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35)
신의 메스-35화(35/249)
35화 너는 내 운명 (6)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쿨럭쿨럭.
마른기침을 토해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장영은 환자.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 옆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정 선생이 가 봐!”
“제, 제가요……?”
간호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장영은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누워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숨쉬기가 곤란한지 그녀가 몸을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다들 지금 미쳤습니까? 환자가 저 모양인데?”
간호사들을 거칠게 밀치며 박상우가 황급히 장영은에게 달려갔다.
뚜뚜뚜뚜!
‘뭐야? 분당 펄스가 121에 수축기 혈압이 70mmHg? 게다가 호흡수가 분당 42회에 불과해! 이러다 이 환자 죽는다!’
환자 감시 모니터를 응시하던 박상우의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아직은 의식이 있다! 일단 기도 삽관을 해서 호흡을 터 줘야겠어!’
박상우가 펜 라이트를 꺼내 장영은의 동공을 살폈다.
그 순간 장영은이 기침을 참지 못하고 박상우의 얼굴에 시뻘건 피를 뿜어냈다.
“으으아아악!”
그 모습에 지켜보던 간호사들이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경악했다.
“바, 박상우 선생님, 미친 것 아냐?”
“어머, 어머, 그러게 말이에요. 죽으려고 환장했나 봐!”
박상우는 거즈를 꺼내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다. 그런 뒤 여전히 별 반응 없이, 장영은의 입안에 고인 피를 제거하며 기도를 확보했다. 장영은이 에이즈 보균자일 거로 알고 있는 간호사들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정 선생님! 장영은 환자, 경구 기관 삽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삽관 준비해 주세요!”
박상우가 정 간호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바, 박 선생님! 괜찮으세요?”
“뭐가요?”
“어, 얼굴에?”
정 간호사가 손가락으로 박상우의 얼굴을 가리켰다.
“병원에서 피 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나저나, 급하니까 빨리 좀요! 환자, 이러다 죽습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내두르며 정 간호사가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잠시 후, 정 간호사가 경구 기관 삽관에 필요한 장비를 트레이에 싣고 왔다.
“선생님, 준비됐습니다.”
정 간호사가 트레이를 박상우 쪽으로 밀어 놓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박상우가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제)으로 마취를 시행한 후 침착하게 후두경 블레이드를 집어 들려 했다.
땀과 장영은이 분출한 핏방울이 뒤섞여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박상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치료에만 전념했다.
툭툭, 툭툭툭.
“서, 선생님! 제가 돕겠습니다.”
그 순간, 정 간호사가 소독한 거즈를 들고 박상우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정 선생님!”
그녀가 보인 의외의 행동에 박상우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여기 있어요!”
옅은 미소로 화답한 정 간호사가 능숙한 솜씨로 후두경 핸들을 집어 들고는 블레이드를 장착했다. 그러곤 완성된 후두경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정 선생님!”
“아뇨. 제가 고맙습니다. 박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그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아요!”
“네?”
“아뇨. 그런 게 있어요. 그나저나 뭐 하세요! 얼른 삽관하셔야죠!”
정 간호사가 손을 내저으며 박상우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아, 네!”
박상우가 블레이드를 세워 후두부에 집어넣었다. 후두경 블레이드가 점점 선근부, 후두개곡으로 진행됐다. 박상우의 능숙한 솜씨로 드디어 후두가 노출되었다.
“와! 레지던트 1년 차가 이렇게 능숙하게 하는 건 처음 봐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 간호사가 눈을 크게 떴다.
“거기 기관 튜브 좀 주실래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기관 튜브를 가리키는 박상우.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정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관 튜브를 박상우에게 전달했다.
웅성웅성.
“박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저 환자 에이즈 보균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요. 안면에 피가 저렇게 튀었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어!”
그 순간 타과 수련의들이 장영은의 병실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박상우와 장영은 환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TS 흉부외과 의료진들은 보이지 않았다.
스윽스윽.
박상우가 기관 튜브를 구강 내에서 인두, 후두로 능숙하게 넘어가도록 진행했다. 기관 튜브의 성문을 통과하는 순간, 속심을 제거하고 기관 삽관한 튜브를 반창고로 고정했다. 단 한 번의 삽관 실패도 없는 완벽한 시술이었다.
“대단하네. 쟤, TS 1년 차 아냐? 무슨 기도 삽관을 저렇게 능숙하게 잘해?”
“맞아. 박상우라고, 그 왜 있잖아! 조폭 사건 때 한현수 교수 한 방에 날려 버린 애. 1년 차라고는 믿기 힘든 능력을 지녔더라고!”
“됐습니다!”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튜브를 물어뜯지 않도록 입에 재갈을 물린 후, 백 밸브 마스크 환기에서 기계 환기로 전환했다. 완벽한 기도삽관이었다.
“정 선생님! 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삽관을 마친 박상우가 정 간호사에게 물었다.
“네? 무슨 부탁인데요?”
