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18)
신의 메스-218화(218/249)
218화 최후의 수술 (8)
“진료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재검사 결과, 폐에서 발견된 결절은 악성 종양이 아닌 만성 육아종에 의한 단순 염증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한창도 교수는 허리를 굽혀 그녀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저희가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암이 아닙니다.”
의사는 결코 실수했단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오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창도는 아무 거리낌 없이 환자들에게 사과했고, 모든 잘못을 인정했다. 적어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돌팔이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주머니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감사는 박상우 교수님에게 하셔야죠. 저분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잘못된 수술을 할 뻔했습니다.”
한창도는 의자에 앉아 있는 박상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박상우의 앞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오열했다.
“선생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박상우는 흐느끼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 후 한창도를 따라 그의 과장실로 향했다.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행입니다. 많이 불쾌하셨을 텐데도 제 말을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교수님 말씀을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믿겠습니까? 다만 환자분께 확인했던 건…….”
“당연히 그러셔야죠.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리고, 환자분들께 적절한 보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 드리기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진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지셔야 합니다. 자칫 멀쩡한 폐를 잃을 뻔했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저와 병원은 모든 실수를 인정하고, 법적인 부분의 책임이 필요하다면 받도록 할 생각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의사로서 사회에 책임져야 하는 건 맞지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 교수님을 뵈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명백한 잘못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은폐하려 드는 의료계의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요.”
“정말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존경합니다, 한창도 교수님!”
박상우는 한창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렇게, 박상우는 멀쩡한 폐를 날릴 뻔한 환자를 구할 수 있었다.
* * *
“역시 대한민국 최고 써전답네. 정말 수고했어, 박 교수!”
서울에서 돌아온 윤상부 교수는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힌트를 주지 않으셨다면 저도 몰랐을 거예요. 교수님께서도 박 씨 아저씨가 암이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하셨죠?”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지. 나였으면 자네 같은 과감한 행동은 못 했을 걸세. 자넨 정말 대단해! 하하하!”
윤상부 교수는 목젖이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아, 자네도 이젠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사장님 수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그래야죠. 잘 쉬었으니, 병원 일도 마무리 지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올라갈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래. 나도 같이 올라감세. 미력한 힘이나마 나도 자네를 돕고 싶구먼. 명성병원이면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윤상부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까지 신경 써 주실 건 없는데…….”
“아닐세. 최상엽 이사라면 나도 몇 마디 거들 게 있을 것 같군. 나는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수술에는 따로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같이 올라가시죠.”
박상우와 윤상부 교수는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 * *
서울에 올라온 박상우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윤석현 변호사의 사무실이었다.
“형님, 준비는 다 된 겁니까?”
“물론이지. 지동철 원장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완벽하게 준비됐어.”
“다행이군요. 승산은 있을까요?”
“승산이라…….”
“왜요? 힘들 것 같나요?”
박상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하하하! 자네도 참. 이건 승산 정도가 아니야. 우리 회장님이 오셔도 이 건은 못 뒤집어. 최상엽 이사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되네.”
김영순 간호부장이 근 20년간 차곡차곡 모아둔 비리 장부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여기에 더해, 지동철 원장이 자신을 희생하며 넘겨준 각종 자료를 통해 최상엽 이사의 개인 비리뿐만 아니라 횡령, 업무상 위계 등 모든 것들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윤석현 변호사가 모든 죄를 입증할 자료를 작성한 것이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지동철 원장님도 피해 가진 못하겠군요.”
“당연하지. 원장직을 내려놓는 건 물론이고, 법적인 책임도 면하기 어려울 거야. 다행히 따님 결혼식은 어제 무사히 치렀으니까 여한은 없을 거고.”
윤석현 변호사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죠.”
박상우의 얼굴도 살짝 어두워졌다.
* * *
“안녕하세요, 원장님.”
“박 교수! 어서 들어오게.”
박상우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자, 지동철 원장은 맨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이해 주었다.
“따님 결혼식은 무사히 잘 치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제가 경황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모든 게 박 교수 덕분인데. 솔직히 나만 아니었어도 자네가 그런 수모를 겪으며 불명예 퇴직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오히려 내가 얼굴을 들 수가 없구먼. 면목이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온 것도 전부 원장님 덕분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무슨 수고를 했겠나, 자네가 전부 다 한 것을. 혹시나 자네한테 서운하게 한 게 있었다면 잊어 주게나. 이번 일로 이 늙은이가 자네한테 배운 게 너무 많아. 아무래도 내가 인생을 헛산 듯싶으이.”
지동철 원장이 눈이 젖어 들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도 다시 재기하실 수 있습니다.”
박상우는 지동철 원장의 손을 부드럽게 지동철의 잡아 주었다.
“듣기 싫지는 않구먼. 고맙네. 기자회견장에는 나도 참석할 걸세. 지금까지 잘못했던 모든 것들을 참회하고 싶어.”
“원장님,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야. 내가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걸세. 이 짐을 다 짊어지고 저세상으로 가고 싶진 않아. 모두 덜어 놓고 가야지.”
