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7)
신의 메스-247화(외전 28화)(247/249)
외전 28화. 한미 정상 회담 (6)
2022.04.28.
스크럽대 앞에서 박상우가 발로 레버를 건드리자 수돗물이 쏟아졌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군요.”
젠슨 교수가 쏟아지는 물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요. 스크럽대만 그렇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써전이나 미국의 써전이나 똑같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있는 존재니까요.”
박상우가 솔을 들고 팔꿈치 부위를 문지르며 말했다.
“맞는 말이군요. 맞아요. 의사는 국적을 초월하는 법이니까. 박상우 교수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젠슨 교수 역시 손과 팔을 정성스럽게 씻으며 물었다.
“네. 얼마든지요.”
“크리스탈 양이 파브리병이라는 걸 어떻게 단번에 알았습니까? 증세도 미미했고, 외관상으로 티도 나지 않았을 텐데요?”
“낸시 양을 처음 봤을 때부터요.”
“낸시를?”
“네. 낸시 양은 안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자주 눈을 비비적거리더군요. 게다가 악수를 할 때 보니, 손을 강하게 잡지도 않았는데 미간을 찌푸렸어요. 그건 손바닥에 흔히 ‘파브리 크라이시스(파브리 발작)’이라는 만성 통증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예전에 크리스의 엄마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요.”
“아……. 관찰력이 대단하시군요.”
“뭐. 파브리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기에 낸시 양의 행동을 조금 더 지켜봤지만요.”
박상우가 손과 팔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결국 손발에 타는 듯한 통증이 생기는 수시로 아이스팩을 썼던 거고, 자주 찬물로 씻었던 거군요!”
“네. 그렇다곤 해도, 엄마가 파브리병일 경우 딸이 파브리병에 걸릴 확률은 50%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니길 바랐죠. 하지만, 크리스탈 양의 동공을 확인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아! 코니얼 어퍼서티(각막 혼탁)?”
젠슨 교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파브리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세죠.”
“근데 그건 실트램프 현미경을 통해서 진단할 수 있는 것 아니오?”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의사의 감이었죠. 직감적으로 크리스탈 양이 파브리병을 앓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하아, 박상우 교수님.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솔직히, 거기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어요!”
젠슨 교수가 정자세를 취하더니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아닙니다. 그냥 운 좋게 제 예감이 적중했을 뿐입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을 너무 무시했어요.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우리나라 의학계는 여전히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양국의 의료 공조가 더욱더 긴밀해졌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도 배울 건 배워야 하니까요. 그나저나, 조금 전에 그 레지던트 말입니다. 영빈관에서 막 소리 질렀던 그 사람이요.”
“아, 김윤찬 선생이요?”
“그래요. 킴! 그 친구, 정말 대단하던데요?”
미국 최고 의료진들의 길을 막아서며 제 주장을 펼쳤으니, 대단하다고 할 만했다.
“조금 막무가내라서 걱정입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그 용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게다가, 박 교수가 존스홉킨스에서 파브리병 환자를 치료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아, 결국 그러고 보면, 그 친구도 크리스탈 양이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 아닙니까?”
“뭐. 우연이었겠죠.”
“우연이라……. 그게 우연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메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젠슨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연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뭐. 세상엔 알 수 없는 일들도 많으니까요.”
속마음은 동일했으나, 박상우는 짐짓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아무튼, 굉장한 제자를 두셨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을 만들어 주십시오. 생각할수록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거야 뭐,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그보다, 이제 가시죠. 크리스탈 양 살리러!”
“네. 그럽시다.”
* * *
수술방으로 들어간 박상우와 젠슨 교수는 언론을 완전히 차단한 채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술방에는 명성병원 최고의 외과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박상우의 예상대로, 진단은 좌심실 비대에 따른 심실 부전과 심내막 심근섬유증이었다.
심내막 심근섬유증, 내막근의 섬유 조직이 가라앉아 들러붙는 병으로 선진국보다는 열대 지방의 후진국에서 주로 생기는 병이었다. 그래서 열대성 섬유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그것도 대통령의 손녀가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팟! 파팟! 파파팟!
조명이 켜지자 수술 스텝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환자는 만 5세 여아입니다. 본 환자는 파브리병을 앓고 있고, 현재 엔도카니얼(심내막) 내에 피브리오스 티슈(섬유 조직)가 심하게 침착되어 있기에 심내막에 눌어붙어 있는 섬유 조직을 먼저 제거하고 닳아 없어진 발브(판막)를 발블로 플레스티(판막 성형술)로 복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발블로 플레스티가 제대로 이뤄지면, 비대해진 좌심실을 L-VAD(좌심실 보조 장치)로 교체할 겁니다. 맞습니까, 교수님?”
“박 교수의 설명대로입니다. 낯선 환경, 낯선 곳이지만, 우리 모두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물려받은 의사입니다. 국적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지만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같을 거로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살립시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젠슨 교수의 말에, 모든 스탭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박상우의 얼굴을 주시했다.
