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
신의 메스-24화(24/249)
24화 스타 변호사 (3)
한 시간 후,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한정석 교수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에 잔뜩 짜증이 묻어 있었다.
“네, 교수님! 혈압이 떨어져서 노르에피네프린 투여해 잡았고, 소변량은 시간당 5cc 미만이어서 이뇨제 투여해 둔 상황입니다. 게다가 옥시전 세츄레이션이 81%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지금 산소마스크를 씌워 두었습니다. 모든 걸 박상우 선생님이 하셨습니다!”
안현선 간호사가 쪼르르 한정석에게 다가가 박상우를 칭찬했다.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양 손바닥을 펼쳐 박상우를 가리켰다.
“그 정도야 레지던트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음, 아무튼 수고했어.”
떨떠름한 표정의 한정석이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래서, 동맥혈 가스 검사 결과는 나왔어?”
“네. 여기 있습니다.”
“흠, 이게 뭐야?”
결과지를 읽어 내려가는 한정석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졌다.
“결과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pH 7.43에 pCO2 61mmHg, SaO2는 92% 측정됩니다.”
박상우가 결과에 관해 설명했다.
“알아! 나는 눈이 없냐? 흠, 일단, 응급조치는 해 뒀으니까, 상황을 좀 지켜보다가 내일 장 내시경 해 보자고.”
“하지만 교수님! 수치가 심상치 않습니다. 애시드미어(Acidemia: 산혈증)가 의심됩니다! 바로 조치해야 해요. 게다가 이 배를 좀 보십시오. 복부팽만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박상우가 윤석현의 환자복을 들춰내 보였다.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산혈증을 운운해! 판단은 내가 하는 거니까 넌 잠자코 환자 산소 포화도 분포나 확인해서 나한테 보고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기관 내 삽관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한정석이 버럭대며 화를 냈다.
“교, 교수님!”
“안 선생, 당분간 이동하지 마시고 환자 옆에서 상태를 좀 살펴보세요.”
박상우의 말을 무시한 채, 한정석이 안현선에게 지시하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안현선 간호사가 박상우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기회를 주려 해도 발로 차 버리는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스스로 느끼게 해 주는 수밖에…….’
* * *
“교수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조용한 곳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박상우가 곧바로 한정석의 뒤를 따라 나와 그를 멈춰 세웠다.
“긴히? 네가 나한테 긴히 할 말이 뭐가 있어? 할 말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해!”
한정석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잠시면 됩니다. 윤석현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일 수 있어요!”
“뭐? 지금 장난해? 멀쩡한 환자가 왜 생명이 위급해! 쓸데없는 개소리 하려거든 들어가서 윤석현 환자 상태나 잘 관찰해!”
‘한정석, 당신은 분명 스스로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대장 내시경을 해 보자는 소린 안 했겠지. 환자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시간을 벌어 빠져나갈 수 있을지 궁리만 하는 야비한 인간!’
“교수님, 저 환자 잘못하면 이틀 안에 셉틱 쇼크(Septic shock: 패혈성 쇼크), MODS(Multiple Organ Dysfunction Syndrome: 발성 장기 부전)로 사망합니다!”
박상우가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한정석의 팔목을 잡았다.
“이, 이 새끼가 미쳤나? 누, 누가 죽는다고?”
한정석 역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이 찜찜할 터였다. 박상우의 진단은 그의 아픈 곳을 찌르는 듯했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한정석. 하지만 눈빛 한구석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지금 고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 미친 새끼! 그 이, 입 닫고 이쪽으로 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한정석이 박상우의 팔목을 잡아 비틀고 비상구 쪽으로 급히 이동했다.
비상구.
“너, 너 지금 셉틱 쇼크에 MODS를 씨불였어? 맞냐?”
한정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네. 그렇습니다.”
단정적인 말투. 박상우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그래. 좋아. 근데, MODS랑 내, 내가 무슨 상관이야? 다발성 장기 부전은…….”
한정석이 긴장한 듯 마른 입술에 침을 둘렀다.
“아뇨. 당연히 연관이 있습니다. 윤석현 환자는 이중 판막 치환술의 부작용이 맞습니다.”
‘당신 그러다가 의료 소송으로 패가망신합니다, 한정석 씨!’
박상우가 한정석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내 말을 잘라? 이 새끼가 오늘 완전히 약을 처먹었구나? 내, 내가 무, 무슨 실수라도 했다는 거야?”
한정석 교수가 우악스럽게 박상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멱살 놓으십시오. 지금부터 딱 10분 후엔 저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할 테니까요.’
“교수님, 이런다고 환자가 살아나는 건 아닙니다.”
한정석을 응시하는 박상우의 눈빛은 조롱기를 머금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조현오 교수가 좀 감싼다고 개념을 말아먹은 게 틀림없구나. 내가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한정석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터질 듯 붉어졌다. 그가 게거품을 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좌심방에 심은 카테터 때문에 혈전이 떨어져 나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정확히 한정석의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
“뭐, 뭐야?”
당황한 한정석의 몸이 움찔거렸다.
