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5)
신의 메스-25화(25/249)
25화 스타 변호사 (4)
“기수야, 지금 당장 VIP 병실로 튀어 와라!”
박상우가 부랴부랴 천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때리는 소리야? 오늘 100만 년 만에 오프인 거 모르냐? 내가 왜 지긋지긋한 병원에 나가야 하는데, 친구야?”
“군소리하지 말고 당장 튀어 와. 한 교수님 호출이니까.”
“그러니까 왜? 왜 그 인간이 나를 호출하냐고?”
“지금 윤석현 환자 수술 들어간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튀어오라고.”
“아이 씨,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여간 지금 나가긴 하는데, 너 만약에 구라치는 거면 각오해라. 껍데기 홀랑 벗겨 버릴 테니까.”
“알았으니까 당장 튀어오기나 해. 아! 그리고 인선이도 연락해서 같이 와.”
“아! 이, 인선이도 와야 하는 건가? 흠흠, 그러면 야, 뭐. 얘기가 달라지지. 알았다. 내가 연락해서 데리고 갈게.”
김인선을 마음에 품고 있던 천기수로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리라.
“그래! 급하니까 최대한 빨리 와.”
“알았대도.”
이렇게 해서 체외 순환기사인 박 기사, 마취과 조 선생, 박상우를 비롯한 세 명의 레지던트 그리고 한정석 교수와 최태순 교수까지 가까스로 수술할 수 있는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윤석현은 VIP 병실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에피네프린, 도파민, 도부타민 등의 링거가 그의 온몸에 촉수처럼 기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일단, 내시경부터 살펴봐야겠어!”
수술하기 전, 윤석현의 대략적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최태순 교수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음, 이거 장난 아니다. 한 교수! 하마터면 죄다 박살 날 뻔했어! 이 환자, 하늘이 도왔네. 조금만 늦었어도 회생 불가능이야.”
대장 내시경 모니터를 지켜보던 최태순 교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 어떻게 된 건데?”
심란한 표정의 한정석이 눈을 가늘게 뜨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거 봐 봐. 항문에서 11cm 떨어진 부위부터 S 결장까지 확인해 봤는데, 결장에 심한 얼서(Ulcer: 궤양)가 생겼어! 게다가 일부 부분은 이미 네크로시스(Necrosis: 괴사)가 진행된 듯해.”
최태순 교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흠, 그래도 조직 검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시간도 없고 조직을 떼어 내면 환자 상태로 볼 때 지혈이 안 될 거야. 그건 안 돼!”
최태순 교수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 바로 수술해야 하는 건가?”
한정석 교수가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박상우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어, 수술 말고는. 게다가 항문 주위에 발적이 관찰되는 거로 볼 때 이스케믹 콜리티스(Ischemic colitis: 허혈성 대장염)가 틀림없다. 이, 이거 아무래도 한 교수가 집도한 수술……. 아니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바로 수술하는 게 좋겠어. 다행히 직장엔 궤양이 생기지 않은 것 같아.”
최태순 교수가 레지던트들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알았어. 일단 수술실로 옮기자고.”
“그래.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
최태순 교수가 한정석과 대화를 마친 후 박상우 일행을 죽 훑어보았다.
“너희들 TS 소속이야?”
“네. 맞습니다. 교수님!”
“흠, 우리 과 애들이 아니라서 손발이 맞으려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하자!”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천기수가 목청을 돋우어 힘차게 말했다.
“패기 좋네! 환자, 당장 수술실로 옮겨. 아, 그리고 너. 이름이 뭐지?”
최태순 교수가 손가락으로 김인선을 가리켰다.
“네. 1년 차, 김인선입니다.”
“넌 우리 쪽 너스 스테이션으로 가서 안현선 간호사 당장 데리고 와. 내가 연락해 뒀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자!”
최태순 교수가 박상우와 천기수를 응시했다.
“네. 교수님!”
스트레처 카에 윤석현을 태우던 천기수가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무슨 상황이긴. 보면 몰라? 수술하러 가는 거지.”
“그건 아는데, 이건 뭐 007 작전도 아니고 무슨 수술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냐고!”
“난들 아니? 군소리 말고 환자나 옮기자. 우리는 그냥 까라면 까야지.”
드르륵, 박상우와 천기수가 윤석현을 실은 스트레처 카를 밀며 수술실로 이동했다.
* * *
경의실.
한정석과 최태순이 수술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그 1년 차 애가 어떻게 심장에서 혈전이 떨어져 나간 걸 안 거야?”
최태순이 수술복을 갈아입으며 한정석에게 물었다.
“후,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된 건지. 다만, 그 녀석 진단에 전혀 오류가 없다는 게 팩트야.”
한정석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흠, 그놈 참, 난놈일세. 수술 경험도 전혀 없는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최태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 교수! 혹시, 그놈 눈빛 봤어?”
“글쎄. 그건 왜?”
“후, 모르겠어. 대화를 나누는데 왠지 레지던트 1년 차가 아니라 한 20년 이상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고수를 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등골이 오싹하더라고.”
“이 사람이? 아무튼, 어찌 됐든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야. 일단 사람부터 살려 놓고 보자고. 모로 가면 어때? 서울로 가면 장땡이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행히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최태순이 한정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윤석현을 수술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미 괴사가 진행된 장기를 절제함과 동시에, 이중 판막 치환술로 인해 생긴 혈전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수술이었다. 윤석현의 상태로 볼 때 성공 확률이 30%도 채 되지 않아 위험했다. 수술실에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교수님, 전신마취 완료했습니다.”
“네. 바이털 체크해 주세요.”
