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19)
신의 메스-219화(219/249)
219화 최후의 수술 (9)
“이사장님 수술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박상우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최상엽 이사를 응시하며 말했다.
“하하하! 이 인간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만. 무슨 수술을 한다고? 내가 허락할 것 같나?”
최상엽 이사는 여전히 거들먹거리는 말투로 박상우를 무시하듯 말했다.
“이사님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이사장님의 허락을 받은 수술이니까요.”
“이 새끼가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리네? 지금 이 병원의 주인이 누군지 몰라? 어디서 정신 못 차리고 짖어 대는 거야!”
박상우의 말에, 최상엽 이사는 벌게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누가 못 가리는 건지 모르겠네요. 전 분명히 이사님께 통보해 드렸습니다. 최소한 보호자 동의는 받아야 하니까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박상우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 자식이 진짜,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최상엽 이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와, 박상우의 멱살을 움켜쥐고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놓으십시오. 지금 안 놓으시면 폭력죄도 추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상우에게선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상우는 눈을 부릅뜨고, 멱살을 잡은 최상엽 이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 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최상엽 이사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창 실랑이를 하던 그때, 정 비서가 황급히 최상엽 이사실로 들어왔다.
“뭐야!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보는 눈이 생긴 탓에, 최상엽도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 그게 아니라. 지금 텔레비전…….”
“뭐? 지금 한가하게 텔레비전이나 볼 때야? 당장 나가!”
최상엽 이사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우리 병원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빨리 보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요!”
정 비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우리 병원 사람들이 갑자기 왜 나와?”
“이사님. 그렇게 물어보지만 마시고, 직접 보시면 알 것 아닙니까?”
박상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넌…… 넌 지금 당장 내 눈에서 사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렇게 해 드리죠. 편안하게 텔레비전이나 시청하십시오. 꽤 흥미로우실 겁니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저 새끼가 잘리더니 실성을 했나?”
박상우가 말을 마치고 나가자, 최상엽은 연신 투덜거리며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화면이 펼쳐졌다.
* * *
“저, 저 인간들이 왜 저기서 나와?”
최상엽 이사의 눈동자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자 앞에는 윤석현 변호사를 필두로 지동철 원장과 윤상부 교수, 김영순 간호부장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다.
“왜들 저러고 있는 거야!”
최상엽이 미간을 좁히며 화면을 응시했다.
“정말 큰 결심 하셨습니다. 지동철 원장 선생님, 지금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지동철 원장에게 질문했다.
“명성병원은 한때 국내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확보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 안주했고, 교만해졌죠. 그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속에서 조금씩 썩어 갔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지동철 원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썩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대형 병원이 할 수 있는 모든 갑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비리는 최상엽 이사의 지시로 이뤄졌습니다.”
답변하는 지동철 원장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맞나요?”
팟! 파팟! 파팟!
기자들이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지동철 원장의 입을 주목했다.
“맞습니다. 명성은 최근 5년간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이를 만회하고자 불법 자금을 끌어들여 자본에 잠식되어 갔고, 의료 기기 업체들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면서 비용을 최소화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불량 의료 기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실수가 생기면 경영진들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또 로비를 펼치고, 다시 문제가 생기고……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네.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상엽 이사는 보건 건강 향상을 위한 정부 지원금을 가로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 왔습니다.”
“병원 돈을 횡령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최근 3년간 정부에서 우리 병원으로 지원한 금액은 100억여 원이지만, 실제로 사용된 돈은 의료 인력 채용에 30억 원, 시설 확충에 28억 원뿐입니다. 나머지 지원금은 여러 곳을 거쳐 최상엽 이사의 개인 비자금으로 활용됐습니다. 물론 저 역시 최상엽 이사의 하수인이었으니, 제 책임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큰 결심을 하셨군요.”
“그동안의 잘못을…… 가족과 국민 앞에서 사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동철 원장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김영순 간호부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동철 원장은 김영순 간호부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먼저 질문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최상엽 이사가 원내 성희롱과 성폭행을 일삼았다고 하셨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상엽 이사는 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명목으로 항상 젊은 간호사들을 회식에 참석시켰습니다. 그리고 항상 술자리에선 양옆에 간호사들을 앉혔습니다.”
“참석한 간호사들에게 술시중을 시켰던 겁니까?”
“네. 간호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직원, 그리고 의사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쳤습니다. 병원의 절대 권력자라는 지위를 악용했던 탓에,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피해자의 증언이 담긴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기자분들에게 전달해 드릴 예정이니, 사실 그대로 언론에 보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 저것들 당장 잡아 와! 당장!”
빠그작!
최상엽 이사는 텔레비전을 향해 재떨이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 전부 죽여 버릴 거야.”
최상엽 이사는 황급히 옷을 챙겨 입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최상엽 이사님.”
