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39)
신의 메스-239화(외전 20화)(239/249)
외전 20화. 대통령이 아프다 (3)
2022.04.09.
엠바고.
민감한 사안을 일정 기간 기사 등으로 보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국회는 야당이 다수였고, 언론은 이런 야당을 등에 업은 채 대통령을 향해서 연일 강펀치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엠바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텔레비전이 안 되면 신문으로, 신문이 안 되면 너튜브를 통해서라도 터트릴 것이다. 결국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까지 6개월.
그동안 이들의 날카로운 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자의 입을 빌리면 폭로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다면 미담이 될 수도 있죠.”
“그게 무슨 소리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봐.”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박상우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 * *
“교수님, VIP 병실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윤찬이 헐레벌떡 박상우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대통령님이 심상치 않습니다. 헤모소락스(혈흉) 증세를 보입니다.”
“확실해?”
“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타키카디아(빈맥)가 잡힙니다. 방금 ABGA(동맥혈 가스 검사) 결과와 엑스레이 결과도 나왔습니다.”
김윤찬은 간인이 찍힌 검사 결과를 박상우에게 전달했다.
‘이건…… 혈흉이 맞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박상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혈흉은 흉막 내에 혈액이 차 있는 것을 의미했다.
흉막에 혈액이 고이면 양압이 오고, 양압으로 인해 폐 허탈이 오게 되면 가스 교환에 탈이 나기 마련.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으나, 그대로 놔뒀다가는 완전히 폐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증세는 뉴모소락스(긴장성 기흉)와 유사했기에, 단순 혈흉일 경우 흉막에 고여 있는 피를 천자로 뽑아 주면 금방 호전될 수 있었다.
지연성 대량 혈흉만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바로 가 보도록 하지.”
박상우는 곧장 VIP 병실로 향했고, 이장수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이장수 대통령의 안색이 창백했다.
혈압이 떨어진 건 물론, 빈맥으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청진기를 대보니 병증 부위에 탁한 음성이 잡히기도 했고, 검사 결과상 기관이 영향을 받지 않는 쪽으로의 종격 변위가 있었다.
틀림없이 혈흉이었다.
다만, 우려했던 지연성 대량 혈흉이 아니라는 점만은 다행이었다.
“김윤찬 선생, 밀봉흉곽배액할 거야. 준비해 줘.”
“네. 교수님!”
“대통령님, 제 말 들리십니까?”
“하악…… 그, 그럼요. 우리 박 교수의 낭랑한 목소리가, 하악, 왜 안 들리겠습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이장수 대통령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지금부터 간단한 시술을 할 겁니다. 대통령님 흉강에 피가 고여 있어서 그걸 빼낼 거에요.”
“저, 하악, O형입니다. 참고해 주세요.”
“수혈받으실 정도는 아닙니다. 한의학 쪽에서 사혈한다고 하잖습니까? 그것처럼 죽은 피를 뽑아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보다 시원해지겠군요.”
“네. 훨씬 숨쉬기 편하실 겁니다.”
“그래요. 난, 박 교수님만 믿습니다.”
이장수 대통령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잠시 후, 밀봉흉곽배액으로 흉막 속에 고여 있던 피가 빠져나가자, 이장수 대통령의 얼굴에도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후우, 이제야 좀 숨이 쉬어지는군요.”
“괜찮으십니까?”
박상우가 지혈을 하며 물었다.
“네. 이제 좀 살 만하군요. 이게 참, 신기하네요. 체했을 때 손끝을 따면 막힌 속이 뚫리는 것처럼 한순간에 시원해지더군요.”
“좀 다르긴 한데, 어찌 보면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그래도 24시간 정도는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나야 뭐. 박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해야죠.”
이장수 대통령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대통령의 응급조치를 끝낸 후, 박상우는 김윤찬과 함께 과장실로 돌아왔다.
“김윤찬 선생, 대통령님 항생제 1앰풀 놔드리고, 1시간 단위로 호흡 상태 확인해서 나한테 보고해 줘요.”
“네. 교수님.”
“그리고 혈흉은 폐쇄 드레싱 관리가 중요하다는 거 알죠? 혹시 피가 또 고일 수 있으니, 신경 써야 할 겁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이장수 대통령의 혈흉을 치료한 뒤, 박상우가 내린 결론이었다.
* * *
작금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박상우는 비서실장 윤태호와 함께 이장수 대통령을 찾아갔다.
“기자들이 병원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상우가 먼저 입술을 뗐다.
“네. 저도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호실에서도 지금 대책을 마련하는 중입니다.”
윤태호 비서실장 역시, 정치부 기자들이 뭔가 냄새를 맡고 병원 주위를 맴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박상우가 윤태호에게 물었다.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안을 더 강화해야죠. 지금보다 더 보안 단계를 높일 생각입니다.”
그게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치부 기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더 의심받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기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막아야죠, 어떻게든.”