“네. 일반적으로 좌심방에 있는 혈전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어 요즘은 거의 좌심방에 카테터를 삽입하지 않죠. 그 대신 바로 절개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그런데 수술 기록지를 보니 교수님은 좌심방에 카테터를 박으신 후 절개했더군요. 물론 좌심방에 카테터를 심는 게 수술하기 좀 더 수월하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만.”
박상우의 말투에는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너, 너 이 새끼…… 뭐 하는 놈이야?”
스르르, 그가 천천히 멱살을 풀었다.
그의 동공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수술 도중에 좌심방에 심어 놓은 섬프 카테터(Sump catheter: 물받이 카테터)로 인해 혈전이 떨어져 나가 장 혈관 폐쇄가 발생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윤석현 환자는 혈뇨에 심한 복부팽만이 발생했고,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겠지요. 동맥혈 가스 분석 검사지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에시드미어가 의심됩니다. 그리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보면 100%, 허혈성 손상…….”
“개소리! 카테터는 제대로 박혔고 좌심방의 혈전은 수술을 통해 전부 제거됐어! 그런데 무슨 혈전이 떨어져 나가!”
한정석이 말을 더듬으며 소리 질렀다. 그의 마지막 발악인 듯 보였다.
“교수님, 그렇게 억지를 부리실 때는 지났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엔 교수님에겐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군요.”
박상우가 한정석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 말 집어치우지 못해?”
흥분한 한정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뇨. 좀 더 들어 보셔야 합니다.”
“이,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한정석이 말아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는 교수님을 도우려는 겁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박상우.
“이, 이 새끼가!”
들어 올린 한정석의 주먹이 마구 흔들렸다. 그가 차마 박상우를 가격하지 못한 채,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수술 기록지엔 좌심방에 섬프 카테터를 넣은 후에 좌심방을 절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 의료 소송의 중요한 쟁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결국 교수님은 박앤정이란 공룡과 힘겨운 싸움을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할 수 없죠. 전 이만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한정석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자, 잠깐만!”
한정석 교수가 황급히 박상우의 팔을 잡았다. 역시나 의료 소송이란 단어는 그에게 공포심을 자극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
“호, 혹시 이 사실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알고 있나? 조현오 교수님이나, 아니면…….”
이쯤 되면 한정석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터. 그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아뇨. 교수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단, 현재까지는 말이죠.”
완벽한 전세 역전. 이제 칼자루는 박상우가 쥔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음,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드디어 꼬리를 내리는 모습에, 박상우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그는 박상우에게 영혼까지도 저당 잡힐 것이다.
“시간상으로 이미 장기 괴사가 시작했을 겁니다. 지금 당장 개복술을 시행해 괴사한 부분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현 환자…….”
잠시 말을 멈추는 박상우.
“유, 윤석현 환자, 뭐?”
한정석 교수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뚝뚝 떨어졌다.
“죽습니다. 48시간 이내에.”
박상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정석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땀을 뻘뻘 흘렸다.
“일단 개복술에 들어가야죠.”
“지, 지금 당장 어떻게 해? 그러려면 위장관 외과 사람들이랑 협진해야 하는데…….”
한정석이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건 알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대장과 소장 절제술을 바로 시행해야 해요!”
“미치겠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어떻게 하냐고!”
한정석이 답답한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위장관 외과 최태순 선생님께 먼저 연락해 보십시오. 그분과 교수님이 가까운 사이시잖습니까? 게다가 금일 당직이시니 원내에 계실 겁니다.”
“그렇긴 한데, 정말 괜찮을까? 그리고 우선, 복부 CT하고 대장 내시경도 찍어 봐야 하는 거 아냐?”
모든 것이 역전된 상황. 한정석이 모든 주도권을 박상우에게 넘겨준 상황이었다.
“윤석현 환자의 상태를 보십시오. 지금 산소 포화도가 저렇게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CT 검사를 합니까? 시간이 별로 없어요. 최태순 교수님이 오시면 최대한 빨리 대장 내시경만 해 보면 될 듯합니다.”
“그래도 병원에 절차라는 게 있는데…….”
한정석이 우물쭈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하지 않잖습니까? 저 환자, 이대로 죽게 할 순 없어요! 저도 수술실에 들어가서 어시스트하겠습니다. 모든 선택은 교수님의 몫입니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마시고 단순하게 접근하세요. 윤석현 환자 죽일지, 살릴지 말입니다. 그러면 답은 명쾌해집니다.”
“그,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한정석이 결심한 듯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네. 그러면 전 우선, 마취과 선생님이랑 박 기사 콜 하고 수술실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래. 고맙다. 그나저나, 내가 너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거 뻔히 알고 있으면서 왜 나를 돕는 거지?”
홱, 한정석이 돌아서려는 박상우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교수님, 절 눈엣가시로 생각하셨습니까?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박상우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게…….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고맙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마!”
한정석이 박상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은혜는요, 무슨. 우린 의리로 뭉친 열혈 TS 식구 아닙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박상우가 말아 쥔 오른 주먹을 내보였다.
“그래, 그래.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다. 바로 수술 들어가자. 최태순 교수한테는 내가 연락하마.”
한정석이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후후후. 한정석 교수님, 아직까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좀 더 제 곁에 계셔 주셔야 합니다.’
“네. 교수님!”
비상구를 나서는 박상우의 얼굴에 묘한 성취감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