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39)
신의 메스-39화(39/249)
39화 긴급 교수 회의 (1)
이틀 후, ICU(Intensive Care Unit: 흉부외과 중환자실).
수액, 도부타민, 도파민 등 각종 링거가 장영은 환자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장영은 환자가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환자 상태는 좀 어떤가?”
중환자실로 들어온 조현오 교수가 장영은 환자의 안색을 살폈다.
“크레아틴 수치는 정상 수치고 소변량도 나쁘진 않습니다.”
박상우가 차트를 펼쳐 보며 조현오 교수에게 내밀었다.
“흠, 0.7이라……. 자네 말대로 정상 수치구만. 일단, 수술이 정상적으로 잘 끝난 것 같아.”
여성의 정상 크레아틴 수치는 0.4~0.8의 범위이다. 만약 1.5가 넘어간다면 신장 기능이 악화되었음을 의미했다. 장영은 환자의 크레아틴 수치가 정상 범위라는 건 박상우의 수술이 성공적이었음을 암시했다.
“혈압은?”
“지금 138에 102mmHg입니다.”
“흠, 장영은 환자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았어. 신체가 높은 혈압에 익숙해져 있을 거야. 아마도 혈압을 좀 더 높여야 소변이 정상적으로 배출이 될 걸세.”
“승압제와 바소프레신(Vasopressin: 항이뇨 호르몬)을 좀 더 투여할까요?”
“그래. 당분간 각각 1 앰풀씩 투여하고 경과를 좀 지켜보자고. 시간 단위로 환자 혈압과 소변량을 잘 체크 해 두고.”
“네. 알겠습니다.”
‘흠, 수술 부위도 깔끔하게 정리됐고, 스웰링(Swelling: 부기)도 거의 빠진 것 같네. 수술,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 같아.’
조현오 교수가 환자의 다리와 팔을 가볍게 눌러 보며 장영은 환자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나저나 교수님,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 해 봐.”
조현오 교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장영은의 동공과 얼굴 혈색을 살폈다.
“어제 장영은 환자 수술 후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아무런 것도 물어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후후후, 물어봐? 내가 자네에게 뭘 물어봐야 하지?”
“제가 어떻게 오피캡을 시행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박상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후, 그걸 내가 궁금해해야 하나?”
조현오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지금 장영은 환자의 상태가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잖나?”
“그, 그래도…….”
박상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긴 뭐가 그래도야? 당시에 장영은 환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자넨 훌륭하게 수술을 했어. 그리고 환자는 지금 이렇게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한가?”
“…….”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자넨 아주 훌륭한 일을 한 거라고. 이런 칭찬을 더 듣고 싶어서 그런 건가?”
툭툭툭, 조현오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상우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거.”
박상우가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자네는 쓸데없는 생각 말고 환자가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게나.”
박상우는 그제야 조현오 교수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회귀 전에는 그저 비현실적이고 답답한 꼰대라고 생각해 왔는데, 자신이 출세에 눈이 멀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새로 알게 된 조현오 교수는, 박상우가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의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 교수님처럼 그렇게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교수 회의가 열릴 것 같아. 자네 문제로 말이야.”
“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네 덕분에 환자는 무사했고 대내외적으로 우리 병원 이미지도 좋아졌지. 모두 자네를 칭찬하고 있지만, 세상은 말이지……. 그렇게 단순하진 않더라고.”
조현오 교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박상우가 말없이 조현오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일부 사람들에겐 자네의 행동이 불편하기도 한 것 같아. 색안경을 끼고 있는 그들에겐, 자네의 순수한 의도가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겠지. 조만간 자네를 교수 회의에 소환할 걸세.”
“각오하고 있습니다.”
“각오는 무슨? 무조건 내가 자네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걸세. 자네는 그저 내가 시켜서 한 것뿐이야. 자네가 굳이 교수 회의에 나올 필요 없어.”
조현오 교수가 천천히 손을 내저었다.
“교수님, 아닙니다. 제가 나가서 모든 것을 해명해야…….”
“후후후, 아니래도!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게 맞아. 자네가 그 자리에 나서면 물어뜯으려고 혈안이 된 인간들이 한둘이 아닐세. 난 내 소중한 새끼를 그런 자리에 내몰고 싶지 않아. 맞아 죽어도 내가 맞아 죽어야지.”
드디어 박상우가 조현오 교수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교수님!”
“왜? 감동했나? 눈은 왜 글썽이고 그래? 사내놈이.”
후후후,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를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하여간 마음이 그렇게 여려서는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수술을 했나. 자 받아.”
쯧쯧쯧, 조현오 교수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박상우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난 이만 나가 봄세.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돌보는 거야. 무식하게 혼자 이렇게 있지 말고 동료들이랑 교대도 해 가면서 좀 쉬라고.”
조현오 교수의 따뜻한 손길.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박상우로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정이었으리라.
“네. 교수님.”
박상우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거렸다.
“선생님.”
