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8)
신의 메스-248화(외전 29화)(248/249)
외전 29화. 누구냐 넌?
2022.04.30.
“교수님, 크리스탈 양 차트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크리스탈 양은 좀 어떤가?”
박상우가 차트를 넘겨보며 김윤찬에게 물었다.
“차트에도 나와 있지만,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신진대사도 원활하고, 활력 징후도 양호합니다.”
“다행이군. 혹시 안 좋아지면 어쩌나 했는데, 회복 속도가 빠르긴 하네. 다른 불편한 건 없고?”
“아이가 정말 붙임성도 좋고 귀엽습니다. 낯도 안 가리고, 밤에도 잘 잡니다.”
“그래도 바짝 신경 써야 할 거야. 언제 상황이 악화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천기수 교수님과 윤상부 교수님도 모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젠슨 교수님의 팀도 면밀히 관찰하고 있고요.”
“그래. 그래야지. 지금은 L-VAD(좌심실 보조장치)를 걸어 놨지만, 궁극적으로는 심장 이식을 해야 해. 온전히 치료할 길은 그것뿐이니까.”
“클리블랜드 장기이식센터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미국은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이 관대해서, 기증자를 찾는 게 확실히 쉬운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최대한 빠른 시기에 심장 이식 수술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우리나라도 빨리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맞습니다. 그래야 좀 더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심장도 심장이지만, 파브리병도 간과해선 안 돼. 크리스탈 양은 알파 갈락토시다아제(효소)가 없으니, 글라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GL3)가 합성되지 않아서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김윤찬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선, 아무래도 한국보다 환경이 잘 갖춰진 미국에서 치료받는 게 좋겠지. 아쉽지만 말이야.”
“저도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계시니까 우리도 곧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겠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 혼자서 해낼 일이 아니잖나?”
“그 시작을 교수님께서 열어 주시는 거죠, 뭐.”
“그건 뭐…… 아무튼. 파브리병은 확실히 미국에서 치료하는 게 낫겠어.”
“엠마 교수님이 개발한 경구용 치료제 덕분에 이 정도는 자택에서 치료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굳이 2주에 한 번씩 병원에서 효소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이요.”
“그래. 이제 파브리병도 불치병은 아니지. 당뇨처럼 관리만 잘하면 평생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야.”
“네. 교수님.”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한테 좋은 기회를 주려고 해.”
“네? 좋은 기회라뇨?”
김윤찬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얼마 전에도 젠슨 교수와 자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젠슨 교수가 김윤찬 선생에 대한 관심이 많더군.”
“아……. 정말입니까?”
“그래. 김 선생의 당돌함이 맘에 들었다더군.”
“아이고, 제가 너무 설쳤나 보군요.”
김윤찬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자네를 맘에 들어 하는 눈치야.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클리블랜드로 넘어가는 건 어떻겠나?”
“네? 넘어가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크리스탈 양이 미국으로 건너간다 해도 주치의 팀이 붙어야 할 거야. 하지만 자네 만큼 그 아이를 잘 아는 의사도 없잖나? 그래서 내가 자네를 적극 추천했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하긴 한데…….”
“왜? 싫은가? 클리블랜드 심장센터면 전 세계 써전들의 로망 아닌가?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곳일 텐데.”
“아뇨. 그게 아니라, 저한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사실 교수님 곁에서 좀 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요.”
“입 바른 소리는 그만하고, 가라면 가. 나한테 배울 게 뭐가 있나? 젠슨 교수 밑에서 선진의학을 제대로 전수받아서 다시 오면 되지. 그땐 우리 명성도 클리블랜드 못지않게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쯤 되면 제 몸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허 참! 젠슨은 이런 당돌함이 뭐가 좋다고. 자네 몸값이 얼마나 치솟을지 기대해 보겠네.”
“교수님께서 정 그렇게 보내고 싶으시다면, 할 수 없죠. 교수님을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김윤찬은 능글맞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좋아. 그전에…… 자네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가감 없이 솔직히 말해 주길 바라네. 자네가 대답하는 거 봐서, 클리블랜드행도 취소될 수 있으니까 잘 대답하도록 하고.”
“어떤 걸 물으시려는 건지, 벌써부터 무서운데요?”
김윤찬이 조금은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무서워할 것 없어.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만 답하면 되니까. 지난번 정상 회담 때, 자네가 영빈관에서 소리쳤던 거 기억하나?”
“네? 제가요?”
박상우의 물음에, 김윤찬은 능청을 떨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대로 읊어 줄 수도 있어. 그때 분명 이렇게 소리쳤지. 크리스탈 양을 에어포스 원으로 옮기면 위험하다고, 그곳까지 갈 시간이 없다고 말이야. 어떤 의미로 그렇게 소리쳤는지, 나한테 설명해야 할 거야. 하나도 빠짐없이.”
박상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김윤찬을 응시했다.
“아……. 제가 그랬나요?”
“대충 얼버무릴 생각은 마. 오늘은 그렇게 안 될 테니까.”
김윤찬이 눈동자를 굴렸지만, 박상우는 작정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얼굴을 보고, 김윤찬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교수님께선 제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모르겠네, 자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래서 지금 대답을 들어 보고 싶은 거고.”
