데없는 오지랖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최창필 과장의 만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사람하곤! 우리가 어디 돈 때문에 이러는 건가? 불쌍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돕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지. 아무튼, 아이들 부모님도 입단속 시키도록 해.”
“물론이죠. 지금까지 돈 싫다는 인간은 본 적도 없습니다. 그쪽은 걱정 마십시오.”
최창필 과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박상우가 말한 분리 수술이 가능하다고 보나? 심장이 붙은 둘을 다 살리는 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수술이야. 정호 형제는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해. 백번 양보해서 박상우 말이 맞았다고 해도, 분리 수술이 성공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전 세계 사례를 보더라도 수술 성공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원장님, 바로 그 점이 포인트입니다. 제가 봐도 이번 수술은 성공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유연한 스탠스를 취해야 합니다.”
최창필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효석 원장의 말에 동의했다.
“유연한 스탠스?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미쳐 날뛰는데, 원하는 대로 총대를 메게 해야죠. 스스로 불구덩이로 빠지겠다는데 별수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제대로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효석 원장을 응시하는 최창필 과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박 교수, 정말 자신 있어?”
“가능성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호 형제의 경우는 리스크가 너무 커.”
앤드류 박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차트를 넘기며 박상우에게 말했다.
“국내 성공 사례도 있고, 윌리엄 캔트 교수님 역시 흉부결합 분리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신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거야, 심막만 일부 공유한 케이스잖아. 하지만 이번은 케이스 자체가 다르다고. 자네 말처럼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해도, 거의 붙어 있는 상태라면 분리 수술은 쉽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 중 하나를 살려야 한다면 누구를 희생시켜야 할까요? 단순히 정호의 몸 상태가 좀 더 건강하다고 해서 그 아이를 살려야 합니까? 그 판단을 누가 하죠? 우리가 합니까? 제 생각으론, 이 아이의 부모라 할지라도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두 아이를 전부 살리도록 노력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박상우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앤드류 박에게 보여 주었다.
“그래. 그 점에선 나도 박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 하지만 이 수술의 주관 병원은 연수병원이야. 우리는 단순히 기술적 지원과 자문을 위해서 온 것뿐이고. 회의 때도 그랬지만, 연수병원 측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앤드류 박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강효석 원장이라면, 분명 제 주장을 받아들일 겁니다.”
“뭐? 회의 때도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자네 말을 따를 거라고?”
앤드류 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옛 중국 속담에 ‘사람의 눈꺼풀은 숨김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속내는 감출 수 없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군요. 강 원장은 야망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죠.”
“그게 자네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이 방으로 오기 전에 강효석 원장과 통화했는데, 이번 수술의 메인 집도를 제게 맡겨 보겠다고 하더군요. 며칠 만에 마음이 바뀐 셈이죠.”
박상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이야? 나나 캔트 교수님이나 자네 의견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조언하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마음을 바뀔 줄은 몰랐는걸?”
앤드류 박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른 걸 노리는 거겠죠. 제가 이 수술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들은 상관없을 테니까요. 아무튼, 기름을 붓고 불길에 뛰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수술은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박상우는 어금니를 악다물며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차차 알게 되실 겁니다.”
“아무튼 잘된 일이야. 우리도 적극적으로 도울 테니까 어떻게든 두 아이 모두 살려 보자고.”
“반드시 살려야죠. 아니, 반드시 살려내도록 하겠습니다.”
* * *
김민준이 박상우의 연구실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한 손엔 팸플릿을 들고 있었다.
“교수님, 이거 보셨어요?”
김민준은 박상우에게 팸플릿을 내보이며 물었다. 정호, 현호 형제와 함께 아이들 부모의 모습이 모델로 나온 팸플릿은 연수병원을 홍보하는 책자였다.
“…….”
팸플릿을 넘겨보던 박상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김 선생은 신경 쓸 것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해요. 여기 원장이란 사람은 허구한 날 인터뷰다, 칼럼이다 하면서 밖으로만 돌아다니고. 아이들 수술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우리라도 집중해야 할 것 아냐? 괜히 날 세우면서 신경 분산시키지 말고, 아이들 컨디션 체크나 잘하도록 해.”
