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1)
신의 메스-241화(외전 22화)(241/249)
외전 22화. 대통령이 아프다 (5)
2022.04.14.
‘국민과의 대화’가 끝난 후, 예상대로 언론은 그 특유의 혓바닥을 놀려 대기 시작했다.
힘없는 새 정부에 대해 국정 공백이 우려된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심지어는 시작부터 허수아비 정권이라는 힐난을 쏟아 대던 그들이 대번에 표정을 바꿨다.
-대통령의 진솔한 한마디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허니문 기간도 없는 야당, 이대로 괜찮은가?
-국민들과 소통한 이장수 대통령의 가슴 뭉클한 사연.
-혜연 양을 위한 전국민적인 관심 증폭
-명성대 병원 혈액 종양 센터, 혜연 양 무상 치료 약속!
연일 대통령과 정부를 씹어 대던 언론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완전히 바꾼 채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명성병원 주변에는 대통령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곳곳에 자리했다.
예고되었던 대통령의 폐암 수술에는 박상우와 윤상부 교수, 천기수 교수 등 흉부외과의 에이스들이 총출동하였고, 모든 기자들은 박상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수술실의 녹색등이 꺼지며 박상우가 나오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박 교수님, 수술은 성공입니까?”
마른 침을 삼켜 넘기는 기자들의 표정은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수십 개의 마이크가 박상우의 입 쪽으로 향했고, 이내 박상우의 입가엔 미소가 맺혔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수술은 대성공입니다!”
“와!”
과연 이런 적이 있었던가?
박상우의 말 한마디에 모든 기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행입니다! 지금 대통령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 대통령님은 회복실로 이동되었고,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에 일반 병실로 옮길 예정입니다. 활력 징후도 양호합니다. 수술은 매우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수술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온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수술은 비디오 흉강경, 일명 VATS로 진행했습니다. 혹시 타 장기에 전이됐을 경우를 배제하지 않고 오픈 수술 역시 염두에 두고 진행했으나, 다행히도 암세포의 양상은 양호했습니다.”
박상우의 말에 기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종격동과 임파절을 제거해 전이 여부를 검사해 보았고, 검사상으로도 전이는 없다고 판단하여 옆구리 부위에 약 3센티 정도의 구멍 4개를 뚫어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수술 시간은 총 1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지금은 깨끗하게 암세포가 제거된 상황입니다.”
짝짝짝짝짝!
박상우의 설명에 기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상전벽해라고 했던가?
‘국민과의 대화’ 이후에도 변하는 조짐이 보였지만,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얼굴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 * *
그러나.
떠들썩했던 이장수 대통령의 폐암 수술을 마친지 2개월, 한동안 현 정부와 대통령에 우호적이었던 언론과 야당은 또다시 표정을 바꿔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상우야,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기수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박상우를 찾아왔다.
“왜? 뭔데?”
“이게 다 뭔지 아냐?”
“나야 모르지.”
“하긴, 고매하신 우리 이사장님이 이런 거에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전부 우리 과에 지원하는 레지던트 지원서다!”
천기수가 뿌듯한 표정으로 서류뭉치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원서? 이렇게나 많이?”
“그러게 말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발 좀 와 달라고 사정사정 하면서 구걸하고 다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 선발시험이라도 봐야 할 판이야.”
“그러게, 그럼 잘된 거잖아?”
“암, 잘됐지. 다들 제2의 박상우가 되고 싶은 거겠지. 누가 흉부외과 써전이 원장도 모자라 이사장 자리에 대통령 주치의가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
“괜히 호들갑 떨 것 없어. 별거 아니니까. 난, 그냥 외과 의사일 뿐이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그건 네 생각이지.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
“무슨 뜻이야?”
“네 말대로, 지금까지는 써전 박상우가 맞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넌 공인이란 말이지.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공인.”
“그게 뭐가 중요해? 대통령님도 사람이고, 난 그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일 뿐이야.”
“과연 그럴까? 지난번 일을 계기로 너한테 붙은 기자가 몇 명인 줄이나 알아? 이제 넌 너 하나의 몸이 아니란 뜻이야. 지금부터 너의 행동 하나하나는 언론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거지.”
“흐음…… 그래서?”
“여전히 심장외과 써전이고 싶은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제부터는 외래도 좀 줄이고, 수술 건수도 좀 줄여야 할 거야. 대통령 주치의란 자리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거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지.”
“아니지. 대통령님이 언제 예고하고 편찮으신가? 너 수술 도중에 위급상황이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거야? 무슨 일 생기면 30분 내로 달려가야 하는 게 대통령 주치의의 제1미션인 거 몰라?”
“후우, 차질 없이 할 수 있어.”
“그건 네 생각이고. 게다가 넌, 외부에 노출되면 될수록 좋을 게 없어. 그러니까 이젠 외래 진료도 대폭 줄이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보고 현업에서 물러나라는 거야?”
“누가 물러나래? 그게 아니라, 이젠 후방으로 빠져야 한다는 거야. 전쟁터에서 사령관이 소총 들고 전진할 수는 없잖아?”
“…….”
