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26)
신의 메스-26화(26/249)
26화 스타 변호사 (5)
“박 기사, 체외 순환기 윤석현 환자 가슴에 연결하고, 천기수는 혈액량 체크해.”
“네. 교수님.”
“네. 알겠습니다.”
가까스로 몸을 지탱한 한정석 교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박상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괘, 괜찮아.”
‘이러다가 문제 생기는 거 아냐?’
땀에 절어 있는 한정석 교수의 등을 확인한 박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부터 윤석현 환자 가슴 절개하고, 남아 있는 혈전을 제거합니다! 스터넘 소우(Sternum saw: 흉골 전기톱, 흉골을 절개하는 기구)!”
“네. 여기 있습니다.”
박상우가 스터넘 소우를 한정석에게 건네주었다.
지이이잉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유방 하 형태(W자 모양)로 윤석현의 가슴이 절개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 체외 순환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박상우는 한정석의 옆에서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어시스트하고 있었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스터넘 소우를 잡고 있던 한정석의 손이 흔들리자 박상우가 노련하게 그의 팔을 잡아 고정했다.
“괘, 괜찮아. 걱정하지 마.”
“한 교수님, 오늘 왜 저래?”
마취과 조 선생이 안현선 간호사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엄청 긴장하시네요.”
안현선 간호사 역시 불안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한정석의 손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 모습을 의료진들이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안 선생!”
뚝뚝뚝, 한정석이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 안현선 간호사가 거즈를 꺼내 연신 그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지금부터 남은 혈전을 제거하겠습니다.”
간신히 개흉에 성공한 한정석 교수가 가슴을 열고 본격적으로 혈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열어젖히자 역시나 좌심방 곳곳에 혈전이 남아 있었다.
“포셋!”
“네.”
“클램프!”
“여기 있습니다.”
“여기 식염수 부어 주고 석션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위이이잉, 천기수가 석션을 개흉부 안에 집어넣고는 혈액을 빨아들여 시야를 확보했다.
한정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부자연스럽던 손놀림이 한결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여전히 불안한 구석은 남아 있었다.
‘제발,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한정석 교수!’
박상우가 미간을 좁혔다. 조 선생을 비롯해 수술방에 있는 모든 의료진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안하다. 불안해!’
마취과 조 선생이 모니터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말아 쥔 그의 양 주먹 사이로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수술방 분위기 속에서 박상우의 노련한 어시스트를 받아, 한정석 교수는 가까스로 남은 혈전을 제거할 수 있었다.
“후…… 이제 다 됐습니다!”
그제야 한정석 교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의 몸은 땀으로 목욕한 듯이 젖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행이야.”
이를 지켜보던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성공적인 수술에 안심하던 순간.
바로 그때였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체외 순환기사인 박 기사가 공황에 빠진 듯 양 손톱으로 양 뺨을 긁어내렸다.
“박 기사님! 무슨 일입니까?”
“체, 체외 순환기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벌게진 얼굴의 박 기사. 그의 입과 턱이 덜덜 떨렸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한정석 교수는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까지 박상우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지했던 정신이 완전히 바스러진 듯 보였다.
체외 순환기의 갑작스러운 고장!
심장 수술의 경우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일이었다.
체외 순환기란 수술 도중에 일시적으로 심장을 정지시키는 장치였다. 혈액을 냉각하고 다량의 칼륨을 투여해 심정지 시킨 후, 수술이 끝나면 차가워진 혈액을 다시 데우고 칼륨을 씻어 내는 시스템이다. 심장 및 심혈관 수술 시 필수적인 장치였다.
지금 그 장치가 고장 난 것이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으으, 으윽.”
천기수가 달려가 한정석 교수를 부축했다. 한정석이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했다.
“박상우! 어, 어떡해? 교수님 아무래도 쇼크 상태인 거 같은데?”
김인선이 난감한 듯 물었다.
“인선아, 일단 교수님 모시고 나가서 쉬시게 해! 아마도 수축기 혈압이 140mmHg가 넘을 거다. 혈압강하제 투여해 드려!”
박상우가 신속하게 지시했다.
