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1)
신의 메스-21화(21/249)
21화 욕쟁이 할아버지 (5)
“아주머니! 빨리 119에 신고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아주머니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저씨들! 아저씨는 저 골목길 차 좀 치워 주세요! 이 상태라면 구급차가 온다고 해도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박상우가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들을 가리켰다. 이미 언덕으로 올라오면서 상황을 파악해 둔 것이다. 누구보다 더 신속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그였다.
“내 차도 아닌데, 어떻게 저 차를 치웁니까?”
“하……, 일단 뺑소니라고 소리를 질러 보세요. 그러면 차 주인들이 나올 겁니다. 그것도 안 되면 여러분들이 밀어내시기라도 해야죠! 잘못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빨리요!”
“아, 알았습니다.”
“뺑소니야! 누가 차를 박아 놓고 도망갑니다! 이 차 주인분들은 나와 보세요!”
두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자동차가 주차된 곳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뺑소니?”
그 소리에 골목길 양쪽에 빼곡히 들어찬 집에서 벌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그게 아니고요. 차, 차 좀 치워 주세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구급차가 못 들어옵니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차 주인들은 속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람이 죽어 간다는 말에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모두 자기 일처럼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호흡은 터졌다!’
박상우가 김 할아버지의 머리에 꽂혀 있는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뭇가지가 머리에 박혔으나 상처는 깊지 않았다. 뇌 손상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나무가 낙하할 때의 충격에 대해 완충 장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 정도면 지주막하출혈은 어느 정도 있다 해도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아주머니, 저, 모포하고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박상우가 두리번거리더니 빨랫줄에 걸려 있는 모포를 가리켰다.
“네, 네. 여기 있어요.”
아주머니가 신속히 모포를 걷어 와 박상우에게 전달했다. 전장에서 장수가 명령하면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듯, 어느 순간부터 박상우는 야전 사령관이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모포를 둘둘 말아 할아버지의 목에 대고 수건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경추 보호대를 대신하는 임시 조치였다. 박상우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후, 떨어질 때 충격으로 피머(Femur: 대퇴골)가 박살 나면서 날카로워진 모서리가 정맥을 침범했어! 일단 지혈부터 해야겠다!’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우욱, 그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고 할아버지의 대퇴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고는 시간을 확인하며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추후,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분 단위로 할아버지의 상태를 적는 듯했다.
“저, 정말 대단하네. 저 의사 양반!”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응급조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제 2분! 산소호흡기만 장착해 주면 할아버지, 살릴 수 있다!’
박상우가 초조하게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박상우가 시뻘겋게 달궈진 얼굴에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박상우. 이젠 하늘의 뜻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제발!’
박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어! 소, 손! 할아버지 손이 움직여요!”
그 순간 한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하, 할아버지!”
아이의 말대로 할아버지가 손과 발을 꿈틀거렸다. 온 힘을 다한 박상우의 응급조치가 효과를 보는 순간이었다.
“됐어! 호, 호흡이 완전히 돌아왔어!”
웃통을 벗은 채 할아버지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댄 박상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와!”
“저 젊은 양반이 사람을 살렸다!”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죽은 가족이 살아온 양, 모두 양팔을 치켜들었다.
“하, 할아버지! 정신 좀 드세요?”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허억, 허억. 여, 여가 어디여?”
할아버지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하, 할아버지!”
털썩, 그 한마디에 다리에 힘이 풀린 박상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삐뽀 삐뽀.
때마침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가까스로 골든아워에 맞춰 도착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박상우는 그제야 추위를 느꼈다.
“아저씨, 이거 입으세요!”
그 순간 한 아이가 다가오더니, 아까 박상우가 벗어던졌던 점퍼를 건넸다. 아직 쌀쌀한 날씨, 어느새 박상우의 등판은 꽁꽁 얼어있었다.
“고마워, 꼬마야!”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
꼬마가 박상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후우~.”
그제야 박상우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 * *
“비켜 주십시오.”
간신히 구급차가 늦지 않게 도착했다. 구급 대원들이 할아버지를 들것에 조심스럽게 옮겨 차에 태웠다.
“신림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기실 거죠?”
