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30)
신의 메스-30화(30/249)
30화 너는 내 운명 (1)
어느 이른 아침, TS 수술실.
“야, 박상우! 너 뭐냐? 여기 있었냐?”
“그래. 용케도 찾았다?”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TS 수술실. 잠에서 깬 박상우가 수술대 위에 널브러진 시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수술실!
호텔 방만큼은 아니지만 꽤 아늑한 휴식 공간이었다. 한두 시간을 자더라도 숙면을 해야 하는 레지던트들에게는, 그간 당직실에서 눈치 보며 새우잠을 자는 것에 비하면 최고의 침실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방해도 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기에, 박상우에게 수술실은 오성급 호텔 스위트 룸이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이 어이없는 벗을 봤나? 설마, 여기서 잔 거냐?”
“그래. 여기서 잤다.”
“미친 새끼! 여기서 얼마나 많은 환자가 죽어 나갔는지 아냐? 곳곳에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귀신들 천지라고! 간땡이가 부었나?”
천기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래? 어쩐지 한여름인데도 시원하니 쾌적하더라.”
하암, 박상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양팔을 올려 기지개를 켰다. 한결 밝아진 표정이었다.
“하여간 넌 이해가 갔다가 안 갔다가 하는데, 안 되는 게 대부분이야. 꼴통 새끼! 아무튼, 조현오 교수님이 널 찾는다. 빨리 가 봐라.”
박상우에게 뭐라고 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 듯, 천기수는 수술대 위에 슬쩍 몸을 뉘었다.
“야! 이거 제대론데? 나도 종종 애용해야겠어!”
그가 몸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그나저나 교수님이? 왜?”
박상우가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며 말했다.
“새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래? 알았어.”
“그나저나 박상우! 너, 며칠 전에 입원한 308호실 환자 봤냐?”
천기수가 수술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가운을 입고 있던 박상우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308호실에 환자가 한 명이야? 누굴 말하는 건데?”
박상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 놔. 이 새끼, 모른 척하기는! 딱 보면 모르냐? 내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게슴츠레 뜬 눈. 천기수의 눈꼬리가 음흉스럽게 흔들거렸다.
“장영은 환자 말하는 거냐?”
“이봐, 이봐! 새끼, 알고 있었으면서 내숭 떨기는…….”
천기수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 환자가 왜?”
“몰라서 물어?”
“그래. 모르니까 묻는 거 아냐? 그 환자가 왜?”
“나! 드디어 내 반쪽을 찾은 것 같다. 장영은 환자, 완전 내 이상형이야. 네가 봐도 졸라 이쁘지 않냐?”
흐흐흐, 천기수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야, 너 지난번에 병원 앞 카페 주인도 네 이상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넌 도대체 이상형이 몇 명이냐? 왜 맨날 이상형이 바뀌는 건데?”
“아냐. 이번엔 진짜 느낌이 달라! 진짜 내 운명을 만난 것 같다. 여기 좀 만져 봐라. 진정할 수가 없다!”
천기수가 박상우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에 가슴에 가져다 댔다.
“뭐 하는 거야?”
박상우가 손을 빼려 하자 천기수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잘 들어 봐. 내 심장이 이렇게 나대는 거 본 적, 아니 만져 본 적 있냐? 내 가슴 터지면 수술은 네가 해 줘라.”
“미친놈! 정신 좀 차려라.”
박상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천기수의 손길을 뿌리쳤다.
“나 완전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방금 308호 다녀왔는데 아직도 진정이 안 된다. 어쩌면 좋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천기수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듯했다.
“괜히 헛물켜지 마라. 그 환자, 남자 친구 있다.”
“뭐, 뭐라고?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순간, 천기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몰라 인마! 어떤 남자가 그 환자 병원에 내려 주는 거 봤어. 언뜻 보니까 두 사람이 엄청 다정해 보이던데.”
“거짓말! 상우야! 제발 구라라고 말해 줘라. 제발!”
천기수가 박상우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글쎄? 나보다는 하느님께 빌어 보는 게 가성비가 낫지 않을까 싶다.”
“그, 그게 낫겠지?”
천기수가 몸을 배배 꼬았다.
“아, 그리고 내가 신신당부하는데, IV 할 때 제발 찔리지 않게 조심해라. 괜히 깝죽거리면서 실수하지 마!”
“왜? 영은 씨가 무슨 몹쓸 병이라도 걸렸냐?”
“흠, 뭐. 그건 아닌데, 아무튼 조심하라고! 그리고 환자한테 영은 씨가 뭐냐? 정신 차려 인마!”
박상우가 대충 얼버무리는 듯했다.
“상관없다! 내 몸에 그녀의 피가 흐른다면 그것 또한 영광이지. 에이즈만 아니라면 말이야!”
천기수가 양손을 모으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이즈라…….’
“아무튼 조심하라면 조심해! 경거망동하지 말고!”
박상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수술실을 나섰다.
장영은 환자! 박상우는 이 여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이는 27세. 흰 피부에 가냘픈 몸매, 청순한 외모를 가진 그녀. 사실 천기수가 한눈에 반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였다.
박상우는 이 여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환자, 조금 있으면 우리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다!’
저벅저벅, 수술실 복도를 나서는 박상우의 눈빛이 흐려졌다.
조현오 교수 연구실.
“어! 왔나. 앉게.”
박상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현오 교수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서 와, 박 선생!”
