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36)
신의 메스-236화(외전 17화)(236/249)
외전 17화. 대통령 주치의 (4)
2022.04.02.
“폐 CT? 그걸 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박상우가 눈매를 좁히며 김윤찬을 응시했다.
“그게…… 폐가 안 좋으셔서 오신 것 아닌가요?”
김윤찬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대통령님은 가벼운 협심증 증세를 보일 뿐이야. 그래서 자네한테 검사 준비를 하라고 한 거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김윤찬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김윤찬 선생, 대답은 그게 아니지. 왜 폐 CT를 찍어야 한다고 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 있습니다.”
“잘못 생각한 건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겠네. 대통령님의 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근거는 뭔가?”
“아, 그게…….”
박상우의 거듭된 물음에도, 김윤찬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자네와 대화할 시간은 없네만…….”
박상우가 시계를 톡톡 건드리며 말하고 나서야 김윤찬이 입을 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통령님의 목소리가 쉬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목소리를 폐와 연관시키는 근거는?”
“폐와 브롤커스(기관지) 사이를 지나가는 신경으로 인해 목소리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신경이라…… 뭐가 신경을 건드렸다고 생각하지?”
“아직 검사를 진행하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암세포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암세포라……. 목소리가 쉬는 경우의 수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어. 단적으로 래링쓰(후두)에 가벼운 인플라매토리(염증)만 생기도 목소리는 쉽게 변하지. 암세포라고 말하고 싶으면 좀 더 날 설득해야 할 거야.”
“……그렇다면, 제가 좀 더 교수님을 설득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야. 내가 바라던 바니까.”
박상우는 당돌하지만 침착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김윤찬이 나름 귀여웠다. 때문에, 그에게 좀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대통령님께서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실 때, 다리를 절며 들어오셨습니다.”
“다리를 절었다?”
“네. 그렇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대통령님은 최근에 프랙처(골절) 혹은 스프레인(골염좌)이 있었던 같습니다.”
“계속해 봐.”
박상우는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폐 선암이 생기면 갑작스러운 통증을 수반하거나, 골절이 생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골 전이가 가장 잘되는 암은 폐 선암이니까요.”
“음……. 그것뿐인가? 골절이나 염좌는 대통령님 정도의 연세에선 흔한 증세야. 골밀도가 떨어졌을 테니까.”
“아뇨.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뭔가?”
“흉통입니다.”
“흉통?”
“네. 그렇습니다.”
“내가 대통령님을 진단했을 때, 자네는 이 방에 없었을 텐데?”
“역시 흉통이 있으셨군요?”
“뭐라고?”
“짐작했을 뿐인데, 정말 흉통이 있었나 보군요.”
김윤찬이 씨익 웃었다.
“그래. 어떻게 대통령님이 흉통이 있는 걸 예상했지?”
“대통령님이 병실로 들어올 때,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르시는 걸 봤습니다. 손바닥의 위치상 플루어러(흉막)와 체스트 월(흉벽) 사이였고, 해당 부위의 통증은 폐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폐 선암이 침범해 날카로운 통증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네…… 뭐지?”
“네? 레지던트 1년 차 김윤찬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으십니까?”
박상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자, 김윤찬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폐 선암을 의심한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다만 제 추측일 뿐, 확실하진 않습니다.”
“……알겠네. 가슴 CT부터 찍어 보도록 하지. 조영증강 폐 CT 준비해 놔.”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바쁠 텐데 그만 나가 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김윤찬의 말대로 여러 가지 증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장규 대통령의 증세는 무작정 폐 선암을 제외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쉰 목소리, 염좌 또는 골절, 그리고 흉통의 양상과 부위까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의심이었다.
‘나 역시 폐 선암을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일단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지금 김윤찬의 진단은 레지던트 1년 차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이라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었다,
‘만약…… 나와 같은 케이스라면……?’
박상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통령 주치의 자리를 맡은 박상우가 생각보다 빨리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박 교수, 이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진료 부원장인 윤상부 교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취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음, 대통령님이 그동안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신 거지?”
“발견하기 쉽지 않은 병이잖습니까? 폐 선암이라는 건.”
“그렇긴 하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이제 1기라는 거겠지?”
“네. 조기에 발견했으니, 완치는 가능할 겁니다.”
“그래. 그나마 천만다행이야. 내가 사진을 좀 볼 수 있을까?”
“그렇지않아도 교수님께 보여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장규 대통령의 정확한 병명은 세기관지폐포암이었다.
“촉진 상 경부와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멍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심잡음 또한 없었고, 그 외 단순 염좌 말고는 특이소견 또한 없었습니다.”
“흠, 좌측 폐 입구 쪽에 고립성 폐 결절이 보이는군.”
윤상부 교수의 말에, 박상우가 포인터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검사 간 좌측 하부폐엽에 대략 2.5센티 정도의 고립성 폐 결절이 확인됐습니다.”
보통 크기가 3센티 이상이면 혹 또는 종양이라 하고, 그 이하면 결절이라고 불렀다.
고립성 폐 결절이라면 결절이 1개 확인된 것으로, 여러 개의 결절이 발견되는 다발성 폐 결절과는 상반된 개념이었다.
