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198)
신의 메스-198화(198/249)
198화 티비 스타 (5)
“제가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일할 때, 크리스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는 파브리병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었는데…….”
박상우의 입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하아!”
“어떻게…….”
박상우 특유의 청중들이 몰입하게 하는 부드러운 어조는 설득력을 주었고, 그의 언변에 방청객들은 때로는 아쉬움에 탄식하고, 때로는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박상우의 두 번째 방송 출연 역시, 반응이 뜨거웠다. 두 시간여의 생방송이 무리 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끝냅시다.”
양상준이 양팔을 휘저으며, 유천석에게 방송 종료 사인을 보냈다.
“TBS가 허락만 해 준다면, 밤을 꼬박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박상우 교수님의 무용담을 듣고 싶지만……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돼요!!”
끝난다는 아쉬움에, 방청석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준비한 멘트, 시작하세요.”
양상준은 유천석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말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박 교수님께서 여기 방청객과 시청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박상우 교수님, 말씀하시죠.”
유천석은 박상우에게 마이크를 박상우에게 넘겼다.
“얼마 전에 우연히 어린 천사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귀엽고 천진난만한, 채연이라는 예쁜 아기입니다.”
그 순간 잔잔한 배경음과 함께, 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채연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 아이는 안타깝게도 팔로4징이라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연이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치료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핀 조명 하나가 박상우에게 떨어지자, 방청석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그 흔한 산부인과 한 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시골 마을 할머니 덕분에 세상에 나온 채연이. 그 아이를 지켜 주지 못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 도대체 왜?”
아이와 부모가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이 백 스크린에 띄워지자, 그동안 고요했던 방청객들도 어깨를 들썩거렸다.
* * *
그 시각, 흉부외과 유아 병동에 있던 정은선을 향해 한 여성이 손을 흔들었다.
“채, 채연 엄마! 이리 와 봐!”
여성은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점점 꺼져 가는 작은 천사에게 손을 내밀어주십시오. 응원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간절한 응원 한마디가 이 귀여운 천사의 힘이 되어 줄 겁니다.]방송을 보는 정은선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인류의 영원한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힘없는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를 위해 사랑을 채워 주십시오. 이들에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되어 줄 겁니다.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박상우는 끝까지 차분한 어조로 마무리했다.
짝! 짝짝! 짝짝짝짝!
박상우의 진정성 있는 호소는 방청객들의 심장을 울렸고, 그에 감동한 방청객 한 명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됐어! 완벽해!”
‘이 정도면 빚을 갚은 셈이 되는 건가요?’
양상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끝까지 너무도 완벽했던 방송. 양상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방송 종료 사인을 날리려 했다.
“양 피디님! 지, 지금 순간 시청률이 얼마나 나왔는지 아십니까?”
조연출 윤진한이 양상준에게 헐레벌떡 양상준에게 달려갔다.
“어, 얼마나 나왔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었습니다! 방금 박 교수님 마지막 멘트가 나가는 시간대의 순간 시청률이 44.8%이었습니다!”
“뭐…… 뭐라고? 저, 정말이야?”
양상준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 방청석 한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송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이, 이 사람,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요!”
마른 체형의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굴엔 핏기가 싹 가신 채,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손과 발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박상우는 반사적으로 방청석을 향해 뛰어들었다. 방송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갑자기 발생한 돌발 상황이었다.
“어, 어떡하죠? 방송사고인 것 같은데……. 일단 끊을까요?”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 기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계속 촬영만 하고 있었다.
“미쳤어요! 이런 대박을 그냥 놔두게? 일단 박 교수님을 계속 따라 갑시다!”
조연출 윤진한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네가 아주 미쳤구나. 지금 한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 장면을 생중계하자고? 방송국 문 닫게 하고 싶어? 지금 당장 방송 중지하고 광고 내보내!”
“아, 알겠습니다.”
윤진한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잠깐. 아니지. 박지은 작가가 유튜브 한다고 했지?”
그때, 윤진한을 향해 양상준이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네. ‘방송 작가가 되는 길’이라는 주제로 방송을 하는데, 꽤 인기가 좋은가 보더라고요.”
“그래? 지금 당장 박 작가 수배해 와. 방송 장비 챙겨서!”
“박 작가는 왜요?”
윤진한은 멀뚱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아, 이 새끼! 진짜 말 많네? 그건 알 거 없고 당장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박 교수님, 아마도 당신은 천운을 타고난 사람일 겁니다. 저 사람은 꼭, 반드시 살려 주십시오.’
양상준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박상우를 응시하며 눈을 반짝였다.
띠리리링!
그 순간, 양상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담당 국장 현재준의 전화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 방송 중에 방청객 한 분이…….”
양상준은 차분히, 현재준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에라이, 이게 무슨 난리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일단 방송은 중지하고, 공익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잘했어. 아무 문제 없도록 마무리 잘해! 사고 수습하고 보자고. 어쩐지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이 나오더니만, 완전히 조져 버렸네.
“네, 국장님. 잘 마무리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여간 국장이란 작자가……. 사람이 죽어 가는데 머릿속으론 시청률 생각뿐이군.’
