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5)
신의 메스-245화(외전 26화)(245/249)
외전 26화. 한미 정상 회담 (4)
2022.04.23.
모든 의료진의 시선이 김윤찬에게로 쏠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생명이 위독하다니요? 이상한 말로 혼란을 줄 거면 당장 나가십시오.”
멕컬슨 교수가 수행원들을 향해 내쫓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저 아이는 에어포스 원으로 옮겨 치료할 시간이 없습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요. 지금 바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십시오.”
하지만, 멕컬슨 교수의 말에도 김윤찬이 목소리를 높이자 수행원들이 그의 옆구리에 팔을 집어넣었다.
“이거 놔요! 이 아이, 거기까지 갈 여력이 없습니다. 바로 연희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미국 측 경호원들이 제지했지만, 김윤찬은 그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크게 소리쳤다.
물러설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김윤찬, 뭐야. 너 지금 뭔가를 알고 있는 거야?’
“됐습니다! 쓸데없는 일로 낭비할 시간은 없어요! 빨리 크리스탈 양을 에어포스 원으로 옮깁시다. 대통령님, 공항까지 경호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젠슨 박사는 김윤찬의 말을 무시하며, 이장수 대통령에게 경호를 요청했다.
“대통령님, 부탁 좀 하겠습니다. 우리 크리스탈이 지금 위급합니다. 국가 간의 결례인 건 잘 알지만, 지금은 대통령님께 부탁을 드려야겠군요.”
제럴드 대통령 역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손녀가 죽어 가는 상황인데, 이성을 잃지 않을 할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 당장 경호처에 연락해서 조치하도록 하세요.”
이장수 대통령 역시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네.”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비서실장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잠깐만요, 젠슨 교수님! 지금 이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박상우가 급히 이동하려는 젠슨 교수의 팔목을 부여잡았다.
“박 교수님, 뭡니까?”
“저도 김윤찬 선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크리스탈 양을 에어포스 원으로 데려가시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탈 양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당장, 저희 병원으로 옮기시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시기 전에.”
“지금 제정신입니까? 에어포스 원은 최첨단 장비를 갖춘 날아다니는 병원이라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장비가 문제가 아니라 시간 싸움이라는 겁니다! 장비는 저희 병원도 그쪽에 비해 모자라지 않아요! 지금 크리스탈 양의 병명은 제대로 진단하신 게 맞긴 한 겁니까?”
박상우가 필사적으로 젠슨 교수를 막아섰다.
“박 교수님, 지금 저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젠슨 교수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다.
“그러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크리스탈 양의 병명은 뭡니까? 왜 크리스탈 양을 에어포스 원으로 이송해야 하는지 저를 설득해 주십시오. 그 설득!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저 역시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시간 없습니다! 비키세요. 지금 박 교수와 입씨름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말씀해 보시라고요!”
“이건 미국의 문제입니다. 박상우 교수가 나설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젠슨이 버럭거리며 박상우의 몸을 밀쳐내려 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짓은 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없으니 정확히 1분 드리겠습니다. 그 1분 안에 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크리스탈 양은 이곳에서 단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크리스탈 양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국빈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제가 돌봐야 할 환자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크리스탈 양이 어레스트에 빠진 이유가 뭔지!”
젠슨의 다급한 표정에도, 박상우는 요지부동인 상태였다.
“박 교수님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우리 크리스탈이 왜 저렇게 된 건지 설명을 해 주시오, 젠슨! 적어도 난, 그 이유를 알아 할 자격이 있습니다!”
제럴드 대통령 역시, 그 부분이 궁금했던 듯 젠슨의 팔을 붙잡으며 단호하게 물었다.
“…….”
젠슨이 잠시 머뭇거리자 제럴드 대통령이 다그쳤다.
“젠슨 교수! 난 당신을 고용한 사람이오. 말씀해 보세요, 우리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그게 그러니까…….”
“그래요. 우리 애가 왜 이런 겁니까?”
“……쇼크입니다.”
한참을 꾸물거리던 젠슨 교수가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쇼크요? 무슨 쇼크를 말하는 겁니까?”
“일시적 쇼크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아나필락시스에 의한 바스큘라(혈관 분포성) 쇼크입니다.”
‘쇼크? 미국 최고의 흉부외과 석학이라는 자가 그걸 진단이라고 하는 건가?’
젠슨의 말에 박상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바스큘라요?”
“그렇습니다. 혈관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상대적으로 혈류량이 떨어지면서 하이퍼텐션(저혈압)이 온 겁니다. 노르에피네프린, 도부타민에 항면역제로 응급조치를 해 뒀으니, 에어포스 원으로 옮겨서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야 할 듯합니다.”
“젠슨 박사, 설명이 어렵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 보세요!”
제럴드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젠슨 교수를 재촉했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섭취한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됩니다.”
“식사요? 우린 멀쩡하잖소?”
제럴드 대통령이 시선이 반사적으로 이장수 대통령에게로 옮겨졌다.
“성인들에겐 문제가 없을지라도, 아직 면역체계가 성숙하지 않은 크리스탈 양의 경우는 다를 수도 있죠. 대통령님, 여기서 이렇게 의학적 토론을 할 시간은 없습니다! 크리스탈 양을 빨리 옮겨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우리 크리스탈은 괜찮은 거겠죠?”