“이 환자, 지금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수술방에서 어시스트 해 줄 선생님이 없어요. 선생님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그게…….”
정 간호사가 머뭇거렸다.
“후후후, 아무래도 안 되겠죠? 아무래도 제가 무리한 부탁을…….”
박상우가 포기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파스타 사실래요? 저 파스타 좋아하는데!”
“네? 파스타요?”
정 간호사의 반응에 박상우가 눈을 껌뻑거렸다.
“사람이 무슨 눈치가 그렇게 없어요! 수술 잘 마치면 파스타 사 줄 거냐고요!”
정 간호사가 박상우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아! 물론이죠. 사죠! 당연히 사 드릴게요.”
뜻밖의 반응에 박상우가 정 간호사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좋아요! 한번 해 봐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나저나, 큰 수술인데 가능하시겠어요? TS 선생님 중에 수술방에 들어가실 분이 아무도 없을 텐데요…….”
정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흐음, 이번 수술은 제가 집도할 겁니다!”
“맞아요! 박 선생님이 집도하셔야…… 네? 선생님이 집도하신다고요?”
화들짝 놀란 정 간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이번 수술, 제가 합니다. 그러니까 정 선생님은 이은주 간호사님께 연락하셔서 빨리 병원으로 들어오라고 해 주세요.”
“네? 이은주 선생은 왜요?”
“네. 이 선생님도 이번 수술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며칠 전에 저와 약속하셨습니다.”
* * *
며칠 전.
“이은주 선생님! 저랑 잠시만 얘기하시죠!”
박상우가 이은주 간호사를 병원 옥상으로 불러내었다.
“선생님, 이번 장영은 환자 수술에 어시스트로 참여해 주세요.”
“아, HIV 양성 반응 환자 말씀하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이번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후후후, 그래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네? 정말입니까?”
의외의 반응에 깜짝 놀란 박상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박 선생님, 속고만 사셨어요? 환자 수술하는 수술방에 간호사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뭐든요.”
이은주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죠? 이 수술 절대 쉽지 않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이 선생님도 곤란을 겪으실 텐데요. 게다가, 에이즈 감염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데…….”
“음, 그러면 박 선생님은 왜 이 수술을 하시려는 거죠?”
“그거야…….”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릴게요. 의사니까요. 의사니까 환자를 살리려 하는 거잖아요. 제가 이 수술에 참여하려는 이유도 박 선생님과 같아요. 전, 간호사니까요. 이 정도면 답이 됐을까요?”
이은주 간호사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네! 제가 정말 어리석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우문현답이네요.”
박상우가 너털거리며 웃었다.
‘이은주 간호사, 역시 평생을 함께해야 할 의료진이다!’
2015년,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그 시기에 명성대 병원도 곤욕을 겪었었다. 당시, 이은주 간호사는 전염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방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간호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상우였기에, 그녀라면 들어주지 않을까 하고 부탁한 것이었다. 대화를 나눠 보니, 그녀는 박상우의 기대 이상으로 책임감이 강한 간호사였다. 박상우의 냉정한 마음을 흔들 정도로 말이다. 박상우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 * *
“아, 그 언니도 수술방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네. 그러니 빨리 연락해 보세요. 그리고, 천기수 선생하고 김인선 선생한테도 빨리 연락하셔서 병원으로 들어오라고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 순간, 인턴 유인석이 병실로 뛰어 들어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박상우를 찾았다.
“유 선생! 무슨 일이야?”
“전화 좀 받아 보세요. 조현오 과장님이십니다!”
유인석이 박상우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네. 박상우입니다. 과장님!”
“그래. 상우 군! 지금 장영은 환자의 상태가 어떤가?”
“흐음,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호흡 곤란이 심각해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큰일이군! 내가 지금 출발해도 4시간은 걸릴 텐데, 그때까지 환자가 버텨 줄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뇨. 힘들 것 같습니다.”
“한, 한 교수는? 연락을 취해 봤나?”
“네.”
“뭐라고 그러던가?”
“냉정히 거절하셨습니다! 교수님의 환자를 어떻게 자신이 수술하냐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그래. 그럴 거야. 그나저나 어쩌지? 내가 갈 수가 없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타 병원으로 트랜스퍼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안 됩니다. 이 시간에 타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바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이 환자 살기 힘듭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방법이 없잖아!”
“교수님! 장영은 환자,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박상우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가 이번 수술, 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말을 꾹꾹 누르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번 수술은 혈관에 스텐트 박는 정도가 아니라고. 심장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야. 경험이 없는 자네가 어떻게 수술을 한다는 거야!”
“배운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 집도하신 영상을 보면서 프로세스를 익혀뒀습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흠,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지금 출발할 테니까 어떻게든 4시간만 버텨 봐.”
“아니요. 교수님!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장영은 환자 산소 포화도가 87%까지 떨어졌고, 수축기 혈압이 70mmHg입니다. 이대로 놔두면 곧 어레스트가 올 것 같습니다.”
“…….”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님! 시간이 없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