박상우가 구급 대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 여기서 그 병원이 가장 가까우니까요.”
“병원에 가시면, 이걸 담당 선생님께 전해 주십시오.”
박상우가 뭔가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구급 대원에게 전달했다.
“이게 뭡니까?”
“음, 지금까지 저 할아버지의 경과를 분 단위로 적어 둔 겁니다. 아마 할아버지 수술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아, 그리고 머리에 박힌 나뭇가지는 절대로 뽑아내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아…… 네. 물론이죠.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응급조치도 너무 완벽하게 잘하셔서 놀랐는데. 어느 병원 의사십니까?”
메모지를 받아 든 구급 대원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알 필요 없으시고요. 아무튼, 할아버지를 잘 부탁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잘 전해 드리도록 하죠.”
“여…… 여보게. 의사 선상!”
의식을 되찾은 김 할아버지가 박상우를 향해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박상우가 황급히 구급차에 올라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려. 할망구가 짝사랑하는 잘생긴 의사 양반 아냐.”
“맞아요! 할아버지. 저 박상우입니다.”
“흐, 흐음, 자네가 날 살린 거야?”
“네? 네.”
“쓸데없는 짓을 했구먼. 뭐하러 날 살린 거여.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이러면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는 약속을 못 지키잖여!”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김순임 할머니가 원하시는 게 아니니까요.”
“그, 그건 무슨 소리여? 할망구가 원하는 게 아니라니…….”
허억 허억, 할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알고 싶으시면 수술 잘 받으시고 빨리 완쾌하십시오. 그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말을 많이 하시면 안 돼요!”
박상우는 그렇게 대충 둘러댔다. 어떻게든 삶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회복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출발하십시오. 빨리 서두르셔야 합니다.”
탕탕탕, 박상우가 차에서 내려 문짝을 두드렸다.
* * *
김 씨 할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이송된 후, 박상우는 할아버지가 사시던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뭐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장의 편지. 할아버지의 유서였다.
‘하, 할아버지!’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박상우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할멈! 지금쯤이면 천당에 도착했겠지? 벌써 자네가 보고 싶구먼. 애들은 걱정하지 말더라고. 다들 장성해서 잘사는 거 자네도 알자네. 혹시, 자네가 날 못 알아볼 것 같아 옛날에 자네가 사 준 양복을 꺼내 입었어! 어뗘! 이만하면 폼 나지 않는감? 나가 곧 따라갈라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말더라고!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갈 거인게.]할아버지가 남겨 둔 마지막 유언이었다.
‘할아버지!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데, 어쩌죠……? 하지만, 할아버지! 저도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을 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저 역시 당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는데, 저희 할머니가 절 살려 주셨어요.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라고요! 김순임 할머니가 하늘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그러니까 할머님을 위해서라도 꿋꿋이 이겨 내셔야 합니다!’
편지를 읽은 박상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 * *
그리고 며칠 후.
띠리리링,
인턴 생활 마지막 오프 날, 박상우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박상우 선생님입니까?”
“네. 그런데요.”
“여기, 신림대 병원인데요. 혹시 김삼식 할아버지라고 아십니까?”
김 씨 할아버지를 담당한 간호사의 전화였다.
“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김 할아버님이 박상우 선생님께 꼭 연락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할아버님이 선생님을 간절히 찾고 있어요.”
“아, 그래요?”
“네. 혹시 병원에 오실 수 있나 해서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드르륵, 전화를 끊자마자 박상우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주머니에 넣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 * *
“이, 이리 와.”
할아버지가 박상우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큰 수술을 받은 터라 머리카락 하나 없이 부쩍 야윈 모습이었으나 워낙 건강한 체질이었기에 안색은 좋아 보였다.
“앉아!”
“네.”
“얼른 말혀 봐. 할망구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여?”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으셨어요?”
박상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려. 빨리 말 안 하고 뭐 해?”
할아버지가 답변을 재촉했다.
“에이, 그건 그냥 해 본 소린데요. 할아버지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서.”
하하하, 박상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흠, 지금 늙은이 놀리는 겨?”
“아……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 제가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남기신 편지를 가지고 있어요.”
“뭐, 뭐야? 당장 이리 내놔 봐.”
