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37)
신의 메스-37화(37/249)
37화 너는 내 운명 (8)
“왜? 왜, 뭐가 문젠데? 뭐, 뭐가 잘못된 거야? 가뜩이나 지금 긴장돼 죽겠는데…….”
천기수가 불안한 듯 말을 더듬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관상동맥 협착이 심하다……. 우회술과 병행해야 할 것 같아.’
“아냐.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
박상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흠, 상우야! 잘은 모르겠지만, 모니터로 봤을 때 코리너리 알트리(Coronary artery: 관상동맥)에 스트릭처(Stricture: 협착)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모니터를 지켜보던 김인선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고 말했다.
“그래, 인선이가 잘 봤어. 근데 조금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막힌 거 같은데?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대동맥판에 협착이 너무 심해. 종양도 종양이지만 관상동맥 우회술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아!”
혈관 조영술 영상을 살펴보던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어? 관상동맥 우회술? 스텐트도 박아 본 적이 없는 네가 캐비지(CABG: 관상동맥 우회술)를 하겠다고? 게다가, 지금 심폐 기사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미친 거니? 돈 거니?”
천기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단 한 번의 수술도 해 본 적 없는 레지던트 1년 차의 입에서 나올 수술이 아니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라. 캐비지 안 한다. 오피캡(OPCAB: 관상동맥 우회로이식술)으로 갈 거야. 어차피 심폐 기사도 없고, 지금 상황에선 그 방법뿐이야. 게다가 환자는 캐비지를 받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고!”
당황한 천기수에 비해 박상우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했다.
“이봐. 박 선생! 이건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지금 오피캡을 하겠다는 거야? 레지던트 1년 차가? 오피캡이 무슨 수술인지는 아는 거야?”
천기수와 박상우의 대화에 끼어드는 날카로운 목소리. 마취과 박 선생이 어이없다는 듯이 쇳소리를 냈다.
“네. 수업시간에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박상우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미쳤군! 수업시간에 인형 놓고 하는 수술과는 차원이 달라!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심장에 채 0.3mm도 안 되는 미세한 혈관을 바로 연결하는 게 오피캡이야. 지금 소꿉장난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저 환자는 네가 실습실에서 다루던 카데바가 아니라고!”
마취과 박 선생의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 선생이 벌게진 얼굴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래. 박 선생님 말이 맞아. 지금 캐비지도 안 해 본 놈이 오피캡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지금 살아 있는 심장에 혈관을 연결한다고? 그게 말이나 되냐? 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오피캡 제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있어, 어? 우리 병원에 조현오 교수님 그리고…… 어디더라, 세뷰런스 병원에 한 교수님, 그리고…….”
천기수가 게거품을 물며 손가락을 꼽았다.
오피캡은 무펌프 관상동맥 우회술로, 관상동맥의 협착이 심해 혈액이 원활하게 심장에 공급되지 못할 경우 다른 혈관을 심장에 연결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수술이다. 일반적으로 심정지를 시킨 상태에서 체외 순환기에 심장을 연결해 수술하는 캐비지에 비해, 뛰고 있는 심장에 0.3mm의 혈관을 직접 연결하는 초고난도의 수술 능력을 요구하는 수술이다. 1999년에는 천기수의 말대로 국내에서 오피캡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서전은 손에 꼽을수 있을 정도였으니, 마취과 박 선생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좋아, 천기수. 지금 이 환자 살릴 방법 있으면 기수 네가 해결해 봐!”
“그, 그게……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고, 최소한 심폐 기사라도 수배해 와야 할 것 아, 아니냐, 뭐 그런 거지. 그나마 캐비지가 좀 더 수월하니까 말이야.”
박상우가 강하게 다그치자 천기수가 말꼬리를 내렸다.
“지금 이 상황에 박 기사님이 나올 것 같아? 기사님이 나올 상황이었으면 우리가 이 수술실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게다가 이 환자! 캐비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은주 선생님, 환자 차트 좀 화면에 띄워 주십시오.”
박상우가 이은주 간호사를 쳐다봤다.
“네. 알겠습니다.”
이은주가 모니터에 장영은의 혈액 검사 결과를 띄웠다.
“자, 봐! 이래도 모르겠어? 지금 이 환자, 간 상태가 캐비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박상우가 모니터 쪽으로 다가가 화면을 김인선과 천기수 쪽으로 돌렸다. 가까이 다가가 컴퓨터 화면을 살펴보는 천기수와 김인선.
“뭐, 뭐야? 간 수치가 왜 이래?”
화면을 살펴보던 천기수의 눈이 커졌다.
“AST(Aspartate aminotransferase: 아스파르테이트 아미노 전달 효소)가 정상 수치의 10배가 넘네? 이, 이 여자 간염이 있었나?”
차트를 살펴보던 천기수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ALP(Alkaline phosphatase: 알칼리성 인산 분해 효소)가 천이 넘어. 그리고 알부민 PT(Prothrombin time: 혈액 응고 활성 시간 측정 검사), 빌리루빈도 엉망이야.”
ALP의 정상 수치 범위는 30~120인데, 장영은의 수치는 333으로 엄청나게 높았다. 게다가 간 해독 정도를 나타내는 빌리루빈 수치도 최악이었다.
