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06)
신의 메스-206화(206/249)
206화 위기의 내 친구, 천기수 (5)
“차 한 잔 타 드릴까요? 저도 마시려던 참인데.”
박상우는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전원을 켰다.
“아뇨. 괜찮습니다.”
함춘석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식 들었습니다. 아들놈이 교수님을 찾아왔다고 하던데…….”
“아, 네.”
“준호 그놈 성질이 워낙 지랄 맞아서 그랬나 본데, 애비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함춘석은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사실…….”
함춘석은 천천히 제 이야기를 해 주었다.
10년 전, 의료 사고로 인해 자신의 아내를 잃었다는 사연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 이후로 준호가 의사라면 이를 벅벅 갈아요. 더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뒤늦게 사법시험을 봐서 변호사가 됐습니다. 제가 타일러도 보고 달래도 봤는데, 말을 듣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부디 아들놈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요. 저 같아도 충분히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번 수술만 잘 끝나면 누그러들 거예요.”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함춘석 씨.’
“수술도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천 선생님한테도 너무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릴게요. 그 선생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박상우의 말에 안심이 됐는지, 함춘석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게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요?”
함춘석이 책상 위에 놓인 떡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제가 치료해 드렸던 환자분께서 놓고 가신 거예요.”
“맛있어 보이네요. 제가 워낙 떡을 좋아해서요. 혹시 하나만 먹어봐도 될까요?”
함춘석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저도 정말 드리고 싶지만, 안 됩니다. 환자분은 병원에서 주는 음식만 드셔야 해요. 괜히 다른 음식을 드셨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요.”
“그래도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박상우가 말하는 중에도 함춘석은 떡만 뚫어지게 보며 입맛을 다셨다.
박상우가 다시금 말하려던 그때, 함춘석은 떡 하나를 집어 들곤 입에 넣었다.
“와, 정말 맛있네요!”
“드시면 안 되는데…… 천천히 드세요.”
“맨날 밍밍한 병원 밥만 먹다 보니, 꿀맛이네요.”
함춘석은 입에 넣은 떡을 우물우물 씹으며 기분 좋게 말했다.
“물 좀 드릴까요?”
“네. 목이 조금 막히네요.”
박상우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러 갔을 때, 함춘석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박상우는 함춘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허억. 허억.”
함춘석은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박상우가 등을 두드려도, 함춘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까지 돌아간 게, 아무래도 먹고 있던 떡이 목에 단단히 걸린 것 같았다.
‘큰일이다. 떡이 목에 걸려서 호흡이 안 되고 있어!’
“후우, 후우!”
박상우는 자세를 낮춰 함춘석과 키를 맞춘 후, 뒤에서 감싸 안아 하임리히법을 반복적으로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탁탁탁탁!
다시 한번 등을 세차게 때려 보았지만 역시나 호흡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제는 몸도 축 늘어져 의식까지 혼미해져 보이는 게, 얼마 안 있으면 어레스트가 올 상황이었다.
“김 간호사, 함춘석 환자 목에 떡이 걸렸어! 응급실에 연락해서 기관 절제 준비하라고 해!”
박상우는 황급히 인터폰을 들어 간호사에게 말했다.
– 아, 알겠습니다!
“후우, 후우!”
등을 두들기다가 다시 하임리히법을 진행하던 그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연락했어?”
– 아뇨. 계속 통화 중이라고……….
“계속 다시 연락해 봐. 급해!”
– 네!
‘하임리히법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응급실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박상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적어도 3분 안에 기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자칫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어. 아니,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순간 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응급실에 갈 때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려. 여기서 기관 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변변한 장비가 있을 리 없었다.
째깍 소리와 함께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할 수 없어. 당장 산소를 공급하지 않으면 이 환자 죽어. 여기서 기관을 절제해야겠어.’
박상우는 책상 위에 있던 볼펜을 집어 들고 힘을 줘 빠그작 부러뜨렸다.
볼펜심을 빼고, 제법 날카롭게 날이 선 볼펜대를 팔팔 끓고 있던 커피포트에 던져 넣었다.
그렇게 약 10초 후, 박상우는 다시 볼펜을 꺼내 함춘석에게 다가갔다.
‘목젖 바로 아래, 돌기 사이의 파인 부분으로 정확히 찔러 넣어야 한다.’
박상우는 함춘석의 목 부근을 한번 더듬어 확인하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카롭게 날이 선 볼펜을 목에 푸욱 찔러 넣었다. 구멍이 뚫린 부위로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됐어. 성공이야! 이제 숨을 불어넣기만 하면 된다.’
박상우는 함춘석의 목에 박힌 볼펜대 상단을 입에 물고, 침착하게 공기를 불어 넣었다.
“후우! 후우!”
잠시 후, 박상우는 함춘석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보았다.
‘수, 숨이 돌아왔다.’
탁탁탁탁!
“하나, 둘, 셋, 넷, 다섯!”
함춘석의 몸을 살짝 일으킨 박상우는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내려쳤다.
‘제발, 제발 나와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박상우는 함춘석의 등을 반복해서 내리쳤다.
“켁! 켁!”
툭.
그 순간, 함춘석의 입속에서 튀어나온 떡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막혔던 목이 뚫리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온 함춘석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연신 깜빡였다.
“환자분. 괜찮으십니까?”
“켈록켈록! 네, 괜찮아요.”
