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94)
신의 메스-194화(194/249)
194화 티비 스타 (1)
“안 바쁘세요? 어떻게 일주일 내내 오십니까? 진짜 끈질기시네요.”
“하하하, 제가 원래 진득한 기질이 있어서요. 교수님 같은 스타를 모시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기다리는 건 아주 잘합니다.”
양상준은 전혀 포기할 것 같지 않은 투로 말했다.
“전 그런 거 못 한다니까요? 말주변도 없고, 카메라 울렁증도 심합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수님 페이스는 카메라 마사지만 받으면 웬만한 애들은 명함도 못 내밀 겁니다. 페이스 죽이는데요?”
양상준은 손가락을 렌즈처럼 둥그렇게 만들어 눈 위로 가져다 댔다.
“아뇨. 전 이런 거 질색입니다. 정말 사양할게요.”
그러나 박상우는 양상준의 제안을 거듭 거절했다.
“하아, 이 사람이 또 여기 와서 앉아 있네?”
그 순간, 지동철 원장이 박상우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곤 어이없다는 듯이 양상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지, 양상준이 보이자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감췄다.
“헤헤헤, 원장님 오셨습니까?”
양상준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원장님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박상우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사 이후 지동철 원장의 첫 방문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이거 내가 너무 무심했군. 우리 병원 에이스의 연구실이 이렇게 초라해서야 되나?”
지동철 원장은 뒷짐을 진 채 연구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초라하긴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무슨 말인가? 볕도 잘 들지 않는 게, 영 우중충해서 안 되겠어. 지원팀에 일러둘 테니까, 내일 당장 방부터 옮기자고. 사람은 볕을 받아야 일도 잘되는 법이야.”
지동철 원장은 블라인드를 살짝 올려 보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한테 이런 일도 다 생기는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나? 준다면 고맙게 받아야지.’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옮기겠습니다. 이왕이면 햇빛 잘 들고 넓은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박상우는 지동철 원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하하, 당연하지. 그나저나, 양 피디님은 그렇게 할 일이 없으십니까? 내가 몇 번을 말합니까? 박 교수는 그런 데 안 나가요.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만드시는 겁니까?”
박상우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지동철 원장은 양상준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프로 시청률 짱짱한 건 원장님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다른 병원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못 와요! 진짜 병원 입장에선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는데, 그걸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양상준은 볼멘소리로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보세요, 피디 나리. 이 양반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네. 그깟 병원 홍보 좀 하겠다고 우리 병원 에이스 얼굴을 팝니까? 가뜩이나 어려운 수술 마치고 힘든 사람인데, 자꾸 귀찮게 하지 말아요. 본인이 싫다는 데 거머리처럼 왜 그러는 거예요?”
지동철 원장은 정색하며 양상준 피디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동안의 행적으로 봤을 때, 지동철 원장은 병원에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매국노 짓도 서슴없이 자처했을 사람이었다. 국내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인 <휴먼>의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모를 리 없었기에, 지동철 원장의 지금 같은 태도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박상우를 향한 지동철 원장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지금만은 말이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약속 하나만 해 주십시오”
거듭된 거절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자, 양상준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 이 사람 진짜 말 많네? 무슨 약속 말입니까?”
지동철 원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박 교수님을 포기하긴 하는데, 대신에 타 방송국에도 출연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다른 곳에 출연하시면 배반! 아니, 배신이에요!”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뜰 확률이 더 높지. 알겠으니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딱 한 번만입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박상우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양상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딱 한 번만이라고요. 프로그램에 출연할 테니까,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무, 물론이죠! 당연히,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그리고, 명성병원 로고가 박힌 가운을 입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당연하죠. 그것 말고 혹시 더 원하시는 게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처자식 내놓으라는 것만 아니면 전부 들어드리겠습니다!”
양상준은 박상우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박 교수, 정말 괜찮겠어? 괜히 나 때문이라면…….”
“아니에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니 나가면 병원 홍보도 되고 뭐,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아서요.”
“어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홍보고 나발이고, 이미 박 교수 덕분에 외래환자가 너무 몰려들어서 감당이 안 돼!”
지동철 원장은 양손을 내저으며 진저리치듯 말했다.
“감당 못 할 정도면, 본관 옆에 병동 하나 더 세우시면 되죠.”
“하, 하하!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카메라 울렁증 있다면서?”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 입장에서 박상우의 방송 출연이 싫을 리 있겠는가? 지동철 원장은 걱정하듯 물었지만, 내심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며칠도 아니고, 겨우 하루 고생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그럼요! 방송 그거,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박 교수님은 워낙 페이스가 좋으셔서 앉아만 있어도 그림일 겁니다. 암요!”
양상준은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 * *
일주일 후, TBS 스튜디오.
“카메라 좋습니까?”
