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6)
신의 메스-246화(외전 27화)(246/249)
외전 27화. 한미 정상 회담 (5)
2022.04.26.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젠슨 교수가 몸을 돌려 강렬한 눈빛을 쏟아냈다.
“지금 여기 계시는 박상우 교수님이 존스홉킨스에서 근무하실 때, 크리스탈 양과 증세가 똑같은 환자를 완치시킨 경험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눈빛에도 김윤찬은 전혀 기죽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젠슨 교수를 향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맞서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기억이 나는군요. 크리스라는 아이였습니다. 분명…… 엑토피아 코르디스(심장전위증)을 앓고 있던 환자였죠! 기억을 더듬어 보니 확실히 맞습니다.”
김윤찬의 말에 윤상부 교수 역시 오랜 기억을 끄집어냈다.
“박상우 교수, 저 사람들의 말이 맞습니까?”
제럴드 대통령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네. 제가 크리스 군의 수술을 집도했었습니다. 크리스 군과 크리스탈 양의 증세가 유사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습니까? 젠슨! 그러면 박상우 교수에게 우리 아이를 맡겨도 되는 것 아닙니까?”
제럴드 대통령이 젠슨을 바라봤다.
“아뇨. 분명 박상우 교수가 파브리병 환자를 수술한 건 사실이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젠슨 교수가 매서운 눈빛으로 박상우를 노려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쉽게 설명해 보세요, 쉽게!”
제럴드 대통령이 젠슨에게 재촉했다.
그리고, 젠슨 교수는 박상우가 존스홉킨스 시절 크리스를 수술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파브리병에 걸린 건 맞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엑토피아 코르디스(심장전위증) 수술을 연기하자는 것이 박 교수의 진단이었습니다. 결국, 파브리병부터 치료한 후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박상우 교수의 주장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경우가 다릅니다!”
“그게 맞습니까, 박상우 교수?”
“그렇습니다. 젠슨 교수님의 말이 맞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지금 크리스탈 양의 병명이 파브리병이 맞다면 수술보다는 치료가 먼저라는 겁니다. 에어포스 원으로 가서 DBS(파브리병 검사)를 해 보고, ERT(효소 대체요법)를 사용하거나, 경구용 치료제인 ‘세이버2.9’로 치료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 같군요.”
“…….”
“이 정도면 설득된 것 같은데, 길을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은데요?”
젠슨 교수가 근엄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대충 상황이 역전되려는 찰나, 김윤찬이 반격을 가했다.
“젠슨 교수님의 말씀이 맞긴 합니다. 경구용 치료제 세이버 2.9는 확실히 혁신적인 파브리병 치료제죠. 그토록 자부심 강한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만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유전학자인 엠마 교수가 만든 바로 그 신약의 원천 아이디어를 제공한 분이 바로 박상우 교수님입니다!”
“그게 무슨…… 박 교수, 저 의사 선생의 말이 맞습니까?”
“…….”
하지만, 김윤찬의 주장에도 박상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히려 맥컬슨 교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엠마 교수팀의 단독 개발로 알고 있습니다! 세이버 2.9 개발에 대한민국의 의료진이 관여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어요!”
“박 교수! 얼른 말씀을 해 보세요.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박상우가 묵묵부답 말이 없자, 이장수 대통령이 다그쳤다.
“개발 초기에 제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발 과정은 엠마 교수님의 업적입니다. 제가 나서는 건 그분의 명예의 누가 될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보십시오. 제럴드 대통령! 우리 박 교수가 신약 개발에 도움을 줬다고 하지 않습니까? 분명, 크리스탈 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추후 엠마 교수에게 직접 연결해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면 않겠습니까? 우리 박 교수에게 치료를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젠슨의 위세에 기가 죽었던 이장수 대통령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젠슨 교수, 아무래도…….”
제럴드 대통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젠슨 교수는 끝까지 제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님! 박 교수가 세이버 개발에 영향을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크리스탈 양은 당장 수술하는 것보다 치료가 우선입니다. 제 진단대로 아나필락시스가 맞다면 그에 맞는 치료를 할 것이고, 만에 하나 파브리병이라 해도 우린 이곳에서 치료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즉각 미국으로 돌아가 전문병원에서 치료할 생각입니다.”
“흐음, 젠슨 교수님 때문에 지체된 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는군요.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윤찬 선생, 당장 나가서 우리 병원 엠뷸런스 대기시키세요!”
박상우가 시계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김윤찬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 사람이 정말! 아닙니다, 에어포스 원으로 가야 합니다! 이건 당신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맥컬슨 교수 역시 지지 않고 소리쳤다.
“지금 당장 우리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크리스탈 양이 죽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크리스와 크리스탈 양의 케이스가 다르다고요? 네, 확실히 두 아이의 케이스는 다릅니다.”
“뭐, 뭐라는 겁니까?”
