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33)
신의 메스-233화(외전 14화)(233/249)
외전 14화. 대통령 주치의 (1)
2022.03.26.
청와대란 말에 박상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청와대에서 제게 무슨 일로 연락을 주셨나요?”
-원장님과는 이미 의견 조율이 있었는데,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아직 연락받은 바는 없습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실은…….
청와대 비서실의 말은 간단했다. 새 정부와 함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 지금, 대통령 주치의 인선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박상우가 영광스럽게도(?) 대통령 주치의 후보군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요?”
-하하. 일단 후보군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일단 저희 입장은, 후보들에 관한 자료를 취합하고 싶다는 점입니다. 검증 절차에 들어가려고 하니, 필요 서류를 첨부해서 보내 주십사 연락을 드렸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원장님한테 전해 들은 바가 없으니 협의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필요한 서류부터…….
“저를 후보군에 넣어 주신 건 감사한 일이지만, 제가 요청한 건 아닙니다. 일단 필요 서류를 제출할지 말지는 원장님과 상의 후에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쾅-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청와대면 다야? 쌍팔년도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로 주치의 후보군이라니. 아프면 환자가 찾아오는 게 이치에 맞는 일 아닌가?’
띠리리리-
그렇게 생각하던 중, 윤주태 원장으로부터 곧바로 연락이 왔다.
“네. 원장님.”
-박 교수! 중요한 건이 있어서 전화했네.
윤주태 원장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혹시 대통령 주치의에 관한 건입니까?”
-아, 이미 들었나 보군. 당연하지. 정말 축하하네!
“정식 임명이 된 것도 아닌 후보인데, 그게 뭐 대단한 겁니까?”
-아니지. 우리 명성이 사학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가장 아쉬운 게 뭐였나? 바로 대통령 주치의를 단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것 아니겠나?
대통령의 주치의, 조선 시대로 치자면 어의에 해당되는 자리로 직책상 차관급 대우였으나,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대통령 주치의란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주치의로 선정되면 주치의단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보건당국의 이런저런 의료 사업에도 상당한 어드밴티지가 있었으니, 어떤 병원이든 군침을 흘릴 만한 자리임은 틀림없었다.
웬만한 대학병원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픈 자리였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특수성 덕분에 국립 서운대가 주치의 자리를 독식하고 있다 보니, 사학의 명문인 명성대와 연수대 입장에선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명성에도 그 기회를 주었으니, 다른 대학병원에서 주치의가 나올 확률이 매우 높았다.
“글쎄요? 그게 그렇게 흥분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먼. 아무튼, 일단 만나서 얘기함세. 내가 갈까, 아니면 박 교수가 내 방으로 올 텐가?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얼른 오게. 할 얘기가 많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 * *
박상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윤주태 원장을 찾아갔다.
“박 교수, 어서 와요.”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자자!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대통령 헬스케어 로드맵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아.”
윤주태 원장이 상기된 얼굴로 팔을 걷어붙였다.
“로드맵이요?”
“그래. 일단 전략기획실에 당부해 두긴 했어. PT 자료부터 만들어 놓으라고.”
“하아, 제 의견은 묻지도 않습니까?”
“아이고, 박상우 이사장님! 지금 그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네. 지금 경쟁자가 누군지 아나? 서운대 진료 부원장이자 소화기 내과 최고의 권위자인 윤덕중 교수에, 이번엔 연수대에서도 뛰어들었어. 누가 나왔는지는 아나?”
“누군데요?”
“연수대 부총장이자 신라의료원 원장이야.”
“신라의료원 원장이요?”
“그래. 심장 분야의 권위자인 장영철 원장이 나왔다고!”
“장영철 원장님이 후보라…….”
“소문에 의하면, 이번 당선자가 심장이 좀 시원찮다더라고. 그 소문을 듣고 연수대에서 장 원장 카드를 들고나온 거 아니겠나?”
“그렇군요.”
“자네하고 맞불을 놓겠다는 심산일 거야. 심장 분야라면 장 원장 쪽도 만만치 않으니까.”
“장 원장님이면, 심장 이식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분이긴 하죠.”
“그래. 하지만 심장 이식을 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으니 별일은 없을 테고, 다른 레퍼런스나 수술 실적, 논문 등은 뭘 보더라도 우리 박 교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윤주태 원장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잡대 출신이라고 온갖 멸시와 설움을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대통령 주치의 물망에 오르기고, 원장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다니.
박상우의 뇌리에 상전벽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감싸고 도는 윤주태의 모습에 박상우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인사는 주치의가 된 후에 받기로 하고, 일단, 서운대 쪽은 이번엔 확실히 힘들어. 그렇다면 남은 건 우리하고 연수인데, 우리가 질 수야 없지. 아무튼 총력전이야!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까. 박 교수는 당분간 이 일에 전념하는 게 좋겠어. 연수한테는 절대로 밀려선 안 돼! 암. 당연히 안 되지!”
윤주태 원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원장님,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어 보시죠.”
“뭐 필요한 거라도 있는 건가?”
“대통령 주치의 자리도 중요하긴 하지만, 저에겐 눈앞의 제 환자들이 더 중요합니다.”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아뇨. 그렇긴 한데가 아닙니다. 대통령 주치의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지 않습니까? 24시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어야 하고,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게 되면 저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면 제 환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제 일을 핑계로 내버려 둘까요?”