그렇게 말하며, 박상우는 팸플릿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기자들 때문에 눈에 거슬려 죽겠습니다.”
“기자들? 그 사람들이 왜?”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박상우의 기분도 조금씩 언짢아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러 갈 때마다 따라붙어요. ‘아이 상태는 어떠냐?’부터 시작해서 ‘둘 다 살릴 수 있는 거냐?’, ‘혹시 회의 때 나온 말은 뭐가 있냐’ 물어보면서 붙잡고. 그 사람들 때문에 진료를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당직실에도 불쑥불쑥 찾아와서 맘 편히 쉬지도 못하겠어요.”
김민준은 박상우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자네는 아이들이나 신경 써. 심전도 검사 주기적으로 해서 기록해 두고. 특히 현호 심장이 좋지 않으니까, 모니터링 철저히 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교수님. 이 귀여운 애들…… 살릴 수 있는 거겠죠? 아직 어린 애들인데.”
“살려야지.”
정호, 현호 형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져 갔다.
가장 먼저 나선 단체는 ‘한국 어린이 재단’이었다. 해당 재단 주최로 아이들 수술비 모금 활동이 전개되었고, 지금까지 모금된 액수만 해도 수술비를 감당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팬 카페와 방송 프로그램까지.
마치 아이들과 부모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시작된 ‘쌍둥이를 살려라!’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거듭했고, 급기야 다큐멘터리 사상 초유의 4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만, 이제는 아이들의 건강보다 정호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현호가 신고 있는 신발의 브랜드는 무엇인지 등 관심이 이상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김민준이 박상우의 연구실을 나가고 얼마 안 있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저는 ‘쌍둥이를 살려라!’ 담당 피디 김진섭입니다. 잠시 인터뷰 좀 해도 되겠습니까?”
말끔한 남자 한 명과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가 문을 빼꼼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저는 피디님과 할 얘기가 없는데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협조해 주십시오. 이미 원장님께 허락받고 왔습니다.”
“제가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요?”
김진섭이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려 하자, 박상우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듣던 대로 까칠하시네요. 하하, 그런데 지금 이건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프로그램이라…….”
김진섭은 어색한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전 관심이 없습니다.”
“아…… 네.”
“피디님과 나눌 말은 없습니다. 제가 좀 바쁜데, 자리 좀 비워 주시겠습니까?”
“하아. 뭐, 할 수 없죠.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김진섭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맨과 함께 다시 문으로 향했다.
“나중에도 찾아오지 마십시오. 멀리 안 나갑니다.”
김진섭이 카메라맨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박상우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 * *
다음 날, 강효석 원장이 박상우를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했다.
“박 교수,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방금 김진섭 피디 연락을 받았는데, 인터뷰를 매몰차게 거절하셨다면서요.”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러는 것 아닙니까? SWS는 이번 수술 팀의 공식 후원사예요. 그쪽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이번 캠프가 꾸려진 것 아닙니까? 국내외 의료진 100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라 SWS의 후원금이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해요. 게다가 시청률이 40%가 넘는 프로그램인데, 인터뷰 몇 마디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강효석 원장은 인상을 구기는 혀를 쯧쯧 찼다.
“그렇다고 환자들의 개인 정보를 외부에 유출해도 된다는 겁니까?”
“허허허, 이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누가 개인 정보를 유출하라고 했어요? 그냥 뭐 ‘치료는 잘 되고 있다’ 아니면,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 정도로 대충 둘러대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강효석 원장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인터뷰는 필요 없겠군요. 그런 정도의 말장난이라면 의미는 없을 테니까요.”
“하…… 참,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건 알아서 하세요. 쇠고집도 이런 쇠고집이 없구만.”
강효석 원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이마를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나가서 일 보세요.”
강효석 원장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 * *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어.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아.’
박상우는 원장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윤상필입니다.
“저 박상우입니다.”
-아이고, 박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시간 되시면 한번 뵐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교수님과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뵙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박상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메디컬 저널』의 윤상필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