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
신의 메스-4화(4/249)
4화 그래! 다시 시작하자 (2)
“증세를 말씀해 보세요, 아주머니. 어떻게 아프신 겁니까?”
“오늘 캑캑, 저……녁에, 캑캑, 코다리찜을 먹었는데…….”
여자는 계속 헛기침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코다리찜이라? 후우, 가시가 걸렸나 보군.’
인턴 시절 수도 없이 봤던 환자였기에 박상우에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후우, 목에 가시가 걸렸나요?”
박상우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물었다.
“…….”
그때야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다 목에 가시가 걸려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였다.
푸르르르.
박상우가 양 입술을 떨며 소리를 내었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박상우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주머니에서 펜 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여기 앉아서 입 좀 벌려 보세요. 아~.”
박상우가 쪼그리고 앉더니 그녀의 입에 펜 라이트를 비춰 보았다.
“네. 아~.”
예상대로 그녀의 목에 커다란 가시가 박혀 있었다.
“됐어요. 아주머니. 그나저나 아주머니, 접수는 하셨어요?”
“아뇨, 아뇨. 밖에서 순서 기다리는데 의사 선생님이 보이셔서 바로 달려왔습니다.”
“후우, 그래요. 다시 아, 벌려 보세요.”
“네. 아~.”
박상우가 의료 기구함에서 핀셋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저기 목에 가시가 박혀 있는 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핀셋으로 저걸 뽑아내면 진료비로 10만 원이 나와요. 어떻게 하실래요? 제가 뽑아 드릴까요? 아니면, 댁에 가셔서 남편분이나 자제분께 뽑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그래요? 집에서 뽑아도 되는 건가요?”
스읍, 여자가 10만 원이란 소리에 흘러내린 침을 손등으로 훔쳤다. 봉 잡았다는 듯이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네. 집에 이런 것 있으시면, 이용하셔도 됩니다. 혹시 염증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뽑으시고 난 후에 가까운 이비인후과 가셔서 진료받으세요.”
박상우가 핀셋을 여자에게 내보였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괜찮은 건가요? 위험하지 않아요?”
“네. 별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론 그 정도는 가까운 병원을 가십시오. 응급실에 오시지 마시고요.”
“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여자가 해맑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안색이 한결 밝아지는 듯했다.
“와, 놔. 지금 이게 꿈이냐 생시냐?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응급의학과 바이스, 정상태가 어이없다는 듯 눈에 낀 눈곱을 벗겨 내더니 박상우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네? 그게. 목에 가시가 박힌 환자라서…….”
“그래서?”
“네?”
“그래서, 인턴 나부랭이가 지금 뭐 하는 건데?”
응급의학과 바이스 정상태가 조금씩 흰자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거 같아서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뭐?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 누가? 누가 별거 아니라고 했는데.”
정상태가 그를 잡아먹을 듯, 이빨을 드러내었다. 목부터 벌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홍조가 얼굴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냥 목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아서 집에 가서 핀셋으로 뽑으라고 했습니다.”
“아, 놔. 미치겠네. 이 새끼가 돌았나? 만약에 이소파거스(식도 감염: Esophagus infection) 있으면 어쩔 거야?”
생선 가시 정도에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잘 감염되지 않는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정상태가 저토록 악에 받쳐 눈을 희번덕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박상우가 못마땅해서이다. 인턴 나부랭이, 그것도 곁가지 출신의 인턴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처방했으니 부아가 치밀 수밖에.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꼴이랄까?
그냥 쳐다만 봐도 째려본다며 갈구는 그로서는 무척 시의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실수를 범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이 상황이라면 차라리 바짝 엎드리는 것이 상책. 박상우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회귀 전부터 상황 판단, 처세술 하나는 기가 막힌 인간이었다.