“누가 내버리라고 했나? 윤상부 부원장도 있고, 천 교수도 있잖아. 자네가 아니더라도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많네. 게다가, 김민준 교수도 곧 회복되면 일선에 복귀할 것 아닌가?”
“네. 그분들도 훌륭한 분들이시죠. 하지만 이사장 취임 일성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위급한 환자가 나오면 달려가고 싶습니다. 저도 제 말에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아, 대통령도 아프면 환자야!”
“네. 압니다. 하지만, 저 말고도 대통령을 보필할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저 하나만 보고 저 멀리 땅끝마을에서 1년 넘게 기다리다 올라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두고 떠나서야 되겠습니까?”
박상우에게 수술을 받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더더욱 떠날 수 없었다.
“하아, 그래. 자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래도 이번 기회는 놓칠 수가 없는…….”
“저도 원장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이렇게 애써 주시는 것도, 눈물겹게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전 제 환자를 절대 버릴 수 없습니다. 그 자리가 그렇게 탐나지도 않고요.”
“이봐, 박 교수!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이건 자네나 우리 병원을 위해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저 솔직히, 비행기 멀미도 심해요. 비행기 자주 못 탑니다. 계속 탔다간 공황장애가 생길지도 몰라요.”
“하아, 미치겠네.”
윤주태 원장이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또 오겠죠?”
“안 와, 이 사람아! 절대!”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아무튼, 제 의견은 분명히 밝혔습니다? 전 이만 회진을 돌아야 해서,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하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이 이런 건가? 하늘이 주신 기회를 제 발로 차다니.”
“어쩔 수 없죠. 제 팔자가 그렇구나, 하고 살겠습니다.”
“휴. 알겠네. 이사장인 자네가 결정해야 하는 거니까……. 아무튼, 그래도 혹시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 우리는 스탠바이하고 있겠네.”
한걸음 물러서긴 했으나, 윤주태 원장은 작은 여지를 남겨 두었다.
“괜히 직원들 헛수고하게 하지 마세요. 저 안 합니다.”
“알았다고.”
윤주태 원장은 아쉽다는 듯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흉부외과 병동 펠로우 2년 차 정재형이 멋쩍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교수님, 이건 좀 너무 단출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깡패야? 대통령 의전이라도 해? 필요 인력만 있으면 됐지. 애꿎은 수련의 애들을 고생시키지 마. 그 시간에 의학 서적을 한 줄이라도 더 보게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부족한 잠이라도 재워 주는 게 나으니까.”
“……알겠습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 과장이 앞장서고 그 뒤로 교수들, 펠로우, 레지던트, 마지막에 인턴까지 떼거리로 늘어선 의료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명성에서 볼 수 없었다.
박상우의 이사장 취임 공약 중 하나였다.
“김복길 할아버님, 몸은 좀 어떠세요?”
박상우는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이고,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살았십니더. 참말로 감사합니데이.”
“정재형 선생, 약은?”
“스퓨텀(가래)이 심해서 에르도스테인(진해거담제) 투여 중이고, 수술 부위 통증이 있다고 하셔서 가바펜틴(항경련제)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 가바펜틴은 내성이 생길 수 있으니까 주의하도록 합시다.”
“네. 교수님.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다행이군. 할아버님, 좋아지셨다니 다행이네요. 숨소리 좀 들어 보겠습니다.”
박상우가 환하게 웃으며 청진기를 집어 들었다.
“하모요. 인자는 뜀박질을 해도 가심이 한 개도 안 아픕니더. 한 40리는 거뜬할 거 같습니더.”
“하하하, 최소한 100리는 가야 발병이 안 나죠.”
“그렇심꺼? 허허!”
박상우는 김복길 환자의 가슴 곳곳에 청진기를 대본 후 청진기를 다시 넣었다.
“좋네요. 이젠 쇳소리도 안 나고 깨끗합니다.”
“감사합니더. 정말 감사합니더.”
“할아버님이 천복을 타고 나셔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담배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럼 술은 됩니꺼?”
김복길 할아버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아이고,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님 만나고 싶으시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가 잘 아는 저승차사 하나 있는데, 소개라도 시켜 드려요?”
“껄껄, 농담입니더! 담배고 술이고 이제는 일절 안 할 겁니더.”
“그럼요. 당연하죠. 한 번만 더 정수기에 술 담아 드시면, 그때는 다신 안 볼 겁니다?”
“하모요. 제가 미쳤는교?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더.”
김복길 할아버지가 정색하곤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네. 전 할아버님을 믿습니다! 믿어요!”
“당연하지예.”
“김윤찬 선생이 김복길 환자 주치의지?”
“네. 교수님.”
“자네가 책임져? 알았지?”
“걱정 마십시오. 혹시라도 정수기에 술 담아 놓으시면 제가 다 마셔 버리겠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그렇게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회진을 끝마칠 무렵이었다.
“이, 이봐. 박 교수!”
얼마나 급히 뛰어 왔는지, 윤주태 원장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박상우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길래 아침부터 땀을 흘리십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 이사장님. 잠시만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윤주태 원장이 스텝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무슨 일입니까? 곧 회의가 있는데요?”
“그게…….”
윤주태 원장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른 후 말했다.
“방금 연락이 왔어!”
“연락이요? 어디서요?”
“어디긴 어디야? 저기 위에서 연락이 왔지!”
윤주태 원장이 검지를 들어 위쪽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