“교수님께서도 크리스탈 양을 에어포스 원으로 데리고 가시면 위험하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이유와 똑같습니다.”
“똑같다? 그렇다면, 자네 역시 크리스탈 양이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고 확신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자네는 아직 레지던트 1년 차 아닌가?”
“그렇죠. 레지던트 1년 차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나라 흉부외과 최고의 써전인 박상우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전 그저 과장님의 행동을 관찰했을 뿐입니다.”
“관찰?”
“그렇습니다. 교수님께선 낸시와 만나 악수할 때 그녀의 표정을 살폈고, 그 후로도 낸시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 역시 교수님의 눈으로 그녀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이 왜 그녀를 살펴봤는지 알겠더군요.”
김윤찬이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녀석 봐라? 확실히 보통 녀석은 아니야. 분명 뭔가 있는데…….’
박상우가 짧게 숨을 내뱉으며 김윤찬에게 물었다.
“관찰한 결과, 낸시가 파브리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건가?”
“네. 전 언제나 교수님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니까요.”
“무섭다, 무서워. 스토킹이라도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내가 미국에서 크리스를 치료했던 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관심만 있다면 다 알 수 있는 거죠. 과장님의 레퍼런스는 전부 여기에 입력되어 있으니까요.”
김윤찬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난 또, 무슨 예지력이나 초능력 같은 게 있는 줄 알았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자를 보면 잔존 수명이 보인다거나, 아니면…….”
“교수님, 요즘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으시나요? 잔존 수명이라니. 뭐, 초시계 같은 게 머리 위에 뜨고 남은 수명이 보이는 그런 건가요?”
김윤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그런 비슷한 거지.”
“와, 그런 능력이 있으면 환자 치료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 혹시 교수님이 그런 신묘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퍼펙트한 써전이 되신 거고요.”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있나? 다만, 자네가 남달라서 의심해 본 거야.”
“감사합니다. 전 그저, 교수님을 바라보면서 교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게 다예요. 그래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을 치료할 때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김윤찬이 연신 생글거리며 말했지만, 박상우는 의심의 끈을 놓기 힘들었다.
“저 그렇게 특별한 놈 아닙니다. 그냥 좀 유별난 면은 좀 있지만요. 이게 다 교수님 덕분이에요.”
“내 덕분이라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써전이니까요. 항상 교수님을 닮고 싶어 하다 보니, 저도 점점 성장하게 됐습니다.”
“닮으려 한다라…….”
“그럼요. 당연하죠. 벌써 잊으셨습니까? 교수님께서 인턴 때 조폭들 응급실에 실려 온 날, 환자를 수술방으로 데려가셨던 일화는 지금도 전설이거든요. 그게 가능한 건지, 저도 아직 의문입니다.”
김윤찬은 그 일화를 떠올리는 듯,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님에 비하면, 저는 그나마 양호한 거 아닐까요? 전 레지던트였지만, 교수님은 인턴이셨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야.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군.”
박상우 역시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수님께서 선례를 만들어 주신 덕분에, 제가 특이한 행동을 해도 묻히고 있습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알겠네. 이만 나가서 일 봐. 클리블랜드 건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네. 클리블랜드로 가는 게 썩 끌리진 않지만, 교수님께서 까라면 까야죠.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여전히 유들유들한 표정의 김윤찬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내가 너무 과민했던 건가? 남들보다 똑똑한 것뿐이라면……. 그래. 나 같은 경우는 아닐 거야. 그게 말이 되는 일도 아니고.’
박상우는 여전히 헷갈렸지만, 애써 갈무리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 * *
김윤찬의 클리블랜드행은 빠르게 결정되었다.
물론, 클리블랜드행은 이번 수술에서 얻은 이점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박상우가 크리스탈의 생명을 구해 낸 파급효과는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우선, 미국 메이저 제약사로부터 희소병 환자들에 대한 무상 지원을 약속받았다.
물론, 100% 공짜는 아니었다. 근육병, 희귀 혈액암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허용한다는 단서가 붙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국내에선 치료가 힘든 병들이었기에, 임상시험이든 뭐든 그들에겐 희망이 될 수 있었다.
더불어, 클리블랜드 의대와의 협력 체계가 구축되었다.
명성병원의 입장에서 볼 땐, 이게 좀 더 매력적인 사항이었다. 김윤찬의 클리블랜드행을 비롯해 명성병원의 우수한 인력들이 클리블랜드로 대거 이동하였고, 학업과 임상을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보다 실질적인 실력 향상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에 맞춰, 동양 최고의 종합병원으로 거듭나는 길 또한 열렸다.
의학, 바이오 산업에 집중하겠다는 이장수 대통령의 공약과 맞물려, 제럴드 대통령과 클리블랜드 의대, 그리고 존스홉킨스 의대는 명성병원에 투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신약 연구, 최첨단 의료 장비 지원, 무엇보다도 국내, 아니 아시아 최고 병상 규모를 갖춘 병원 건립까지.
이 모든 것이 박상우가 이사장에 취임한 뒤로 이뤄진 꿈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박상우와 명성병원은 세계 최고의 종합병원으로 거듭날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4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