“그, 그럼 윤석현 환자는? 나가서 최태순 교수님이라도 모셔 올까?”
“아냐, 지금 그럴 시간 없어. 환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교수님 빨리 모시고 나가! 빨리! 기수야, 너도 인선이 도와줘!”
박상우가 손을 흔들며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후, 알았다. 그럼 어떻게든 해 봐라. 나는 정말 모르겠다. 교수님 모셔다 놓고 다시 오마!”
‘이, 이게 무슨 일이냐?’
거의 울상이 된 천기수가 인선과 함께 한정석 교수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
“알았어. 서둘러!”
“기사님, 체외 순환기 고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후, 지금으로선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아마도 크랭크가 나가 버린 것 같은데…….”
당황한 박 가사가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선생님! 지금 윤석현 환자 바이털은요?”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안현선 간호사를 쳐다봤다.
“네. 호흡 불안정하고 체온은 급격히 하강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환자 어레스트 올 것 같아요. 선생님!”
당황한 안현선 간호사 역시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자칫 잘못하면 이 환자 뇌사할지도 몰라. 지금 할 수 있는 건, 개흉 마사지뿐이야! 박상우 선생, 할 수 있겠어?”
마취과 조 선생이 당황한 듯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거렸다.
“개흉 마사지를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금 바이털이 최악이에요!”
EKG 모니터를 가리키던 안 간호사의 손가락이 마구 떨렸다.
“제가 개흉 심장 마사지하겠습니다.”
300g 남짓한 심장은 수 분만 피가 흐르지 않아도 죽어 버리는 나약한 장기였다. 박상우가 신속히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미련 없이 양손을 집어넣더니 시뻘건 심장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박상우가 심장을 움켜쥐자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안 선생님, 환자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 주시고, 제가 사인을 드리면 바로 데운 혈액과 체액을 정맥에 주사해 주십시오. 신속하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몸에 쌓인 칼륨을 전부 씻어 내야 하니까요!”
박상우가 다급하게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박상우가 좌측 흉부 늑간 사이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는 심장 아래쪽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윤석현 씨,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순 없어요!’
그 순간, 환자의 심장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비록 잘 느낄 수 없을 만큼 작은 진동이었지만, 20년이 넘는 경력의 베테랑 서전, 박상우의 손끝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됐어! 조금만 더! 조금만!’
박상우가 쥔 심장을 리듬에 맞춰 쥐락펴락했다.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목덜미로 땀방울들이 흘러내렸다.
“지금 정말 개흉 마사지를 하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설마 했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마취과 선생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꾹꾹 눌렀다.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놀랍네요.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가요?”
“안 선생, 난 1년 차가 저렇게 능숙하게 OCM(Open Cardiac Massage: 개흉 마사지)을 하는 걸 본 적 없는데, 안 선생은 본 적 있어?”
마취과 조 선생이 어이없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박상우를 가리켰다.
“지금 보잖아요!”
“그러게. 나도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네. 이 정도면 학회에 오를 아니야?”
“학회가 문제겠어요? 기네스북에도 올라갈 판인데요.”
안현선 간호사와 조 선생은 넋을 잃은 채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토록 안정적인 자세로 OCM을 실시하는 박상우를 누가 1년 차 레지던트로 알겠는가.
‘윤석현 환자,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사셔야 합니다. 힘을 내세요!’
“하나, 둘, 셋! 다시! 하나, 둘, 셋!”
박상우가 온 힘을 다해 개흉 마사지를 했다. 땀방울이 등줄기를 따라 비 오듯 흘러내려, 어느새 박상우의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 순간, 조금씩 살아나는 심장. 좀 전보다 진동이 커져 갔다.
‘됐어! 지금이야!’
“안 선생님! 지금 정맥에 주사해 주세요!”
그 순간 박상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 선생님!”
안현선 간호사가 주사기를 통해 데운 혈액과 체액을 신속히 주입했다.
불끈, 불끈.
드디어 심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 심장이 박동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안현선 간호사가 외쳤다. 드디어 박상우의 개흉 마사지가 효과를 보는 순간이었다.
