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93)
신의 메스-193화(193/249)
193화 세기의 수술 (10)
심장 막 분리!
‘심장은 2개의 심막에 싸여 있지만, 지금 두 아이의 심막은 거의 하나처럼 겹쳐 있는 상태. 결국, 4개의 심막이 거의 붙어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야. 마치 과일을 감싸고 있는 얇디얇은 랩처럼! 100% 완벽하게 박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박상우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어려울 건 없어. 압축성 심장막염 수술을 했을 때처럼 하면 된다. 염증 때문에 심막이 심장근육에 들러붙은 경우와 다르지 않아. 떡처럼 들러붙었던 심막도 무리 없이 벗겨 냈어.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해 본 수술이야. 페리카디악토미(Pericardiectomy: 심외막 절제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반드시, 두 아이 모두 살려낸다!’
박상우는 스스로 최면을 걸듯 자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상념에서 깨어난 박상우는 눈을 뜬 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김민준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어? 그래, 괜찮아. 준비는 다 된 거지?”
“네. 모든 준비, 완벽합니다. 이제 시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민준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의료진들은 박상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둘러싸고 있었다. 박상우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네, 교수님!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결연한 표정의 의료진들의 모습은 마치 전장으로 나가는 용맹한 군사와도 같았다.
“좋습니다. 시작합시다.”
“네, 교수님.”
“메첸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그거 말고, 블레이드 25로!”
박상우는 장연아 간호사가 건넨 메첸의 교체를 요청했다.
메첸은 조직을 절개하는 기구인 ‘멧젬바움’으로, 블레이드 25란 작은 조직의 정교한 절개를 위한 기구였다.
“네, 교수님”
백설아는 장연아 간호사를 대신해, 블레이드 25로 바꿔 끼운 멧젬바움을 박상우의 손에 올려 놓았다.
서걱서걱!
여리디여린 심장 조직은 살짝만 잘못 건드려도 뭉개져 버리는 두부 같았다. 박상우은 온몸의 세포를 깨워, 조심스럽게 조직을 절개해 나갔다.
“허 교수님, 지금 아이들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BT(체온)는 37도 정상, 호흡도 나쁘지 않은데……. 다만, 브라디카디아(Bradycardia: 느린맥, 심박동 저하)가 보이네요. 지금보다 맥박이 떨어지면 어레스트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안정적입니다.”
어시스트, 허창용 교수가 모니터의 지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맥박이 더 떨어지면 아트로핀 넣어 주세요. 그래도 떨어지면 도파민 1 앰풀 투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백 선생은 수액 충분히 하이드레이션(Hydration)하고, 조 선생은 오투 어플라이(O₂ Apply: 산소 공급) 충분히 해 줘!”
“네, 교수님.”
“네.”
박상우는 마치 전쟁터의 야전 사령관처럼 의료진들을 진두지휘했고, 의료진 또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민준 선생! 텐션 너무 나가잖아. 부드럽게 잡아당겨야지. 이제 20개월 된 아기라는 거 몰라? 그러다가 컷 스루(Cut Through) 돼서 심장 찢어지면 어떡할 거야?”
박상우는 불같은 호령을 계속하며, 긴장의 끈을 계속 잡아 주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장 선생, 석션 더 해 주세요. 시야가 가려져서 어프로치 힘듭니다.”
장경호가 석션기를 환부에 들이대자 혈액이 빨려 들어갔다.
1mm, 2mm, 3mm…….
박상우는 조금씩 협착된 심장 막을 분리해 나갔다. 그리고 이제 두 아이의 심막이 거의 분리되려는 순간.
띠띠띠띠! 띠띠띠띠!
경고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수술이었기에, 경고음이 들리자 수술실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박 교수님, 혈압이 떨어집니다! 어떡하죠?”
“어떻게 된 거야? 박 교수! 무슨 일이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술을 지켜보던 지동철 원장은 경고음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그러나 모두가 허둥거릴 때, 박상우만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상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혈압은 얼마나 떨어졌습니까?”
“최저 혈압 60mmHg입니다. 이러다간 어레스트가 올 것 같은데…….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시퀄레(Sequelae: 후유증)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수술에 성공해도 심장은 기능이 떨어질 겁니다.”
허창용 교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60 정도라면 이런 수술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혈관이 하나 터진 겁니다. 잡을 수 있어요. 지금은 심폐소생술도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모두 침착하십시오.”
박상우는 흥분한 의료진들을 다독이며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였다.
“백 선생님, RBC(Red Blood cell Count: 적혈구가 들어 있는 수혈팩)는 얼마나 있습니까?”
“지금 세 개뿐입니다.”
“세 개 전부 떼려 넣고, 당장 혈액실에 연결해서 5팩 더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지이이잉!
백설아는 박상우의 말을 듣자마자 신속히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허 교수님, 노멀 셀라인(Normal Saline: 생리 식염수) 풀 드립해 주세요.”
노멀 셀라인 풀드립은 혈액이 부족할 때 혈압을 잡고자, 생리 식염수를 최고 속도로 투여하는 방법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터진 혈관을 잡겠습니다. 김민준 선생, 바스큘라 클램프(Vascular Clamp: 혈관을 짚는 기구) 줘!”
“네, 교수님.”
박상우는 찢어진 혈관을 찾아 봉합을 시작했다.