“네. 최선을 다하…….”
“Wow, I’m so dumbfounded(정말 어이가 없군)!”
갑작스레 터져 나온 박상우의 말에, 멕컬슨 교수가 흥분한 채로 그를 바라봤다.
“박상우 교수!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어이없는 진단에 어이없는 원인 분석, 치료 역시 어이없는 치료가 되겠군요.”
“이, 이 사람이! 지금 세계적인 석학인 젠슨 교수님이 오진이라도 하셨다는 말입니까?”
“차라리 오진이 아니라면? 지금 크리스탈 양은 파브리병에 의한 심각한 부작용을 앓고 있는 겁니다. 레프트 벤트리큘러 하이퍼트로피(좌심실 비대), 엔도마이요카디알 파이브로이스(심내막 심근섬유증)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크레이지! 지금 무슨 엉터리 진단을 하는 겁니까? 설사 파브리병이라고 해도 여자아이의 경우, 유년기에는 그 증세가 미미합니다. 박 교수야말로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진단 아닙니까? 젠슨 교수님! 더 이상 시간 끌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 에어포스 원으로…….”
“지금 시간을 끌고 계시는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당신들이 이렇게 지체하는 사이에 크리스탈 양의 병세는 더 악화될 것이고,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니까 비키라는 것 아닙니까?”
멕컬슨이 거칠게 박상우의 팔을 잡아챘다.
‘도저히 안 되겠군.’
“낸시! 이쪽으로 잠시 오시겠습니까?”
박상우가 제럴드 대통령의 딸인 낸시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파브리병은 증세가 미미해 진단이 쉽지 않죠. 낸시, 손바닥을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네? 이렇게요?”
낸시가 박상우의 지시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앤히도로시스(무한증)! 지금 낸시의 손엔 땀이 한 방울도 맺혀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딸이 위중한 상황인데도 말이죠. 낸시가 긴장하지 않아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땀이 잘 안 나지 않습니까?”
“네. 그런 편이에요.”
땀이 나지 않는 무한증은 파브리병 보인자를 가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렇다고 낸시가 파브리병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좋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낸시, 웃옷을 좀 들춰봐도 되겠습니까?”
“네? 옷을요?”
“숙녀분에게 실례되는 일이지만, 당신네 나라 의사들의 무지 때문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낸시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주변의 웅성거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박상우가 낸시의 블라우스를 들춰올렸다.
낸시의 배꼽 주위에는 검붉은 발진이 나타나 있었다.
“발진이 있군요. 낸시, 잠시 무릎도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 네.”
낸시가 치마를 무릎 위까지 올리자, 무릎에는 배꼽 주위에 생긴 것과 같은 발진이 분포되어 있었다.
“파브리병의 가장 큰 특징인 엔지오케라토마(혈관각화종)입니다. 젠슨 교수님, 이게 단순 포진으로 보이십니까?”
“……그, 그게.”
젠슨 교수가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낸시. 조금 전에 보니 아이스 팩을 주물럭거리고 있던데, 이 안이 더워서 그런 건가요?”
“아뇨. 손바닥이 너무 화끈거려서 수행원한테 아이스팩을 가져다 달라고 했어요.”
“그렇군요. 지금의 상황으론, 손바닥이 화끈거리는 게 당연합니다. 아니, 손에서 타는 듯한 통증을 자주 느끼셨을 겁니다. 낸시 양이 아이스 팩을 손에 쥔 것도, 수시로 찬물에 손을 씻은 것도 전부 그런 이유였을 거고요. 맞습니까, 낸시 양?”
“네. 맞아요. 평소에도 막대기로 손바닥을 맞은 것처럼 괜히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타는 듯이 따끔했어요. 저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어 보니 단순 피부병이 아닌 것 같네요.”
낸시가 다시금 블라우스를 돌돌 말아 올리자 피부 발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맞습니다. 일반적으론 단순 피부병 또는 타박상으로 오인하기 쉽죠. 낸시 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브리병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크리스탈 양에게도 유전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50%의 확률은, 결코 적은 확률이 아니니까요.”
박상우가 확신에 찬 얼굴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
그에 반해, 젠슨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교수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벌써 20여 분이 지났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빨리 결정하십시오!”
“젠슨! 박상우 교수의 말이 맞습니까?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우리 크리스탈이 파브리병인지 뭔지 하는 병에 걸린 것이 맞습니까?”
박상우의 말과 더불어, 제럴드 대통령도 젠슨을 다그쳤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수술은 불가합니다. 대한민국에는 파브리병에 의한 합병증을 수술한 전례가 없습니다! 에어포스 원으로 이동해서 응급조치를 한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지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조금 전에는 쇼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럴드 대통령의 얼굴이 곧 터지기라도 하려는 듯, 토마토처럼 붉게 변했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확률이 낮다는 겁니다. 대통령님, 한국에서의 수술은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아뇨! 대한민국 병원에는 그 사례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흉부외과 써전 중에는 그 사례가 있습니다!”
그 순간, 김윤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미 박상우 교수님은 존스홉킨스에서 크리스탈 양과 똑같은 증세를 보인 아이를 성공적으로 수술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사례로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