다발성 폐 결절에 비해 고립성 폐 결절은 치료하는 데도 용이했다.
“그래. 이 정도면 심각한 건 아니지. 다행인지 뭔지, 단순 세기관지폐포암이 맞는 것 같군. 세균 배양 검사나 항산균 도말 검사상에도 특별한 문제는 없지?”
“네. 특이소견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하늘이 도운 게 맞아.”
모니터를 유심히 살펴보던 윤상부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기관지폐포암.
말 그대로 기관지의 폐포에 암세포가 형성되는 선암이다.
10년 전만 해도 보험회사에서 일반 암으로 취급했을 정도로 위중한 병이었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침윤성(전이 가능성)이 없어, 제자리 암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예후가 좋은 암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 정도면 가슴은 안 열어도 되겠지? 비디오 흉강경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흉강경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비디오 흉강경.
2~5밀리미터 정도 작은 구멍을 뚫고 소형카메라가 달린 내시경을 집어넣어 수술하는 방식으로, 2~30센티 정도를 절개하는 개흉 수술에 비해 수술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 속도도 빠르고 통증은 적었다.
“뭐. 수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겠네. 그나저나, 이 정도 암 크기면 발견하기 녹록지 않았을 텐데…… 박 교수도 용케 발견했군?”
“저도 우연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박 교수는 소문대로 명의가 맞으니까. 충분히 대통령 주치의를 맡을 자격이 있네.”
윤상부 교수가 엄지를 척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제가 그 칭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칭찬받아 마땅하지. 보통 세기관지폐포암 같은 경우는 엑스레이나 체스트 CT 정도로는 발견되지도 않아. 나중에 기관지고 종격동이고 다 먹히고 난 후에 발견되지. 뭐, 그러면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고. 이렇게 조기 발견하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그래서 다른 의사들도 발견을 못 한 걸 테고.”
“네. 맞습니다. 그 흔치 않은 발견을 수련의가 했네요.”
“그럼 수련의가 발견하지……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윤상부 교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마시려던 음료수를 뿜을 뻔했다.
“그러게요. 저도 지금 머리가 띵합니다.”
“누군데? 그 대단한 인간이?”
“김윤찬이라고, 우리 과 레지던트 1년 차입니다.”
“정말 1년 차가 세기관지폐포암을 초기에 알아챘다고? 그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믿으셔야죠. 제가 이 눈과 귀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요.”
“……대단하네. 괴물은 자네 하나로 끝나나 싶었는데, 박상우 미니미가 하나 더 있었다니.”
윤상부 교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괴물이요?”
“그래. 자네도 괴물이지 않았나? 지금도 괴물이고.”
“괴물도 괴물 나름입니다. 저도 김윤찬 선생 정도는 아니었어요. 레지던트 1년 차가, 그것도 이학적 소견만 가지고 암을 잡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우연이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검사해야 하는 근거도 정확하더군요.”
“우연이 아니라면…… 뭐. 인체 투시라도 하나 보지.”
“인체 투시요?”
“영화나 소설 같은 거 보면 그렇잖아? 의사 주인공이 인체를 투시하는 초능력을 가지는 거, 그, 뭐냐. <신의 메스> 같은 의학 소설 말이야.”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진 않지. 하지만, 어쩔 거야. 그런 걸 의심할 정도로 녀석이 재능을 타고났는걸. 자네가 한번 잘 키워 봐. 누가 알아? 제2의 박상우가 될지.”
“하아, 그렇긴 한데…… 이건 정말 말이 되질 않거든요.”
‘이건 저처럼 회귀를 하거나, 잔존 수명 정도는 보여야 설명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말이 박상우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아이고. 걱정도 팔자다. 능력 있는 제자 뒀으면 기뻐할 일이지. 왜 그렇게 근심투성이야? 자네 혹시, 그 친구한테 질투하는 거 아니야?”
윤상부 교수가 가자미눈을 뜨며 박상우를 흘겨봤다.
“네. 차라리 질투라도 했으면 좋겠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래. 그 녀석은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수술 준비해야지.”
“네. 해야죠.”
“그나저나. 대통령님 수술을 하는 건 일급비밀 아닌가?”
“당연하죠. 언론이나 야당 쪽에서 알기라도 하면 엄청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렇겠지. 입단속 단단히 해야겠어.”
“네. 최소 인원으로 꾸려서 수술해야죠.”
“그래. 수술하는 데…… 한 2~3시간 정도 걸리려나?”
“그 정도 걸릴 듯합니다.”
“그래. 대통령 주치의 딱지 붙이고 하는 첫 수술이니까, 무사히 잘 끝내시게나.”
“네.”
“뭐, 이 정도 수술이면 박상우한테는 누워서 떡 먹기 아닌가?”
“누워서 떡 먹으면 체합니다. 잘못하면 기도가 막혀 죽을 수도 있고요. 절대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죠.”
“하여간, 누가 박상우 아니랄까 봐. 그럼 수고해.”
윤상부 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박상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박상우는 수술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인 윤태호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