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16)
신의 메스-216화(216/249)
216화 최후의 수술 (6)
“자네도 한번 한일병원으로 같이 가 볼 텐가? 병원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저는 좋죠. 그런데 저처럼 낯선 사람이 가도 될까요?”
“물론이지. 상관없어. 의사가 환자 보러 가는 건데, 뭐.”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윤상부 교수와 박상우는 곧장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박 씨의 병실에 도착했지만, 아내로 보이는 여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갑자기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아저씨는 좀 어떠세요?”
“뭐, 그냥 그렇죠.”
그녀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수술은 내일 받으시는 거죠?”
“네. 내일 10시 수술이에요.”
“그래도 수술이 일찍 잡혀서 다행입니다. 아저씨는 어디 나가셨나요? 자리에 안 보이시네요.”
“몇 가지 검사받을 게 있다고 해서 1층에 잠깐 내려갔어요. 곧 올라올 거예요.”
그때, 마침 박 씨 아저씨가 스탠드에 링거를 걸고 느릿느릿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네. 검사는 잘 받으셨나요?”
“네.”
하지만 딱히 윤상부 교수를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분은 누구신가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아, 서울 명성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예요.”
“안녕하세요. 박상우라고 합니다.”
“아, 예.”
박 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곤 힘없이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하루에 서너 번씩 산을 오르내린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건강했다던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상부 교수의 시선이 살짝 그의 손을 향했다.
“바쁘실 텐데 뭐 하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시 들렀어요.”
“그러시군요.”
“수술은 내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잘 되실 겁니다.”
“글쎄요.”
“요즘 워낙 의학이 발달해서, 암도 잘 치료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그거야 뭐, 그냥 하는 소리죠.”
“힘내십시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손을 한번 봐도 괜찮을까요?”
윤상부 교수는 무언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 듯, 그의 손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손이요? 갑자기 손은 왜요?”
갑작스러운 부탁에 박 씨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방금 보니까, 링거 바늘이 손등에 잘못 박혔는지 피가 조금 나는 것 같아서 제가 바로잡아 드리려고요.”
“그깟 피 좀 나면 어떻습니까? 내일이면 폐 한쪽을 다 날려 먹을 판인데.”
여느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박 씨 또한 삶의 의욕이 많이 저하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냥 그렇게 두면 안 돼요. 혈관에 공기가 들어가면 안 좋거든요.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윤상부 교수는 박 씨의 손을 잡고 바늘을 만지는 척하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쩍쩍 갈라져 버린 손톱에 윤기를 잃고 탁해진 낯빛, 오른쪽 뺨에 유난히 도드라진 홍조까지. 게다가 두 눈썹 사이에 허연빛이 돌고 있다. 폐 쪽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박상우는 윤상부 교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저씨, 혹시 목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있나요?”
윤상부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처음엔 관심도 없다가, 윤상부 교수가 자신의 증상을 짚어 내니 조금은 관심을 보였다.
“전에도 그러셨나요?”
“아뇨.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서 목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경부 강직! 전형적인 폐암의 증세는 아닌 것 같은데…….’
옆에서 듣고 있던 박상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군요. 바늘은 이제 잘 꽂혔는데……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옷도 잠시 들춰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그의 아내가 다가와 박 씨의 웃옷을 위로 올려 주었다.
‘이런, 피부 곳곳에 궤양성 발진까지……. 확실히 폐암의 주요 병변은 아니야!’
박 씨의 배와 등 주변에 움푹 들어간 궤양이 산재해 있었다.
“이런 발진은 왜 생겼나요?”
윤상부 교수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이 양반 피부가 나이답지 않게 좋은 편이었거든요? 얼굴에 잔주름도 없고 그랬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근래 들어 이런 게 생기더라고요.”
“이런 증상이 생긴 지는 얼마나 됐나요?”
“한 달쯤 된 거 같아요.”
‘한 달이라……. 그렇다면 박 씨 부부가 이곳으로 이사 온 날짜와 얼추 비슷한데…….’
“아저씨가 우리 마을로 이사 오신 날과 얼추 비슷하네요?”
“네. 맞아요. 그때쯤부터 생긴 것 같아요.”
‘이사 온 날 이후로 갑작스럽게 생긴 피부 병변. 단순한 문제일까?’
“치료는 받으셨나요?”
“네. 안 그래도 의사한테 물어보니까 단순 피부염이라고 해서요. 간단한 치료는 받았지만, 연고를 발라도 잘 낫질 않네요.”
“그렇군요.”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박 씨는 옷을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여보!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요. 당신이 죽긴 왜 죽어요. 의사 선생님이 한쪽 폐가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 없다고 했잖아요!”
“젠장, 그거야 항상 의사들이 하는 말 아니야? 폐 하나가 없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냐고!”
박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아주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폐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정상적인 생활을…….”
“위로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두 분 다 이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피곤해서 자야 할 것 같은데.”
박 씨는 윤상부 교수의 말을 냉정하게 잘라 버렸다.
“병문안 오신 분한테 이러면 어떡해요.”
“몰라! 다 귀찮으니까 나가!”
