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34)
신의 메스-34화(34/249)
34화 너는 내 운명 (5)
몇 시간 후.
띠리리링.
회진을 마친 조현오 교수가 연구실로 돌아오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조현오 과장, 나일세.”
“네. 원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장영은 환자 일로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방으로 올라오게.”
“그렇지 않아도 원장님을 찾아뵈려던 참이었습니다. 잘됐군요.”
“아, 그나저나 레지던트 1년 차, 박상우 선생이 흉부외과 소속이던가?”
“맞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조현오 교수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아아, 아니야. 문제는 무슨? 조 과장, 제법 쓸 만한 제자를 뒀구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후후후, 그런 게 있네.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함세. 얼른 올라와.”
“네. 알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저 들뜬 목소리는 또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발대발하던 조영철 원장이었기에, 조현오 교수는 지금 그의 바뀐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영철 원장실.
“기어이 장영은 환자 수술을 하겠다고?”
조영철 원장이 소파에 앉아 턱을 문질렀다.
“네, 원장님! 이 환자, 수술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도와주십시오.”
조현오 교수가 원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좋아! 해 봐.”
“네?”
예상치 못한 조영철 원장의 태도에 깜짝 놀란 조현오 교수가 되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해 보라고 하잖아. 다만, 이번 수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알았나?”
“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흠, 그나저나 왜 갑자기 이렇게 마음이 바뀐 거냐고?”
조영철 원장이 두툼한 눈썹을 씰룩거렸다.
“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박 선생이 날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야.”
“네? 우리 과 박상우 선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문을 알 수 없는 조현오 교수였기에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그래. 조 과장이 제법 쓸 만한 제자를 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박 선생이 찾아와 이번 수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더군.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이야.”
조영철 원장이 설명을 해 줬지만, 조현오 교수로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계산이 빠른 조 원장의 성격상, 애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도대체 박 선생이 무슨 말을 했길래 저 인간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그게 전부입니까?”
“그래. 자네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하더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운운하며 애걸복걸하는 통에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네. 아! 자네가 환자는 손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조영철 원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네.”
“하하하, 진짜 자네다운 감동적인 말이야! 나, 그 말 듣고 가슴이 울컥했다네. 나도 의사잖나? 그리고, 잠시 잊고 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숭고함을 박 선생이 일깨워 줬어! 훌륭한 제자를 둬서 자네는 좋겠구먼. 부럽네. 부러워!”
조영철 원장이 조현오 교수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며 너털거렸다.
‘아니다! 이런 이유로 수술을 허가할 인간이 아니야! 박상우, 도대체 김 원장과 무슨 거래를 한 거야?’
“네. 훌륭한 수련의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조현오는 여전히 돌변한 원장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몇 시간 전.
“원장님, 장영은 환자 심장 수술 허가해 주십시오!”
원장실로 들어간 박상우가 조영철 원장에게 애원했다.
“안 된다고 했잖아! 한번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교수나 제자나 왜 이렇게 쇠심줄이야? 분명 내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건만, 이제는 수련의까지 보내서 왜 이 난리야!”
쯧쯧쯧, 조영철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원장님, 이 수술 꼭 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허허,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질척대? 아, 담당 과장한테 잘 보이고 싶구나? 그래서 조 과장을 위해서 총대를 메시겠다? 아주, 열사 나셨구먼.”
조영철 원장이 코끝을 씰룩거리며 빈정거렸다.
“아뇨, 조현오 교수님이 아닌 우리 병원을 위해 총대를 메는 겁니다.”
“뭐, 뭐? 병원을 위해서 총대를 메?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수련의 주제에……. 할 일 없으면 가서 전공서 한 글자라도 더 읽으라고!”
“수련의니까 가능한 겁니다. 이뤄 놓은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겠죠. 원장님, 일단 제 말을 좀 들어봐 주십시오.”
박상우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대답했다.
‘이놈, 눈빛 봐라? 제법 살아 있잖아?’
박상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조영철 원장도 몸을 움찔거렸다.
“좋아. 말해 봐. 뭘 어떻게 병원을 위하겠다는 거야?”
이준술이 더욱더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박상우를 응시했다.
“장영은 환자는 우리 병원을 국내 최고 병원의 자리에 올려 줄 소중한 존재입니다.”
“뭐? 미쳤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HIV에 걸린 술집 여자 출신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래? 병원 이미지만 깎아 먹을 암적인 존재지!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하려거든 당장 나가!”
조영철 원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다.
‘조금 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겠군!’
“원장님! 제 얘기를 좀 더 들어봐 주십시오.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기자들이 암암리에 장영은 씨를 취재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에게 장영은 환자에 대한 사실을 흘린 건 박상우 본인이었다.
“뭐, 뭐? 기자? 지금 기자라고 그랬나?”
깜짝 놀란 조영철 원장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 장영은 환자에게도,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그, 그래서? 뭐라고 했나?”
조영철 원장이 점점 박상우에게 관심을 보였다.
“네. 에이즈 감염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 병원은 최선을 다해 치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원장님을 비롯한 우리 병원의 방침이라고요!”
“그, 그래? 그, 그건 잘했네.”
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장님! 분명 기회입니다. 반드시 2차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장영은 환자의 심장 수술을 시행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에이즈 양성 반응 결과가 나온 환자를 수술한 명성대 병원!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한 사명감 높은 의료진들!’ 이 정도면 수억, 수십억을 들여 홍보하는 것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한데……. 만약에 의료진들에게 감염이라도 된다면?”