“아, 알았어요.”
박상우가 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건네었다.
* * *
‘선생님! 이거 708호 할아버지 점퍼 같은데, 두고 가셨나 봐요.’
‘아, 네! 주세요.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며칠 전, 입원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건네준 할아버지의 낡은 점퍼. 그 안에 있었던 편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것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탓에 미처 할아버지가 확인하지 못했다.
* * *
“이, 이게 뭐야?”
또르르, 편지 봉투를 열어 보자 굴러떨어지는 한 쌍의 금가락지. 그리고 봉투 안에 가지런히 편지 한 통이 담겨 있었다.
“흠, 읽어 보세요. 할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편지 같아요.”
[영감! 나, 순임이여. 이제 나가 당신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어요. 영감, 영감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하늘나라에 있겠죠? 흠, 나는 암시랑 안 혀는디, 딱 하나! 영감이 나 말고 여시 같은 노인정 할망구한테 홀딱 넘어갈까 걱정이어유. 그것이 젤로 걱정이어요. 후후후, 화나셨수? 농이여, 농! 그나저나 잘 읽어 보셔요. 혹시나, 영감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봐 노파심에 이 편지를 쓰는 거니께.]편지를 읽고 있는 할아버지의 눈이 점점 흐려지자 박상우가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내는 죽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라. 꽃 구경, 사람 구경 그리고 시상 구경 잘하고 가는디 뭐가 두려워요. 그 뭣이냐, 테레비 드라마에 나온 말 맹키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흐리나, 좋으나 내는 영감과 함께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라.그러니까 영감도 남은 소풍마저 재미지게 놀다가 천천히 올라오셔요. 내가 못 알아볼까 봐 걱정은 마시고요. 그라니께, 그 낡아 빠진 양복은 버려요. 그거 안 입어도 나가 한눈에 알아볼 테니께.
아 참, 그리고 말이어요. 우리 식 올릴 때 정한수 한 사발 올려놓고 혔잖아요. 옥가락지 하나 끼지도 못해서 천추의 한이 되어서 이 금가락지를 하나 샀어라!
당신이 잘 가지고 있다가 난중에, 아주 난중에 저세상에서 나 만나면 하나는 영감이 끼고 하나는 내 손에 끼워 주셔요. 알았죠? 만약에 쓸데없이 내 허락도 없이 후딱 올라오면 나가 참말로 모른 척할 거여요.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 오셔요.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는 약속은 전부 뻥인께!
내가 바라는 건 이것뿐이어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안 혀요. 나 정말 행복했어라. 사모혀요. 내 사랑!]
후두두둑
할아버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 편지지 위로 떨어졌다.
“할아버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마시고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게 할머니가 진정으로 바라시는 거예요! 알았죠?”
박상우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할아버지가 흐려진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먼. 잘생긴 의사 선상.”
할아버지도 박상우의 손 위에 말라비틀어진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겨울의 끝자락, 창밖에 개나리 봉오리가 피어오르려는 듯 한껏 힘을 주고 있었다.
* * *
한 달 남았던 인턴 생활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덧 이듬해가 되었다. 박상우와 그의 인턴 동기들은 본격적으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상우는 모두의 예상대로 흉부외과에 지원했고, 그곳에서의 본격적인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삐그덕, 천기수가 조심스럽게 TS 의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헤헤헤, 상우야. 나 왔다!”
천기수가 문틈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너, 어떻게 된 거야?”
“자식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몰라? 내가 네놈을 이 험한 TS에 남겨 놓고 걱정이 돼서 잠이 와야지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험한 세상, 다리가 되려고 왔지. 나도 지금부터 여기서 근무한다!”
흠흠흠, 천기수가 헛기침하며 박상우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잘 왔다! 내가 봐도 넌 딱 TS 체질이야.”
천기수가 성형외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상우가 모르는 척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자자! 앞으로 잘해 보자. 박상우!”
툭툭, 천기수가 거만한 표정으로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여기가 너희들 조잘대는 방앗간이야? 너희들 당장 옥상으로 안 기어와?”
쾅, 한 남자가 거칠게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악명 높은 흉부외과의 버섯돌이, TS 치프 정현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