조현오 교수가 병실을 빠져나가자, 장영은 환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있었던 것이다.
“아, 일어나셨습니까?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녀는 한결 혈색이 좋아져 보였다.
“흠, 혹시 저 때문에 선생님이 곤란하게 되시는 겁니까?”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의 장영은 환자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곤란하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왜 환자분 때문에 곤란을 겪어요? 그런 것 없습니다.”
“아니에요. 저 좀 전에 두 분이 나누시던 말씀 전부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선생님이…….”
콜록콜록, 장영은 환자가 연신 마른기침을 토해 내었다.
“아……. 들으셨군요. 하지만, 환자분이 신경 쓰실 일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환자분 때문도 아니고요.”
박상우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혹시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장영은 환자가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아뇨, 아뇨. 환자분은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시는 것이 도와주는 겁니다. 자꾸 쓸데없는 생각 하시면 회복도 더디십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좀 더 주무세요. 푹 주무셔야 수술 부위도 빨리 아물어요.”
박상우가 억지로 장영은 환자를 침대에 누이고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서,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르륵, 그녀의 뺨에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힘든 수술 버텨 주셔서.”
박상우가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뭉클해지는 박상우. 그 순간만은 틀림없이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영은 환자는 잠이 들었고,
“박상우 선생! 나 좀 잠깐 보자.”
흉부외과의 악명높은 치프, 버섯돌이 정현웅이 박상우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네. 선생님!”
* * *
병원 옥상.
성큼성큼, 큰 발걸음으로 옥상을 향하는 정현웅의 뒤를 박상우가 따랐다.
흉부외과 치프 정현웅. 명성대학교 적자 출신이며 최중현 교수 라인이다. 최중현 교수는 조현오 교수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이번 장영은 환자의 수술에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조현오 교수와 척을 진 사람이었다. 그 라인을 탄 정현웅으로서 박상우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온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친 정현웅이 빈정거렸다.
“네?”
“시치미 떼지 마라. 좋으면 좋은 티를 내는 게 사람이야. 요즘 방송국, 신문사 들락거리면서 취재하고 이곳저곳에서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아주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잖아. 안 그래?”
어느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정현웅이 허공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 것 없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그래서 내가 너 같은 인간을 싫어하는 거야.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아? 마치 자기 혼자 정의의 사도인 양, 거드름 피우는 네 모습에 구역질이 난다고.”
카악, 퉤!
정현웅이 걸쭉한 가래를 모아 바닥에 뱉어 버렸다.
“아닙니다. 전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박상우가 단호한 표정으로 이에 맞섰다.
“까고 있네. 아주 대한민국의 슈바이처 나셨어. 네까짓 게 무슨 의사야. 1년 차 나부랭이 주제에.”
정현웅이 여전히 빈정거리며 말했다.
“용건이 뭡니까? 이런 말씀 하시려고 저를 부르신 거면 내려가겠습니다.”
획, 박상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옥상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라?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거기 차렷!”
“…….”
“멈추라는 말, 못 들었어?”
박상우가 개의치 않은 채, 발걸음을 옮기자 정현웅이 달려들어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야, 이 새꺄! 너 지금 내가 우습냐?”
눈을 희번덕거리는 정현웅.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러면 이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치프가 말을 하는데 모른 척해?”
정현웅이 박상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이 올라갈 기세였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거 놓으십시오. 치프면 치프답게 행동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짜고짜 불러서는 이런 식으로 모욕을 하는 게 치프다운 행동입니까?”
물러설 생각이 없는 박상우였다. 그가 날카롭게 정현웅을 응시했다.
“그래, 그래. 이 눈빛! 난 네가 하는 행동은 뭐든 마음에 안 들지만, 이 기분 나쁜 네 눈빛이 가장 싫어. 앞으로 이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라.”
꽈당, 정현웅이 박상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야, 곁가지! 내 말 잘 들어라. 난 네가 어떻게 오피캡을 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아.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쭐해져서 깝죽거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네가 우리 부서에 처음 온 날 말했지? 그냥, 죽은 듯이 바짝 엎드려 지내라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라고!”
“…….”
“그러니까 앞으로도 죽은 듯이 지내라.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내 말 명심해!”
쾅! 정현웅이 씩씩거리며 옥상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래. 명심하지. 죽은 듯이 있으라면 있어 줄 수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어떡하지? 넌 내 머릿속엔 존재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데 말이야. 결국 최중현 교수에게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당할 운명, 앞으로 내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다. 똑똑히 기억해 둬. 오늘 네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툭툭툭, 박상우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리고 다음 날, 긴급 교수 회의.
조현오 교수의 말대로 긴급 교수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예상대로 이번 장영은 환자의 수술에 관한 건이었다.
조영철 원장, 병원 총괄 이사 최현호, 징계위원장인 이준술 교수를 비롯한 조현오 교수, 최중현 교수, 심기만 교수, 한정석 교수, 최태순 교수 등이 속속들이 회의실로 입장했다. 현 명성대 병원의 실세 중 실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