“박 선생! 떨어진 혈압도 다시 올라가고 있어!”
EKG 모니터를 지켜보던 조 선생이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지금부터 바로 봉합하고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그제야 박상우는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휘청거렸다.
“박 선생, 괜찮아?”
“네. 선생님! 괜찮습니다.”
“땀 좀 봐. 박 선생님, 좀 닦으세요.”
“감사합니다.”
이마의 땀방울이 조명에 반짝였다. 박상우는 안현선 간호사가 건넨 거즈로 이마를 닦아 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윤석현 환자, 빨리 ICU로 옮겨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제야 수술방으로 되돌아온 천기수가 놀란 눈을 껌벅였다.
“박상우 선생님이 윤석현 환자 살리셨어요!”
안현선 간호사가 팔짝팔짝 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네가 이 어려운 일을 해 낸 거냐? 도, 도대체 누구냐 넌?”
천기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기수야,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 없어! 환자 가슴 닫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길 거야. 그나저나 교수님은 괜찮아?”
“어. 하이포텐서(Hypotensor: 혈압 강하제) 투여했어. 아무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크셨나 봐. 인선이가 옆에서 돌보는 중이다.”
“다행이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엔간해선 저러지 않을 양반인데?”
천기수가 손톱으로 입술을 쥐어뜯었다.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틈이 없다. 빨리 가슴 닫고 환자 옮기자.”
“뭐가 뭔지 모르겠다만, 아, 알았다. ……누가 교수고 누가 1년 차냐? 저거,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더 모르겠네.”
천기수가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며 박상우 맞은편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안 선생님, 클램프!”
“여기 있어요.”
“니들 홀더 주세요.”
“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30여 분,
박상우가 벌어진 개흉 부위를 신속하게 봉합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의 손놀림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박상우는 누가 봐도 1년 차 풋내기 의사가 아닌,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베테랑 서전이었다.
“저, 저 인간이 레지던트 1년 차가 맞냐?”
“히포크라테스가 살아 돌아와도 저것보단 못 할 거야!”
수술방에 있던 의료진들이 박상우의 노련함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다 됐습니다.”
봉합을 마친 박상우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훔쳐 냈다.
짝, 짝짝, 짝짝짝!
“브라보!”
의료진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마치 전장에서 승리한 병사들처럼 양팔을 올렸다.
“기수야. 난 교수님께 잠깐 들렀다 갈 테니까, 윤석현 환자 중환자실로 옮겨 줘. 에크모 달아야 할 거야. 네가 좀 수고해 줘.”
“아, 알았다.”
“그럼, 수고해라.”
툭툭, 박상우가 천기수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수술방을 빠져나왔다.
* * *
흉부외과 레지던트 당직실.
간이침대 위에 한정석이 링거를 꽂은 채 누워 있었다. 김인선이 그를 간호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응급실에 누워 있기는 부담스러웠을 테다.
“인선아!”
박상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우야. 환자는?”
김인선이 벌떡 일어나 박상우를 맞이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어. 지금 기수가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옮기는 중이야.”
“그, 그래? 다행이네.”
김인선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선아, 너도 중환자실에 좀 가 봐. 기수 혼자 있을 거야.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그래라. 아무튼, 수고 많았어! 그나저나 넌 어디서 그런 실력이…… 아, 아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쉬어라.”
김인선이 손을 내저었다.
“교수님, 인선이 나갔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김인선이 나가자 박상우가 한정석의 몸을 흔들었다.
“그, 그래. 그건 그렇고, 윤석현 환자 어떻게 됐다고?”
한정석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심중엔 윤석현 환자밖에 없어 보였다.
“일단 개흉 마사지로 심장은 돌아왔습니다. 지금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아마도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정말 다행이다.”
박상우의 손을 움켜쥐는 한정석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직 안심하시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교수님!”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부터가 문제예요. 윤석현 환자야 조금씩 회복되긴 하겠지만, 이제부터 박앤정의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싸움이라고요.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정석 교수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단, 윤석현 환자는 살려냈으니까요.”
‘그리고 제게도 생각해 둔 복안이 있으니까요.’
흐음, 박상우가 콧속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