“그렇게 사령관이 소총 들고 전진하면, 일반 사병들은 뭘 하냐? 네 뒤에서 손가락이나 빨까?”
천기수의 지적은 합당했다.
안 그래도, 흉부외과를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박상우에게 몰려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었다.
“그렇군.”
“이젠 흉부외과도 안배가 필요한 시점이야. 밑에 애들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김민준 교수도 곧 현업에 복귀할 거니까.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이젠 네가 자리를 좀 내어 줘야 할 거야. 포스트 박상우도 생각해야지.”
냉정하게 생각하면, 천기수의 말이 백번 옳았다.
박상우는 이미 고일 대로 고인 물.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삶의 이치 아닌가?
섭섭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박상우 역시도, 이제는 메스가 아닌 펜을 잡아야 할 시기가 옴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현업에서 물러나야 하나?”
“인마, 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널 뒷방으로 밀어 넣는 것 같잖아? 넌 여전히 빛나. 우리나라 최고의 심장외과 의사인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문제는, 너만 한 거물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달라는 거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현업으로 돌아와 달라고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질 땐 언제고. 어휴.”
“후후후, 그땐 너무 급했으니까 그랬지.”
“알았어. 맞아. 네 말처럼 내 욕심만 생각할 수는 없지.”
백 번, 천 번 이해할 만한 말이었지만, 박상우는 어쩐지 섭섭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포스트 박상우라…….’
* * *
포스트 박상우란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 박상우는 천기수가 나간 즉시 김윤찬을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했다. 지금부터는 이 녀석의 정체를 파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레지던트 지원서가 쏟아진다면서?”
“네, 교수님. 전부 교수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내 덕분이라고?”
“네. 교수님이 전국의 외과 수련의들의 롤모델이잖습니까?”
“롤모델이라…….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당연하죠.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렇군. 그러면, 혹시 자네한테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네! 백 개, 천 개도 좋습니다.”
김윤찬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혹시 나처럼 회귀를 한 것이냐?’, ‘혹시 잔존 수명 같은 게 보이는 것이냐?’ 등 대놓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자네는 분명 이학적 소견만으로 세기관지폐포암을 잡아냈어.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레지던트 1년 차가 말이야.”
“아……. 그건 운이 좋았습니다. 그냥, 때마침 제가 폐암 공부를 하고 있었고, 딱 그때쯤 대통령님의 증세가 맞아떨어진 것뿐이죠. 대통령님의 증세는 전형적이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렇다곤 해도 폐포암을 바로 떠올리는 건 어려워. COPD(만성폐쇄성 폐 질환)나 폐 섬유증, 알레르기성 천식도 증세는 유사했으니까.”
“그건…… 그렇긴 하죠.”
“그 외에도, 모든 폐암의 초기 증세는 이와 같아. 그런데도 자네는 세기관지폐포암이라고 꼭 짚어 말했지. 이걸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겠나?”
“그, 그게…… 글쎄요. 전 그냥 제일 먼저 떠올린 게 그거라서 그렇게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지난번에 생체 폐 이식 수술을 임상 시험으로 바꾸려고 했을 때도, 자네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어. 알코올이 든 초콜릿을 미리 가져 왔다는 게 그 근거가 되겠지. 이것도 우연인가?”
“하아, 그게…….”
김윤찬이 난감한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말해 보게나.”
“솔직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사실은, 뭐?”
띠리리리리-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일단 전화부터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휴. 알겠네. 박상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대통령님께서 갑자기 고열이 생겼습니다.
“몇 도까지 올라갔습니까?”
-방금 의무관에서 확인해 보니, 39.5도입니다. 혈압도 좀 떨어지신 것 같아서 교수님께 바로 연락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자 김윤찬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별거 아니야. 어쩌지, 우리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은데?”
박상우가 가운을 옷걸이에 걸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좋아. 나중에 꼭 그 이유를 말해 줘야 하네. 알겠지?”
“네.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박상우는 김윤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곤 곧장 청와대 의무관으로 향했다.
진찰 결과, 고열이 있긴 했지만 과로에 의한 몸살 정도였다.
“별일 아니고, 폐 수술을 하게 되면 흔히 일어나는 겁니다. 약을 처방해 드렸으니, 드시고 하루이틀 정도 푹 쉬시면 금방 나아지실 겁니다.”
“알았어요. 우리 박 교수가 그렇게 하라면 해야죠. 허허허.”
이장수 대통령은 아픈 상황에서도 박상우만 보면 기분 좋게 웃곤 했다.
“요즘 대통령님께서 너무 무리를 하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이제 곧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있는데, 밀리지 않으려면 저도 공부를 해야죠. 남북문제부터 해서, 민감한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닌데. 한 번 밀리면 한도 끝도 없이 밀린다는 건 잘 알잖습니까?”
“그래도 건강을 챙기셔야죠. 온 국민이 대통령님의 건강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오늘은 무조건 쉬십시오. 만약에 제 말을 듣지 않으시면…….”
“아이고, 알았어요. 또 주치의 자리 관둔다고 협박하려고 합니까? 허허허, 알았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쉬겠습니다!”
* * *
그리고 얼마 후.
미국의 대통령, 톰 제럴드가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대한민국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