“죄송하지. 암, 죄송해야지. 잘 들어라. 박상우! 인턴은 생각을 하면 안 돼. 아니,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마. 나는 뇌가 없다! 나는 생각이란 걸 모른다! 그렇게 복창하면서 바짝 엎드려라. 그게 네 살길이야. 알아들어. 박상우?”
마치 꼬리를 내린 상대에게 아량을 베푸는, 독을 품은 독사 같았다. 정상태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네. 선생님.”
예전 같으면 속에서 천불이 치밀었겠지만, 지금의 박상우 눈에 정상태는 그저 오만함에 미쳐 날뛰는 똥개 새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멋도 모르고 우쭐거리며 설쳐 대는 꼴이 나름 귀여운 맛이 있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너 왜 이제 내려와? 다들 정신없는 거 안 보여?”
“아, 네. 감기가 좀 심해서…….”
“아하! 감기? 전문용어로 플루?”
“네. 조금 열이 있어서요.”
“콜록콜록!”
정상태가 갑자기 침을 튀겨 가며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열 좀 난다고 감기면, 난 이렇게 심한데 뉴모니아(Pneumonia: 폐렴)냐? 어, 어? 인턴이 무슨 감기에 걸려. 넌 열도 나면 안 되고 기침도 하면 안 돼. 고로 넌 아파선 안 된다고! 내 귀가 어떻게, 잘못된 거냐? 아무래도 못 들을 걸 들어 버린 것 같은데? 이비인후과 가 봐야 해? 언제부터 인턴이 감기에 걸렸냐……. 야, 내가 인턴 시절엔…….”
그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곤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미안하다. 내 친구 상우야. 커버 실패!’
한쪽에서 베드를 정리하던 천기수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상우를 응시했다. 그가 입 모양을 뻥긋거리며 양손으로 엑스 자를 그려 보였다.
“놔, 놔. 놓으라고! 시팔, 여기 병원 맞아? 단순 타박상이라고 하더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 지금 죽을 것 같다고! 의사 나와. 당장 안 나와!”
그 순간, 얼굴에 잔뜩 핏기가 오른 건장한 남자가 간호사들의 팔을 뿌리치더니 웃통을 벗고는 쉰 목소리로 소란을 피웠다. 견갑골 사이에 덕지덕지 파스가 붙어 있었다.
“여,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천기수가 황급히 달려가 그를 제지했다. 그 모습에 박상우와 정상태도 남자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 지금 죽겠다고! 허억, 허억, 지금 등이 칼로 찌른 듯이 아프단 말이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저런 인간들은 여전하구나.’
쯧쯧쯧, 그 모습을 지켜본 박상우가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남자의 이마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잔존 수명: 12시간 13분 24초, 23초, 22초…….]잔뜩 주름진 사내의 이마에 뜻 모를 숫자가 나타났다.
‘저, 저게 뭐야?’
박상우가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비벼 보았다. 잠시 흐려졌던 숫자가 다시 또렷해졌다.
* * *
박상우가 눈매를 좁히며 그에게 좀 더 다가가 이마에 쓰인 숫자를 살펴봤다.
환자에게 다가가자 점점 또렷해지는 숫자. 분명 붉은색으로 쓰인 글자였다.
시시각각 숫자의 마지막 단위가 줄어들고 있었다.
‘잔존 수명이라고? 왜 저런 게 보이는 거지?’
다시 박상우가 눈매를 좁혔다. 하지만 숫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군. 과거로 회귀한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이건 또 뭐야? 잔존 수명이라면 저 사람의 남은 수명이 1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린데, 설마? 저렇게 건장한 남자가 갑자기 죽는다는 게 말이 돼? 게다가 잔존 수명이 보인다니!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박상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앞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야…… 지금 저, 저 새끼 뭐 하냐? 야, 곁가지! 너 지금 상황에 뭐 하는 거야. 이쪽으로 당장 안 와? 비 맞은 미친놈처럼 얻다 대고 씨불이고 있어!”
