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9)
신의 메스-19화(19/249)
19화 욕쟁이 할아버지 (3)
“네. 그러셨을 것 같아요.”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밖에 없는 내가 뭐가 좋다고. 아무튼 할망구랑 결혼하고 참말로 열심히 살았지. 그때부터 나가 이걸 만들어 시장 바닥에서 팔았어.”
할아버지가 옆에 놓은 족발을 가리켰다.
“아…… 네.”
박상우는 그제야 족발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거 팔아서 자식새끼들 다 키우고 유학 보내고 했지.”
“자제분들이 있으셨어요?”
“암만, 다들 얼마나 잘살고 있는데. 내 손자가 자네만 할 겨.”
‘뭐야? 자식들이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왜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은 거지. 다들 해외에서 사나?’
“그, 그러셨군요.”
박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그런디, 나가 어디까지 말혔댜?”
“족발이요.”
박상우가 손가락으로 족발을 가리켰다.
“아! 맞아. 나가 이라고 깜빡깜빡 혀. 어디 보자. 뭣이냐, 그란디 이놈의 할망구가 단 한 번도 나가 만든 족발을 먹어 본 적이 없어. 썩을!”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 듯했다.
“왜죠?”
“그게 말이여. 차마 못 먹겠댜. 나가 쌔빠지게 만든 족발을 자기 입에 집어넣기가 미안해서. 썩을 여편네! 마지막 가는 길에 한번 멕여 보고 싶었거든.”
할아버지가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그래서 아까 그 족발을 직접 삶아 오신 건가요?”
“그랴. 종일 삶아 왔는데, 자네가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하지 않았남?”
할아버지가 박상우를 향해 역정을 내는 대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박상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녀, 아녀. 나도 알아. 할망구가 이걸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냄새라도 맡아 보라고 가져왔던 거여.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할 것 없구먼.”
“후…… 정말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나으시면, 그때 많이 드시게 하시면 되잖아요.”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마침내 두 사람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그럴 날이 올까?”
가능성이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엔 기대감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럼요!”
박상우가 환하게 웃었다.
“박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콜은 왜 안 받으셨어요?”
그 순간, 김정은 간호사가 휴게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김순임 할머니 담당 간호사였다.
그녀의 말에 박상우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았고, 이내 삐삐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삐삐를 당직실에 두고 왔나 봐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여, 박상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기, 김순임 환자! 증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당장 병실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김정은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저는 병실로 갈 테니까 김 선생님은 제세동기 좀 챙겨서 오세요. 그리고 김순규 선생님한테도 콜 좀 넣어 주세요! 빨리요.”
“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가시죠.”
“그, 그려!”
박상우와 할아버지가 황급히 병실로 향했다.
* * *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황. 병실에 도착한 박상우가 김순임 할머니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려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의, 의식이 없어!’
틱, 박상우가 펜 라이트를 꺼내 김순임 할머니의 동공을 살펴보았다. 그사이 김정은 간호사가 제세동기를 밀고 들어왔다.
“김 선생님, 심전도 부착하시고 혈압 좀 살펴봐 주세요.”
“네. 선생님!”
“박 선생님! 지금 수축기 혈압이 65mmHg까지 떨어졌습니다.”
“큰일이네. 에피네프린 1 앰풀 투여하시고 그래도 혈압이 오르지 않으면 5분 후에 1 앰풀 더 투여해 주세요.”
박상우가 김순임 할머니의 몸을 주무르며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은 혈압이 어떻습니까?”
“여전히 그대로예요. 이러다가 어레스트 오겠습니다. 어쩌죠?”
“김순규 선생님은 언제 오십니까?”
“오고 계시는 중인데 한 40~50분은 걸리신답니다.”
“할 수 없군. 제세동기 이쪽으로 주시고, 환자 심정지 올지 모르니까 아드로핀 준비해 주세요!”
박상우가 제세동기를 향해 손짓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박상우가 제세동기를 받아서 들어 푸르스름한 젤을 발랐다.
“200줄 차지!”
“반응 없어요.”
김정은 간호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젠장, 250줄 차지!”
“네.”
“어때요?”
“소용없습니다.”
‘젠장, 최악이야!’
박상우가 EKG 모니터(환자 상태 감시 시스템)를 응시했다. 모든 수치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후, 안 되겠습니다. CPR 해야겠어요. 여기 침대 좀 잡아 주십시오.”
가운을 벗어 던진 박상우가 황급히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나, 둘!”
“하나, 둘!”
‘할머니, 조금만, 조금만 힘을 내세요!’
박상우는 심폐소생술을 하면서도 EKG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서, 선생님! 조금씩 혈압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10여 회 심폐소생술을 반복한 순간, 기적처럼 할머니의 혈압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후…… 하나, 둘!”
‘제발, 제발……!’
박상우가 EKG 모니터를 힐끗 보더니 온 힘을 다해 할머니의 흉부를 압박했다.
“후우우우…… 하나, 둘!”
이를 악다물며 반복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박상우의 얼굴이 어느새 토마토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뚜, 뚜, 뚜, 뚜.
그 순간, EKG 모니터가 드디어 반응하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할머니 수축기 혈압이 80mmHg까지 올라왔습니다!”
EKG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김정은 간호사의 날카롭게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금씩 살아나는 혈압. 최악의 상황은 넘긴 듯 보였다.
“선생님, 바소프레서(Vasopressor: 승압제) 1 앰풀 투여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시간, 10여 분.
띠띠띠띠띠, 뚜뚜, 뚜뚜……
“바, 박 선생님! 김순임 환자분, 바이털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EKG 모니터를 지켜보던 김정은 간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이 도왔는지 김순임 할머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
박상우가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병실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그러고는 손으로 무릎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 할아버지! 할머니 사셨습니다!”
