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04)
신의 메스-204화(204/249)
204화 위기의 내 친구, 천기수 (3)
‘인트라뮤럴 해마토마(Intramural Hematoma: 대동맥벽 내 혈종)! 함춘석의 병명은 대동맥벽 내 혈종이었어! 대동맥 박리와 유사하지만, CT만으로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기수도 놓쳤을 가능성이 커.’
검사 결과 자료를 상세히 살펴보던 박상우의 얼굴은 점점 더 잿빛으로 변해 갔다.
‘상황은 심각하다! 혈관 벽이 매우 두꺼워져 있고, 혈종이 근위부에 바짝 붙어 있어. 지금 상황이라면 언제 다이섹(대동맥 박리)에 의한 대동맥 파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게다가, 혈종의 두께가 13mm만 되어도 대동맥 박리를 의심할 수 있을 텐데, 지금 함춘석의 혈종은 두께만 2.3cm, 길이도 1cm가 넘는다. 이 정도면, 이미 혈관 파열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이런 환자를 그냥 보냈다니…….’
박상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10일이나 지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해 버렸다. 혈종의 크기가 상당히 커져 버렸어. 얼서 라이크 프로젝션(Ulcer-Like Projection: 악성 종양)까지 있다는 건, 대동맥 박리도 임박했다는 의미야.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함준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박상우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좋지 않아. 절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기수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큰일이다!’
* * *
박상우는 곧장 천기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기수야, 함춘석 환자 결과 나왔다.”
“그, 그래? 어떻게 나왔는데?”
박상우의 말에 천기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어, 어떻게 좋지 않다는 거야? 단순한 심막염이 아닌 거야?”
걱정스러웠던 천기수는 얼굴이 살짝 퍼렇게 질린 채 물었다.
“그게 말이야. 단순한 결핵성 심막염은 아니고…….”
박상우는 차근차근, 함춘석의 검사 결과를 천기수에게 알려 주었다.
“뭐, 뭐라고? 인트라뮤럴 해마토마? 거기다 얼서 라이크 프로젝션(악성 종양)까지 있다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천기수의 낯빛은 차츰 굳어졌고, 금세 창백해져 버렸다.
“이런 경우엔 대개 종격동 출혈이 함께 올 수 있는데, 자칫 탬포나데(Tamponade: 심낭 압전)가 생길 위험도 있어. 심낭 압전은 대동맥 박리보단 인트라뮤럴 해마토마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 그러면…… 내가 오진을 한 거란 말이지?”
천기수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아니야.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 튜버쿨러스 페리칼다이티스(Tuberculous Pericarditis: 결핵성 심낭염)도 있었으니까. 그때 차트만으로 판단했다면 나 역시 잡아내지 못했을 거야. 오진이 아니라, 함께 있던 병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야. 당시만 해도 증세가 미미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내가 제대로 판독만 했어도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냐. 내가, 내가 잘못한 게 맞아.”
천기수는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차근차근 해결해 보자.”
“사, 살릴 수는 있는 거지?”
천기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야. 다행히 손쓸 수 없는 상황은 아니야. 수술하면 잡을 수 있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다, 다행이다. 그래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 환자분, 아들분이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이, 일단 내가 만나 볼까?”
“만나서 뭘 어쩌려고?”
“아, 아니. 일단 만나서 사실대로 얘기하고 용서를 구해야지.”
“그 사람 직업이 뭔지 몰라서 그래?”
“변호사라는 건 알아.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사죄를 드리고…….”
“김민준 선생의 말실수 하나로 난리를 피웠던 사람이야. 만약 네가 찾아가서 ‘내 잘못이오’라고 한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라고. 넌 가만히 있어.”
“그렇다고 어, 어떻게 오진이 확실한 데 그걸 숨겨. 나, 난 그럴 수 없어!”
천기수는 패닉에 빠졌는지, 흥분된 어조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누가 숨기라고 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그냥 잠자코 있어. 괜히 일 크게 벌이지 말고. 그리고 오진은 무슨 오진이야.”
“아, 아니야. 내가 자, 잘못한 게 틀림없어. CT, CT만 제대로 찍었어도…….”
천기수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당시엔 그렇게 진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다른 증세도 없었고, 백혈구 수치만 미친 듯이 오르는 상황이었는데 심낭염 말고 어떤 진단을 할 수 있을까? 나라도 그렇게 진단했을 거라고 했어, 안 했어?”
박상우는 천기수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정신 줄 단단히 잡고 있어. 괜히 쓸데없이 주둥이 놀리면 넌 내 손에 죽는 줄 알아. 알겠어?”
“아, 알겠어. 정말 환자는 살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상우야?”
겁에 질린 천기수의 눈동자에서 조금의 희망이 느껴졌다.
“물론이야. 내가 지금까지 실수하는 것 봤어? 함춘석 씨는 반드시 살려낼 테니까, 걱정 마.”
“고맙다, 상우야.”
박상우는 말없이 천기수를 안아 주었다. 품에 안긴 천기수의 어깨를 작게 들썩거렸다.