“홍현우 선생도 와 있었네?”
레지던트 1년 차 홍현우가 반갑게 박상우를 맞이했다. 평소에 별로 가깝지 않은 사이인지라 박상우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뒤늦게 흉부외과에 합류한 유학파. 명성대 부속 고등학교, 명성대 의대를 거친 진골 중 진골이었다. 의대에 입학한 후 단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내려놓은 적이 없는 수재. 게다가 최근에 은퇴한 명성대 의대 석좌 교수 홍윤석이 그의 부친이었다. 박상우 입장에서 그는 ‘넘사벽’이었다.
“흠, 두 사람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니 든든하구만. 앞으로 자네들의 어깨에 우리 TS의 운명이 걸려 있어!”
조현오 과장이 평소에 아끼던 보이차를 손수 내어왔다. 이제 갓 레지던트가 된 1년 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융숭한 대접이었다.
“자, 중국에서 직접 공수한 보이차야. 자! 들게나.”
“네. 교수님!”
그렇게 세 사람은 차를 마시며 환담을 했다.
“오늘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말이야…….”
30분쯤 지났을까? 조현오 교수가 본격적인 대화를 끌어냈다. 조현오 교수가 장영은 환자의 검사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일단 차트를 좀 살펴보게나!”
조현오 교수가 두 사람에게 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아, 네.”
뜬금없는 조현오 교수의 말에 두 사람이 서류를 넘겨 보았다.
“이번 수술에 나를 어시스트할 제1 조수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네!”
충격적인 제안!
거두절미하고 장영은 환자 수술에 두 사람 중 한 명을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놀라운 발언이었다. 그것도 펠로우급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제1 조수로 말이다. 1년 차 레지던트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조현오 교수가 허튼소리를 할 일은 없을 터.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 사람! 장영은 환자의 차트를 봤으니 병명이 뭔지는 알고들 있지?”
조현오 교수가 두 사람과 골고루 시선을 맞췄다.
“네. 카다악 튜머(Cardiac Tumor: 심장 종양)로 알고 있습니다.”
홍현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홍현우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심장 종양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장영은 환자에 관한 연구를 사전에 해 둔 모양이었다.
“카디악 튜머도 여러 종류가 있지. 박 선생! 어떤 종류의 종양인지 구분할 수 있겠나?”
“네. 원발성 악성 종양의 일종인 카디악 사코마(Cardiac sarcoma)라고 생각됩니다.”
박상우 역시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래. 맞아! 카디악 사코마! 원발성 심장 종양은 전체 인구 집단의 약 0.00017~0.19% 정도에서 발생하는 희귀한 병이야. 박 선생! 카디악 사코마의 진단은 어떻게 하지?”
조현오 교수의 시선이 박상우에게로 향했다.
“네. 진단을 위해선 2D 경흉부 또는 경식도 심장 초음파 검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의 심장 초음파를 판독한 결과 LA에 커다란 믹소마(Myxoma: 점액종)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카디악 사코마로 진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겉모습은 레지던트 1년 차에 불과하지만 사실 베테랑인 박상우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좋아! 정확한 진단이야.”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박상우를 응시했다.
“홍 선생! 그렇다면 치료법은?”
조현오가 번갈아 질문하며 마치 두 사람의 의학적 지식을 테스트하려는 듯했다.
“아…… 네, 그게.”
홍현우가 머뭇거렸다. 이는 매우 희소한 질병으로, 베테랑인 박상우조차 임상 경험이 별로 없는 케이스였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일개 레지던트가 그 치료법을 정확히 알 리 없었다.
“그렇지! 아직 거기까진 무리인가?”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죄송합니다. 교수님!”
조현오 교수의 반응에 자신감이 떨어진 목소리였다.
“아냐, 아냐. 죄송할 게 뭐 있어. 내가 너무 무리한 질문을 한 거야, 박 선생도 홍 선생과 같은 생각이겠지?”
조현오가 별 기대 없이 박상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종양을 적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박상우.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적출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볼 수 있을까?”
의외의 반응에 조현오 교수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박상우를 응시했다.
“몇 가지 조직학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 있긴 하지만, 특징적으로 환자는 증상이 발생한 이후 짧게는 몇 주에서 최대 수개월 사이에 급격히 악화되고 급기야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심장 종양의 경우, 수술 후 예후는 매우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력이 있지 않으면 재발률은 1~2% 정도로 극히 미미합니다. 사망에 이를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홍현우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논문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뇨! 일반적인 원발성 종양이라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장영은 환자의 종양은 카디악 사코마입니다. 심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발성 종양 중 최악의 악성 상황이죠. 악성 종양 자체의 악화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혈 역학적 이상, 종양의 국소 침윤, 다른 장기로의 원격 전이 등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 경과를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그, 그게…….”
붉으락푸르락, 홍현우가 얼굴을 붉혔다.
기껏해야 논문과 서적을 통해서 카디악 사코마를 접해 본 홍현우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박상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흠, 정확한 진단이야. 종양의 국소 침윤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이유는 뭔지 설명할 수 있겠나?”
“네. 교수님! 사코마는 보시는 바와 같이 우심방에서 발생하며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심막이나 대정맥 쪽으로 침윤이 빠르게 일어납니다.”
“이거, 이거. 내가 완전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었구먼. 진단이 나보다 나아!”
잔뜩 고무된 표정의 조현오 교수. 그의 입이 귀에 걸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