양상준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 * *
윤진한의 연락을 받자마자, 박지은 작가는 허둥지둥 불려 나왔다.
그녀의 한 손엔 캠코더가 들려져 있었다.
“박 작가! 유튜브 방송한다면서?”
“아…… 네.”
“지금 이 상황 녹화해 뒀다가, 나중에 방송에 내보낼 수 있어?”
“네? 그거야 가능하긴 하지만……. 괜찮을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찍어.”
“알겠습니다.”
박지은은 캠코더를 들고 현재 상황을 찍으며, 양상준으로부터 전달받은 멘트를 시작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시고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은 실제 상황입니다. 방송 도중 방청객 한 분이 쓰러지셨고, 박상우 교수님께서 응급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깨어나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기적의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
박지은 작가가 캠코더를 들고오는 동안, 박상우는 사람들이 환자 주변에 오지 못하도록 주의를 시켰다.
주변에 방청객들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박상우는 조심스럽게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거기, 안경 쓴 아저씨! 일단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박상우는 방청객 한 사람을 지목하며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상우는 재킷을 벗어, 쓰러진 남자를 살짝 덮어 주었다.
‘호흡이 떨어진다!’
가슴을 풀어헤쳐 환자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지만, 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박상우는 즉시 팔목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호흡 부전에 맥박은 잡히지도 않고, 혈압도 계속 떨어지고 있을 게 틀림없어!’
박상우는 환자의 외형을 다시 한번 살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의 남자, 에팩스(Apex: 폐 위쪽)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더 낮을 거야. 이런 유형의 사람은 기흉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본다면 단순 기흉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래. 텐션 뉴모소락스(Tension Pneumothorax: 긴장성 기흉)이 틀림없어! 텐션 뉴모소락스라면 응급 상황이야. 흉강으로 들어간 공기가 막혀서 폐로 나가지 못하게 되면, 폐는 물론 심장까지 날아갈 수도 있어! 가스부터 빼내야 한다!’
박상우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서 결론을 내렸다.
‘일단, 바늘로 구멍을 내서 흉강의 압력을 낮춰야 해!’
“혹시 여러분 중에 바늘로 쓸 만한 물건을 가지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박상우는 고개를 돌려, 몰려 있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방송을 보러 온 사람 중에 바늘 같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을 터. 그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후우, 바늘이 있을 리가 없지.’
“볼펜이나 펜 종류라도 좋으니, 가지고 계신 분은 부탁드리…….”
“저, 선생님, 혹시 이거라도 괜찮을까요?”
그 순간,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방 안에 있던 바느질함을 열고, 자수용 대바늘을 꺼내 들었다.
박지은은 숨죽인 채, 캠코더 포커스를 박상우와 여성에게 맞추었다.
박상우는 여성이 건네준 대바늘을 집어 들고 천천히, 손가락으로 남자의 쇄골 정중앙 선을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바늘이면, 혹시 이것도 필요하실까요? 아내 생일이라서 이따 집에서 마시려고 산 건데…….”
박상우가 주변을 문지르고 있자, 한 남자가 가방에서 와인병을 꺼내 들었다.
“감사합니다. 아주아주 필요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때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인터코스탈 스페이스(Intercostal Space: 늑골) 바로 밑부분은 신경 정맥, 동맥이 다닥다닥 붙어서 지나가는 곳이다. 자칫 잘못하면 혈관을 다칠 수도 있으니까, 정확히 2~3번 늑골을 찔러야 해.’
박상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가슴 부위를 매만졌다.
“와인 주세요!”
“여기요!”
박상우가 손을 내밀자, 남자는 그의 손에 와인병을 쥐여 주었다.
박상우는 남자의 가슴 위에 그대로 와인을 쏟아부어, 아쉬운 대로 소독을 대신했다.
푸욱!
그리고 곧장 가슴에 대바늘을 박아 넣었다.
주사기를 이용해 압력을 빼내지 않아도, 응급 상황의 경우엔 단순히 구멍을 뚫어 주는 것만으로도 증세를 호전시킬 수 있었다.
푸슈욱!
“허억!”
박상우가 대바늘을 뽑자, 가슴에서 공기가 빠져 나오며,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쿨럭쿨럭! 하악, 하악!”
“와, 와! 살아났다!”
“이런 기적이! 박상우 교수님이 살리셨어!”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가 어딘가요? 병원입니까?”
이제야 정신을 차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닙니다. 아직 방송국이에요. 혹시 기흉을 앓고 있으신가요?”
“아…… 네. 몇 번 발작을 한 적은 있었는데, 오늘처럼 갑자기 죽을 것 같았던 적은 처음입니다. 서, 선생님께서 절 구해 주신 겁니까?”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응급조치만 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긴장성 기흉인 것 같군요. 지금은 응급조치만 했을 뿐이니, 곧장 병원으로 가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교수님, 정말 최고이십니다!”
“박상우! 박상우!”
양상준은 박상우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와 함께, 모든 방청객이 박상우를 둘러싸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박지은의 캠코더에 담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