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97)
신의 메스-197화(197/249)
197화 티비 스타 (4)
최상엽 전무이사.
지동철 원장은 명성병원 최현호 이사장의 아들이자, 실질적인 명성병원의 주인이기도 한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최현호 이사장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것을 고려하면, 차기 이사장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다. 명성병원의 모든 권력은 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최상엽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 병원이 무슨 봉사단체예요?”
지동철 원장은 박상우가 말해 준 채연이의 사연을 설명했다. 최대한 그를 설득하려 애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상엽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무님, 그래도 박상우 교수가 우리 병원에 기여한 바도 크고…….”
“압니다, 알아요. 박 교수가 유명한 것도 알고, 허구한 날 드라마를 쓴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박 교수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줘야 한다는 겁니까?”
최상엽은 지동철 원장의 말을 단번에 잘라 버리며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아이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이번 수술을 잘 마치면 우리 병원 이미지 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수십억 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붓는 것보다 이런 케이스가 병원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지동철 원장은 어떻게든 최상엽을 설득해 보려 애썼다.
박상우에게는 안 된다고 했지만, 지동철 원장도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미지 개선이요? 우리 병원 이미지가 뭐가 어떻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치 우리 병원은 여태껏 제대로 된 병원이 아니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최상엽 전무는 불쾌하다는 듯이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미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최상엽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상엽은 그만큼 고압적이며, 권위주의를 강조하는 인간 부류였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우리 병원 어린이 재단에 마련된 기금에 여유가 있는 거로 아는데, 이번에 활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동철 원장은 최상엽을 설득하려 끈질기게 애를 썼다.
“후우, 원장이라는 사람이 그게 할 소립니까? 그 기금이 아무 때나 막 쓰는 돈이에요? 이분 큰일 나실 분이네. 그건 아무한테나 적선하라고 모아 둔 게 아니에요. 원장님 사적으로 건드릴 수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정신이에요? 절대 불가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
더 이상의 설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지동철 원장은 아무 말 없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우리 병원이 자선 단체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선례를 남기면 오만가지 인간들이 파리 떼처럼 들러붙을 겁니다. 예전에 기억 안 납니까? 에이즈에 걸린 환자였던가? 그 환자를 우리가 무상으로 진료했다가 에이즈 환자들이 몰려들어서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최상엽은 침까지 튀겨 가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알겠습니다.”
지동철 원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참 신기하군요. 언제부터 지 원장이 박 교수의 후원자가 되셨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양반이었는데. 아닙니까?”
최상엽은 지동철 원장에게 냉소적인 미소를 흩뿌리며 물었다.
“…….”
지동철 원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대답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 * *
“우아아아앙!”
흉부외과 유아 병동에선 채연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채연아, 까꿍! 우리 채연이 착하지? 하나도 안 아파!”
어린아이의 라인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이제 다 됐다. 채연아, 하나도 안 아프지?”
백설아는 10여 분의 사투 끝에, 몸을 활처럼 휘며 뻗대는 아이의 발에서 겨우겨우 라인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 채연이 많이 아팠어?”
백설아는 라인을 잡은 채, 붕대에 칭칭 감겨 있는 채연의 왼발을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조금 이따 CT를 찍고, 초음파도 해야 해요. 이거 먹여서 재워 주세요.”
백설아는 정은선에게 옅은 황색의 시럽을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포크랄이라고, 유아용 수면유도제예요. 검사할 때 아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면 안 돼서, 잠들 수 있게 주는 약이에요.”
“아, 네.”
정은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약을 받았다.
“아이한테 해로운 건 아니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해요.”
“아이가 잠들면 바로 이동해서 검사할 건데, 그때 교수님이 잠시 어머님을 뵙자고 하시네요.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검사를 받으러 간 사이 정은선은 박상우 연구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앉으세요.”
“네, 교수님.”
“어머님. 채연이는 팔로4징, 그러니까 심장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일단 수술은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저 때문인가요?”
정은선은 팔로4징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절대 어머님 잘못이 아닙니다. 어머님 병과는 조금 다른 유형이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래도,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데리고 왔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잖아요.”
정은선은 여전히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지난 일만 돌이켜 생각하면 어쩌겠습니까. 지금은 열심히 치료하는 게 최선이에요. 어머님께서도 마음을 단단히 잡으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선생님, 우리 채연이 살 수 있는 거죠?”
박상우를 바라보는 정은선의 눈빛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 아빠는 부대로 복귀했나요?”
“네. 중대장님 덕분에 특별히 휴가를 받아 나오긴 했지만. 더는 어려운가 봐요.”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휴가 내내 돈 구하러 다니느라 밥 한 끼 제대로 차려주질 못했어요.”