지동철 원장은 허허 웃으며 먼 곳을 바라봤다.
“원장님.”
“하하하, 늙은이가 너무 궁상을 떤 겐가? 아무튼, 우리 명성병원은 자네가 제대로 이끌어 주게. 그동안 명성은 너무 안일했어. 이제는 자네 같은 젊은 피가 나서서 혁신을 보여 줘야 하네. 나나 최상엽 이사 같은 고인물은 덜어내야 할 시기야. 우리가 남아 있으면 결국 썩어서 시궁창 냄새만 피울 뿐이지 않겠나? 명성은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일세. 그리고 이젠 자네 어깨에 명성의 미래가 달렸어.”
지동철 원장이 박상우의 어깨를 굳게 움켜쥐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장님. 제가 명성을 바로 세울 것입니다. 곁가지 박상우가 말입니다.’
박상우는 양 주먹에 힘을 주고 굳게 다짐했다.
* * *
최현호 이사장의 수술 하루 전.
박상우는 최상엽 이사의 눈을 피해 천기수를 불러냈다.
“상우야, 고생 많았다.”
천기수가 달려와 박상우의 몸을 끌어당겼다.
“고생은 무슨? 공기 좋은 데서 휴양하고 왔는데, 뭘.”
“하하하, 네가 쉬다가 왔다고? 윤 교수님한테 말씀 다 들었어. 거기서도 환자 하나 살려냈다면서?”
“그 소문이 벌써 퍼졌어?”
“당연하지, 인마. 하여간 너는 천생 의사다. 다른 직업은 생각할 수도 없어. 무슨 팔자가 그러냐?”
천기수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게 말이다. 난 계속 의사로 살다가 죽을 팔자인가 봐. 그건 그렇고, 최상엽 이사의 동향은 어때?”
“아주 난리가 났지. 너 내보낸 다음엔 이사장님 진료진도 자기 사람들로 채워 넣고, 하나하나 정적들을 제거하고 있는 것 같아. 곧 황천길 건넌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말이야. 쯧쯧.”
천기수는 그 상황을 떠올리며,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긴 하지. 제임스는 잘하고 있는 거지?”
“물론이야. 그 인간, 이번에 제대로 개과천선했어. 자네가 준 미션을 해결하느라고 아주 열심히 일하더군. 처음 봤을 때는 망나니도 그런 개망나니가 없었는데 말이야.”
“이제 내일이면 수술이네. 제임스 없이는 이 수술 불가능하다는 걸 명심해 줘.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해. 알지?”
“당연하지. 수술 준비는 이제 완벽해. 제임스와 네가 각각 집도의와 퍼스트 자리에 서기만 하면 게임 끝이야. 너희 둘은 역사에 기록될 최고의 수술을 하게 될 거야.”
천기수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너무 과장이 심한 거 아냐?”
“크크크, 눈치챘냐?”
“하여간 너란 놈은.”
천기수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킥킥거렸다.
“최상엽 이사 관련 비리는 어떻게 할 작정이야? 보니까, 최 이사는 무방비 상태인 것 같던데.”
“아이러니하게도 최현호 이사장님이 수술받는 날, 최상엽 이사는 죽겠지. 모든 건 내일 방송을 보면 알게 될 거야.”
“아! 언론으로 모든 걸 폭로하려고?”
“그 방법뿐이었어.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해야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거잖아?”
“맞아! 이제 명성도 예전의 명성이 아니지. 모든 게 썩어 버렸어. 단순히 도려내는 수준으로는 안 돼. 뿌리까지 걷어 내야겠지.”
천기수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든 것이 완벽해질 때까지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자칫 잘못하다간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물론이지. 명심하고 있어.”
“그래. 내일 병원에서 보자.”
* * *
수술 시작 6시간 전, 모든 준비를 마친 박상우는 최상엽 이사실을 찾았다.
“어? 박 교수. 자네가 웬일인가?”
박상우의 뜻밖의 등장에 최상엽 이사는 적잖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뭐,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지. 자네는 그동안 어찌 지냈나?”
예전과는 달리 최상엽은 한결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 잠시 시골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거참 잘했구먼. 열악한 지방 의료 발전에 매진했다니. 정말 장한 일이야. 자네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어울려? 웃기는군.’
“네. 내려가서 보니, 생각 외로 서울과의 의료 격차가 심하더군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선해야 할 것 같아요.”
“암! 암! 그런 면에서 자네 같은 인재들이 필요하지. 자네의 그런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네. 그런데 우리 병원에는 갑자기 무슨 일인가?”
‘우리 병원이라고? 이제 나는 명성의 의사도 아니라는 겁니까?’
“의사가 병원에 돌아오는 것이 뭐가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수술하려고 왔습니다.”
“수술?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는 이미 우리 병원 의사가 아니야. 그런데 무슨 수술을 해?”
최상엽 이사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이사장님이 결정하시는 거죠. 저는 오늘, 최현호 이사장님 수술에 참여하러 왔습니다.”
“뭐, 뭐라고?”
화들짝 놀란 최상엽 이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