“오케이!”
“방청객 여러분! 박상우 교수님이 나오시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아시죠?”
FD가 양손을 모아 소리쳤다.
“네!”
방청석을 꽉 메운 청중들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전 예약제였음에도 혹시 몰라 찾아온 방청객이 두 배가 넘었을 만큼, 박상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시작합니다. 생방송이니까 NG 없이 가야 합니다. 스탠바이!”
“5초, 4초, 3초, 2초, 1초!”
짝짝짝짝!
“와아!”
박상우가 등장했고, PD가 양팔을 크게 휘젓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박상우 교수님!”
“네, 안녕하십니까.”
국민 MC라 불리는 유천석이 박상우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생방송 <휴먼>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실물로 보니 훨씬 잘생기셨군요!”
“제가 좀 생기긴 했습니다. 평소에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아, 네에.”
유천석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박상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으악! 교, 교수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에서 이런 장난을 치시다니요!”
유천석은 자신의 양팔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정색하듯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앗! 농~담입니다.”
유천석은 특유의 제스처를 하며 자신의 유행어를 내뱉었다.
“저도 농~담입니다.”
박상우도 능청맞은 위트로 받아치며 위기를 모면했다. 말주변이 없다는 자신의 말과 다르게 예능감이 충만했다.
“하하하!”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와, 우리 박상우 교수님. 수술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예능감도 보통은 아니시네요?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이 장난 아닐 것 같군요.”
“아닙니다. 저기 계신 작가분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괜찮았나요?”
박상우는 다시 한번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대 아래에 있는 작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하하!”
부끄러워하는 작가를 본 방청객들도 박장대소했다.
“아주 좋았습니다! 오늘 분위기가 정말 좋군요! 자, 그러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네.”
“우선, 모든 국민의 관심사였던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죠? 박상우 교수님께선 정호, 현호 형제…….”
아이스 브레이킹과 함께 지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토크쇼가 시작되었다.
* * *
“뭐야, 박 교수가 저런 면이 있었나? 이 인간, 말주변 없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아주 날아다니는구먼. 농~담입니다? 이런 건 언제부터 연습한 거야. 아주 똑같네, 똑같아!”
원장실에서 방송을 시청하던 지동철 원장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 * *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크 시작으로부터 한 시간 후, 박상우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의료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 생체 내에 내재(內在)하는 의사를 도우며 격려할 뿐이다.”
모두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보자, 박상우가 말을 이었다.
“슈바이처 박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병은 환자의 의지에 따라 지배할 수도, 지배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저 환자가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할 뿐이죠.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와 싸우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잠자고 있는 의사를 깨우십시오.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 있을지언정, 불치병이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상우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멋들어진 마무리 멘트를 했다. 카메라 울렁증 따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될 만큼 자연스러웠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뒤이어 유천석이 마지막 인사를 했고, 양상준은 방송 종료를 알렸다.
“멋집니다, 박상우 교수님!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양상준은 헤드폰을 벗어던지며 무대 위로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후우, 제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박상우는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모르겠다니요? 박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마지막 멘트, 정말 멋졌습니다. 이건 대본에도 없던 건데, 어떻게 그런 명언을 바로 생각해 주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대본에도 없는 거라 깜짝 놀랐는데, 진짜 명언이셨습니다. 순간 시청률 좀 올랐겠는데요? 방청객 반응으로 봐서는 거의 확실해요.”
유천석이 안경을 고쳐 쓰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하하하, 오른 정도가 아닙니다. 순간 시청률이 동 시간대 탑 찍은 건 물론이고, 우리 프로그램 역대 최고 시청률이 나왔어요!”
양상준은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그래요? 얼마나 나왔는데요?”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시사 프로그램 중 역대급일 겁니다. 38.5%입니다! 38이라고요!”
“뭐라고요? 3…… 38이요?”
유천석의 눈이 커졌다.
“네! 역대 최대 시청률이에요. 이 정도면 주말극 <여자의 세계>보다 높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박 교수님! 교수님은 완전 예능 체질이세요. 기가 막힙니다.”
양상준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잘 나왔다니 다행이군요.”
박상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교수님. 그게…….”
양상준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뒷말을 흐렸다.
“왜요?”
“이쪽으로 잠시만…….”
양상준은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어 사람이 없는 외진 곳으로 향했다.
“왜, 왜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불안했는지, 박상우가 말을 더듬었다.
양상준은 박상우를 향해 검지를 들어 올리며 애원하듯 말했다.
“위쪽에서 요청한 사항인데……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출연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안 해요! 절대 안 합니다. 절대로요. 약속했잖아요.”
박상우는 질색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고, 한 번만 더 출연해 주시면 말입니다.”
양상준은 멀리 달아나려는 박상우의 손목을 낚아채며, 가까이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