박상우가 흘러내린 땀방울을 훔치며, 병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벌벌 떨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쾅, 그 순간 의료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락을 받은 위장관 외과 펠로우 3년 차 김순규와 같은 과 바이스 이상돈이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네. 김순임 환자가 갑자기 어레스트가 왔는데, 박상우 선생님이 응급조치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바이털이 돌아온 상태고요.”
김정은 간호사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허억, 허억…….”
박상우가 축 늘어진 김순임 할머니 옆에 서서, 양 무릎에 손을 얹어 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박상우, 수고했어.”
널브러져 있는 제세동기, 땀에 흥건히 젖은 시트를 둘러본 김순규가 박상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닙니다.”
박상우가 손을 내저었다.
“김순임 환자, 지금 바로 옮겨야겠다.”
김순규가 펜 라이트로 할머니의 동공을 살피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있는 할아버지를 힐끗 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바이스 이상돈이 서둘러 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취과에 연락하고 수술실 잡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순규가 눈을 매섭게 뜨며 따져 물었다.
“뭐? 어디다 연락을 해?”
“수, 수술하실 거 아닙니까?”
“미친놈, 너 제정신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순규의 뜻밖의 반응에 이상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박상우! 너도 쟤랑 같은 생각이야?”
“그, 그게…….”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뭘 망설여? 빨리 대답 안 해? 네가 이 환자 주치의잖아. 그리고 이 정도 응급조치를 했을 정도면 무슨 말이든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새꺄! 빨리 말씀드려!’
이상돈이 이빨을 드러내며 입 모양으로 박상우에게 답변을 재촉했다.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이 환자를 수술실로 데려가는 건, 살해 행위입니다.”
“그건 왜?”
“지금 김순임 환자는 T4 단계로, 튜머(Tumor: 종양)가 비세럴 페리토니움(Visceral peritoneum: 내장 쪽 복막)까지 침범해 전이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N3b! 리지널 림프 노즈(Regional lymph nodes: 국소 림프절)가 20개 이상에 전이된 상황입니다. 급성 신부전증까지 온 상태라, 지금 전신 마취를 한다면 면역력이 약화된 환자가 견뎌낼 수 없습니다. 메스를 대기도 전에 사망할 겁니다. 수술 중 사망할 수도…….”
“허억, 시상에!”
털썩. 박상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 선생, 보호자분 모시고 밖으로 나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순규가 손을 내저었다.
“네. 선생님!”
김정은 간호사가 할아버지를 끌어당겼다.
“서, 선생님! 저 불쌍한 우리 여편네, 제발 좀 살려 주십시오. 지는 아직 저 사람 못 보내요! 제발요!”
눈물 콧물이 범벅된 할아버지가 김순규의 팔을 붙잡았다.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꾸 이러시면 할머니만 힘들어지세요! 선생님이 잘 치료해 주실 겁니다.”
김정은 간호사가 할아버지의 팔을 떼어 내고는 그를 데리고 나갔다.
“이보게. 잘생긴 의사 양반! 제발, 제발 우리 할망구 좀 살려 주소. 제발!”
할아버지가 간호사의 팔에 이끌려 나가면서 박상우를 절박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 순간, 박상우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제법이구나. 제대로 짚었어. 수고했고, 아무래도 김순임 환자,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
김순규가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상돈 선생! 지금 당장, 이 환자 중환자실로 옮겨!”
“네. 선생님!”
“그리고 박상우, 너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고 전해 줘라.”
“…….”
“뭐 해? 내 말 안 들려?”
박상우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자 김순규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네. 알겠습니다.”
* * *
스트레처 카에 실린 김순임 할머니는 담당 의료진과 함께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할아버지와 박상우는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반쯤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괜찮으실 겁니다.”
박상우가 그런 그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이이잉.
그렇게 기나긴 몇 시간이 흘러 중환자실 문이 열렸고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김순임 씨 보호자분?”
간호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가 대답이 없자 박상우가 그의 팔을 흔들었다.
“야, 지가 김순임이 보호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떨리는 목소리. 할아버지의 표정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흠,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순임 환자분이 할아버님을 찾으세요.”
“네? 아이고, 우리 할망구 잘못되는 겁니까?”
“아, 그게 아니고…… 김순임 할머님이 찾으시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간호사가 난감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야. 알, 알겠어라.”
할아버지가 서둘러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툭, 그 순간 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박상우가 바닥에서 들어 올린 건 낡은 수첩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수첩을 들춰보는 박상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게스트릭 캔서, 케모이뮤노테라피(Chemoimmunotherapy: 면역 요법 등)>
수첩엔 온갖 의학 용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어설픈 한글 발음으로 적혀 있는 용어들이 박상우의 시선을 붙들었다. 전부 김순임 할머니의 병과 연관된 용어들이었다.
‘이럴 수가…….’
멍하니 수첩을 내려다보는 박상우의 눈두덩이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 사진은? 그때……?’
박상우가 계속해서 수첩을 뒤적거렸다. 수첩 맨 뒤, 가지런하게 담겨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덕지덕지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은 사진. 낮에 할아버지가 조각 내 쓰레기통에 버렸던 그 사진이 틀림없었다.
‘하아, 할아버지!’
사진을 들고 있던 박상우의 손이 마구 흔들렸다.
* * *
지이이잉.
1시간쯤 지났을까?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할아버지!”
사진을 손에 쥐고 의자에 앉아 있던 박상우가 시선을 돌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헉! 이게 왜 나타나는 거야?’
박상우의 목소리에 할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주름진 이마에 붉은 숫자가 물결치고 있었다.
[잔존 수명: 5시간 45분 32초, 31초, 30초·…….]소스라치게 놀란 박상우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