오상규를 떠올리던 정은선은 또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마음을 단단히 잡으셔야 해요. 어머님도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되니까요. 약 잘 챙겨 드시고, 계속 버티셔야 이겨 내실 수 있어요.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우리 채연이만 살 수 있다면, 제 몸뚱이 하나 부서진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저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수술은 꼭 성공해 주세요, 교수님.”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채연이 수술은 제가 집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수술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술비 걱정을 하지 말라뇨?”
깜짝 놀란 정은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병원에 어린이 재단이 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술비나 입원비를 지원해 주고 있거든요. 그곳에서 채연이를 후원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돈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정말입니까?”
구세주와도 같은 박상우의 말 한마디에 정은선은 뛸 듯이 기뻐했다.
“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건 아니니까, 일단 어머님만 알고 계세요.”
박상우는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말했다.
“물론이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도 몇 장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사진이 있으면, 어떻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이죠. 이 사진들을 드리면 될까요?”
정은선은 채연이 침상에 놓아 둔 액자에서 사진을 꺼내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괜히 마음 약해지지 마시고, 약도 잘 챙겨 드세요. 아이 아빠한테도 잘 연락해 주세요. 괜히 부대에서 딴생각을 하실까 봐 걱정입니다.”
박상우는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 * *
잠시 후, 지동철 원장의 호출을 받은 박상우는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박 교수, 이거 받아.”
지동철 원장은 서랍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박상우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얼마 안 되네. 수술비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애 엄마한테 전해 주게. 내 성의야. 아, 내가 줬다는 소리는 하지 말고.”
지동철 원장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사실 어제 최 전무를…… 아, 아니다. 아무튼, 수술이 잘되었으면 좋겠구먼.”
지동철 원장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내일 또 방송에 나간다면서?”
지동철 원장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네. 양 피디가 하도 귀찮게 해서 한 번 더 출연하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방송 보니까, 박 교수가 아주 방송 체질이더군. 가서 잘하고 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바쁠 텐데 어서 나가 봐.”
지동철 원장은 인자한 미소로 천천히 손을 내저었다. 이젠 거의 완벽한 박상우의 후견인이었다.
“네, 원장님.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박상우는 정중히 인사하고 원장실을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상영동 TBS 스튜디오.
생방송 <휴먼>이 특집으로 마련되어, 더 많은 방청객을 맞이하기 위해 상영동에 있는 TBS 메인 스튜디오로 장소를 옮겼다.
1,000석에 가까운 방청석은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고가의 암표가 성행할 정도로 박상우의 인기는 엄청났다.
“이제 10분 후면 방송 시작합니다. 박상우 교수님이 나오시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부탁합니다. 자, 연습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이 스튜디오 지붕이 날아가지 않으면 무한 반복이에요!”
“하하하.”
방송 전,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PD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방송 시작합니다. 5, 4, 3, 2, 1! 유천석 씨 나오세요!”
양상준은 카메라 옆에 앉아, 유천석을 향해 콜 사인을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생방송 휴먼의 MC 유천석입니다.”
“와! 와!”
짝짝짝!
유천석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뛰어 들어오자, 관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여러분. 오늘 아주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건 다들 아시죠? 어떤 분이 오시죠?”
유천석은 마이크를 관중석을 향해 뻗어 보였다.
“박상우! 박상우!”
관중석에서 박상우를 연호했다.
“맞습니다. 요즘 그 어느 연예인보다 핫한, 바로 그분이 나오십니다! 제 유행어를 저보다 더 잘 구사하시는 바로 그분! 환자를 마음으로 치료하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의사! 박상우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빠바바방!
“와와!”
“꺄악! 슈트빨 죽인다.”
“박 교수님, 사랑합니다!”
우렁찬 효과음과 함께 장막이 열리고, 검은색의 말끔한 슈트로 차려입은 박상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대세 박상우입니다.”
박상우는 마이크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하하, 요즘 대세요? 교수님, 방송 한번 나오시더니 많이 뻔뻔해지셨는데요?”
박상우의 옆에서, 유천석이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박상우는 위트 있게, 유천석의 성대모사로 분위기를 달궜다.
“하하하!”
“예능감 진짜 쩐다!”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 이제는 아주 예능인이 다 되셨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자리에 앉아서 교수님의 신비스러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볼까요?”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있었던,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무척이나 기대되는군요. 이제 본격적인 토크를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그전에, 광고부터 보고 오시죠!”
유천석은 박상우와 함께, 여유롭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박상우의 두 번째 방송 출연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