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49)
신의 메스-249화(외전 30화)(249/249)
외전 30화. 다시 제자리로
2022.05.03.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년이란 세월은 명성병원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명성병원은 이제 세계적인 병원으로 발돋움했다.
국내 종합병원 평가 1위는 물론, 세계적인 언론사 뉴스데이의 임상평가 전 부분에서 13위에 올랐고, 심장 분야는 존스홉킨스, 케임브리지 심장센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심장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탑 3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4년 전만 해도 모든 분야에서 100위권 밖이었으니, 상상도 하지 못할 놀랄 만한 성과였다.
전문 심장센터를 비롯해서 국내·외의 적극적인 투자 덕분에 양은 물론, 질적으로도 세계적인 병원에 오른 것이다.
인사 제도 역시 혁신적으로 개혁되었다.
학연과 지연을 배제한 실력 위주의 채용과 평가가 이뤄졌는데, 덕분에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명성병원 의사들의 논문이 게재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편수 또한 연일 역대급 수치를 갈아치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박상우가 이사장으로 부임한 후, 불과 4년 만에 이뤄진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 * *
건강에서 완전히 회복한 김민준 교수는 얼마 전부터 센터장에 취임해 명성병원의 핵인 심장센터를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심장센터에선 심장병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곤 했는데, 환자와 의사 간의 벽을 허물어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박상우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수술하던 중에 심장이 멈추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수술 중에 심장이 갑자기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하기가 어려워지잖아요?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왼쪽 제5번 늑골을 통해서 가슴을 연 후 심낭을 부분 절개하고, 손으로 직접 심장을 움켜쥐고 주물러서 혈액을 순환시킵니다.”
김민준 교수는 자신의 늑골 주변을 손으로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 애 아빠가 캐비지라는 수술을 받았는데, 캐비지가 정확히 어떤 건지 알고 싶어요. 우리 가족이 받은 수술인데, 그게 뭔지도 모르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음…… 우리가 흔히, 아이들이 뭔가를 물어보면 ‘넌 몰라도 돼’ 하고 넘어가기도 하잖아요?”
“하하하, 맞아요.”
“사실 몰라도 되는 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의사들도 똑같아요.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제대로 설명해 드리기 어려운 거죠. 다만, 궁금한 게 생기시면 꼭 담당 의사에게 확인해 주셔야 해요. 이 모든 것은 환자의 관리 영역이니까요.”
“네.”
“캐비지는 관상동맥 우회술이라는 겁니다. Coronary Artery Bypass Graft의 앞글자를 따서 CABG, 캐비지라고 불러요.”
“아하!”
“관상동맥은…… 고속도로라고 생각해 주시면 이해하기 편할 거예요. 자동차는 혈액이라고 보면 되고요. 명절이나 휴일만 되면 고속도로들이 꽉 막히는데, 그때 차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죠.”
“맞아요. 마찬가지로, 관상동맥이 막히면 혈액이 흐르지 못하고 멈춰 있게 돼요. 결국, 제대로 순환이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데, 고속도로에서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요?”
“국도로 가야겠죠?”
“빙고! 바로 그겁니다. 고속도로가 막히면 국도로 돌아가는 것처럼, 관상동맥이 막히면 혈액이 순환될 수 있도록 우회 혈관을 만들어 주는 거죠. 그 우회 혈관을 만들어 주는 수술을 캐비지, 즉 관상동맥 우회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이젠 정확히 알겠네요!”
“이제 누가 캐비지 수술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 주시면 돼요. 아시겠죠?”
“감사합니다, 교수님!”
김민준은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들과 소통하며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의 벽을 해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 * *
“천기수 진료 부원장, 김윤찬 선생은 곧 귀국한다고 했지?”
윤상부 원장이 원장실로 천기수를 불러 물었다.
“며칠 있으면 귀국할 겁니다.”
“드디어 세계적인 스타를 영접하게 되는 건가?”
“그렇죠. AHA(미국 심장 관련 연구 협회)에서 매년 실시하는 흉부외과 평판 조사에서, 향후 흉부외과를 빛낼 전문의 탑 10에 선정되었으니까요.”
“그렇지. 그것도 1위라면서.”
“그렇습니다. 하여간, 미국에서 절대 못 놔주겠다는 걸 멱살 잡고 끌고 왔으니까요.”
“하하하, 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크게 웃던 윤상부 원장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알기론 김윤찬 선생, 본인이 들어오겠다고 했다던데?”
“원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 온다고 해서, 제가 작년에 존스홉킨스로 넘어가서 개고생한 거 기억 안 나십니까?”
“그거야 뭐, 부원장이 놀러 가려고 한 거잖아.”
“에이, 김윤찬 선생을 설득하려고 몇 날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가면서…….”
“술을 마셨겠지. 부어라 마셔라 하고.”
“……흐흐, 네. 한 2박 3일 내내 위스키만 마셨더니, 토 나오는 소리도 영어처럼 들리더라고요.”
“하여간, 사람하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몸 관리 잘해. 그렇게 퍼마시다간 심장보다 간이 먼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천기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조현오 교수님은 좀 어떠신가?”
“좋지는 않습니다. 원래 지병으로 당뇨를 앓고 있는 데다, 응급수술까지 하셨으니까요.”
“그래. 천 교수가 집도했었지?”
“네. 관상동맥이 다섯 곳이나 막혔더라고요. 정말, 딱 한 시간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 겁니다.”
그때가 다시 생각난 듯, 천기수는 한차례 가슴을 쓸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강골이셨던 양반이 많이 야위셨더군. 자네가 신경 좀 써 줘.”
“당연하죠. 원장님한테는 그저 선배겠지만, 제겐 하늘 같은 스승이니까요.”
“그래. 빨리 좋아지셔야 할텐데 말이야.”