* * *
“형님, 접니다.”
천기수와 헤어진 박상우는 윤석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상우야. 무슨 일이야?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다름이 아니라…….”
박상우는 환자의 개인 정보는 밝히지 않는 선에서, 윤석현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러니까, 법무법인 ‘상생’의 함준호 변호사가 환자 아들이라는 거지?
“네. 그래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어요.”
-만약에 네 말이 진짜라면…… 천기수 교수, 제대로 걸린 것 같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함준호 그 인간, 별명이 뭔 줄 알아? 미친개야, 미친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미친개라뇨?”
-한번 물면 절대로 안 놓는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지. 그 인간 때문에 나가떨어진 병원도 꽤 될걸?
윤석현에 따르면, 함준호는 검사 출신이자 의료 소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였다.
“그렇군요. 큰일이네요.”
-그래. 병원하고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병원 소송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려. 가끔 듣는 소문에서도, 병원이라면 아주 이를 벅벅 갈고 덤빈다더라.
“단단히 준비해 둬야겠군요.”
-그래. 정말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거야. 의료 소송 관련해서는 타협도 불가능한 인간일 테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아버지 사건인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알겠습니다, 형님.”
-우리 회사에 함준호 변호사와 연수원 동기였던 사람이 있거든? 그 친구한테 사정을 좀 알아볼게. 그래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판단으론 100% 소송에 들어갈 것 같으니까, 미리미리 대비해 두면 좋을 거야.
* * *
“환자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박상우는 함춘석의 병실로 들어가서, 검사 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결론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아이고, 수술이요?”
“네. 결핵성 심낭염은 거의 치료가 된 상황인데 혈관 내에 혹이 하나 있어서, 그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네? 혹이요? 그, 그러면, 그게 암 같은 겁니까?”
함춘석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그런 암은 아닙니다.”
“저, 저번에 안경 쓰신 선생님은 큰 문제 없다고 하셨는디…….”
함춘석은 통증이 느껴지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천 교수가 진단했던 결핵성 심낭염은 치료가 잘 되어서 거의 완치되었습니다. 다만…….”
“저는 말씀해 주셔도 잘 모릅니다. 선생님이 수술한다고 하시면 하겄지만, 모든 건 아들놈한테 맡겨 둔 상황이라서 저보다는 제 아들하고 말하시는 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함춘석은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맡겼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수술 일정에 관한 사항은 아드님과 상의토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아, 분명 위염 같은 거라고 했는디 수술이라니, 이게 무슨 난리여.”
함춘석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명치 부근을 쓰다듬었다.
* * *
함준호에게 연락하여 간단히 설명하자, 그는 곧장 박상우의 연구실을 찾아왔다. 자신의 아버지, 함춘석의 수술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고압적인 자세로 박상우의 설명을 듣고 있던 함준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검사 결과를 보니, 함춘석 씨의 혈관에 혈종이…….”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의료 전문 변호사인 내가 그 정도 상식도 없을 것 같습니까? 인트라뮤럴 해마토마면, 수술 말고는 답이 없는 거로 아는데요.”
함준호는 박상우의 말허리를 잘라 버리며 말했다. 의료 전문 변호사인 만큼, 용어 등의 기본적인 의학 지식은 갖추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혈종의 크기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면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어서요. 바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큰 병원에서, 결핵성 심막염과 대동맥에 생긴 혈종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죠? 둘 사이에 유사점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이건 명백한 오진 아닙니까?”
함준호는 고개를 위쪽으로 쭉 빼 올리며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환자분께서 우리 병원에 내원하셨던 10일 전까지, 환자분은 분명 심막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에 맞춰 처방도 했던 거고요.”
“하, 지금 같은 의사라고 편드시는 겁니까? 제가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이에요. 심막염과 혈종은 차원이 다른 얘기란 것쯤은 확실히 안다, 이 말입니다. 이건 분명 의료 사고입니다. 공식적으로 소송해야 할 일입니다!”
함준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단정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매섭게 몰아붙였다.
“그건 보호자께서 선택하실 사항이지만, 일단은 환자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환자는 지금 1분 1초가 위급한 상황입니다. 당장 수술을 진행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렇게 1분 1초가 급한 환자인데, 10일 동안이나 방치해 두신 겁니까?”
함준호는 박상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에 필요한 치료는 마쳤습니다. 환자분의 동의하에 퇴원하였고, 다시 한번 통증이 생겨 입원하신 상황입니다.”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네. 동의하긴 뭘 동의해요? 환자 입장에서야 의사가 나가라면 나갈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별거 아니라고 퇴원시킨 사람이 누군데!”
함준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미 물어뜯기로 작심한 사람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저희는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환자분께서 어떤 병을 앓고 계시든, 별거 아닌 병은 없으니까요.”
박상우도 살짝 격앙된 표정으로 답했다.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몰아가려는 듯한 그의 말투에 감정이 조금 격해졌다.
“아하, 그래요? 그럼 이걸 한번 들어 보시죠. 이걸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어디 두고 봅시다.”
함준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녹음기를 통해 천기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