박 씨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이불을 머리 위까지 잡아끌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뇨. 괜찮습니다. 아저씨께선 주무시려는 것 같으니까, 밖에서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네, 선생님.”
윤상부와 박상우는 박 씨의 부인과 함께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아주머니, 혹시 아저씨 수술 날짜를 이틀 정도 미룰 수는 없을까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윤상부 교수는 박 씨 아내에게 수술 날짜를 미룰 수 있는지 물었다.
“수술 날짜를요?”
“네. 잠시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한 2~3일 정도만 미룰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절제하는 수술이라면 2~3일 후에 수술해도 문제가 없어요.”
“알아보신다는 건 어떤……?”
“어쩌면 아저씨의 병이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 리가요. 여기 의사들이 다 암이라고 했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증세를 보이는데도 암이 아닌 케이스가 간혹 있어요.”
“정말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윤상부 교수가 서울에서 유명했던 의사라는 걸 잘 알았기에, 박 씨 아내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네. 흔한 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럼 제가 남편한테 잘 말해 볼게요.”
“아뇨. 가능하시면 아주머니께서 직접 의료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 씨 아저씨는 저를 조금 꺼리는 것 같아서요.”
“한번 해 볼게요. 다들 암이라고 했는데,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거면…….”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어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남편이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데 제가 뭔들 못 하겠어요? 한번 말해 볼게요.”
생각지도 못한 희망이 생긴 덕분인지,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폐를 찍은 시티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거요? 보험 때문에 CD에 저장해 놓은 게 있어요. 바로 드릴까요?”
박 씨 아내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네. 잠시 확인해 보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집에 있으니까, 아들한테 말해서 선생님께 전해 주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예약된 수술을 연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럼에도 윤상부 교수는 뭔가를 의심하고 있다.’
박상우 역시, 윤상부 교수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 * *
“교수님. 아까 그 환자분은 정말 폐암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시티를 보여 달라고 하신 거죠?”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나?”
자신의 병원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윤상부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까 병실에서 보니까, 확실히 암이 아닌 특이한 병변이 보이더라고요. 어쩌면 폐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윤상부 교수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 이런. 내가 지금 급히 서울에 올라갈 일이 생겼는데, 혹시 자네가 먼저 사진을 확인해 줄 수 있겠나? CD는 곧 가져온다고 하는데…….”
핸드폰을 확인한 윤상부 교수가 낭패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서 올라가 보세요.”
“그러면, 자네만 믿고 서울에 좀 잠시 다녀옴세. 내가 괜한 수고를 끼치는구먼.”
“아니에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어야죠. 서울이든 여기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아픈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허허,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그래. 다녀옴세.”
“네, 교수님.”
잠시 후, 박상우는 박 씨 아저씨의 아들인 정호가 CD를 받아들고 곧장 시티 사진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1.5센티가량의 폐 우하엽 결절,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약 5센티 떨어진 폐 우하엽 중심부에 2센티 크기의 또 다른 결절. 과대사성이 아니니 암이라 진단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결절이라면 다른 원인일 수도 있는데…….’
박상우가 또 다른 CD를 꺼내 컴퓨터에 삽입했다.
‘지지오(GGO, Ground-Grass Opacity: 간유리 음영)도 있군.’
간유리 음영이란 흉부 시티를 찍을 때, 유리를 갈아서 뿌려 놓은 것 같은 뿌연 화면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간유리 음영이 생겼다는 건 폐에 염증이 있다는 증거. 이게 암일 수도 있지만, 단순 염증일 수도 있어. 물론 간유리 음영이 암의 씨앗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간유리 음영을 보인 환자들 대부분에게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으니까. 하지만, 간유리 음영이 보인다는 건 반대로 폐 선암 초기라는 것을 의미해. 지금처럼 전폐 절제를 해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망설였던 순간도 잠시, 박상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 사람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1센티 미만의 간유리 음영이라면 간단한 시술로 충분히 완치할 수 있으니까. 두 개의 폐 결절과 간유리 음영, 이 결과를 놓고 본다면 암일 확률은 90%이지만, 적어도 전폐절제술을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은 아니야. 10%는 암일 수도 있는 거지만, 의사는 90%에 현혹되지 말고 10%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 그럼 지금부터 희망을 찾아볼까?’
박상우는 자료를 펼쳐 놓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결핵 PCR 검사상으로 문제가 없다면, 결핵은 아니라는 건데…….’
주요 변수 하나가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폐렴 증세도 보이지 않았고, 기생충에 관해서도 감염 소견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크립토콕쿠스 네오포르만스(Cryptococcus Neoformans: 진균의 일종) 감염뿐인데…….’
진균의 일종인 크립토콕투스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감염되어 폐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으로, 증세는 폐암이나 폐결핵, 폐렴과 상당히 유사한 질병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크립토콕투스 감염 검사를 한 흔적은 없었다.
주로 비둘기의 분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크립토콕투스 균, 이것이 마지막 남은 변수였다.
‘암이 아닐 확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날이 밝는 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그 5%가 100%일 수도 있으니까.’
박상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