조금 전까지 하얗게 질렸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교수님! 응급실 잡았습니다!”
그때,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박상우의 방으로 스트레처 카를 밀고 들어왔다. 급하다고 했더니, 그녀가 직접 의료진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그제야 박상우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어? 이거…… 교수님, 혹시, 여기서 기관 절제를 하신 건가요?”
응급실 레지던트는 함춘석의 목에 꽂혀 있는 볼펜대를 가리켰다.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어. 하아, 목에 상처가 생겼으니까 빨리 데리고 가셔서 소독하고 꿰매 드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의료진들은 스트레처 카에 함춘석을 싣고 나갔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아니야. 괜찮으니까 나가 봐. 아, 그리고 그 환자 인트라뮤럴 해마토마(Intramural Hematoma: 대동맥벽 내 혈종)니까 조심하고.”
박상우는 한 차례 한숨을 내쉰 후 의료진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 * *
다음 날, 함준호가 다시 박상우를 찾아왔다.
“의료 장비도 없이 이렇게 시술하는 건 불법 아닙니까?”
함준호가 부러진 볼펜대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왜요? 이것도 소송 거시게요?”
“하하하,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농담!”
함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선생님과 농담할 시간이 없습니다. 농담하시려 들어오신 거라면 돌아가 주시죠.”
“잠시만요, 교수님!”
박상우가 일어서려 하자, 함준호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 아버지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함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다.
“…….”
“아버지한테 말씀 들었어요. 이번 일은 아버지 실수입니다. 아버지께서 워낙 떡을 좋아하셔서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게, 그래서 말인데…… 이번 소송은 철회하려 합니다.”
“철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박상우는 함준호의 뜻밖에 말에 깜짝 놀랐다.
“제가 원래 의사라면 치를 떠는 사람인데, 교수님을 뵈니 조금은 맘이 흔들리는군요. 어쩌면 제가 너무 큰 편견 속에 빠져 있지 않았나 합니다. 의사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구나 하는 편견이요.”
지난번과 달리, 함준호의 감정은 많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철회하신다는 건, 소송을 포기하겠다는 겁니까?”
“네. 두 분을 직접 뵈니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걸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분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기수 교수님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천 교수가 왜요?”
“얼마 전, 천 교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더니, 왜?’
“천 교수가요? 갑자기 찾아간 건가요?”
“제 앞에서 무릎을 꿇으시더군요. 지금껏 살면서 그런 의사는 처음입니다.”
함준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천 교수가 무릎을 꿇었다고요?”
“네.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의사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긴 쉽지 않거든요. 죄송하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실수를 인정하는 게 되니까요.”
“…….”
“하지만 천 교수님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천 교수님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의사다운 의사를 만난 거죠.”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다른 의사들 같았으면, 자칫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그동안 수도 없이 봤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은 미련 없이 응급 시술을 하셨습니다.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이에요. 두 교수님을 보면서, 제 마음의 편견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함준호는 예의를 갖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저 역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에요. 제발, 우리 아버지 살려 주십시오. 교수님.”
함준호는 다시 한번 자세를 갖춰 부탁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들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던 함준호의 마음이 녹는 순간이었다.
* * *
그리고 며칠 후, 함춘석 환자의 수술실.
“지금부터 함춘석 환자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환자는 인트라뮤럴 해마토마가 있으며, 혈종의 크기가 상당히 큽니다. 자칫 아올타(대동맥)가 파열되기라도 하면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혈종부터 제거하고, 일부 찢어진 내막을 봉합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팡, 팡팡, 팡팡팡!
대낮같이 밝아지는 수술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었다.
“김 선생, 메스!”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함춘석의 혈종 제거 수술이 시작되었고, 온 힘을 기울인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상우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오자, 함준호가 다가와 양손을 움켜쥐었다.
“환자분께서 잘 버텨 주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환자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의사가 되어 주십시오. 언제나 교수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주일 후.
박상우는 그간 자주 들렀던 카페 윈스턴을 찾았다.
“교수님,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죠?”
“물론이죠. 요즘 진료가 바쁘시나 봐요? 전에는 자주 오시더니…….”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주문할게요.”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죠?”
“어, 기억하시네요?”
“당연하죠. 우리 가게 단골이신데.”
“친절하시네요. 그런 것도 다 기억하시고.”
“아무나 기억하는 건 아니에요.”
커피를 내리던 여주인, 한영은이 눈웃음을 쳤다.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내린 웨이브 머리, 그리고 단아하면서도 귀여운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그나저나 교수님,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
“네?”
“앞머리 쪽에 새치가 생긴 것 같아서요. 여기, 이쪽이요.”
커피를 내온 여주인이 박상우를 힐끗거리며 살짝 흘러내린 커피를 냅킨을 세심하게 닦아 주곤, 머리 한쪽을 가리켰다.
“아, 이거요? 새치 아니에요. 언제부턴가 흰 머리가 좀 생기더라고요. 염색을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커피를 받아든 박상우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염색이요? 안 하셔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 교수님은 살짝 희끗거리는 게 더 멋지거든요. 브릿지 한 것 같아서.”
그녀가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게 멋있나요?”
“물론, 아무나 멋있진 않죠. 교수님이니까 어울리는 거…….”
덜컹.
“아악!”
그때,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너 이리 와!”
한 남자가 여자 손님의 머리끄덩이를 잡은 채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