윤태호 비서실장이 입을 악다물며 각오를 다졌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이라뇨?”
“그렇게 보안을 강화한 다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냐고 여쭙는 겁니다.”
“그다음은 없어요. 대통령님에 관한 사항은 그 무엇도 절대 유출될 수 없는 겁니다. 그건 무조건입니다.”
“실장님, 기자가 김윤찬을 찾아왔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습니까?”
박상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연일 겁니다.”
비서실장의 입장에선 그렇게 믿고 싶었으리라.
“네. 우연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우연이 자꾸 벌어지면, 이제는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한테도, 진료 부원장한테도, 심지어 원장님한테도 기자가 붙었습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그럴 리야 없지만, 설사 그들이 뭔가 눈치를 챈다 해도 엠바고를 붙이면 될 겁니다.”
비서실장의 차선책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다.
“엠바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엠바고는 행정 수반의 고유 권한입니다. 원칙대로…….”
“비서실장님은 모든 걸 원칙대로 해 오셨습니까? 그 원칙이 흔들리신 적은 없나요? 대통령님의 수술을 미루자고 하셨던 것도 비서실장님의 원칙이었습니까?”
박상우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
박상우와 윤태호의 사나운 목소리가 섞이기 시작했음에도, 이장수 대통령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박 교수,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겁니다. 지금 너무 많이 넘어오시는 것 같군요.”
“대통령님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선을 넘는 것이라면, 그 경계선은 저한테 없군요. 제가 대통령님의 주치의가 된 이상, 대통령님의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아닙니까?”
“…….”
박상우가 몰아붙이자 윤태호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실장님이 엠바고를 선언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알 바 아닙니다. 다만, 그로 인해 병원이 시끄러워진다면, 그건 분명 대통령님을 치료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지금 어떤 선을 넘었다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아니, 그게…….”
박상우의 반박할 수 없는 논리에 윤태호 비서실장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 환자 앞에서 너무들 하는 것 아닙니까?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요. 저 나름 아픈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허허허, 괜찮아요. 두 사람 다 이 나라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박 교수! 내가 뭐 하나만 여쭤봅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나 살려 줄 수 있지요?”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박상우에게 그 짧은 문장은 엄청난 압박감을 안겨 주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허, 그새 우리 박 교수님이 많이 약해지셨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닌데요?”
강렬한 눈빛,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었다.
“네. 수술은 반드시 제 손으로 성공하겠습니다.”
“좋아요. 우리 박 교수가 책임지고 날 살려 준다고 했으니, 내 생각을 말해 보리다.”
“…….”
윤태호 비서실장은 시선을 이장수 대통령의 입에 고정시킨 채,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태호야.”
이장수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태호라고 불렀다는 것. 그건 자신의 입장은 확고하다는 것과 함께, 더는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네. 말씀하십시오.”
윤태호 비서실장 또한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세상에 내 병을 알리도록 하자. 이쯤 됐으면 이미 둑에 금이 간 것 아니겠어?”
“대통령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대통령님의 건강 문제는 다른 국민들과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당장 국내 주가가 요동을 칠 것이고, 북쪽의 움직임도 심상찮게 돌아갈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국정 전반의 주도권을 야당에 완전히 뺏기게 될 텐데……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기자들의 입을 통해 밝히지는 건? 그건 막을 자신이 있고?”
“그건 엠바고…….”
“엠바고로 되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지난 정권의 게이트가 엠바고로 막아졌나? 왜 그걸 몰라? 옛날 군사독재 때처럼 언론 통폐합에 기사 검열이라도 할까?”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발표하자고. 우리 박 교수님이 나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나? 별거 아니잖아, 태호야.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하자.”
이장수 대통령이 윤태호 비서실장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우선은, 국민과의 대화 일정을 마치신 후에 박 대표와 상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 생각을 받아 줘서 고마워, 윤 실장.”
“최대한 빨리 청와대 브리핑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잠시만요!”
그 순간, 박상우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 그럽니까, 박 교수.”
“저를 믿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지금 상황에서 내가 박 교수 말고 누굴 믿겠어요? 믿습니다. 완전 믿어요.”
“그러면 제가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제안 말입니까?”
“이왕 모든 진실을 밝히기로 하셨다면, 대변인의 입을 빌려서가 아니라 대통령님이 직접 밝히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가요? 직접 기자회견을 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뇨. 국민들에게 직접이요. 얼굴 맞대고!”
* * *
이틀 후, 공영방송 TBS 공개홀에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99명의 국민이 착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활기찬 리듬의 배경음이 깔리고, 시간에 맞춰 담당 PD가 사회자에게 큐 사인을 보냈다.
“행복한 정부 출범, 2개월! 각계를 대표하는 국민 99명과 이장수 대통령님이 2시간 동안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화합의 장입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마침내 사회자가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국민과의 대화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