“안 보여, 석션!”
치지지직!
석션은 마치 괴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피를 빨아들였다.
“타이, 컷!”
“김민준! 아래쪽으로 당기라고!”
“네!”
김민준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집중하며 어시스트에 힘썼다.
“타이, 컷!”
“후우, 잡았습니다.”
“허 교수님, 혈압 잡혔습니까?”
“네.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안심하긴 일러요. 워낙 어린아이들이라.”
터진 혈관이 잡히자, 아이들의 심장도 조금씩 혈압이 회복되었다. 갑작스러운 큰 고비였지만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되었다.
“백 선생, 나머지 혈액 누수 없게 계속 투입하고, 바이탈 확인하세요.”
혈액실에서 피를 공수해 온 간호사들이 혈액 팩을 스탠드에 걸었다.
“박 교수! 저, 정말 괜찮은 거야?”
지동철 원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막간 협착이 워낙 심해서 미세 혈관이 터진 것 같습니다. 메인 블리딩을 바로 잡았으니 문제없습니다.”
“다, 다행이군.”
지동철 원장은 그제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박상우와 의료진들은 계속, 생과 사의 경계에서 신과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심장 분리 수술을 시작한 지 6시간, 완벽하게 두 아이의 심장을 분리할 수 있었다.
짝, 짝짝, 짝짝짝!
여기저기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 해내셨습니다.”
허 교수를 비롯한 어시스트들이 박상우에게 달려왔다.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 순환 회복, 기계 장치 없이 심장이 스스로 박동하는 것)를 확인해야 해요.”
“당연히 될 겁니다, 교수님. 힘차게 박동할 겁니다!”
김민준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교수님, 펌프 오프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체외 순환기의 전원을 내리자 굉음을 울리며 힘차게 작동했던 순환기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제 아이들의 멈췄던 심장이 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아이들만 바라보는 그때.
쿵쾅쿵쾅!
아이들의 심장을 응시하던 모든 의료진의 심장이 함께 요동쳤다.
“와! 와!”
“뛴다! 교수님, 보세요! 아이들이 ROSC를 하고 있습니다!”
정호와 현호의 주먹만 한 심장이 두 개로 나뉘어 힘차게 뛰기 시작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됐어! 됐어! 우리 박 교수가 해냈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동철 원장도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십시오! 저기 있는 의사가 우리 병원 에이스, 박상우입니다. 바, 박 교수가 해냈어요! 이 친구가 이 어려운 걸 또 해냈어요! 하하하하!”
지동철 원장은 양손을 들어 올리고 참관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짝짝짝짝!
“정말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외과 수술의 새 역사를 쓰게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원장님!”
지동철 원장에게 몰려든 참관인들은 하나같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박상우의 손끝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23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막을 내린 형제의 분리 수술. 어느덧, 새로운 희망을 알리는 해가 어둠을 헤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열흘 후, 박상우는 흉부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23시간의 장시간 수술을 마친 정호, 현호 형제는 복부와 간, 소장 등에 붙어 있던 장기들을 분리하느라 손상된 피부 성형 수술까지 마친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행히도 아이들의 회복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완전히 분리된 두 아이는 이제 더 이상 한 침대를 쓸 이유가 없었기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침대위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교,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의 부모는 박상우가 오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하긴요. 아이들이 이 힘든 수술을 버텨 줘서 제가 더 감사하죠.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2층 침대를 들여놓으셔야겠네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하하하, 그 2층 침대 내가 사 줌세.”
그 순간, 지동철 원장이 모습을 드러내며 걸걸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아닙니다. 원장님! 이렇게 우리 애들 수술해 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합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황영숙은 살짝 정색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뇨. 부담 없이 고르세요. 제일 좋은 거로 사셔도 괜찮습니다. 받으세요!”
박상우는 황영숙의 손에 노란색 골드카드를 쥐여 주었다.
“아니에요, 교수님! 절대, 절대 그럴 순 없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제가 어떻게…….”
“박 교수의 성의니까 받아 두세요. 사신 다음에 영수증만 챙겨서 보내 주시면 제가 경비로 처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죠, 박 교수?”
지동철 원장은 박상우를 쳐다보며 은근한 투로 말했다.
“원장님, 이게…….”
“에이, 사람이 왜 그렇게 쫀쫀해! 내가 경비로 처리해 준다니까.”
‘그 카드, 법인카드가 아니라 원장님 건데요?’
“네.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죠. 어머님, 맘껏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왕 사시는 거, 책상이나 장난감 같은 것도 더 사세요.”
“저, 정말이요?”
황영숙과 한장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맘껏 쓰시고, 영수증만 보내 주세요.”
“하하하, 그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마음껏 사세요. 그런데 박 교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지동철 원장은 박상우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글쎄요. 설마 신용불량자라도 되겠어요?”
정호와 현호 형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은 대성공을 이루며 끝이 났다.
* * *
일주일 후, 박상우 연구실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한국의 슈바이처, 박상우 교수! 한국 외과 수술의 새로운 장을 열다!>
<주가 상승! 박상우 교수, 검색어 부동의 1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형제의 분리 수술 성공으로 인해, 박상우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교수님, 저희 방송에 딱 한 번! 딱 한 번만 출연해 주십시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설득 작업을 하던 TBS 방송국의 PD, 양상준은 오늘도 박상우의 연구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