박상우의 강변에 맥컬슨이 눈을 깜박거렸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크리스 군의 심장전위증과 파브리병은 독립변수라는 겁니다. 크리스의 심장전위증이 파브리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게다가 크리스의 심장전위증은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고요! 충분히 파브리병을 치료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
“하지만 크리스탈 양의 심장병은 파브리병과 종속관계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크리스탈 양은 파브리병에 의해 심장 문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만약 좌심실 비대증이나 심내막심근섬유증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수술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크리스의 사례처럼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단 말이고요! 이제 좀 이해가 되십니까? 의료 선진국, 미국의 석학 여러분?”
“…….”
박상우의 강력한 반격에 미국 의료진들이 침 먹은 지네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크리스탈 양은 죽습니다! 그런데 당신 때문에 벌써 1시간을 지체했어요! 대통령님,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이젠 대통령님께서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박상우가 시계를 가리키며 제럴드 대통령을 응시했다.
“닥터 박! 지, 지금 수술받으면 우리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겁니까?”
거의 울상이 되어 버린 제럴드 대통령이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대통령님! 저희가 치료를…….”
“됐습니다! 전, 솔직히 젠슨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요. 조금 전에는 가벼운 폐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젠 쇼크다 파브리병이다 횡설수설하다니. 정말 우리 미국의 의료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제럴드 대통령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치자, 젠슨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박상우 교수! 정말 자신 있는 거죠?”
“최선을 다해서, 제 모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살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발 우리 손녀 좀 살려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순간, 미국 측의 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통령님! 공항까지 경호 준비 마쳤습니다.”
“공항 안 갑니다!”
“네? 고, 공항으로 가지 않으신다고요?”
“안 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린 지금 당장 박 교수의 연희병원으로 갈 겁니다.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경호원이 침통해 있는 젠슨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 이왕 경호 준비를 하셨으니 연희병원까지 그걸 활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젠슨 교수님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데,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그게 나을 것 같군요.”
박상우가 이장수 대통령에게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인데 그렇게 하시죠!”
이장수 대통령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윤상부 교수님! 서둘러야 합니다. 전 아이를 데리고 엠뷸런스로 이동할 테니, 교수님은 본원으로 가셔서 수술 준비를 해 주십시오!”
“알았어.”
그렇게 윤상부 교수가 서둘러 영빈관을 빠져나갔다.
“교수님! 여깁니다!”
뒤이어 크리스탈을 안고 영빈관 밖으로 나가자, 이미 엠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경호 차량과 오토바이 역시 대동하고 있었다.
박상우를 뒤따라온 젠슨 교수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자, 박상우가 손을 내밀었다.
“안 타고 뭐 하십니까?”
“제가요?”
“그렇습니다. 저 혼자 모든 책임을 안고 가기엔 부담이 크군요. 교수님이 짐을 좀 덜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크리스탈 양은 미국 대통령님이 가장 아끼는 손녀 아닙니까? 조금 겁이 납니다. 젠슨 교수님의 수술방에 같이 들어가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얼른 타시죠?”
크리스탈의 수술에 공동으로 참여하자는 것.
승장 박상우가 패장 젠슨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아량이었다.
* * *
크리스탈을 싣고 곧바로 달려온 연희병원.
먼저 도착한 윤상부 교수와 함께, 천기수를 비롯한 흉부외과 최고의 엘리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준비됐어?”
“그래, 박 교수! 검사도 수술방에서 할 수 있도록 스탠바이해 뒀어!”
“수고했어! 바로 수술방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몇 번 방이야?”
“10번.”
“오케이! 크리스탈 양 바로 수술실로 옮겨. 난 젠슨 교수와 함께 수술 준비하고 들어갈 테니까.”
그 말을 한 후,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젠슨 교수를 응시했다.
“젠슨 교수? 클리블랜드 심장 클리닉의 그 젠슨 교수님을 말하는 건 아니지?”
“맞아, 그 젠슨 교수님. 이번에 정상 회담 때 내한하셨어. 오늘 수술방에 나랑 같이 들어가실 거야.”
“와.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젠슨 교수를 내가 직접 보다니?”
박상우와 천기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젠슨 교수가 엠뷸런스에서 내렸다.
“와, 진짜네?”
그 모습에 천기수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인마. 내가 진짜라고 했잖아!”
“그러게! 오늘 완전 계 탔다. 젠슨 교수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이 쓰신 논문과 저서는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탐독하고 있습니다. 정말 팬입니다!”
천기수가 젠슨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연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교수님이 우리 병원에서 수술하시는 걸 보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얼른 갱의실로 가시죠. 우리 측 레지던트들이 안내해 줄 겁니다. 김 선생! 젠슨 교수님, 갱의실로 안내해 드려!”
천기수가 레지던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박상우는 크리스탈의 심장 수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