차트를 살펴보던 김인선이 혀를 내둘렀다.
“흠, 간이 거의 망가진 상태군! 그래, 박 선생 말대로 심폐기 쓴다고 헤파린 때려 부었다가는 심장보다 간이 먼저 나가떨어지겠어. 캐비지는 불가능하고 오피캡으로 가는 게 맞긴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오피캡이 맹장 수술도 아니고…….”
같이 화면을 지켜보던 마취과 박 선생이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기에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박 선생님,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이 환자 살릴 수 있는 의료진은 우리뿐이에요. 이렇게 망설이다 시간만 보내면 저 환자 죽습니다. 뭐든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상우가 마취과 박 선생을 설득했다.
“후, 오지게 꼬였네. 진짜 해낼 수 있겠어?”
‘아 씨,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레지던트 1년 차한테.’
박 선생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답해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환자 바이털만 꽉 잡아 주십시오.”
“기수야, 인선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오피캡도 사람이 하는 거야.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배운 대로 하면 해낼 수 있을 거야. 함께 해 보자!”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천기수와 박인선을 응시했다. 마치 링 위에 올라가는 격투기 선수와 같은 강렬한 눈빛이었다.
“박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못 돼요. 박 선생님! 바이털은 우리가 꽉 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정지수 간호사가 박상우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좋아!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나도 조 교수님이 오피캡 하시는 동영상 수십 번도 더 봤어. 못할 것 뭐 있어. 해 보자. 상우야!”
탁탁탁, 김인선이 어금니를 악다물며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미쳤구나. 너희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천기수! 그래서 넌 빠질 거야? 넌,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란 말도 몰라? 한 배를 탔으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사내놈이 한심하다, 한심해!”
김인선이 천기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누, 누가 빠진다고 했어? 해! 한다고! 무모한 인간들아.”
“고맙다. 기수야.”
박상우가 천기수의 손을 꽉 잡았다.
“시팔!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이게 내 첫 수술이 됐네. 야, 수술 끝나고 이와이 기념으로 저거로 나 열쇠고리 만들어 줘.”
‘이와이’란 의사들이 시행하는 첫 수술을 의미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천기수가 손가락으로 메스 블레이드를 가리켰다.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끝내주는 열쇠고리 만들어다가 바치마.”
“후, 아무튼, 너흰 미쳤어. 미쳤다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천기수가 투덜거리며 퍼스트 자리로 발길을 돌렸다.
“자, 이제부터 제대로 한번 해 봅시다! 오피캡으로 혈관 잡고 바로 튜머 적출합니다.”
박상우가 집도의 자리로 이동하며 말했다.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다리 안쪽에 위치하는 복재정맥을 주변 조직으로부터 분리해 내어 관상동맥을 우회할 도관으로 사용할 겁니다! 모두 집중합시다. 이 선생님, 바이털 확인해 주세요!”
“네. 혈압, 맥박수, 호흡수 모두 정상입니다. 시작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은주 간호사가 박상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박상우가 이를 악다물며 의지를 다졌다.
“아! 아까부터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이은주 간호사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네? 무슨 말을요?”
“선생님은 반드시 이 수술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이은주 간호사가 박상우를 향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박상우도 가볍게 화답했다.
“시작합니다.”
서걱서걱.
박상우가 다리 안쪽을 절개했다.
그가 능숙한 솜씨로 다리 안쪽을 절개해 복재정맥을 추출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손놀림. 메스를 사용하는 그의 손길은 부드럽고 정확했으며 과감했다.
“저 인간 미친 거냐? 아님, 신들린 거냐?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그 모습에 천기수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놔. 돌겠네. 조현오 교수님이 저 녀석에게 빙의한 거냐? 집도하는 모습이 조 교수님을 빼다 박았네? 정 선생, 지금 촬영 잘하고 있지?”
“네. 물론이죠.”
정지수 간호사도 신기한 듯 박상우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런 건 학회에 보고해야 해. 이걸 보면 다들 뒤로 자빠질 거다. 누가 저 인간을 레지던트 1년 차로 보겠냐고? 10년 차 이상급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수술을 말이야.”
“네. 저도 지금 의학 드라마 보는 기분이에요. 이게 가능한 건가요? 역사에 남을 대사건이에요.”
정지수 간호사는 다시 한번 캠코더 속 녹화되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 선생님! 보비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혈관을 잡은 박상우가 펄떡거리는 환자의 심장에 보비를 가져다 댔다. 눈곱만큼의 망설임도 없는 과감한 손놀림이었다.
치지지지직.
타는 소리와 함께 심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박상우가 보비로 심장과 혈관이 연결된 접합 부위를 지지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꿀꺽, 정적이 감도는 수술방에는 의료진들의 침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박상우를 지켜보고 있던 천기수와 김인선이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저 녀석, 진짜 내가 알고 있던 박상우 맞냐?”
“그러게 말이다. 상우가 원래 우리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레지던트 1년 차의 오피캡 수술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걱정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불안했던 눈빛은 거둔 상황이었다. 그저 노련한 서전의 수술을 신기한 듯 지켜보며 집중할 뿐이었다.
천기수와 김인선, 그리고 모든 의료진이 박상우의 현란한 손끝에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