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0)
신의 메스-40화(40/249)
40화 긴급 교수 회의 (2)
긴급 교수 회의, 병원에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열리는 비정기적 회의였다. 병원 내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회의는 언제나 ‘살아 있는 권력들’의 힘겨루기 장이었다.
열린 병원, 개방적인 병원으로 알려진 명성대학교 병원은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뼛속 깊은 순혈주의, 혈연관계로 얽힌 조직 체계, 상명하복 방식의 의사 결정 등,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이었다.
“아이고, 이 교수! 이게 얼마 만이야? 미국에 콘퍼런스는 잘 다녀왔나?”
현 병원 원장 조영철이 이준술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재 명성대학교 병원 서열 1위 조영철 원장. 하지만 명목뿐인 서열이었다. 이준술 교수 라인으로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지만, 사실상 바지 원장이자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마치 상하 관계가 바뀐 듯 손을 내민 것이었다.
“아, 네. 덕분에 편안히 잘 다녀왔습니다.”
이준술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준술이 그와의 짧은 인사를 뒤로 단상으로 올라갔다.
“지금부터 제18차 긴급 교수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땅땅땅, 의사봉을 두드리는 내과 과장 이준술은 현재 명성대 병원 내 서열 3위이다. 현 이사장, 최현호의 사위이기도 하다. 최현호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병원 내 최고 권력자인 장녀 최상희의 남편으로서 그녀를 배후에 두고 있는 그가 후계 구도 싸움에선 앞서 있었다. 냉철하고 수에 밝은 성격이 강점이었다.
“안건은 무엇입니까?”
이준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포스를 뿜어내는 이 남자는 이사장 최현호의 장남 최상엽이다. 그는 병원 내 모든 재무와 자금을 관리하는 총괄 이사다. 교수 회의에 참석한 인원 중 유일하게 의사가 아닌 그는, 병원 내 서열 3위인 이준술 내과 과장과 일생일대의 라이벌이었다. 장녀 최상희보다 최현호 이사장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게 대권으로 가는 가장 높은 허들이었다. 성정이 경박하고 치밀하지 못한 그의 성격은 최악의 단점이었다.
향후 치열한 대권 경쟁을 펼칠 두 사람인 이준술 과장과 최상엽 이사.
이 두 사람이 향후 대권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라는 사실은 병원 내에서 공공연했다. 모든 권력은 이 두 사람에게서 나왔고, 병원 내 모든 권력은 이준술 라인과 최상엽 라인으로 양분되었다.
“최근에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은 장영은 환자에 관한 건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원장님께서 이번 수술을 재가해 주셨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게다가 기자들 앞에서 장영은 환자의 치료비를 무상으로 우리 병원에서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요?”
최상엽 이사가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선제공격에 나섰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준술 과장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물론 이준술 과장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 네. 당시의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가 어쩔 수 없습니까? 적어도 그런 큰 결정을 하려거든 저와 한마디 상의라도 하셔야 했지 않나요?”
최상엽 이사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 그게.”
우물쭈물하는 조영철 원장.
“제가 진행하라고 했습니다. 병원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습니까?”
“뭐라고요? 병원의 중대 사안을 어떻게 과장님 마음대로 처리하십니까?”
최상엽이 죽일 듯이 이준술을 노려보았다. 매형과 처남 지간임에도 불구하고 권력 앞에서는 정적일 뿐이었다.
“이사님, 언성을 낮추십시오. 원장님께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닙니까? 차근차근 얘기해 보고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건데, 시작부터 흥분하시면 어떡합니까?”
이준술 과장 역시 물러설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공방전. 이준술 과장과 최상엽 이사는 회의 초반부터 기선을 잡으려는 듯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들에게 사안의 중대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안건이 무엇이든 서로 반대편에 앉아 물어뜯기에 바쁠 뿐이었다. 마치 무조건 반대, 반대만을 지속하는 정치판 같았다.
“우선 담당 교수인 조현오 교수의 의견부터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부터 시끄러웠던 긴급 회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준술 과장이 조현오 교수를 지목했다.
“수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위원장님. 당시 저는 부친의 기일로 인해 부산에 내려가 있는 상황이라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동료 교수들에게 연락을 취해 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우리 과의 박상우 선생이 집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현오 교수가 단상으로 나와 차분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HIV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의 수술을 할 수 있었느냐는 말입니다. 병원과는 상의도 없이 조 교수님이 단독으로 처리하실 사항이 아니에요. 명백히 월권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최상엽 이사가 아니었다. 그가 날카롭게 발톱을 드러냈다.