“너무 걱정 마십시오. 워낙 의지력이 강하신 분이니, 조만간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암, 그래야지.”
* * *
“아이고, 우리 천하의 조 교수님이 이게 뭡니까, 정말?”
여성 한 명이 눈을 흘기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듯 백발이 성성한 여성은 명성병원 개원 이래 간호사로서 부원장 자리에 오른 유일무이한 간호사, 김영순이었다.
그녀가 백설아 간호부장과 함께 조현오 교수 병실을 찾은 것이었다.
“부원장님 오셨습니까?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다 오시게 하고, 죄송하네요.”
그러자 누워 있던 조현오 교수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 조 교수님이 쓰러지셨다는데 내가 어떻게 안 옵니까? 다 죽어 가는 줄 알았더니, 표정 보니 아직 짱짱하시네.”
김영순 부원장이 놀리듯 말하며 조현오 교수를 바라봤다.
“왜요? 안 죽어서 섭섭합니까?”
“네, 아주 많이 섭섭하군요. 옛날에 절 괴롭히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허허허, 제가 그랬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제가 오죽했으면 꿈에서 교수님을 묶어 놓고…….”
“아이고, 그만! 그만하십시오.”
조현오 교수가 민망한 듯 손을 내저었다.
“얼른 털고 일어나시기나 하세요. 교수님이 이렇게 누워 계시니까, 심심해 죽겠습니다.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그래야죠. 저도 부원장님 괴롭히는 맛으로 살았는데, 이렇게 누워만 있으려니 너무 심심하군요.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니다. 그나저나 백설아 부장님, 박상우는 여전하신가?”
“어휴, 뭐 똑같죠. 농부가 다 됐어요. 파 심고, 고추 심고, 심지어 요즘은 배추까지 재배해서 보내 주네요.”
“허허허, 하여간 박 교수도 참 유별난 인간이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는 명성병원 이사장직은 내팽개치고 그 고생이라니.”
“뭐, 평양 감사도 싫으면 안 한다잖아요? 그이는 그렇게 사는 게 좋다는 걸 어떡하겠어요?”
“인턴 때 수술방 들어간다고 그 난리를 피울 때부터 알아봤지. 하여간 별난 사람이야, 진짜.”
“맞아요. 저도 이젠 포기했어요.”
백설아 간호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가끔 서울로 올라오긴 하나?”
“아뇨. 미세먼지가 날려서 눈 아프다고 안 오네요. 제가 내려가요, 이 몸을 이끌고.”
백설아 간호부장의 배는 제법 불러 있었고, 힘들다는 듯 허리에 손을 짚은 채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그 몸을 이끌고 내려간다고요? 이제 산달도 며칠 안 남지 않았나?”
“네. 곧 있으면 우리 똘똘이도 나올 것 같아요.”
“부인도 오라 가라 할 사람이면, 나를 보러 코빼기도 안 내비칠 만도 하네.”
“요새도 병원 관두고 내려오라면서 성화예요. 자기가 올라오면 어디 덧나나.”
백설아 간호부장은 입을 삐죽거리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김영순 부원장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하, 바랄 걸 바라야지.”
“역시, 제가 너무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은 거죠?“
백설아 간호부장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 * *
지방의 작은 농촌 도시인 경촌의 희망병원, 이곳이 박상우가 진료를 하는 곳이었다.
“여긴 거의 농장이네요?”
그리고 그 병원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이제 막 미국에서 돌아온 김윤찬이었다.
“어? 자네?”
박상우는 입을 벌린 채, 손가락으로 김윤찬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언제 귀국한 건가?”
박상우는 스프링처럼 튀어나와선 김윤찬의 양어깨를 잡았다.
“이제 막 왔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여기로 왔어요.”
“하하하, 그런가? 오! 자네가 가까이 오니까, 버터 냄새가 물씬 나는구먼. 이게 미제 버터 향인가?”
“어휴. 여전하시네요, 그 이상한 아재 개그도.”
“하하하,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겠나. 원래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는 말도 몰라?”
“그러시겠죠.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아무튼, 반갑네. 자자, 뭘 대접해야 하나?”
“저기 텃밭에 있는 고추랑 상추라도 따올까요?”
“좋지! 저거 완전 유기농이야. 냉장고에 삼겹살이 좀 있는데, 우리 구워서 한잔할까?”
“나 참! 그러면 그냥 보내시려고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소주 몇 병 사 왔습니다.”
김윤찬은 뒤에 숨기고 있던 검은색 비닐 봉투를 쓱 들어 올렸다.
“하하하, 하여간. 자네 센스는 녹슬지 않았구먼.”
박상우는 소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한번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시죠. 그나저나, 진료는 끝나신 거죠?”
“어. 이제 막 셔터 내리려던 참이야. 조금만 기다…….”
쾅!
“서, 선생님! 우리 엄니가 이상해유!”
그 순간, 등에 노인을 업은 한 남성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무슨 일입니까?”
“모……모르겠어유. 밭에서 일하시다 갑자기 쓰러지셨는디, 이게, 이게…….”
“일단 여기에 눕히세요!”
“아, 알겠어라.”
“잠깐만요!”
남자가 노인을 베드 위에 올리고, 박상우가 펜 라이트를 꺼내려는 순간, 김윤찬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무슨 일이야?”
“이분, 3시간 안에 수술 못 하면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김윤찬은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뭐라고?”
“지금 당장 수술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지금 당장?”
“제가 나가서 차 시동 걸어 놓을 테니까 빨리 모시고 나오세요!”
김윤찬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지금 김윤찬 저 친구가…… 정확히 3시간이라고 말한 거 맞지?’
박상우는 노인의 이마와 멀어져가는 김윤찬을 번갈아 응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