그 순간, 날카로운 정상태의 목소리가 박상우의 귓전을 때렸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옷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며 정상태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족히 180cm가 넘는 엄청난 거구의 남자가 몸부림을 치니 정상태가 혼자서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 그래. 지금은 저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박상우!’
짝짝, 박상우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아,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박상우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야…… 이 환자 팔 좀 잡아 봐.”
팔을 휘젓고 있는 남자의 몸을, 정상태가 비지땀을 흘리며 누르고 있었다. 그가 한쪽 팔로 환자의 팔을 누르며 한쪽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청진기를 꺼내 들었다. 점점 힘이 빠지는지 남자가 식은땀을 흘렸고, 몸부림도 어느 정도 잦아들고 있었다.
‘맥박이 날뛴다! 그렇다면 부정맥?’
박상우가 남자의 팔목에 검지와 중지를 올려 보았다.
‘발작성 부정맥이 틀림없다!’
피가 얼굴 쪽으로 몰려 눈동자가 터질 듯 벌게졌다. 거기다 100kg이 넘는 거구에 심음은 일정치 않고 맥박까지 불안정했다.
– 나, 나 좀 어떻게 해 줘. 칼로 후벼 파듯이 아프단 말이야.
‘게다가 칼로 찢기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고,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난다? 그렇다면 성대 신경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어쩌면, 대동맥류에 의해 아올타(Aorta: 대동맥)가 풍선처럼 늘어나 성대 신경을 건드렸을 수도 있어! 그래서 쇳소리가 나는 거야. 이 환자, 결코 단순한 컨투션(Contusion: 타박상) 환자가 아니다. 이 상태로 놔둔다면 이 환자, 12시간을 넘기기 힘들어!’
[잔존 수명: 12시간 01분 24초, 23초, 22초…….]그 순간, 환자의 이마에 다시 나타난 숫자.
‘뭐, 뭐야? 다시 나타났어? 12시간? 진짜 이 환자의 잔존 수명을 말하는 거야? 후우, 도깨비한테 홀린 기분이군. 아무튼, 이 환자부터 살려 놓고 보자!’
“선생님, 아무래도 이 환자, 혈관 쪽에 문제가 있는 것…….”
“지랄하고 있네. 너 지금 무슨 개소릴 지껄이는 거야. 내가 말했지? 인턴은 생각 같은 거 하지도 말라고! 네가 뭘 안다고 혈관 운운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환자 팔이나 잡아. 시팔, 아픈 사람이 무슨 힘이 이렇게 세?”
정상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냈다.
“그래도…….”
“그래도는 뭐가 그래도야?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정상태가 박상우를 거칠게 밀쳐 내었다. 응급 상황에서 인턴의 의견은 다른 이들의 안중에 없었다.
‘이 환자, 분명히 수술해야 할 환자다! 그렇다면?’
박상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황급히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서, 선생님! 이 환자, 혈압이 떨어집니다.”
그 순간,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뭐? 얼마나요?”
“네. 지금 70mmHg까지 떨어졌습니다.”
‘시팔, 뭐야? 이러다가 어레스트 오면 좆 되는 건데. 어쩌지?’
“일단, 에피네프린 1 앰풀 투여해요!”
“네. 선생님.”
간호사가 주사기를 남자에 팔에 꽂아 넣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장준호가 눈에 보였는데…… 그나저나 흉부외과에 콜 하라고 했더니, 천기수 이 새끼는 왜 안 오는 거야? 어라? 그러고 보니 박상우 이 새끼도 안 보이네? 다들 어딜 싸질러 간 거야! 시팔, 이 새끼들 오늘 전부 옥상 집합이야.”
정상태가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선생님, 혈압이 잡히지 않습니다. 65mmHg까지 떨어졌어요.”
다급한 간호사의 목소리.
“노르에피네프린 식염수에 희석해서 1 앰풀 더 투여해 주세요!”
“네, 교수님!”
그 순간,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람.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흉부외과 부교수 조현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