쾅!
그 순간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 당신들 뭐야?”
“경찰입니다. 저희와 같이 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상엽 씨.”
“최상엽 씨? 지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당장 나가!”
최상엽은 경찰 앞에서도 허영심을 버리지 못했다.
“당신이 누군지는 앞으로 알아갈 거고 여기, 체포영장 받아 왔습니다. 조용히 같이 갑시다. 자, 미란다 원칙을 고지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경찰은 체포영장을 펼치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놔! 놔! 이 새끼들아! 내가 너희들을 가만히 둘 것 같아? 너희들 사람 잘못 건드렸어!”
“하아, 그냥 체면도 있고 해서 조용히 모시려고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죠. 박 형사, 수갑 채워!”
“네. 반장님!”
“놔! 놓으라고! 지금 이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모함이야! 모함이라고!”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최상엽은 발버둥을 치며 악다구니를 부렸다.
* * *
최상엽을 만나고 나온 박상우는 최현호 이사장의 병실을 찾았다.
“이사장님께서 큰 결정을 하셨습니다.”
“자식새끼 잡아먹은 애비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그러나?”
최현호 이사장은 후련해 보이면서도 걱정이 깊은 표정을 지었다.
“최상엽 이사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명성과 수많은 환자를 살리신 겁니다. 바로 이사장님께서요.”
“허허,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런데…… 상엽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혹시 아는가?”
“이사님의 죄목이 가볍지 않아서, 쉽게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구먼. 모든 게 끝났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싶네.”
“아버님으로서 말입니까? 아니면, 명성의 이사장으로서 말입니까?”
“아버지로서 말일세.”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 이사장님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셔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사장의 자격으로는 어떤가?”
“당연히, 냉정하게 모든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 이 모든 건 이사장님께서 결정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누구도 대신해 드릴 수 없으니까요.”
“내 의지에 달렸다?”
“그렇습니다.”
최현호 이사장이 난감하다는 듯, 입가에 쓴 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 말은 내가 무슨 결정을 해도 자네는 나를 따르겠다는 거로 들리는데. 내가 이해한 게 맞나?”
“물론입니다.”
“그래. 자네가 모든 일을 끌고 해결해 왔으니까, 마지막까지 책임져 주게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상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자네가 이 병원의 미래를 책임져 달라는 말일세.”
“……미래를요?”
“앞으로 자네가 명성을 책임져 줘야겠어. 이제 우리 명성은 자네 말고는 이끌어갈 사람이 없지 않은가? 박상우, 자네가 원장을 맡아 주게나.”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지는 건가?
사냥개처럼 비굴하게 낑낑거리며 주인의 비위를 맞췄던 지난날. 앞서가는 사람들 뒤통수 때려 쓰러뜨리고, 쫓아오는 사람들을 잘근잘근 밟으며 살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는 듯했다.
박상우는 드디어 증명했다. 정의롭게 살아도,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것을 말이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당한 노력과 헌신으로 이뤄낸 성과. 박상우가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 자네라면 네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어.”
“제가 명성 재건의 초석이 될 수만 있다면, 원장을 맡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단, 공짜는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되나?”
최현호 이사장은 박상우의 양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꼭 이사장님을 살려내겠습니다.”
박상우의 역시 의지를 불태우며 양손에 힘을 주었다.
“하하하, 그래. 이 늙은이가 세상 구경 좀 더 할 수 있도록 자네가 도와주게나.”
“네, 이사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나 역시 자네만 믿네.”
“감사합니다. 저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어서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렇게 하시게나.”
“곧 뵙겠습니다, 이사장님.”
이사장의 병실을 나서는 박상우의 가슴이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 * *
박상우와 제임스, 천기수는 물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소집한 각 과의 교수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내로라하는, 명성병원 최고의 의료진들이었다.
“지금부터 최현호 이사장님의 바티스타 수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환자를 살려야 합니다. 우린 명성의 메카인 이 수술실에서 새로운 명성의 출발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될 겁니다. 새로운 명성, 다시 태어나는 명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교수님.”
“물론이지, 라이언! 당신은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써전 중 최고야!”
집도의 자리에 선 제임스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감사합니다, 제임스. 오늘은 당신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
“당연하지. 세계 최고의 써전인 당신이 퍼스트 자리에 서서 나를 도와주는데,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 있겠어? 오늘 수술은 무조건 대성공이야.”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이 패스 온!”
수술 시작을 알리는 박상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바이 패스 온!”
박상우가 선창하자, 의료진들도 힘차게 화답했다.
“환자 체온 내려 주세요.”
“네. 쿨링 다운하겠습니다.”
촤르르르.
그 순간, 체외 순환기가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박상우의 인생, 2막 1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독자님!
지금까지 ‘신의 메스’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