“아니, 이사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분명 원장님이 허락했고 위원장님이 최종 확인을 해 주신 사안인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최상엽의 말에 석좌교수 심기만이 반기를 들었다. 병원 내 최고의 권위자이자 원로인 그. 비록 얼마 있지 않으면 현역에서 은퇴할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아직 그의 발언권은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심 교수님! 그게 아니죠. 이사님의 말씀은 이런 중차대한 안건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정식으로 교수 회의에서 의견을 모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본적인 병원 내 사규를 무시하면 교수 회의 같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회의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조금씩 양분된 권력의 가지들이 자리를 찾아가는 분위기였다. 이준술 과장 라인의 좌장격인 심기만 교수가 스트레이트를 날리자, 최상엽 이사 라인의 대표 격인 신경외과 과장 박상도가 훅으로 응수했다.
“아, 아! 조용히들 하십시오. 이유야 어찌 됐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언론은 우리 병원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수십억의 자금을 들여 홍보해도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이뤄 내고 있다고요! 현재 원무과에 확인해 본 결과, 외래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칭찬해도 모자랄 판에 죄인 심문하듯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이준술 과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조현오 교수를 지원 사격했다.
“지금 위원장님의 발언은 심히 유감스럽군요. 회의를 중립적으로 진행하셔야 할 위원장님께서 한쪽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고 계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중립을 지키십시오. 위원장님!”
최상엽 이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준술 과장의 말실수를 물고 늘어졌다.
“맞습니다. 위원장, 중립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회의에 참여한 것이지, 위원장의 독단적인 의견을 청취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물꼬가 트이자 최상엽 이사 라인에 붙은 교수들이 들고일어났다. 마치 떼로 몰려드는 하이에나와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상엽 이사님, 계속 발언하십시오.”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이준술 과장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였다.
“네. 의사 진행 발언하겠습니다. 위원장님의 말대로 이번 장영은 환자 수술을 계기로 우리가 얻은 것이 좀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우리 병원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최중현 교수!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최상엽 이사가 고개를 돌려 최중현 교수를 응시했다.
“네. 위원장님의 말대로 외래 진료 환자들이 늘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입원 환자의 수는 역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자, 보시죠! 전월 대비 입원 환자 수가 5% 감소했습니다. 5%라는 수치가 적어 보이지만, 그동안 공실률이 제로에 가까웠던 우리 병원의 입장에선 엄청난 감소율이죠. 입원 대기를 신청했던 환자들도 속속들이 예약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최중현 교수가 스크린에 PPT 화면을 띄우며 설명했다.
“네. 최 교수의 말이 맞습니다. 결국 님비 현상과도 같은 거라 볼 수 있죠.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는 그런 심리! 그런 심리가 지금 우리 병원에서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작정한 듯 몰아붙이는 최상엽 이사가 요목조목 따져 가며 이준술 과장과 조영철 원장을 코너로 밀어붙였다.
“심 교수님, 원장님, 잠시만요.”
마음이 급해진 이준술이 심기만 교수와 조영철 교수를 손짓해 불렀다.
속닥속닥, 이준술 과장이 그들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위원장님! 지금 발언 중입니다. 제 발언에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기를 잡은 듯 최상엽 이사가 더욱더 이준술의 목을 죄었다.
“네. 아, 알겠습니다.”
당황한 듯 이준술 과장이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또 하나, 대내외적으로 우리 병원이 홍보 효과를 봤다고요?”
최상엽 이사가 이준술 과장을 노려봤다.
“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최근 주요 일간지에 우리 병원 기사가 도배하고 있는데 이것만 한 광고 효과가 어디 있습니까?”
“후후후,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어떨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 최상엽. 그가 인터넷을 켜더니 온라인 커뮤니티 하나를 활성화했다.
<명성대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거기 가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
<맞아! 우리 이제 명성대 병원으로 가자고. 어쩌면 그 병원에서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냐! 소문에 의하면 이미 치료제를 확보하고 있다던데? 우리 명성대 병원으로 갑시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가입한 비밀 카페의 글 모음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렇듯 비상식적인 글이 올라온 건 아니었다. 이준술 과장 쪽에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 최상엽 이사가 꾸민 술책이었다. 앞뒤 내용을 잘라 버린, 일명 악마의 편집을 한 것이었다.
“보십시오. 지금 전국적으로 이런 가짜 뉴스가 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우리 병원으로 몰려들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뜩이나 지금 입원 환자들도 빠져나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대안이 있으십니까? 위원장님?”
최상엽 이사가 컴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 그게.”
이준술 과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옆의 조영철 원장과 심기만 석좌교수 역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엔 최상엽 이사의 완승인가?”
하하하, 회의실의 절반은 축제 분위기였다.
“흠, 이준술 과장님이 이번엔 좀 무리하신 것 같은데…… 너무 준비 없이 성급하셨어!”
나머지 절반은 초상집과 같았다.
“흠, 조현오 교수님!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최상엽 이사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조현오 교수에게 물었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모습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잠시만요! 제가 교수님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순간, 박상우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