“네. 호흡 정상, 체온 37.7도로 약간 미열이 있고 맥박 정상입니다.”
“혈압은?”
최태순 교수가 수술을 준비하며 물었다.
“네. 현재 100/75mmHg! 혈압이 좀 낮긴 한데, 수술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어요. 안 간호사! 수시로 혈압 체크 해 주시고 지금 옥시전 세추레이션이 81%니까 산소마스크 씌우고 분당 6l씩 산소 공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위장관 외과의 베테랑 간호사 안현선이 윤석현의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자, 이제 준비 다 됐으면 수술 시작합시다. 소장과 대장 일부분을 절제할 거고요. 공장루 형성술까지 갈 겁니다. 수술 소요 시간은 대략 2시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거니까 다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네. 교수님!”
“정 간호사, 김수희의 ‘남행열차’ 좀 틀어 봐. 난 이 노래가 참 좋더라!”
“네. 교수님!”
짝짝짝, 최태순이 손뼉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경직된 의료진들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안현선 간호사가 미리 마련된 CD 플레이어에 CD를 넣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곧이어 노래가 흘러나오자 최태순 교수가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다.
“메스!”
그것도 잠시, 날카롭게 눈을 빛낸 최태순 교수가 손을 내밀었고 안 간호사가 메스를 올려놔 주었다.
주우욱, 곧이어 최태순 교수가 능숙한 솜씨로 복부를 갈랐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만큼 능수능란했다. 거즈를 든 안 간호사가 조금씩 새어 나오는 피를 닦아 냈다.
“와, 진짜 소문대로 수술방의 검객답다. 어떻게 피가 한 방울도 안 새냐? 안 그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기수가 박상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게.”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뭐 해? 구경났어? 너희 둘, 리트렉터(Retractor: 수술할 동안 환부 절개 부위를 벌리는 기구) 걸고 잡아당겨!”
최태순 교수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박상우와 천기수를 향해 외쳤다.
“네. 교수님!”
박상우와 천기수가 양쪽에서 리트렉터를 잡고 잡아당겼다. 빠지직, 복부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야, 야. 굶었냐? 좀 더 당기지 못해?”
최태순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 알겠습니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온 힘을 다해 리트렉터를 잡아당기는 천기수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나약한 새끼! 우리 땐 10시간도 넘게 잡고 있었어! 이래서 되겠냐? 야, 쟤랑 바꿔!”
“네. 교수님!”
최태순이 고개를 흔들며 김인선을 향해 손짓했다. 그의 말에 김인선과 천기수가 자리를 바꿨다.
“그래, 그래. 네가 쟤보단 훨씬 낫네. 한심한 놈! 피죽도 못 먹었나, 남자 새끼가.”
김인선이 천기수와 자리를 바꿔 리트렉트를 힘껏 잡아당기자 최태순 교수가 혀를 찼다.
“포셋!”
“네. 여기 있습니다.”
최태순이 포셋으로 괴사가 시작된 장기를 집어 고정하기 시작했다.
“아 놔. 이거 벌써 상당히 진행됐네?”
윤석현의 속을 들여다본 최태순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 모습을 수술방 밖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는 한정석 교수는 연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야, 뭐 해. 식염수 때려 붓고 석션! 내가 눈이 나쁘다고 했냐, 안 했냐?”
최태순이 손을 흔들더니 천기수에게 소리쳤다.
“네, 교수님!”
치지지직, 천기수가 석션을 집어 들더니 환부에 가져다 댔다.
“상·하행 결장, S 결장에 부분적인 괴사가 시작됐고 회맹부 밸브까지 괴사가 시작된 것 같아. 하지만 다행히도 그 범위는 넓지 않아서, 잘라 내면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다행히.”
천기수가 한정석을 향해 손가락을 오므려 OK 사인을 보냈다.
그 모습에 한정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선생아! 나 이마에 땀 난다!”
최태순이 안현선 간호사를 향해 이마를 들어 올렸다.
“네. 교수님. 닦아 드리겠습니다.”
안현선 간호사가 거즈를 꺼내 최태순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이윽고 그가 괴사한 장기를 절제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썩어 가고 있던 장기를 절제하고 있었다.
‘역시 ‘수술방의 검객’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정말 완벽해!’
최태순을 지켜보던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역시 최태순 교수님이시네!”
그와 동시에 김인선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김 선생, 달리 최태순 교수님이 우리 병원의 에이스인 줄 알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마취과 조 선생이 김인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갔다. 최태순의 말대로 정확히 두 시간 안에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됐어! 성공이야!”
최태순은 초집중 상태에서 괴사한 장기를 들어냈다. 수술을 마친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교수, 일단 수술은 성공적이야. 소장 트레이드 인대 80cm 정도 절제했는데, 점막 손상이 좀 심하네. 그래도 치명적이지는 않아. 하마터면 트롬보엠볼리즘(Thromboembolism: 혈전 색전증)이 올 뻔했어. 이젠 한 교수 차례야.”
최태순 교수가 핀 마이크를 끼고는 수술방 밖에 있는 한정석에게 콜 했다.
“어, 그, 그래.”
비틀거리는 한정석. 그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표정이었다.
“얘들아, 마무리는 너희가 해라. 난 나가서 좀 쉬어야겠다. 아이고, 팔, 다리, 허리 삭신이야.”
최태순 교수가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며 온몸을 두드렸다.
삐그덕, 한정석이 수술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한 교수! 그나저나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
“아니, 괜찮아!”
“그래, 그래. 별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다 잘될 거야. 나 먼저 나갈게.”
툭툭툭, 최태순 교수가 한정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