“후후후, 원장님! 세상에 널린 게 의사들이잖습니까? 의사 한두 명 넘어진다고 명성대학교 병원이 흔들리는 건 아니잖습니까?”
“뭐라고? 그렇다면 자네는 에이즈에 감염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물론 원장 입장에서 단지 의사 한두 명의 안부를 걱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병원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져야 했기에 박상우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아! 조영철 원장.’
“상관없다기보단,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거죠. 솔직히 각별하게 주의한다면 감염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우리가 수술을 잘 마무리한다면 돌아올 반대급부는 상상 이상이지 않습니까? 이 사실이 언론에 노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근 의료 소송 때문에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단번에 만회할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및 각종 단체로부터 후원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만하면 도전해 볼 만한 도박 아닐까요?”
‘이놈 봐라? 샌님 조현오 교수 밑에 이런 약아빠진 여우님이 있을 줄이야. 아주 뼛속 깊이 장사꾼일세.’
“정말 수술에 성공할 자신이 있어?”
소심한 성격인 조영철 원장은, 박상우의 당돌함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수술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네. 조현오 교수님이라면 충분히 해 내실 겁니다. 원장님도 아시겠지만, 감염 위험에 노출돼서 그렇지, 수술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흠,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2차 결과가 나온 후에 수술해도 늦지 않잖아?”
“아뇨! 그렇게 되면 한발 늦습니다. 만에 하나 2차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되면 어떡합니까? 그랬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가 됩니다. 반드시 2차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술해야 합니다. 그래야 2차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 병원의 미담은 언론에 대서특필 될 테니까요.”
“흠, 좋아! 자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토록 하지. 그나저나, 자네 아주 맘에 들어! 앞으로 내가 계속 지켜볼 테니, 어려운 일이 있거든 찾아오시게나.”
허허허, 목젖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는 조영철 원장.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조 원장! 당신이 거기 앉아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감사합니다, 원장님! 참, 부탁이 있는데, 제가 지금 말씀드린 사항이 조 교수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청렴한 교수님이시라 제가 원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는 걸 아시면 제가 곤란해질 것 같아서요.”
“물론이야! 내가 우리 박 선생을 곤란하게 만들면 쓰나? 그런 건 걱정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원장님!”
박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아! 그리고 장영은 환자 수술은 허가하지만, 의료진들 투입은 내 마음대로 어떻게 안 되네. 그들이 수술방에 들어가는 걸 거부한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조영철 원장이 나가려는 박상우의 발길을 붙들었다.
이렇게 선을 긋고 한발 물러남으로써, 손조차 안 대고 코를 풀려는 것이다. 박상우는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그리고 또 하나!”
조영철 원장이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흘리며 검지를 내밀었다.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일이 잘못되어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이 모든 건 자네들이 자발적으로 한 거라고!”
일말의 책임도 떠안지 않으려는 늙은 너구리 같은 인간이었다.
“네. 물론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물론 출중한 능력의 조현오 교수의 실력을 믿기는 하지만, 확약서를 제출해 줬으면 하네. 환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수술을 진행했다는, 뭐 그런 내용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야.”
조영철이 손으로 콧잔등을 긁어내리며 박상우의 눈치를 보고는 헛기침했다.
“네. 알겠습니다. 조현오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구먼. 좋아! 한번 해 보자고! 환자가 누구든 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 아닌가? 그런 면에서 자네는 의사로서 대성할 자질이 보여!”
태도가 180도 바뀐 조영철 원장이 너털거리며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 해서 수술 2일 전, 가까스로 장영은 환자의 심장 수술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흉부외과 당직실.
고요한 당직실에 벨 소리가 울렸다.
“박 선생, 나 조현오야.”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에게 건 전화였다.
“네. 교수님!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원장님이 뜻밖의 말을 하더군. 장영은 환자 수술을 허락하겠다고 말이야.”
“아, 네. 그렇습니까? 정말 잘됐군요.”
“그러게. 어찌 됐건 천만다행이야. 수술을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원장님이 자네 얘기를 하던데…… 자네, 조 원장님을 찾아갔었나?”
“네. 교수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뭐. 그거야 중요한 건 아니고, 자네가 무슨 말을 했길래 그토록 반대하던 조 원장의 마음이 돌아선 거지?”
“흠, 교수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화로 말씀드리기엔 좀 곤란합니다. 내일 교수님 출근하시면 찾아뵙고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진행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박상우였다.
“흠, 좋아! 그렇게 하지. 아! 나, 지금 아버지 기일이라 부산에 내려와 있으니까 출근 전까지는 어쩌면 통화가 힘들 수도 있어. 혹시 장영은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문자를 남겨 두도록 하게!”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내일 봄세.”
“네. 교수님! 편히 쉬십시오.”
툭, 박상우가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장영은 환자의 에이 라인(Arterial Line: 계속해서 환자의 혈압을 감시하기 위해 동맥에 삽입하는 장치)을 교체하기 위해 그녀의 병실을 찾았던 인턴, 유인석이 당직실로 뛰어 들어왔다.
“유 선생, 무슨 일이야?”
2층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박상우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장영은 환자, BP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어레스트가 올 것 같습니다.”
‘제길! 생각보다 일찍 터져 버렸군!’
“알았어! 나는 당장 병실로 갈 테니까, 유 선생은 조현오 교수님께 바로 연락해!”
“네. 선생님!”
가운을 걸친 박상우가 황급히 장영은의 병실로 발길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