“섬유 조직 제거와 판막 성형술은 여기 계신 젠슨 교수님이, 그리고 좌심실 보조 장치는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저와 천기수 교수가 퍼스트에 서겠습니다.”
윤상부 교수는 그렇게 말하곤 입을 굳게 다물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수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어린아이입니다. 내 딸, 내 조카라는 생각으로 수술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네. 교수님!”
“바이패스 가동합시다. 바이패스 온!”
“바이패스 온!”
“환자 온도 내립니다.”
“쿨링 다운!”
박상우가 선창하자 스텝들이 후창했다.
위이이잉!
바이패스(체외순환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술 시작을 알렸다.
* * *
수술을 시작하고, 8시간 후.
지이이이잉!
수술방 녹색등이 점멸했고, 이내 박상우와 젠슨 교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와서, 묻지 않아도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박상우 교수! 우리 크리스탈은?”
그러나 제럴드 대통령은 직접 결과를 듣고 싶다는 듯, 박상우의 앞으로 달려와 물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크리스탈 양의 몫입니다. 잘 이겨내 주리라 믿습니다.”
“정말입니까? 진짜 우리 크리스탈은 무사한 겁니까?”
뒤에 서 있던 낸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심막에 침착된 섬유 조직을 완벽하게 제거했고, 문제가 된 판막도 제대로 복원했습니다. 이 모든 건 젠슨 교수님이 아니셨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크리스탈 양은 회복실로 이동해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상우가 환하게 웃으며, 모든 공을 젠슨에게 돌렸다.
“젠슨 교수! 정말,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럴드 대통령이 젠슨 교수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잘 차려 놓은 식탁에 포크와 나이프만 올려놨을 뿐입니다. 전 그냥 박상우 교수의 옆에서 어시스트를 했을 뿐입니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통령님.”
젠슨 역시 모든 공을 박상우에게로 돌렸다.
“그것 보십시오, 제럴드!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 사람이 바로 내 주치의이자,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자랑입니다. 저기 박상우 교수가 말입니다.”
이장수 대통령이 박상우를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맞아요.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이 이토록 뛰어난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제럴드 대통령은 양손의 엄지를 치켜올리며 박상우와 한국 의료진들을 향해 연신 찬사를 보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박상우 교수! 뭐든, 뭐든 말씀해 보십시오.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뭐든지 들어주겠습니다. 이 늙은 목숨이라도 내놓으리면 내놓을 수 있어요!”
제럴드 대통령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원하는 거요?”
갑작스러운 제럴드에 제안에 박상우는 살짝 당황했다.
“그럼요! 지금 당장 말해 보세요. 마음 변하기 전에.”
“어이쿠, 그러면 안 되죠. 저, 그러면 정말 말씀드리겠습니다?”
“암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얼른 말씀해 보세요.”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간절히 원하시니, 그럼 염치 불고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뭐든!”
“우리나라엔 척수성근위축증, 악성 혈액암,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가 많습니다. 물론, 이 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도 있지요. 꿈의 신약이라고 불리는 졸겐스마, 꿈의 항암제 캄리아, 면역항암제 키트루나, 심근병증 치료제 빈다맥스 등등. 미국의 선진기술로 개발된 신약들이죠.”
“맞아요! 그건 우리 의학계의 자랑이죠.”
“맞습니다. 하지만, 그 약효와 필요성에 비해서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탓에 환자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음, 그렇군요. 하긴. 졸겐스마 같은 경우는 200만 달러가 넘으니까.”
“그 자랑스러운 미국의 신약이 우리나라에서도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독일이나 일본처럼 저렴한 가격에 도입할 수는 없으니,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크리스탈 양 같은 유전병 환아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
“물론입니다! 그건 내가 앞장서서 제약사들과 협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임지고!”
“감사합니다.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우리나라 최우방인 대한민국을 위한 거라면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미스터 리?”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도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제럴드 대통령의 물음에, 이장수 대통령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 * *
수술로부터 5일이 된 시점.
크리스탈 역시 어느 정도 위험한 고비를 넘긴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미국으로 돌아가 남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크리스탈 양의 병세는 회복 속도가 빨랐다. 아직 미국으로 돌려보내기엔 조금 미흡했으나, 미국 측의 입장도 고려해 줘야 할 터.
젠슨 교수와 미국 의료진들의 간곡한 부탁에 박상우도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결국, 박상우는 크리스탈 양을 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한국 의사의 손으로 제럴드 미국 대통령의 손녀를 살리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천사, 제럴드 대통령의 손녀 크리스탈 양, 양국 간의 친선 외교에 다리를 놓다!
-박상우 교수, 대한민국 의학계의 자존심을 드높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아무리 엠바고를 걸고,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했어도, 가만히 있을 대한민국의 언론이 아니었다. 박상우가 크리스탈의 수술을 집도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 나가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모든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똑똑똑!
“과장님, 김윤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와.”
그렇게 온 세상이 박상우와 그의 수술로 떠들썩할 무렵, 박상우는 김윤찬을 자신의 연구실로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